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와 박대통령

르네 라이넥(Renè Läennec 1781-1826)에서 따온 단어 라이넥이 박근혜 대통령을 둘러싸고 입에 오르고 있다. 라이넥은 프랑스 의사로 청진기를 만들어낸 사람이다. 그가 당시 만든 청진기는 원통 (실린더) 나무로 한쪽 귀로만 듣는 기구였다.

5살 때 엄마를 폐결핵으로 잃은 라이넥은 의과대학 교수였던 종조부에게 보내져서 키워졌다. 폐질환의 대가였던 그는 부검으로 자신의 진단을 확인할 정도로 학구적이었다고 한다. 폐의 인근 조직인 간(肝)에 대해서도 연구했고 지금도 쓰고 있는 의학 단어나 병명을 처음으로 썼던 의사이다. 병명 폐렴, 늑막염, 기종, 기흉 등이 그 예다. 아이러니하게도 폐결핵의 대가였던 그는 폐결핵으로 45세에 세상을 떴다.

그의 이름이 붙여진 ‘라이넥 간경화’라는 병명이 있다. ‘라이넥주사’는 ‘라이넥’이라는 상품명으로 일본 ‘JBP (Japan Bio Product)’가 태반을 조작해서 만든 일종의 영양주사로 의사의 이름을 붙여 상품화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 간질환, 간 부분절제 수술 후 간 생성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보고가 있다. 한국 의사들의 연구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

이렇듯 간질환, 만성피곤증 치료에 쓰여 온 ‘라이넥주’가 한국에서 미용제품으로 더 많이 광고되어 온 것이 의아스럽다. 또 ‘라이넥주’는 일본 이외에도 한국 용인에 있는 ‘녹십자 JBP’라는 데서도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어떻든 지금 한국은 박근혜 대통령이 미용을 위해 이 ‘라이넥주’를 맞았고, 미용 단순 수술도 받았다는 추측 보도로 시끄럽다. LA의 어떤 일간지는 ‘연예인 못지 않는 대통령의 취향’, ‘영국 국빈방문 때 갖가지 유별난 요구’, ‘세월호 7시간 동안 올림머리 치장’, ‘종합선물세트급 폭로가 나왔다’ 라는 부제목까지 붙여서 기사를 내 보냈다. 시술 전후의 얼굴이라고 사진까지 함께 올린 기사들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박 대통령은 만성피곤증 환자라고 알려져 있다. 모르긴 해도 과로와 스트레스에 의한 불면증도 겹쳐 있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라이넥주’를 맞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비록 미용을 위해서 ‘라이넥주’를 맞았다고 한들 그것이 토픽이 될 이유는 없겠다. 대통령의 사생활이기 때문이다.

어떻든 개인의 의료정보를 마구 파헤치고 퍼트리는 것은 한국 PIPA(Personal Information Protection Act 개인정보 보호법), 미국 HIPAA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러한 일이 의사들에 의해서 시작됐다면 그런 의사들은 면허정지를 받아 마땅하다. 또 그것이 사실이 아닌데 퍼트렸다면 형사법에 저촉되는 일이다.

국빈으로 외국을 방문할 때 대통령이 맞춤 접대를 받는 것은 방문국이 한국을 접대하는 예의이고 국제적 프로토콜이다. 어느 나라 수장이든 외국 순방시 미용사, 개인 비서급의 사람들이 대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한국의 이번 사태를 편파적으로 밖에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미디어의 감정적인 보도, 내가 몸 담고 있는 의료계가 펼치는 부끄러운 협상, 모리배 정치인들이 꾸며내는 코미디, 범죄가 증명될 때까지 모든 인간은 무죄라는 원칙을 무시하고 대통령을 죄인취급하는 법조계가 한국의 현황이라는 것이 부끄럽다.

