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인권탄압에 침묵하는 세계 2014

‘어서 들어가!’ 총부리를 들이대며 감시원이 고함을 친다. 젊은 부부와 네 살 짜리 아이는 다섯 면이 유리로 된 방안으로 밀쳐진다. 감시원은 밖에서 문을 잠근다. 아이는 눈치로도 무슨 험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안다. 젊은 남자의 다리에 두 팔을 꼭 두르고 얼굴을 두 다리 사이에 묻고 있다. ‘무서워. 아빠 무서워!’ 남자는 아이를 달랜다. ‘괜찮아. 아빠랑 엄마 여기 같이 있잖아!’…시간이 흐른다. 아이가 입에 거품을 물고 발작을 한다. 정신을 잃어간다. ‘정신 차려봐, 눈 떠 봐.’ 아이의 입과 코에 젊은이는 제 숨을 뿜어 준다. 이들 가족이 전부 숨을 거두기까지 세계의 시계들은 멈추었다.

이 이야기는 유대인 친구가 나에게 쥐어 준 ‘유대인 저널’ 최근호에 인용된 ‘북한의 인간목장’ 부분에서 인체 실험 대상으로 뽑혀 죽어가던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당시 상황을 상상해 보며 다시 써 본 것이다.

사이먼 위젠탈(Simon Wiesenthal) 센터의 부학장으로 있는 랍비 아브라함 쿠퍼(Rabbi Abraham Cooper)가 위의 내용을 보고했다. 사이먼 위젠탈 센터는 LA에 본부가 있는 기관으로 나치 유대인 살인범들을 추적하던 사이먼 위젠탈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단체다. 지금은 유대인을 넘어서 세계 모든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존경받는 단체이다.

지난 1월 27일 홀로코스트 기념일을 기해 ‘유대인 저널’은 현대판 홀로코스트가 자행되고 있는 북한의 상황을 대서 특필했다. 약 20만명이 갇혀 있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 강제노동수용소 6개 중, 캠프 14에서 탈출한 신동혁이라는 청년과의 인터뷰가 주 내용이다. 신씨는 김씨 왕국 삼대 지도자인 김정은과 두 달 차이 동갑으로 캠프 14 에서 태어났다. 7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을 읽고 나는 지구촌의 한 시민으로, 의사로, 한국인으로 부끄러웠다. 그리고 문제는 알고 있었으나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던 나 자신을 반성했다.

강대국을 비롯한 한반도 주변 국가들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 전쟁 발발의 가능성에 포커스를 맞추고 남북의 분단을 구경만 하고 있다. 주변 강국들에게 남북 통일은 자신들에게 이득이 없는 한 절대 이루어져서는 안 될 일이 되었다. 또 남한 국민들은 통일이 자신에게 가져다 줄 피해가 싫어 무관심하거나 무감각하다.

한때 링크(LiNK: Liberty in North Korea)를 통해 세계를 돌며 강연했던 신동혁씨가 이 인터뷰에서 알린 내용은 북한과 나치의 독재 방식이 동일하다는 것이었다. 법의 심판 없이 이루어지는 사형판결, 공개처형(신동혁씨가 13살 때 그의 어머니와 형은 그가 보는 앞에서 공개처형 당했다), 여죄수 강간, 강간 당한 여인들에게서 태어난 신생아의 공개 살인, 하루 두끼로 연명하는 기아, 죽는 날까지 요구되는 강제노동 등.

현재 북한의 홀로코스트는 아우슈비츠 (Auschwitz) 수용소보다 12배, 노벨문학상 작가 솔제니친(Aleksandr Solzhenitsyn)이 갇혀 있었던 소련의 강제노동소 ‘굴랙(gulag)’ 보다 두배나 긴 세월 동안 자행되어 왔고 지금도 진행중에 있다.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를 겪고 있을 때 세계는 침묵했었다. 그리고 세계는 다시 북한의 홀로코스트 앞에서 지금 침묵하고 있다. 이들을 구해야 할 한국인들도 침묵하고 있다. 우리는 정말 정답을 모르는 것일까.

독도• 댜오위다오• 쿠릴열도 2012

2012년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 망망대해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조그만 섬의 사진이 떴다. ‘나라면 이런 작은 섬 때문에 싸우지 않지’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섬은 한국이 지키려는 독도나 중국이 지키려는 댜오위다오를 칭하는 것일것이었다.

