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뽀하지 마세요!

나는 ‘뽀뽀’를 하는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다. 어렸을 때 내가 받은 ‘뽀뽀’라면 아버지가 거칠은 턱수염으로 뺨을 비벼 해 주시던 것이 전부이다. 반세기도 전의 일이다. 당시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외출할 일이 있으면 아버지는 앞에서, 엄마는 한 삼십보 뒤어서 일렬 종대로 걸으시던 시대였다. 누가 보는 곳에서 뽀뽀를 하는 문화는 더더구나 아니었다.

한국에서 ‘뽀뽀’라는 말이 문학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39년 김유정의 ‘애기’라는 작품이라고 보고 있다. 어린이들에게 쓰이는 ‘입맞춤’의 유아어로 입맞춤 소리인 ‘뽀’가 둘이 모여 첩어가 되어 ‘뽀뽀’가 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설이 맞는 것 같다. ‘키스’라는 외래어는 그 보다 더 전에 한국 소설에 등장했다한다. 국어대사전에 뽀뽀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이 1961년이다.

어떻든 ‘뽀뽀’라는 한국말과 ‘키스’라는 영어는 의미가 같아야 할 터인데 왠지 나에게는 두 단어가 주는 뉘앙스가 다르다. ‘뽀뽀’라고 하면 주로 어린이들에게 해 주는 사랑의 표시라는 단순한 뜻이 전부라고 느껴지는 반면 같은 뜻을 외국어로 표시한 ‘키스’라면 성인들이 친구 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행동으로 보여 주는 애정의 표현으로 느껴 진다. 내 해석이 좀 과도한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에는 단순한 감정의 표시부터 깊은 유혹에 달 하는 20개 정도의 ‘키스’가 있다고 누가 정리해 놓은 것이 있다. 민족에 따라 스타일도 다르다. 또 입맞춤의 종류에 따라 의미도 다르다고 한다.

봄 방학이라 조부모님들이 손주들을 돌보아 주어야 할 경우가 많이 있을 것이다. 손주들을 돌볼 때,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입에다 하는 ‘뽀뽀’로 하지 마시라고 부탁하고 싶다. 위생상 좋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

‘뽀뽀’를 꼭 입술에 할 필요는 없다. 아이들의 뽈에, 이마에, 또는 머리에 가볍게 해 주는 것도 충분한 애정의 표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이가 좀 큰 경우라면 손시늉으로 하는 블로우 키스(blow kiss)로도 사랑의 마음을 전할 수 있다.

어른들의 입술이나 구강에는 정상균 무리가 살고 있다. 또 세계건강기구의 보도에 의하면 세계인구의 67% 정도 이상이 헤르페스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다고 한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 되면 증상완화는 가능해도 완치는 불가능하다. 헤르페스 바이러스는 우리들이 건강할 때는 잠복해 있다가 면역 씨스템이 약화 될 때 되 살아나서 입술이나 입안에 물집을 만들고, 이를 접촉하는 사람을 전염시킨다. 드물기는 해도 물집이 없는 경우에도전염이 된다. 임산부 생식기에 성병의 일종으로 보는 헤르페스 바이러스 (타입 1, 타입 2)에 감염된 경우를 생각해 본다. 분만시 산도를 통해 나오는 아기가 바이러스에 접촉되는 위험이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출산일 전에 미리 임산부를 치료한다. 이러한 치료가 없었던 시절에는 제왕절개를 했었다. 과거에는 신생아가 엄마의 산도를 통해 감염되어 뇌막염이나 뇌염에 걸리는심각한 경우가 있었던 것이다.

그 뿐 아니다. 증상이 없는 충치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여러가지 이유에서 입에대고 하는 ‘뽀뽀’ 뿐 아니라 식기, 수저 공유를 피해 주고, 내가 먹던 음식을 아이에게 먹이는 것도 피해 주는 것이 좋다. 이유식을 먹여야 하는 연령층 아이들에는 더더욱 지켜주어야 할 일 같다.

나는 여전히 답을 알지 못한다/ ‘거짓 희망’은 오래가지 않는다

‘왜 세상은 이렇게 불공평합니까?’ 내 나이 또래로 보였던 환자의 형은 간호실 앞에서 일하고 있던 나를 붙잡고 절규하며 말했다. 그의 남동생이 방금 숨을 거두었던 터였다. 그의 동생은 대학생이었다.