사드 폐쇄, 위안부 소녀상 철거를 위해 막대한 뒷공작을 하고 있는 이웃나라 중국과 일본은 이러고 있는 한국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감사나무’ 와 ‘기빙트리’

자연스레 추수감사절 디너는 작년부터 아이들에게 넘어갔다. 몇 십년을 해오던 행사이었다. 그래서 늙는 것이 좋은가 보다. 이젠 차려놓은 음식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감상하고, 노고에 칭찬하고, 맛있다며 먹어주고, 손주 아이들과 놀고, 가까운 아이들의 친구들, 사돈들과 이야기 하면서 이른 저녁시간을 지나면 된다. 음식은 정오쯤 준비가 끝나고 오븐에 들어가니 모두 하이킹을 다녀오는 것도 하나의 정해진 코스이다. 하이킹은 내가 추수감사절 디너를 할 때도 했던 일이다.

엘에이의 11월은 나름대로 아름답고 순하다. 매섭게 춥지도 않고 매년, 운 좋게 하이킹 하기 알맛는 햇빛, 바람, 푸른 하늘이 있다. 꼬마들도 걷는다. 칭얼대는 녀석은 없다. 제일 나이가 어린 작은 딸의 아들은 아빠 등에 메인 인력거에 앉아 세상을 보고있다. 제 아비가 열심히 아이에게 뭔가 알려주고 있다. 아이처럼 짧은 문장으로.

가뭄으로 땅은 매말라 있지만 나무는 아직 건재하다.

나는 여러 명절 중에 추수감사절을 제일 좋아한다.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추수감사절에는 선물교환도 없고, 강요되는 유흥이 없어서 좋다.

일 년을 되 돌아보면서 펑퍼짐한 편한 옷을 입고, 소파에 둘러 앉아 두런 두런 이야기들을 나눈다. 미국 고구마, 사과파이, 피간파이, 롤, 터키와 햄을 굽는 냄세가 좋다. 차세대 젊은이들은 참 즐겁게 일한다. 농담도 해 가면서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특별한 음식도 만든다고 생색을 낸다. 내가 채식주의자이니까. 그래봤자 약간 멋을 부린 별종의 샐러드이지만.

올해는 여덟살박이 큰 손녀를 대장으로 꼬마들이 제 키만한 마분지에 ‘감사나무’ 줄기를 그리고 듬성 듬성 몇개의 입사귀를 오려 붙였다. 이 꼬마들은 추수감사절 디너에 참석한 모든 식객들에게 나무가 무성해지도록로 각종 모양의 색색가지 나뭇잎을 붙어야 한단다. 감사하는 아이텀을 품은 종이는 나뭇잎이 되어 나무위에 오른다.

위로 큰 두 꼬마들은 한장이 모자라 세장씩이나 썼다. 세살박이는 아빠가 대필해 주었다.

나이가 어릴수록 감사함도 순진하고 뜻이 오히려 깊어 보인다. 그저 추수감사절이라 감사하고 삼촌, 이모, 할머니, 할아버지외에 제 형제들의 이름 하나 하나, 친구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감사하다고 열거했다. 세살짜리 그애에게는 그것이 감사하고 신나는 일이다.

여섯살, 여덟살 아이들의 세계는 달라진다. 자신의 행운을 보았고, 핵가족에 대해서, 대가족에 대해서 따로 감사하고(쯧쯧쯧….) 세상과 자신이 가진 능력에 대해 감사하는 모습이다. 그림을 그릴수 있어서, 글을 쓸 수 있어서 감사하단다. 그리고 펜으로 크고 작은 하트를 그렸다.

성인들의 감사 아이텀은 피상적이고 추상적인 면에 그쳤다. 연륜탓일 것이다.

이제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 전통적인 크리스마스는 사라졌지만 상업적 크리스마스 스피릿은 강세이다.

