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핵전쟁’이라는 단어가 뉴스를 통해서 자주 전파되고 있다.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이 몰락했던 1945년 이후, 핵무기를 의도적으로 쓴 전쟁은 없었지만, 핵 때문에 발생한 두 개의 참상은 잘 알려져 있다. 원전 사고로 일어나는 재앙은 여러 대(代)를 이어 크고 작고 때로는 극심한 상태로 나타난다는 것을 우리는 확인했다. 1986년에 있었던 ‘체르노빌(Chernobyl) 원전 사고’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지진으로 발생했던 사고가 그 근거이다.
그러니까 1986년, 지금부터 36년 전 어느 봄 날 아침이었다. 내과 동료 의사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그는 그날 새벽에 소련 영(領),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Chernobyl)이라는 곳에서 발생한 원전 사고에 대해서 물어왔다. 그 동료 의사가 종양 방사선학과에 전화한 것은, 종양 방사선학과는 방사선을 이용해서 암 환자를 치료하기 때문에, 방사선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별일 아닐 것이라고 단순하게 내 생각을 설명했다. 왜냐하면, 방사선에 관련된 모든 사항은 해당 정부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지켜야 할 기준과 지침이 있고, 이에 따라서 방사선은 통제되고 조정되는 환경 안에서 쓰이는 것이기 때문에, 사고가 났을 때 빨리 대처했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나의 대답은 원칙적으로는 맞는 말이었지만, 내 생각이 틀렸었다는 것을 세월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많은 자료가 아직도 은폐되어 있지만, 실제 그곳에서 일어났던 사고는 의도적이 아닌 결함이 있는 원전(原電 nuclear reactor)에서 발생한 것이었는데, 이 사고에 대처했던 러시아 정부와 관리들은 무지했다. 그리고 이 사고를 방관했고, 심각성을 은폐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구출되지 못하고 희생되었다. 사실의 은폐는 주변 국가에서도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는 동위원소들이 공중에 발산되었을 당시, 70%의 방사능은 바람을 타고 벨라루스를 덮쳤다. 이러한 사실을 국민에게 알리는 대신, 소련 영(領)이었던 벨라루스는 방사선 사고에 대한 정보유출을 법적으로 금했다. 러시아는 겨우 0.5%의 방사선이 그들의 땅을 더럽혔을 뿐이었다. 많은 양의 방사선은 사람을 죽이지만, 주변에서 그보다 적은 양을 받았던 사람들과 그 후손들은 지금도 그 후유증-주로 비정상적 뇌 기능, 정신질환, 발암, 유산, 기형아 임신으로 고생하고 있다.
나치 대학살로 619개의 마을이 파괴되었던 벨라루스는 이 핵사고로 485개의 마을이 없어졌고, 70개는 영구히 땅에 묻혔다. 전쟁 때는 4명 중 한 명이 죽었지만, 이 핵사고로 인해서 5명 중 한 명이 핵으로 더럽혀진 땅에서 살고 있다. 약 2 백 만 명에 달한다. 그중 7십 만 명이 어린이들이었다. (2006년 통계)
방사능에 더럽혀진 체르노빌에는 아직도 남아 있는 방사능이 테스트 기계에 잡힌다. 그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폐허이다. 올해 우크라이나를 침범한 러시아 군대가 2월에서 4월까지 체르노빌에 주둔했었다고 한다. 트랜치를 파던 군인들이 방사선 중독에 걸렸고, 한 명은 사망했다는 보도이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 대한 뉴스는, 당시 종양 방사선의학과에 의뢰된 암 환자들의 불안 수위를 높였다. 이러한 사고가 없었던 때에도, 의뢰되어 온 환자들은 ‘방사선’이라는 단어에 예민했다. 어떤 환자들은 방사선의학과 전문의사를 만나기도 전에 치료거부를 결심하기도 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사람을 죽였는데, 어떻게 방사선 치료가 환자는 죽이지 않고 암세포만을 죽일 수 있느냐는 질문을 했다. 좋은 질문이었다. 정답은 있는데, 정답에 도달할 때까지 여러 단계의 정보를 이해시켜 주어야 해서 그 태스크는 쉽지 않았다.
방사선 치료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미국 암 환자의 약 50%가 암 치료 과정 중에 수술, 약물 이외에도 방사선이 필요하다. 이 세가지 방법을 때로는 따로, 때로는 함께 쓴다. 방사선은 잘 못 쓸 경우, 부위에 따라서, 방사선량(量)의 정도에 따라서, 부작용의 종류와 정도가 다르다.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다.
방사선은 암 치료뿐 아니라, 병이 의심될 때, 진단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쓰인다. X-ray가 그것이다. X-ray는 127년 전에 빌헬름 뢴트겐 (Wilhelm Roentgen)이라는 독일 사람이 발견했다. 비슷한 시기에 마리 큐리, 피에르 큐리 부부가 동위원소 라듐(Radium)을 발견했다. 동위원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동위원소를 이용한 치료가 효과적이고 절대적인 질병들이 있다. 그 예가 자궁암이다. 자궁암의 경우 동위원소를 근접치료 방법으로 사용해서 막강한 방사선을 질병 부위에 쏘아 주고, 주위는 보호하는 방식이다. 이 위대한 발견으로, 인류의 의료는 획기적인 발전 도상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참고로 마리 큐리는 폴란드 사람으로 프랑스에 유학 갔다가 동료 물리학자인 피에르를 만나 결혼했다. 우리처럼 디아스포라였던 마담 큐리는 역사상 최초로 노벨상을 받은 여성이다. 그녀의 딸 아이린, 사위, 남편과 함께 5개의 노벨상을 거머쥔 역사에 남은 인재(人才) 가정이다.
원자폭탄을 만들어 한국을 일본으로부터 해방하는데 간접적인 이바지를 한 미국인,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위대한 발견을 한 천재 오펜하이머가 제외된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122년 동안 노벨 물리학상은 116번, 222명에게 주어졌다. 이 중 한 명은 두 번 수상했다.
그렇다. 방사선은 우리가 암에서 회복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치료 방법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방사선의 어두운 면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무차별적으로 방사선 연구에 집중했던 큐리 부인과 그녀의 딸, 아이린은 각각 악성빈혈, 백혈병으로 죽었다. 마차 사고로 40대에 사망한 피에르 큐리도 오래 살았더라면, 방사선으로 인해 발암했을지도 모른다.
러시아는 핵무기를 써서 전쟁에 이기려는 망상을 버려야 한다. 당시 그들의 땅이었던 체르노빌에서는 의도적이 아닌 사고로 많은 사람이 죽고, 병들고 자연이 파손되었지만, 지금, 의도적으로 핵을 사용하는 전쟁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과연 우리는 염려하지 않아도 될까. 비록 지난 100여 년 동안 방사선에 대한 방대한 지식이 쌓였고, 그러므로 방사선 의료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핵전쟁이라면, 날아오는 핵무기를 막을 길이 없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가 핵무기를 분해시키는 방법을 알아내려, 연구하고 있으리라 믿고 싶다. 우리는 안전제일의 세상에 살아야 할 권리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방사선은 우리에게 필수적인, 보이지 않는 빛이고, 그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