이 네티즌은 근대 역사는커녕 한 나라의 주권이 미치는 영역의 정의도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평화의 메시지랍시고 인터넷에 글을 올린 것이다.

한 나라의 주권이 미치는 곳은 육지뿐 아니라 바다, 바다의 심층 그 안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과 자원 또 육지와 바다의 영역을 내려다 보고 있는 상공까지 포함한다. 그래서 영해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유엔해양법이 구체적으로 보강된 것은 오래 전이 아닌 1982년이다. 영해는 가장 외곽에 있는 섬에서 12해리1 밖으로까지 그어진다.

섬이 많다면 가장 외곽의 섬의 위치를 기준으로 금을 연결해 긋고 섬이 없는 해안은 썰물 때의 해안선을 따르고 있다.

따라서 우리 조국에게 독도는 얼마나 중요한 섬인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란다. 거대한 땅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과 소련이 댜오위다오, 쿠릴열도를 지키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지금 국제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이들 세 지역 섬들의 주인이 바뀌게 된 것에는 일본, 중국, 소련, 미국, 영국이 개입돼면서 부터였다.

1855년 모다 조약, 1895년 중.일전쟁, 1905년 러.일전쟁, 1943년 카이로 선언, 1945년의 얄타 회담, 포츠담 회담, 같은 해 12월 모스크바 3상 회의 등에서 남의 영토를 분할하고 다른 나라에 기부하고 인위적인 경계선도 그었던 것이다.

2012년 9월 한국의 외교통상부 장관은 제67차 유엔 총회 ‘일반 토론, 논쟁( General Debate)’ 연설에서 ‘일본’ ‘위안부’ ‘독도’라는 단어를 전혀 쓰지 않았다. 한국이 일본과 갈등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들었더라면 한국정부의 장관이 위안부와 독도에 대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아쉽다.

외교적 관례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는데 중국 대표 외교부장관 장제츠, 이스라엘 수상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의 연설을 들어 보면 진정한 외교적 관례란 정확하고 확실하게 그들이 대표하는 국가의 갈등을 표현해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의 3000년 역사까지 거론하면서 이란과 근방 국가들을 비난함과 동시에 현재 이스라엘의 테크놀로지가 세상에 기여하는 점을 강조하며 이스라엘을 고무시켰다. 그는 자신의 연설은 이스라엘 국민에 대한 책임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설 중 여러 번 박수갈채를 받았다.

중국이 동병상련의 뜻에서 한국의 편을 들어 줄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하는 것이 좋다. 한국의 독도를 놓고 일본과 중국은 뒷전에서 얼마든지 제 욕심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2

포츠담, 얄타, 카이로 회담의 재연은 지금도 앞으로도 얼마던지 재연될 수 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속셈을 ‘평화’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국제관계를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1. 해리(海里, nautical mile)는 길이의 단위로1852 미터, 1.150779 마일, 2025.372 야드, 6076.1155 •피트
2. 칼럼으로 나간 글들을 책으로 만들기 위해 편집하고 있는 올해 (2016), 중국은 •사드 한국 설치문제를 놓고 여러면에서 반대 압력을 한국에 가하면서 그 본심을 드러낸 바 있다. 보도에 의하면 10월 첫 주 일본과 러시아의 관계가 새로운 모습을 보였다. 아베는 러시아 대통령 푸틴을 일본으로 초대한 바 있고 러•일 양국 외무차관은 모스크바에서 전략대화를 갖는다.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러시아게게 양도한 쿠릴열도를 되 찾으려는 일본은 약 6조 5천 억원이라는 대규모의 경제협력 페키지를 러시아에게 제시하면서 일본의 기술, 의료, 우편, 사업, 항만 정비, 수산물 가공공장 건설등의 인프라를 구축해 줄 것을 제의했다고 한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일본쪽으로 연결하겠다는 의사를 알렸다는 보도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사할린을 거쳐 홋카이도로 연결되면 한국은 북쪽으로 북한이 가로 막고 있는 판이라 연결고리에 끼지 못해 고립될 형편이 될지도 모른다.

국가와 의사라는 직업 2007

나의 앞 뒤 그리고 양쪽 옆에는 갖가지 얼굴색의 관객들이 저녁 피크닉을 마치고 벤치에 앉아 연주가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연륜으로 적당히 배가 나온 슬렛킨(Leonard Slatkin)씨는 지휘봉을 들고 활발한 몸짓으로 백발을 휘날리며 들어온다.

