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판 데 스타이(Kees van der Staaij)는 네델란드 극소수, 극우파 SGP (‘네델란드 신교 정당’이라고 불린다)의 당수이다. 그는 세계에 도움을 청한다는 뜻을 갖고 ‘네델란드에서는 의사가 당신을 죽일 것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지난 주 미국 신문인 월 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했다. 진보파 국회의원들이 ‘안락사’, ‘존엄사’의 해당 범위를 건강한 사람이라도 삶을 마감하고 싶다면 허락하자는 발안을 했기 때문이다. 네델란드, 벨지움에서는 이미 어린이들을 안락사 대상에 포함시킨지 오래된다.
네델란드 의사들은 말기 불치병 환자들에게 ‘의사 조력 자살 (PAS: physician assisted suicide)’ 또는 독물 주사로 인한 ‘안락사(euthanasia)’를 2002년 부터 합법화했다.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6개의 주에서 ‘의사 조력 자살’을 합법화 했지만 ‘안락사’는 불법이다. 네델란드 통계에 의하면 2016년에는 7천 여명이 이 방법으로 죽었다. 염려스러운 것은 23%가 보고되지 않았고 431명은 분명한 이유가 없었다는 점이다. 또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정신질환은 만성병이지 말기 질환이 아니다.
네델란드에서 2011년 부터 2014년 까지 66명의 정신질환 환자가 안락사 했다. 그 내용 분석 결과를 미국의사인 스캇 김 전문의가 작년 ‘미국 의사회 정신학 저널 (JAMA Psychiatry)’에 발표했다. 그는 Harvard Medical School 졸업생으로 미국 국립 보건국(NIH) 소속 정신과 의사이며 생명 윤리학자이다. 그가 보고 한 내용은 이렇다. 30세 부터 70세 후반 까지 다양한 나잇대의 환자들이었고 11%는 제 삼 전문의사의 독립적 소견을 받지 못했으며, 소견을 받았다 하더라도 24%의 경우 의사들의 의견이 서로 달랐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는 이 안락사라는 의료행위에 의사들의 개인적인 판단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지적했다. 객관적 가이드라인에 의한 안락사 결정이 아닌 개인의 편견이 있었다는 추측일 것이다.
나는 가끔 환자들이 ‘죽고 싶어요!’ 라고 하는 말을 듣는다.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할 수도 있고 아픔에 대한 표현일 수도 있으며, 자신을 돌보아 주어야 하는 가족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 또는 경제적인 부담에 대한 염려의 표시라고 늘 생각해 왔다. 지금도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또 사전의료 지침서가 있어도 이것을 작성했던 건강했을 때와는 무척 다른 상황에 와 있기 때문에 지침서대로 행해 줄 것을 원하지 않을 경우도 많다.
‘죽고 싶다’라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오직하면 ‘죽고 싶다’는 표현에 대한 국제적 공통의견(international consensus) 패널이 있으랴. ( PLoS One. 2016; 11(1): e0146184. An International Consensus Definition of the Wish to Hasten Death and Its Related Factors)
늙음도, 아픔도, 우울도, 당면한 죽음도 겪어보지 못한 제 삼자가 논 할 것이 되지 못한다. 서둘러 죽지 않아도 될 환자에게 숨은 목적이 있어 죽음을 종용하는 친척이나 가족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숨쉬고 있는 현주소이기도 하다. 단체나 국가가 종용하지 않게끔 막아 주어야 한다.
생명을 살려야 하는 의사들은 자비로운 죽음이 무엇인가를 숙고해야 할 때이다. 자비로운 죽음이 서둘러 죽는 것과 같은 뜻이 아니라는 것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위험하게 변해가고 탈바꿈 할 수 있는 ‘안락사’라는 이상적인 아이디어가 커다란 사회적 죄악을 잉태할 수도 있다. 의사들은 목숨을 끊는 극약을 처방하기 전에, 심장을 멈추는 주사를 놓기 전에 본인과 가족들에게 충분한 상담과 완화치료 방법을 제시하고 거치도록 해야 할 것이다.
I agree your point. Life is precious and each of us has a purpose of life. Thanks for such a good 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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