나는 답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해 한국의 봄은 유난히 길고 쌀쌀했다. 머리가 지식으로 가득차 마치 설익은 과일과 같았던 인턴 시절, 나에게 죽음은 하나의 학설에 지나지 않았었다. 당시 세상을 뜬 젊은이가 겪어 가던 고통스런 투병의 행로에 나는 하나의 구경군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많은 의사들은, 나를 위시해서, 아이로니 하게도, 죽음의 순간에 환자와 함께 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더구나 요즘은 입원환자들만을 치료하는 입원환자 전문의, 말기 환자를 돌보는 호스피스 전문의들이 있어서 암 전문의라 하여도 죽음이 임박할 때까지만 환자와 마주한다고 보면 틀리지 않는다. 실상 의사들은 환자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공부하고, 리서치에 가담한다. 환자가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게 될 때에도 어쩌면 환자 자신들 보다 더 아파하며 포기하지 못 할 수도 있다.
지난 주 당직일 때, 방사선 치료를 마친 동료의사의 환자를 봐 주어야 했다. 데자뷔라고 할까? 열 여덟 살의 흑인 여대생은 불치병을 앓고 있었다. 일곱 살 때에 백혈병에서 완치되어 정상적으로 성장했다. 대학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복수가 배에 차기 시작해서 귀가하고 백혈병이 재발 한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에 완치는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알려진 병환부위 전부를 방사선으로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반면 병환부위 일부만을 치료한다면 복수는 줄지 않을 것이었다. 부분에만 방사선 치료를 받았고, 복수 치유가 불가능하다는 확률에 대해서 모르고 있던 그녀는 말했다. ‘이 복수가 없어지면 나는 골수 이식을 받을 거예요. 이 복수는 언제나 줄어 들어요?’

동료의사는 부분 방사선 치료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치료를 거부한다는 것이 그녀의 희망을 꺽는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치료를 끝낸 시점에 여대생이 하였던 질문에 그녀가 모르던 혼동되는 답을 한다는 것은 잔인한 일이고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 시간을 조금 두고 상황을 점검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암의 말기에 도달한 환자들에게 완치의 길이 없다는 것을 알리는 것은 무척 힘들다. 그래서 의사들은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주치의는 이를 빨리 알려주고 앞 날을 대처하는 플랜을 환자와 함께 짜는 것이 처음에는 힘들지 몰라도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놀랍게도 환자는 적응하는 준비를 우리들이 기대하는 것 보다 훨씬 잘 해 간다. 이런 첫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환자들은 주치의가 아닌 다른 의뢰된 의사들에게서 이런 정보를 듣게 되거나, 완치가 불가능 하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게 되면 더 많이 당황하고, 화내고, 깊은 우울에 빠질 수 있다.

‘거짓 희망’은 오래가지 않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환자와 가족들에게는 함께 풀어야 할 숙제가 있는지 누가 알랴? 어린 여대생을 보면서, 참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연륜이 답을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Hanna Poeschl 황영혜 양에게!

Dear Young Hye,

The story of your journey published in The Korea Daily on February 28, 2018—describing your experience as a toddler, moving from Korea to the USA, and then as a college reporter traveling from the USA to Pyung Chang, Korea—touched me and many hearts around me.

You may wonder what it mean by ‘many hearts’. The folks I am alluding to are the Board of Directors of the Foundation for Korean Language and Culture in the USA (FKLC), who have been closely working together to promote Korean language and culture in American public schools. This nonprofit organization, located in Los Angeles, creates and supports Korean language classes for both formal and informal education contexts. All of our directors, including executive and vice-executive directors, are dedicated and committed to the mission of sharing Korean language and culture. In fact, Dr. Steven Lee, the President of George Mason University in Inchon where you are a student, is one of the board of directors at our Foundation. While I am not a teacher ( but a medical doctor specializing in Radiation Oncology, a mother of 2 professional daughters, and grandmother of 4), I was elected to be the President of the Foundation for this term. It is a great honor for me.

One of our programs includes supporting visits to Korea for American high school scholars (like you once were) who are interested in Korea, it’s language, and culture. The chosen high school scholars gain opportunities to experience Korea first-hand on Korean soil. We hope that our high school scholars can see Korea, in its richness and complexity of history, just as you have.

Young Hye! I am guessing that your experiences growing up in the USA might have been difficult at times, sad at other times. But I am convinced that you are one of the most blessed individuals on earth. Your story in The Korea Daily tells me that.

I would like to say that we are all in the same boat called ‘life,’ whether you are an adoptee or non-adopted child. This boat can be too small or too big, too rough or too complicated. The ocean the boat sails on is often more turbulent than smooth or easy. But somehow we persevere, and your story showed us how we can do so gracefully while getting to the places we would like to reach. Your story teaches us to be positive, inquisitive, courageous, resilient, wise and happy.

Before concluding my letter to you, I would like to send special thanks to your adopted parents for the love and life they have shared with you. Their daughter, Younghye, has shown us the way to reach someone, somewhere. Tell them we admire their daughter Younghye!

Best of luck in locating your birth parents and, biological brother!

Best regards,

Monica C. Ryoo, M.D.

President
Foundation for Korean Language and Culture in the USA
680 Wilshire Pl. Suite 416
Los Angeles, CA 90005
Tel) 213-380-5712
E-mail : info@klacUSA.org
Website : http://www.klacUSA.org

이 편지는 중앙일보 본국지 2월 28일자에 보도된 한국출생 미국 입양아의 기사를 읽고 쓴 글로 곧 중앙일보에 publish 될 것입니다. ‘The roots’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 교육 카페” 소개합니다

초봄에 모두 건강히 지내시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중앙일보 교육 담당 장연화 Nicole, MBA 께서 신문에 자녀 진학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알려드리고,
조언을 쓰시는 일 이외에도, 오디오 팟방 사이트를 통해 부모님들에게 다가가고 계십니다. 자녀들의 higher education 에 대한 여러 방면의 흥미로운 토픽을 갖고, 또 그 과정을 거치며 견뎌내야 하는 임무들을 의논합니다.

