[필자소개] 저는 일복·인복·상복 많은 사람

미주 중앙일보 창립 44주년 필자소개난에 나간 글입니다.

미주 중앙일보가 44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1세 이민자, 유학생, 파견 직장인 또는 2세, 3세들에게 한글을 통해서 여러 소식을 전해 주고 삶의 질 향상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준 것에 감사드리고 축하드립니다. 한국사람으로 한글과 한국말을 잊지 않고 살아 갈 수 있다는 것은 삶의 ‘얼’과 ‘얼’로 인한 ‘열정’을 잃지 않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양 방사선학 의업이 저의 주업입니다. 카이저병원 암 센터에서 일해 왔습니다. 요즘은 한국어진흥재단(www.klacUSA.org) 이사장직을 맡고 한글 진흥을 위해서도 일하고 있습니다. 이 재단은 미국내 공립중고교에 한국어반 신설을 통한 한국어의 공교육을 실시하고 한국어를 배운 한인, 비한인 학생들에게 SAT-II 한국어 외에도 AP한국어라는 또 하나의 문을 열어주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는 비영리 재단입니다.

두 딸이 의사와 박사가 될 때 까지 함께 걸었던 경험, 실수를 토대로 중앙일보 장연화 기자와 함께 하는 교육 카페 ‘에듀팟(www.podbbang.com/ch/10934)에도 정기적으로 출연하고 있습니다. 제가 ‘말보로 고등학교’에서 이사직을 맡았던 경험이 이 프로그램과 한국어진흥재단 사업을 더 깊이 이해하고 이행하는 것에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저의 궁극적인 희망은 글을 계속 쓰고 나누는 것입니다. 저의 글을 모아 ‘희망 한 단에 얼마예요?’라는 수필집을 출간(2016)했고 그 동안 썼던 글들, 발표되지 않은 글들은 웹사이트(www.mydoctormonica.com) 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환자와 동료들이 뽑는 ‘월터 러스크상’, 레지던트들이 뽑는 ‘올해의 스승상’, 경기여고 동문회에서 주는 ‘영매상’등을 수상한 일복, 인복, 상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 글이 나간 이후 10월 9일 한글날 한국에서 한국어진흥재단 대표로 대통령상 표창을 받았습니다.  한글발전 유공단체로 체택된  단체 3개 중 하나로, 미국에서 저희가, 싱가폴, 한국에서는 KBS 우리말겨루기 팀이 수상했습니다.

 

평범에서 비범으로, 비범에서 평범으로

 
누가 지금 나에게 ‘당신의 두 딸들이 어떻게 사는 것을 원하십니까?’ 하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필부로 살아가는 것을 바랍니다.’라고 답 할 것이다. 두 딸들은 엄마이고, 아내이며 전문직을 갖고 있다. 같은 질문을 아이들이 중학교를 다닐 때 받았다면 ‘비범하게 자라 줄 것을 원합니다.’ 했을 것이다.

나잇대에 따라 부모의 바람이 다르다니, 참으로 아이러니 한 마음 가짐이고, 부조리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나의 부모님들도 나에 대한 바램이 성장과정 시기에 따라 변했을까 생각해 본다. 그런 것 같다. 부모님들은 초등학교 시절을 여느 아이들 처럼 아프지 않고, 튼튼하게, 밖에서 뛰 놀기도 하고, 한글도 익히고, 덧샘 뺄샘도 하고, 벽시계를 읽는 법도 이해 하면서 자라 주기를 바라셨을 터이지만 내가 중학교로 진학했을 때 부터는 고등교육의 비젼을 갖고 나를 바라보고 계셨던 것 같다.

내가 정규 고등교육을 끝내고 전문의사가 되고 난 후 당신들은 내가 힘들지 않게, 애쓰지 말고 평범하게 살아 갈 것을 바랐다. 도대체 이때의 부모님의 평범이란 무엇이었을까? 소위 항간에서 말하듯이 당신들 마음에 드는 청년을 만나 결혼했으나 어려운 시집살이는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아이 낳고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살아 왔다.