관객은 박수로 환영한다. 올 해로 할리우드 보울에서의 연주는 당분간 마감하게 되는 그는 깊이 고개 숙여 관객에게 인사한다. 곧이어 미국 국가를 지휘하기 시작한다. 관객 모두는 서둘러 기립하고 힘차게 오케스트라에 맞추어 미국 국가를 부른다. 할리우드 보울의 7월 저녁은 적당히 선선하고 이미 해는 졌지만 그 여명은 아름답다. 나무의 모습들이 여명을 배경으로 실루엣을 드러내는 가운데 오케스트라는 자연이 만들어준 거대한 스피커를 통해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 내고 있다.

오 말하라/ 그대는 볼 수 있는가 (당당히 펄럭이고 있는 국기를)/ (지난 저녁) 황혼의 마지막 섬광에 우리들이 당당하게 쏘아대었던 것/ 치열히 목숨 건 싸움을 거치고/ 성벽을 넘어 우리들이 지켜 본 / 이 이른 새벽의 빛 가장자리에서/ 당당히 펄럭이고 있는 /넓은 줄무늬와 빛나는 별들(이 그려진 국기)은 누구의 것인가?!

미국 국가는 가사와 곡 자체가 어렵기로 잘 알려져 있다. 우선 가사가 평범한 것이 아니다. 35세의 법률가 •프랜시스 스콧 키(Francis Scott Key)가 1812년 영국과의 벌티모어전쟁을 체험하며 썼다. 아마추어 시인이었을지언정 그의 문장은 힘이 있고 세련되고 지성적이다.

또 곡 자체는 당시 영국 남성사교클럽에서 유행하던 곡을 쓴 것인데, 한 옥타브 반을 오르내리니 성악과 거리가 먼 평범한 우리네 사람들에게는 노래하기 힘든 곡이다.

할리우드 보울에 가서 오랜만에 국가적인 순간을 체험하였다면 과언은 아니다. 미국에 살면서 미국 애국가를 몇 번이나 불러 보았던가? 나의 생각이 국가에 멈춘 것은 할리우드 보울 연주를 보러가기 얼마 전에 신문에서 본 기사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기사는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는 한국계 청년 두 명이 ‘한국의 피’를 언제나 인식하며 살다가 한국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다는 사연을 보도 하였다.

엊그제는 미국 영주권을 소유한 한국인이 한국 정부를 위해 활동을 해온 혐의로 구속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북한 소주를 미국에 수입하여 팔아오는 과정에서 남한 정부를 위한 활동을 했다는 혐의다. 이것은 미국 이민법에 의하면 불법이다. 또 그 전에는 영국에서 아랍계통의 영국의사들이 그들의 모국에 대한 ‘애국정신’에서 테러행위에 가담하여 인명을 해치는 큰일을 저질렀다는 기사가 있었다.

의사는 정치에 가담해서는 안된다. 또 의사의 의료행위에는 국경이 없어야 한다. 생명에 위험이 있는 사람을 볼 때 최선을 다해 생명을 구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어야 한다.

떠나 온 모국에 대한 애국심 때문에 인명을 앗아가고 해치는 일에 가담했다는 중동 출신 의사들의 행위는 영국 영주권을 갖고 있으면서 영국에 불법적인 행위를 한 범죄인이다. 그 뿐 아니라 영국민과 그곳을 방문 중이던 외국인들에게 의사로서의 본분,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천명된 그 본분을 어겼다.

나를 비롯한 미국에서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민자들 또 의사라는 천업을 갖고 있는 한인들이 조국과 미국시민이라는 ‘현위치’를 또 의사라는 천업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혼돈이 없기를 바란다.

장애인 비서 2008

“엄마! 오늘 다른 학교에서 아이들이 놀러왔어.” “어느 학교?” “몸을 잘 못 쓰는 아이들만 다니는 학교야.” “그래? 그 애들 보고 놀리지는 않았겠지?” “쥴리 선생님이 그러는데 그 애들이 아픈 것(정상이 아닌 것)은 그 애들 잘못이 아니래. 놀리는 것은 불공평한 일이야!”

세 살짜리 큰 딸이 내가 수련의로 있던 의과대학 병원 소속의 데이케어에 다닐 때 있었던 일이다. 나의 이민 생활이 겨우 5년이 못 미친 시기였었다. 그러나 실상 이 일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깊은 의미를 부여했다.

