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비서 2008

“엄마! 오늘 다른 학교에서 아이들이 놀러왔어.” “어느 학교?” “몸을 잘 못 쓰는 아이들만 다니는 학교야.” “그래? 그 애들 보고 놀리지는 않았겠지?” “쥴리 선생님이 그러는데 그 애들이 아픈 것(정상이 아닌 것)은 그 애들 잘못이 아니래. 놀리는 것은 불공평한 일이야!”

세 살짜리 큰 딸이 내가 수련의로 있던 의과대학 병원 소속의 데이케어에 다닐 때 있었던 일이다. 나의 이민 생활이 겨우 5년이 못 미친 시기였었다. 그러나 실상 이 일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깊은 의미를 부여했다.

어려서부터 모든 사람은 공평하다는 것을 교육시키는 이 나라의 시스템에 감격했던 것이다. 아주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렇게 시작된 교육은 아이들에게 참으로 좋은 믿거름이 되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미국의 대기업 또는 정부가 직원을 채용하기 전에 ‘공평한 기회’를 누구에게나 주기 위해서 반드시 얼마간의 광고를 하게 되어있다. 이 과정을 거쳐 고용된 한 직원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카이저병원에서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새로 고용되었다는 타이피스트가 자기를 소개하기 위해서 의사들의 회의에 들어왔다. 에스터라는 이름의 그녀는 아주 잘 생긴 황색 골든리트리버 견공과 함께 회의실에 들어왔다. 새 타이피스트는 시각장애인이었던 것이다.

에스터가 해야 할 일은 의사들이 환자를 보고 난 후 녹음해 놓은 내용을 타이프 해서 차트를 완성해야 하는 것이었다1. 때로는 나같이 암을 보고 만지고 진찰하는 의사들이 차트에 그림으로 병부를 설명해 놓는 경우도 있는데 그 장애인 비서를 고용한 이후 우리는 새로운 •폼을 만들었다.비서가 쓰기 편리하게 한 공간을 비워 놓아 그림을 집어 놓기 쉽게 만들기도 했다.

에스터가 일하던 방은 환자들이 오가는 통로 쪽에 있었다. 지나가던 환자들은 에스터의 재빠른 일솜씨를 보며 한담을 나누기도 하고, 충실히 주인 곁에 앉아 있는 견공에게 사랑의 말을 던지기도 하였다.

에스터는 정상인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 기능적인 삶과 또 충분히 즐거운 알찬 질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영화관에 영화도 보거 가고 겨울이면 스키도 타러 간다. 스키는 스키 선생님의 지도아래 장애인 단체가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영화는 어떻게 보니?”하고 어느 날 내가 물었더니 “배경음악을 들으면서 배우들이 하는 대화로 충분히 마음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내가 한국에서 잘랄 때는 장애인 자식은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 가두어(?) 놓는 경우가 허다했다. 또 한국에는 ‘병신춤’이라는 춤을 오락이라고 공연하기도 했고 공연을 보고 웃고 즐기던 관객들이 있었다. 그것에 비해 여기 미국에서 목격한 어린이 교육은 건강하고 아름답고 희망적이었다. 어려서부터 세상이 공평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사회, 어른들은 장애인을 색다른 눈으로 보지 않는 사회, 능력에 맞는 직업을 갖게하여 정상인과 다를 바 없이 살 수 있게 하는 사회를 보고 언제나 배우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진취적으로 말이다.

이 좋은 시스템을 악용하는 장애인단체의 이야기를 기사에서 읽고 실망했다. 이것은 선의의 법을 악용하는 몇몇 인간의 추악한 모습을 보여주는 처절한 예가 아니고 무엇일 것인가.

다시 모국으로 눈을 돌려 나의 바람을 말하고 싶다. 이제라도 낡은 문화에 젖어 육신의 불완전함을 비웃거나 업신여기는 풍조가 남아 있다면 솔선수범해서 없애야 하겠다. 한국에서도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선포하고 그들의 질적인 이해와 문화의 변화를 위해 홍보하는 태세를 보여주니 안심이 된다.

1 이 글을 정리하고 있는 2016년, 환자의 기록은 손으로 쓰거나 그린 또는 타이프 한 기록을 프린트 해서 •파일해 놓는 종이 차트가 아니다. 모든 것은 전자기록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타이피스트라는 직종은 사라진지 꽤 오래된다. (저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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