학창시절의 평범과 생활인이 되었을 때의 평범의 정의나 기준에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어폐가 있을 정도로 말이다. 또 평범과 비범이라는 실체는 나의 경우에는 학구적/학술적인, 그에 부수된 삶에 대한 것으로 간주되지만 실상 그 범위가 국한되어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공부 잘해라 하시지도 않았다. 성적 나쁘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꼭 두번 있다. 한번은 언니한데 신랄하게 질책을 받았다. 엄마와 아버지 대신 내 담임 선생을 만나러 갔었던 때가 있었다. 언니는 생각보다 내 성적이 안 좋아서 쪽 팔렸었던 것 같다. 또 한번은 사돈 언니벌 교수였는데 내가 장학금 신청을 했을 때 조용히 성적이 별로 안 좋다고 말해 주었다. 얘기가 옆으로 새지만, 실상 나는 의본과 시절에 수재로 간주되어 문교부 장학금을 탄 적이 있다.

도대체 내가 감지하고 있는 평범이란 무엇인가를 따져봐야 할 것 같다. 평범이란 ‘사회의 주류적 가치에 충실히 따르는 것’이라고 누군가 정의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평범하다는 것을 ‘보통인 것’으로 설명하는데 그러면 보통이란 무엇인가를 또 따져봐야 한다. 뛰어나지 않고, 열등하지 않은 것이 보통이란다.

여기서 내가 열거해온 학교, 학교성적, 고등교육 속의 평범, 비범, 보통 등의 이야기를 떠나서, 나의 부조리한 기억으로 돌아간다. 평범과 비범, 보통이라는 것을 삶의 다른 부분에서도 구분하고 구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 비범한 사람이 평범한 삶을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88세 ‘오마하의 현인’인 기업가이며 투자자인 워렌 버핏이 그 좋은 예이다. 그의 평범한 일상생활에 대해 미디어가 이미 많이 보도한 바 있다.

‘시집살이 어찌 하는지 누가 점수 매기러 오지 않으니, 성실히 편히들 살거라. 너무 잘하려 하지 말고!’ 하시던 내 친구 어머님의 말씀으로 이글을 끝낸다. 그 때는 필부의 평범한 삶의 아름다움을 내가 알지 못했다

굿 뉴스, 배드 뉴스

뉴욕의과대학이 미국 의과대학 씨스템에 혁신적인 폴리시 변경을 선포했다. 얼마나 멋있고 고마운 일인지, 희망스럽고 신나는 일이다. 뉴욕의대 부속병원이 ‘랭곤의과대학 병원’ (Elaine A and Kenneth G Langone Medical Center)이라 불리우게 만든 장본인, 켄 랭곤은 모든 의대생들이 공짜로 의과대학을 다닐 수 있도록 학자금을 전액을 면제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러한 폴리시가 연속되려면 6억불 (600 million) 이 필요한데 벌써 4억5천만 불이 모금되었고, 그 중 랭곤이 일 억 불을 이미 희사했다고 한다.

뉴욕의과대학의 일 년 학비는 5만5천불이다. 미국의 의사들은 의과대학을 졸업 할 때 쯤 되면 평균 이십 만 불의 빚이 싸인다. 빚에는 이자가 붙고, 가정을 꾸며야 하는 젊은 나이이다 보니 이에 필요한 생활비까지 감안해 볼때 빚을 쉬 갚아 버리기는 어렵다. 지금 미국에는 약 백만명의 의사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4천4백만 명의 의사들이 빚을 지고 있다. 총 1조 5억불에 달하는 금액이다.

켄 랭곤은 ‘홈 티포’의 공동창립자이다. 그의 아버지는 배관공, 어머니는 식당 직원이었다. 그는 풀타임 직장을 다니면서 뉴욕대학의 야간 비지니스 클래스를, 그것도 파트타임으로 수강했다. 그래서 뉴욕대학의 야간 비지니스 프로그램을 ‘랭곤 프로그램’이라고 부른다.