어려서부터 모든 사람은 공평하다는 것을 교육시키는 이 나라의 시스템에 감격했던 것이다. 아주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렇게 시작된 교육은 아이들에게 참으로 좋은 믿거름이 되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미국의 대기업 또는 정부가 직원을 채용하기 전에 ‘공평한 기회’를 누구에게나 주기 위해서 반드시 얼마간의 광고를 하게 되어있다. 이 과정을 거쳐 고용된 한 직원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카이저병원에서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새로 고용되었다는 타이피스트가 자기를 소개하기 위해서 의사들의 회의에 들어왔다. 에스터라는 이름의 그녀는 아주 잘 생긴 황색 골든리트리버 견공과 함께 회의실에 들어왔다. 새 타이피스트는 시각장애인이었던 것이다.

에스터가 해야 할 일은 의사들이 환자를 보고 난 후 녹음해 놓은 내용을 타이프 해서 차트를 완성해야 하는 것이었다1. 때로는 나같이 암을 보고 만지고 진찰하는 의사들이 차트에 그림으로 병부를 설명해 놓는 경우도 있는데 그 장애인 비서를 고용한 이후 우리는 새로운 •폼을 만들었다.비서가 쓰기 편리하게 한 공간을 비워 놓아 그림을 집어 놓기 쉽게 만들기도 했다.

에스터가 일하던 방은 환자들이 오가는 통로 쪽에 있었다. 지나가던 환자들은 에스터의 재빠른 일솜씨를 보며 한담을 나누기도 하고, 충실히 주인 곁에 앉아 있는 견공에게 사랑의 말을 던지기도 하였다.

에스터는 정상인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 기능적인 삶과 또 충분히 즐거운 알찬 질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영화관에 영화도 보거 가고 겨울이면 스키도 타러 간다. 스키는 스키 선생님의 지도아래 장애인 단체가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영화는 어떻게 보니?”하고 어느 날 내가 물었더니 “배경음악을 들으면서 배우들이 하는 대화로 충분히 마음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내가 한국에서 잘랄 때는 장애인 자식은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 가두어(?) 놓는 경우가 허다했다. 또 한국에는 ‘병신춤’이라는 춤을 오락이라고 공연하기도 했고 공연을 보고 웃고 즐기던 관객들이 있었다. 그것에 비해 여기 미국에서 목격한 어린이 교육은 건강하고 아름답고 희망적이었다. 어려서부터 세상이 공평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사회, 어른들은 장애인을 색다른 눈으로 보지 않는 사회, 능력에 맞는 직업을 갖게하여 정상인과 다를 바 없이 살 수 있게 하는 사회를 보고 언제나 배우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진취적으로 말이다.

이 좋은 시스템을 악용하는 장애인단체의 이야기를 기사에서 읽고 실망했다. 이것은 선의의 법을 악용하는 몇몇 인간의 추악한 모습을 보여주는 처절한 예가 아니고 무엇일 것인가.

다시 모국으로 눈을 돌려 나의 바람을 말하고 싶다. 이제라도 낡은 문화에 젖어 육신의 불완전함을 비웃거나 업신여기는 풍조가 남아 있다면 솔선수범해서 없애야 하겠다. 한국에서도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선포하고 그들의 질적인 이해와 문화의 변화를 위해 홍보하는 태세를 보여주니 안심이 된다.

1 이 글을 정리하고 있는 2016년, 환자의 기록은 손으로 쓰거나 그린 또는 타이프 한 기록을 프린트 해서 •파일해 놓는 종이 차트가 아니다. 모든 것은 전자기록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타이피스트라는 직종은 사라진지 꽤 오래된다. (저자 주)

어린이 존엄사 타당한가?

두 주 전 아침, 뒷마당에 나갔더니 죽은 토끼 한마리가 눈을 뜬 채 수영장에 떠 있었다. 밤 사이 수영장에 빠졌던 모양이다. 목숨이 끝날 때까지 힘들었을 것에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어수선하고 아팠다.

죽는다는 것, 우리는 이에 대해 자주 그리고 너무 쉽게 이야기한다. ‘죽는다는 개인적인 사건’을 죽어본 적이 없는 우리가 죽은 이들이 말로 표현하지 않았던 생각이나 감정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나는 죽는다는 것을 개인적(이고 무척이나 사적)인 사건으로 이해하고 또 그 과정을 ‘길’이라고 단축해서 표현하고 싶다. 죽는다는 ‘개인적인 사건’과 ‘길’은 엄격히 볼 때 혼자 감수해 내야 하는 부분이 있다. 또 그 ‘길’은 누구나 한 번은 지나가야 할 숭고한 길이다.