클레멘트 클라크 무어 (Clement Clarke Moore 1779 – 1863) 또는 헨리 리빙스턴 쥬니어 (Henry Livingston Jr 1748 – 1828)가 썼다는 ‘성 니콜라스(산타클로스)의 방문’ 이라는 시(詩)에서 시작된 것으로 믿어지는 선물교환의 문화는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케롤’, ‘챨리브라운 크리스마스’ 라는 TV 프로그램 덕분에 임시적이긴 해도 구두쇠가 되지 말고 나눔을 실행하자는 변화를 보여준듯 하다.

많은 교회, 성당 또는 공관서에서는 크리스마스 기빙트리를 세울 것이다. 세워진 크리스마스 소나무에 불우아동들, 홈리스를 위한 기빙 아이텀이 쓰여진 나뭇잎들이 하나씩 둘씩 붙여질 것이다. 성탄절이 가까워지면 진정한 나눔의 마음들이 많은 꽃과 나비가 되어 나무를 장식하게 될 것이다. 너무 많이 달리면 눈 덮인 나무처럼 보일까?

동물 대사 Animal Ambassador

내가 하는 일의 성격상 심심찮게 출장을 하며 살아왔다. 트래·픽으로 힘든
것을 제외하고는 개인적으로 볼 때 나는 출장을 마다하지 않았다. 집이나 오·
피스를 떠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고, 길에서 벌어지고 있는 구경
거리, 지방색이 다른 환자들을 만나면서 배우는 것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개인적으로 출장가기 좋아하는 곳이 있었다. 가깝게 지내는 항암
전문 여의사인 조운이 일 하는 곳으로 그녀는 봉사활동 차원에서 자신이 훈련
시키고 있는 도우미견을 데리고 출근하곤 했다.

도우미견들은 엘리베이터 타는 연습, 많은 사람들을 지나처도 흥분하지 않
는 훈련등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훈련이 끝나면 도우미견들은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합격하면 그녀를 떠나 평생 도와주어야 할 새 주인의 집으로 입양된다. 보
통 시각장애인들에게 가게 된다. 무슨 이유에서든 시험에 떨어지면 일반가정
에 입양되는데 입양신청 가정들이 줄 서서 기다릴 만큼 낙제생 도우미견들은
인기라고했다.

암 환자들의 복잡하고 애타는 이야기에 지칠 때 나는 조운의 사무실로 가서
강아지와잠시 놀곤했다. 그래서 간호사들은 나를 어디서 찾을지 금방 알았다.

훈련중이니까 도우미견들은 어리다. 강아지들의 눈은 순하고 아름답다. 양순
한 이 녀석들과 놀다 보면 앤돌·핀이 돌곤한다.
조운의 도우미 강아지는 그녀의 많은 암환자들에게 잠깐이지만 밝은 순간
을 제공하곤 했다.

정오가 되면 조운과 나는 다분야 전문인들이 케이스들을 의논하는 회의에
가야했다. 이 때마다 조운은 내가 도우미 강아지의 끈을 갖도록 양보하곤 했다.
우리는 다른 빌딩으로 이 도우미 견공과 같이 산책하며 걸어가야 했다. ‘훈련
중인 개’라는 조끼를 입은 도우미 견공은 잔디에서 실례도 하고 냄새도 맡으며
시간을 소비하지만 내가 본 것은 이 도우미 견공을 지나치는 환자들, 병원 직원
들이 모두 미소를 짓는다는 사실이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텍사스에 있는 엠 디 엔더슨 암치료 센터에서는 ‘도우미
동물을 이용한 치료’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샌디에이고 동물원에서는 개 고양
이가 아닌 다른 동물들을 ‘동물원 특사’라는 이름을 붙여 이러한 기관으로 나
들이 하게끔 한다.