그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옮겨 다닌 직장은 꽤 많았다. 여기저기에서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창업에 참여하거나 있는 사업체를 변형해 걸 맞는 최적사업으로 만들어 간 흔적들이 있다.

켄 랭곤에게 왜 그런 생각을 했느냐고 어느 앵커가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앞으로 5년 후면 미국에는 의사가 부족한 싸이클로 들어 갈 것이라고 본다. 무학자금 의과대학 수료는 그야말로 빚 없이 자유로이 의대 과정을 이수 하고, 수입에 상관하지 않고 원하는 전공분야를 택할 수 있게 사회환경이 바뀔 것이다. 덧 붙여서 그가 한 말이 슬프다. 그가 만났던 어떤 의사는 의과대학을 졸업을 한지 35년이 지나도록 학창시절의 빚을 다 갚지 못하고 있더라고 말이다. 의사들의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삶의 단편을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앞으로 다른 의과대학들이 이에 동승해서 무-학자금 의과대학 씨스템으로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예상컨데 시간은 걸려도 그렇게 될 확률이 꽤 높다. 뉴욕의과대학에는 이 폴리시로 더 좋은 의사지망생들이 몰릴 것이고, 이가 염려되어 그리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미 이 대학은 유능한 의사들을 많이 배출한바 있다. 그 중 소아마비 예방약을 만든 알버트 세이빈, 조나 설크가 대표적이다.

그런 굿뉴스가 있느냐 하면 배드뉴스도 있다. 여러 곳에서 동료의사들이 제 수명대로 살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다. 미국은 일 년에 의과대학 한 클래스 정도 또는 작은 의과대학이라고 칠 때 전교생에 달하는 숫자가 자살로 인해 사라져 버리는 비상사태에 처해 있다. 하루에 한 명 꼴로 의사들을 자살로 잃는다니 믿겨지지 않는다. 더 우려되는 것은 사망한 의과대학생들의 자살이 사고사 다음으로 많다는 것이다.

우울증을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추측한다. 우울증은 어디서 왔는가를 자문할 필요가 있다. 공부하기 위해 빌린 은행빚, 쌓여가는 빚 덩어리, 질적인 삶의 하락, 과로, 만성 피로, 수면부족, 작은 비판에도 예민한 완벽증, 과중한 학과 공부나 요구되는 막중한 임무 때문에 사그라져가는 소셜라이프…약물중독, 알콜중독..유전..아마도 복합적인 이유일 것이다. 함부로 해석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뉴욕의과대학 처럼 모든 의과대학이 무-학자금 조치를 취해 준다면 의사들의 자살로 인한 사망률이 줄어 들지도 모르겠다. 의사들의 써클 안에서의 자살이라는 병이 완치되지는 않겠지만 줄어는 들 것이다

나는 애국자인가?

나는 애국자인가?
육중해 보이는 동판 여러개가 벽에 걸려있다. 한국 이름, 영어 이름들이 동판의 가슴에 세겨져 있다. 지난 달 7월, ‘한국어 진흥재단’이 미국 정규공립 고등학교 행정가들을 인솔하여 한국을 방문했을 때, 서울 용산구 옛 육군본부 자리에 있는 ‘전쟁기념박물관’에 들렸다. 교장 중의 한 사람이 첫 줄에 ‘OO 사단’ 이라 써있는 동판앞에 서서 이름들을 읽어 내려 가고 있다. 바로 한국전에서 전사한 20여 만명의 한국군과 유엔군들의 이름이 새겨진 전사자명비였다. ‘누구를 찾으세요?’ 하고 물으니, ‘내 삼촌이요…’라고 대답한다. 삼촌에 대해 자세한 것을 알지 못한 그가 20여만명의 이름 속에 파뭍혀 있는 삼촌의 이름을 찾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이었다. 나도 전사한 큰 오빠의 이름을 찾지 못했다. 그도, 나도 수 많은 이름들 앞에서 침묵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한국민에게는 너무도 처절했던 육이오는, 내 모국이 조선시대 부터 겪은 27번의 전쟁중 하나로, 실상 영어권 사람들에게는 이차대전이나 월남전에 비해 ‘잊혀진 전쟁’이라 불릴 만큼 관심을 받지 못했던 전쟁이었다. 미국을 위시한 16개국이 유엔의 이름으로 실전에 참가해 주었고, 41개국은 장비, 의약품등 다른 종류의 원조를 주었다고 예비역 대령 출신이라는 백발의 자원봉사 안내원이 설명한다. 통털어 약 18만명이 죽고, 3만3천명이 행방불명, 57만명이 부상을 당한 전쟁이 ‘잊혀진 전쟁’이라니… 미국은 그 16개국 중에 가장 많이 자국의 젊은이들을 잃었다. 물론 남한은 미국 젊은이의 3.8배 되는 약 14만명이 전사했고, 4.4배 되는 45만명이 부상당했다. 이 통계는 군인에 한한 것인데, 일반인에 대한 대략의 숫자는 남한에서만 백만명이라 한다.

