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화암

蔣介石(장개석) 총통 동상 중정(中正) 기념관
오랫동안 벼르던, 대만 여행을 다녀왔다. 짧은 수박 겉핥기식이었지만, 대만이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만든 역사와 문화 그리고 지리적, 지질학적 특수성을 조금 알게 되었다. 타이완은 한국과 꽤 가까이 있어서 비행기로 한국에서 약 3시간 정도밖에 안 걸린다. 한국에 살던 학창 시절에 지리적으로 가까운 섬나라 타이완을 가보지 못하고, 반세기가 흐른 후에야 모국의 반대편 미국에서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아서 다녀왔다.
중학교 때 정규과목이었던 한문을 배운 덕분에 타이완의 표시판들이 익숙해 보이기는 했는데, 50% 정도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많이 잊었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로 인민공화국 중국은 1964년부터 간소화한 한문, 간체자(簡體字)를, 타이완은 홍콩, 마카오처럼 전통 한자인 번체자(繁體字)를 아직도 쓰고 있다. 대만의 건물, 동상, 박물관 등은 그들의 역사와 연계가 있는 변방 나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원래는 청나라의 섬이었던 대만은 청일전쟁에서 일본에 패하면서 펑후(澎湖群島 포르투갈말로 Pescadores)와 함께 일본으로 할양되었다. 이차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까지, 50년 동안 우리 한국보다 공식적으로는 더 긴 세월을 일본 치하에서 살았다. 한국은 을사늑약 29년 전,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이미 식민지의 길로 들어섰다고 보면, 비공식적으로는 사실상 대만보다 더 일찍부터, 일본의 침략 하에 살았다는 견해도 틀린 것 같지 않다.
타이완은 남한 면적의 1/3 정도로 작고, 동쪽에 두 개의 산맥이 뼈대를 이루고 버티어 주는 한국과 비슷한 형태의 섬이다. 중국 본토 해변에서 약 100마일(160킬로미터) 동남쪽으로 떨어진 곳에 있다. 섬의 숫자로 따지어 보면, 인도네시아 (17,000여 개), 일본 (14,000여 개), 필리핀(7,600여 개)에 비해 훨씬 적은 수의 섬, 168개를 갖고 있다. 그러나 섬들이 퍼지어 있으므로, 해상 권리 지역이 꽤 넓다. 유엔해양법협약에 의하면, 국가의 본토에서 제일 가장자리에 있는 섬에서부터 약 370km까지 국가의 주권이 미치기 때문이다. 이렇게 육지처럼 눈에 금방 띄지는 않지만, 바닷속에 움직이고 있는 해물과 해저에 깔리어 있는 광물, 석유, 가스등이 부여하는 천연자원을 생각해 보면, 최선을 다해서 아무리 작은 섬이라도 지켜야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이 독도를 일본에서 보호하는 것처럼, 타이완은 그들 통치하에 있는 많은 섬을 인민공화국 중국, 일본,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베트남 등 주변 국가들에서 보호해 왔다.
대만의 자연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지질, 지각구조로 인해서 특유의 산, 폭포수, 강, 온천을 이룬다. 지금, 이 순간에도 움직이고, 변하고 있는 그야말로 젊은 땅이다. 약 오백만 년 전후해서, 북서쪽 유라시아 바다와 동남쪽 필리핀 바다의 바닥층이 서로를 향해서 움직이다가 어느 시점에 부딪혀서 타이완이라는 땅덩어리를 물 위로 솟게 했다. 지금도, 일 년에 약 2~5mm씩 계속 공중으로 밀리면서 솟아오르고 있다고 한다.
오랫동안 일어났던 지각구조의 변화를 예류(野柳) 지질 공원에 가면 맨눈으로 볼 수 있다. 모래가 쌓여서 굳어진 바위는 석영과 탄산칼슘의 분포도에 따라서, 또 바람에 의한 풍화작용과 바다의 해식(海蝕) 과정에 따라서 여러 형태의 멋있는 조각 예술품을 만들어 왔다. 단단한 윗부분은 침식에 강한 주로 둥근 돌 형태로 남고, 지층은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모래-돌 사암(砂巖)으로 바람과 파도에 쉽게 침식된다. 어떤 바위는 촛대 모양이고, 어떤 돌은 머리를 틀어 올리고 왕관을 쓴 영국 여왕 옆모습 같고, 어떤 돌들은 키 작은 버섯 모습이다.
타이완 하면 잊을 수 없는 인물, 손문과 장개석이 있다. 청나라 자체 내의 부패와 외세의 침략은 신해혁명(1911년)으로 청나라가 무너지는 전환점이 된다. 삼민주의 정치 이념을 가진 의사이자 혁명가인 손문(1866-1925)이 주동이었다. 삼민주의는 민족주의, 민권주의, 민생주의의 사상인데, 미국의 에이브러햄 링컨의 정치 철학을 떠오르게 한다. 손문의 젊은 추종자들이 장개석(1887-1975)과 마오쩌둥(1893-1976)이다.
한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서로 동료가 되었다가, 목표를 이룬 후에 갈라지어 적이 되는 것을 반복한 그들이다. 중국 통일을 위한 첫 번째 ‘제일차 국공합작(국민당+공산당 합작)’과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했을 때, 다시 힘을 합쳐 항일 운동에 함께 한 ‘제2차 국공합작’이 그것이다. 그 중간에 그들은 국민당, 공산당으로 다른 노선의 활동을 했다.
일본 육사 27기 졸업생인 장제스 총통은 중국 대부분을 통일하고, 새 정부를 만들었다. 그 후, 이념 차이에 의한 내란이 일어나고, 공산당에게 패한 국민당은 결국 본토를 떠나서 타이완에 정착하여 중화민국을 설립한다.
그러한 역사적인 배경과 이에 따른 영토 분할은 타이완이 국가인가 아닌가 하는 과제를 만들었고, 근방의 나라들은 그들의 이해타산(利害打算)에 따라서, 다른 의견을 내어놓고 있다. 타이완을 빼앗지 못해서 애타는 시진핑이 이끄는 중국은 대만이라는 국가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우리들이 잘 알고 있듯이 대만은 건재하다.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 중화 대만(Chinese Taipei), 또는 대만(Taiwan)이라는 세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슬프게도 유엔은 1971년에 상임 국가 자리를 대만에서 공산 체제인 중화인민공화국 (PRC: People’s Republic of China)에게 이양시키었다.
대만을 홀대하는 국제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천연자원 이외에도 세계 반도체 생산의 중심지에 있으므로 대만은 건재하다. ‘타이완 반도체 생산 공장 (TSMC)’은 세계 최대의 반도체 위탁생산회사로 스마트폰, 자동차, 컴퓨터, AI 서버에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 판매한다. 수출, 고가 인력 창출, 외국 자본 유치, 장비, 화학 물류 등 관련 산업도 성장시키어 막강한 경제 체제를 이룩한 타이완이다. 그들이 만드는 반도체를 ‘타이완의 실리콘 방패’라고 부를 정도이다.
깨끗한 대만, 수려한 산과 강을 자랑하는 대만, 또 반도체를 갖고 있어 부럽기만 한 대만에서, 찐만두 전문 맛집, ‘딘 타이 펑’ 원조레스토랑에 들려 그들의 정갈하고 은은하게 ‘맛 부리는’ 찐만두, 양배추 요리, 오이 요리로 방문을 끝 마감했다.
울산광역매일, 미주조선일보 6.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