훈련을 받고 뽑힌 도우미 동물들과 환자들의 실제적인 접촉 즉 동물을 만지
고 쓰다듬으로써 주는 정서적인 교류는 능동적 에너지를 갖게하여 회복을 빨
리 해야겠다는 어떤 동기를 은연 중에 기여한다고한다.
청소년 교도소에서도 이러한 프로그램이 있어 범죄 청소년들이 차갑고 분
리된 감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감성적, 정서적인 치유를 유도할 수 있다고 한
다. 사회를 향한 증오감보다는 사랑도 의미 있는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앞으로 훈련 중인 도우미 견공들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조운이 시기보다 일
찍 은퇴하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프리카에 평화 봉사단 멤버로 가서
에이즈 교육과 치료에 참여하기로 결정하고 떠났다.

도우미 견공만큼 조운도
아름답고도 예리한 눈을 가졌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환자와 의사의 ‘행복한 동행’ 2014

오늘은 환자와 의사 간의 바람직한 관계를 들여다 보면서 함께 ‘윈-윈’ 할 수 있는 방안을 한 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나는 동료의사들과 이런 농담을 한적이 있다. 환자는 의사가 마치 ‘마커스 웰비’인 것으로 착각한다고. 마커스 웰비는 ABC TV 시리즈로 1969년부터 1976년까지 방영된 프로그램이다. 중년에 접어든 가정주치의 닥터 웰비는 친절한 성품의 신사로 다양한 임상 경험과 지식을 갖고 병마의 퍼즐을 푸는 마술사였다. 물론 언제라도 환자가 부르면 달려가던 의사였다. 한편 닥터 웰비의 환자들은 의심 없고 무조건 닥터를 신뢰하는 순박한 사람들이었다.

지금의 우리는 어디에 있나? 마커스 웰비는 우리를 떠난 지 오래다. 또 닥터 웰비를 믿고 의뢰하던 순박한 환자들도 보이지 않는다. 환자들은 대부분 인터넷 지식으로 무장해 있고 우리 모두의 참을성은 없어졌다.

미국 의사협회에 따르면 미국 의사들의 60%가 개업을 피하고 병원에 취직하거나 HMO 같은 그룹에 속해 월급을 받는 직장인의 삶을 택하고 있다고 한다. 심장내과 같은 분야는 더 많아 75% 이상이 월급쟁이의 길을 택한다고한다. 이런 변화는 의료가 정치에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모두 소비자로 간주되는 환자를 보호하자고 생긴 일들이지만 정치이다 보니 의료에 대한 규제 정책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이에 발맞춰 각종 규제 부서들이 생기고 의사는 임상을 해야하는 업무 이외에도 따로 경영에 대한 부담이 늘었다. 개업의사나 그룹 또는 병원도 모두 부담이 늘어난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 사무적인 일을 해주는 큰 부서가 마련되어 있는 병원이나 HMO를 선호하는 경향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의사들의 대거 이동이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지금 미국에서 의업은 의심할 바 없이 사업화되고 있고 어쩌면 기업화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은 이 형태가 더 심한 것 같다. 지난 주 한국에서 한 젊은 의사가 생활고를 비관해서 자살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슬픈 부작용의 한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의업이 비즈니스가 되다 보니 병원과 의사에 대한 평가기준도 변해가고 있다. 병원의 질적 평가 또 의사에 대한 환자의 만족도가 그 대표적 예이다. 어떤 경우에는 의사의 수입도 이에 연관되기도 한다. 의사에 대한 만족도가 곧 비즈니스이므로 실상 환자들의 의사에 대한 불평을 가볍게 넘기지 않게된다.

환자들은 옛날과 달리 불평을 쉽게 접수할 수 있는 길이 많고 이런 일은 부자연스럽지 않다. 병원이나 소속 과장에게 해도 되고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주(州)정부 소속 웹사이트(www.mbc.ca.gov)에 들어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 어떤 의사가 싫으면 입맛에 맞는 의사를 찾아 의사 쇼핑에 나서도 된다. 언어장벽은 통역관들을 전화로 연결해 주는 시스템을 이용해 해결할 수가 있다.