전쟁에 대한 강의를 경청하는 행정가들의 모습은 진지하고 엄숙했다. 전시품들은 신라 삼국통일 때의 것 부터, 임진왜란, 육이오를 망라하고 있었다. 모형거북선, 각종의 전투기, 탱크들, 문명이 발달하기 전에 쓰던 창과 칼들.

‘전쟁과 평화에 대한 리서치’ 를 하는 연구소가 스웨덴 업살라 대학, 핀랜드 오슬로의 평화연구원, 카나다 뱅쿠버의 사이몬 프레이저 대학에 있다. 이들의 자료를 보면2011년 한해동안 37개의 전쟁이 있었고, 현재진행형의 전쟁, 갈등으로 만명이상의 사상자를 낸 전쟁이 5개나 된다 했다. 1945년 부터 2012년 까지 만명 미만의 사상자를 낸 전쟁은 13개이다. 만명이상이 죽은 전쟁수는 많지 않다해도, 사상자의 숫자는 엄청나다. 이차대전만 보아도 사십만명이 되고, 3조 달러의 경제적 손실이 있었다.

열악한 역사 속에서도 한글이라는 위대한 글이 만들어 진 것에 교장들은 놀라워 하고, 존경심을 표했다. 누군가 말한 것 처럼, 일제강점기 동안, 한글말을 잃지 않고, 한글을 숨어서라도 배우고 써 왔기 때문에 한구인의 ‘얼’이 살아 남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종대왕의 백성, 그 후손들이 지은 한글박물관은 웅장하고 멋있었다. 방문객 미국 교장들은 한글이 만들어진 과정에 대해, 짧은 시간 동안 받은 한국말 렛슨에서 알게된 수월함, 또 그 과학성에 놀라고 감탄했다.

한글이 세계언어로서 일차적으로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에서 체계적인 정규교육 방법으로 자리를 굳히는 것에는 이들의 관심과 응원이 필수적이다. 혈통, 비혈통을 막론하고 미국 중고교생들에게 한국어 반을 통한 한국어 클래스의 탄생내지는 존재여부를 그들이 최종 결정하기 때문이다.

한글날을 기해서 총영사관저 오찬에서 다시 교장들을 만날 것이다. 세종대왕께서 조선이 전부였던 당신 때 보다, 한글의 얼을 세계로 펴는 우리를 보시며, 당신을 닮았다 하시면 좋겠다.

가을 인사

너무 오랫동안 적적했습니다.

부업 즉 ‘한국어진흥재단’이 일이 주업처럼 되어버려 무척 분주한 여름을 지냈습니다. 비록 뜨거운 여름을 보내는 엘에이 날씨이지만 가을빛이 역력합니다.

이제부터는 자주 글을 올리겠습니다. 저를 아껴주시고 성원해 주시는 여러분들에게 가을이사를 올립니다.

감사드리며,

모니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