저를 위시해서 엘에이지역 지경희 고교 카운슬러, 정 수잔 소아정신과 전문의, 엘레나 폴 밸리지역 차터 스쿨 교장을 인터뷰하며 내보내는 싸이트입니다.

아시다싶이 저는 선생은 아니지요. 또 ‘소아’ 하고는 관계가 없는 전문의이지요. 하오나 두 딸을 기른 엄마로, 네 명의 손주들을 가진 할머니로 이 방송에 참여하면서 저의 실수를 나누고, 학부모님들에게 ‘밥상머리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혹시 손주들이 있으시면 들어 보시고, 듣고 싶으신 토픽이 있으시면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장연화 부장님께 알려 드리겠습니다. 주위의 젊은 학부모님들이 들으시면 도움이 될 듯 합니다. 자동차 운전중에도 들으실 수 있는 방송입니다. 한국에서도 듣고 계시더군요.

podbbang.com/ch/10934

싸이트 이름입니다.

류 모니카 드림

무례함에 대한 엇갈린 시선

바람에 날린 하얀 돌배꽃잎들이 아스팔트를 덮고 있는 이곳 엘에이의 겨울은 화창하고 따뜻해서 나무들도 혼동이 되나 보다. 어떤 집 앞마당에는 봄에 피어야 할 목련이 지금 활짝 피어 있다. 정원사들이 바쁘다.

우리집 정원사는 두명의 도우미 일꾼과 동행한다. 그 중 한 사람이 다리를 전다. 어렸을 때 다친 모양이다. 네살 손주와 시간을 보내던 지난 주 어느 오후, 손주는 일꾼의 걸음 걸이가 이상하다는 것을 보았다. 나에게 묻는다. ‘저 아저씨는 왜 저렇게 걷지?’ ‘쉬~~, 조용 조용 말해. 들리지 않게!’ ‘왜?’ 이 아이가 두가지에 대해서 ‘왜?’라고 묻는 것이었다. 왜 변형된 다리를 갖고 있는지, 왜 할머니가 조용히 들리지 않게 말하라고 하는 것인지를 묻고 있었다. 그러자 녀석은 ‘내가 가서 물어 볼께. 왜 다리가 그렇게 됐는지.’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사람에게 가서 묻는 것은 무례한 짓이라고 말하고 우선 막아야 했다. 그 애는 또 물었다. 왜 무례하냐고 말이다. 그 애의 질문은 단순했고, 하고저 하는 행동도 순수했다. 아이에게 이론에 맞게 답을 해야 하는데 그게 너무 복잡했다. 모든 이유를 생략하고 그냥 ‘안돼!’라고 일축해 버렸다. 무척 찜찜했다.

몸의 일부가 망가지는 것은 웃음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현대를 사는 우리는 안다. 차별이 있을 경우 불법이라는 것도 안다. 우리가 여기 까지 오는 데 오래 걸렸다. 이러한 내면을 이해 시킬 수 있었더라면, 나는 손주를 말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또 법적, 사회적 개선에도 불구하고 이 정원사가 차별대우를 안 받았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손주의 순수한 질문은 왜곡될 수 있을 것이었다.

두 달 전 나에게 의뢰되어 온 히스페닉 계통의 23세 마리아가 생각난다. 5년 전, 십대이었을 때 골반 안에 희귀 양성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다. 지난 해 12월 정규검사에서 골반 수술 흉터라고 보기에는 좀 큰 덩어리가 발견되어 방사선 치료 가능성 타진 차 보내졌다. 여러 모로 퍼즐이 잘 맞는 것 같지 않아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의사들은 이런 경우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재조사를 한다. 병리를 리뷰하고, 영상 검사를 머리부터 가슴, 배, 골반까지 모두 다시 했다. 이 환자는 유전병 신경 섬유종증 (neurofibromatosis)의 피해자/환자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마리아는 완치될 수 없고, 점차 나빠질 것이다. 피부에 양성 종양들이 생기면서 외모는 변할 것이다. 뇌나 척추 신경에도 혹이 생겨 청각을 잃거나 다리를 못 쓰게 될 수도 있다. 이번 주 다시 마리아를 만나 결과를 알려야 한다. 처음 처럼 담담할까…

손주가 자라면 정원사의 아펏던 다리, 그런 다리를 갖고도 일 할 수 있었던 환경, 마리아의 선천적 질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그들이 겪은 외모의 변화, 그들이 참아 낸 크고 작은 기능 장애와 일반인들의 시선에 대해서도 말이다. 사회정의를 풀이 할 수 있는 예리한 눈과 따뜻한 마음을 갖고 서로 토론 할 수 있게 될 것을 바란다. 손주는 자기의 세가지 질문에 대한 나의 한 종류의 답에 대해서 이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