이 길을 지나간 사람이 되돌아 온 경우는 없었다. 죽을 뻔 했다가 살아왔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을 읽은 적은 있다. 성서에도 예수가 살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그 사건들은 죽은 이들의 생각이나 심적 갈등에 초점이 맞춰진 것은 아니다.

벨기에에서 2014년 2월 13일 불치병 어린이들을 안락사시킬 수 있도록 한 법이 통과됐다.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어린이들을 조금이라도 빨리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기 위한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네덜란드도 2002년부터 12세 이상의 아동에게 안락사할 권리를 주고 있는데 그때부터 2014년 까지 5명의 어린이가 안락사를 택했다고 한다. 미국도 이 법의 제정을 위해 몸부림쳐 왔지만 오리건, 몬태나, 워싱턴주, •버몬, 캘리•포니아 에서만 허락되고 있고 그것도 어린이는 해당되지 않는다.

워싱턴주 시애틀 암센터 얼•라이언스 병원의 보고에 의하면 사망자의 0.02% (1만명 중 두 명 꼴)가 존엄사를 실행했다고 한다.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2009년 3월부터 2011년 12월 사이에 겨우 114명의 환자가 존엄사에 대해 문의했고 그 중 40%의 환자들은 본래의 뜻을 철회했으며, 40명이 극약 처방을 받았지만 24명만이 약을 먹고 죽음을 실행했다고 한다. 더 업데이트 된 미국의 통계를 보면 죽은 사람의 0.3%에서 4.6%가 존엄사를 한 사람들이라고한다. 1947년 부터 2016년 까지 종말기의 환자들중 20% 미만이 의사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5% 미만이 이를 택했다고 되어있다. 실상 ‘고통 (pain)’이 안락사를 원하는 주요 원인이 아니었다고 통계는 말하고 있다. 오레곤, 워싱턴 주에서는 1% 미만의 의사들이 실상 처방전에 싸인했다고 한다. 이에 반해 네델란드나 벨지움에서는 50% 이상의 의사들이 처방을 쓴다고 한다. 좀 위험하다.
존엄사를 혼동해서 그냥 쓰지만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PAS1 과 안락사2 이다. 설명은 밑에 보면 된다.

다시 벨기에나 네덜란드의 법으로 돌아가 보자. 세상은 청소년들이 18세가 되어야 겨우 운전면허, 정치적 투표 권리를 주고 음주를 허락한다. (어떤 곳은 21세다). 그런데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어린 아이들에게 맡기자는 법은 이해가 되지 않는 비윤리적이고 위험한 법이다.

존엄사가 ‘고통’을 빨리 끝내기 위한 것이 주된 원인이라 해도 말기 암환자들은 많은 고통을 견겨낸다. 존엄사라는 방법을 쓰지 않고도 말기 환자들을 돕는 방법은 많이 있다. 의학의 발달로 지금은 새로운 전문분야로 되어 있는 팔리애티브 메디신 (Palliative Medicine), 고통관리 (Pain Management), 호스피스 등이 그것이다. 이쪽 분야의 전문인들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환자의 고통을 줄여 줄 수 있다. 여러 약을 혼합해서 쓰거나 수술로 신경을 죽이기도 한다. 또 말기 환자들은 우울하기 쉽다. 이 두 가지만 잘 돌봐 주어도 말기의 삶을 더 의미있게, 아프지 않게 보낼 수가 있다.

어린이 존엄사 법은 의사들의 지지를 받기 어려운 비윤리적인 것이므로 마땅히 재고되어야 한다. 또 의사들 또한 법에 동조하기보다 새로운 전문인들이 환자 치료에 합세하도록 촉진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1. PAS (Physician Assisted Suicide/Death): 의사에게 환자가 자발적으로 극약 처방을 요구하여 이루어지는 죽음. 환자가 처방을 받고 자신이 원하는 때에 복용한다. 여기서 의사나 가족 또는 친지가 먼저 이러한 행위를 시도하는 것은 불법이다.
2. 안락사 (Euthanasia): 의사나 의료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극약을 종말환자에게 주입하여 죽음을 허용하는 것. 미국에서 안락사는 불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