한편 환자 만족도가 낮은 의사들은 원만한 관계형성을 가르치는 클래스를 들으면 좋다. 이런 의사들은 실력은 많지만 대화 능력이 뒤지고 대인관계에 원숙치 못해 겪는 부작용일 경우가 많기 때문에 클래스를 듣는 것이 도움이 된다.

어쩌겠는가. 급변하는 정보시대, 참을성이 녹아버려 없어지는 사회 안에서 서로 노력해서 소통하여 환자는 좋고 적절한 치료를 받았다는 ‘인식’을, 의사는 편안한 마음으로 진료에 최선을 다했다는 ‘만족함’을 재확인하는 환경을 만들어 가야겠다.

‘아직 세상에 있어요’ : 의료 가부장적 태도의 부작용

‘아직 이 세상에 있어요. 텔마 올림.’

이 연말 카드는 매년 12월이 되면 소식을 보내오는 텔마에게서 받은 것이다.
텔마는 다른 어떤 이야기도 카드에 쓰지 않는다. 매년 똑같은 소식을 한 줄 써
서 보낸다. 요 몇년사이 점점 카드가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져서 일월이 되기도
한다. 나의 답장도 자꾸 늦어져서 올해는 봄에야 보낼판이다.

텔마는 유방암을 이긴 환자다. 이젠 환자가 아니고 ‘유방암을 이긴 여인’이
랄까. 발병 당시 갱년기를 지나고 있었다. 분주한 LA에서 은퇴 주민들이 많이
이동해 가서 사는 한적한 곳으로 이사간다고 찾아 왔던 것이 십수년 전이다.
텔마는 유방암 진단을 받은 후 첫 번째 상담했던 동료 종양학 전문의사와 충
돌이 있어 나를 찾았던 여인이다. “당신이 내 아내라도 나는 유방 완전 절제를
추천할 것입니다”라는 소견을 주었다고 했다.

내가 듣기에도 강력한 표현이었지만 진솔한 점도 있었다고 생각되었다. 텔
마의 암은 유방 완전 절제가 아닌 일부 절제 즉 암 덩어리만을 도려내고 나머지
남은 조직을 방사선으로 치료하는 방법을 쓰기에는 암 덩어리가 좀 큰 편이었
다. 요즘은 약물치료로 암 덩어리를 우선 줄여주고 적어진 암덩어리만을 절제
하는 방법을 많이 쓰는데 당시는 그런 방법을 생각하지 못하던 때였다.
텔마가 원하는 방법을 쓰면 유방의 모양이 일그러지고 다른 쪽과 차이가 눈
에 띌만큼 작아질 판이었기 때문에 첫 번째 상담 전문의는 텔마의 요청에 찬성
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내 의견으로는 생명에 지장이 없는 한 치료때문에 생기는 몸 모양의 변화
를 염려해서 더 극단적인 수술을 추천할 필요는 없었다. 치료로 인해서 기능장
39
애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인 경우에도 미리 설명해서 환자가 이해하면 치료
를 받아들이는데 문제가 없는데 하물며 모양이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라는 사
실을 이해하지 못 할 사람은 드물것이다. 또 미(美)에 대한 관점은 극히 주관적
인 것이므로 모양새가 나빠질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의견을 고집하는 것은 미
성숙한 견해이다.

때로 의사들도 너무 깊이 감정적으로 휘말리다보면 치료 결정 과정에서 과
격해지기도 하고 혼동이 생기기도 한다. 여기서 의사들이 경계해야 하는 것은 ‘
의료 가부장적 태도(medical paternalism)’이다. 과거의 아버지들이 가족들의
의사에 아랑곳 없이 아버지 마음대로 매사를 결정하였다는 뜻에서 유래된 말
일 것이다.

21세기 의학에서는 경계하는 행동이다. 의사는 환자의 의견을 존중
하고, 최종결정은 환자가 내린다.

이 달이 가기 전에 텔마에게 답신을 보내야 하겠다. 예전처럼 ‘소식을 주셔
서 감사합니다. 잘 계신 것 같아서 기쁩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