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진흥재단 새 이사장에 말보로스쿨 이사 10년 경력 모니카 류 방사선 종양전문의

 

다음 은 제가 한국어 진흥재단  board president로 선출 된  기사입니다.  장연화  중앙일보 교육부장님이 보도한 것입니다.  

문외한으로 구경만 하고 있다가 중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밀려서 받게 된 것이라고 진실을 말하고 싶습니다.   더 배우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humbling experience 가 될 것입니다.

관련된 이사님들은 교육 administrator, 교수, 변호사, 학부형, CPA, writer, 교장선생님, 은퇴 교사등이 활동하고 계시고, 이 중요한 non-profit organization에  기능, 자질, 시간 부여를 하시고 계시면서  또한 저를 도우시겠다고 약속을 해 주셨답니다. 

 

“미국 내 초.중.고교 공립학교에 한국어 반이 더 많이 개설되고 유지될 수 있도록 열심히 지원하겠습니다.”

지난 21일 열린 한국어진흥재단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이사장으로 추대된 류 신임 이사장은 “후손들을 위한 교육 재단의 이사장으로 뽑혀 그 어느 때보다 어깨가 무겁다”며 “타인종 학생들에게 더 많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도록 지원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방사선 종양 전문의이자 LA지역 명문 사립학교인 말보로스쿨의 이사로 10년간 활동했던 류 신임 이사장은 특히 “올해부터 LA통합교육구가 이중언어 교육 확대 정책을 채택한데다 관련 주민발의안도 통과돼 그 어느 때보다 한국어 공부에 대한 필요성과 수요가 늘고 있다”며 “한국 정부의 후원과 협력을 받아 한국어반 공급과 교육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일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국어진흥재단은 22년 전 미주 한인 2~3세들이 학교에서 정식으로 한국어를 외국어 과목으로 채택해 배울 수 있게 하자는 취지로 설립됐다.

이후 미 전역 공립학교에 한국어 반을 설치하는데 앞장서면서 대입시험 과목인 SAT 서브젝트 시험에 한국어를 외국어 시험으로 정식으로 등록시키는 업적을 일궈냈다. 뿐만 아니라 교장 및 교감 등 로컬 지역의 교육 행정가들에게 한국 문화와 한국어 교육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교육자를 위한 한국 초청 연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한편, 한국어반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장학생을 선발해 장학금을 수여하고 한국 연수 기회를 제공하며 공립학교내 한국어 교육 활성화를 끌어왔다. 이같은 활동에 힘입어 최근 2년 동안 남가주에 한국어반이 잇따라 개설되면서 한국어 교육붐도 다시 살아나고 있는 중이다.

올해 목표로 샌디에이고 지역 공립학교내 한국어반 신설 캠페인과 2년 뒤 시작될 가주 교과서 채택 과정에 필요한 캠페인을 설명한 류 신임 이사장은 “새로운 업무이지만 학생과 학부모를 생각하고 재단을 끌어가겠다”며 관심과 협력을 부탁했다.

길옥빈 전 이사장이자 신임 부이사장은 “이사들의 절대적인 협력과 도움으로 한국어반을 많이 개설할 수 있었다”며 “LA통합교육구에는 한국어 교육이 자리를 잡았지만 샌디에이고 등 타 지역은 아직 모르는 학교들이 많은 만큼 한국어 홍보를 위해 더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길 신임 부이사장은 이어 “한국어진흥재단의 특징은 후손들의 한국어 교육을 위해 한인들이 자발적으로 비영리재단을 설립하고 기금을 조성해 프로그램을 운영한 곳”이라며 “앞으로는 실력과 자질을 갖춘 우수한 한국어 교사를 계속 배출할 수 있도록 교사 양성 프로그램 운영에도 힘을 쏟겠다”고 덧붙였다.

장연화 기자

진정한 힐링이란 무엇인가?

아미르의 아트 클래스를 벼르고 벼르다가 참석했다. 아트 클라스에 온 환자들의 얼굴은 어두웠다. 클래스가 시작된지 얼마 후 명랑하고, 주위에 신경을 쓰는 듯 보이는 두 여인이 들어섰다. 그들은 이미 치료를 마친지 일 년이 넘었다 했다. 치료중에 했던 아트 클래스가 좋아서 잊지 않고 참석한다 했다. 이 두 여인들은 자신의 투병 이야기를 현재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들려주면서 그들을 위로 했다. 열 다섯 명의 환자들과 두 명의 레지던트, 그리고 내가 함께 했던 클래스는 종양 방사선과 레지던트 아미르가 일 년 반 전에 만든 것이었다. 아미르는 의과대학을 다닐 때 홈리스들을 위해서 아트 클래스를 만든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의사 지망생 청년이 홈리스들에게 눈을 둘 수 있었다는 것에 나는 무척 감격했다. 존경스럽기도 했다. 이런 젊은이들, 남을 배려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내적인 강인함을 가진 젊은 세대를 볼 때 겪고 있는 현실이 암담해 보여도 세상은 아직 희망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미르를 보며 기억되는 청년이 있다. 딸의 의과대학 졸업식장에서 소개 받은 딸의 졸업동기생이다. 그는 변호사로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대변하고 그들의 권리를 위해 일 하다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변호사도 필요하지만 의사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의과대학을 지망했던 젊은이였다. 사회정의와 자선의 실천을 병행하는 어려운 삶을 택한 것이었다.

아미르에게 왜 환자들을 모아 아트 클래스를 열게 되었느냐고 물었을 때, 환자들의 힐링 과정을 견고히 또 빠르게 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힐링’을 도울 것인가?

얼마 전 부터 ‘힐링’이라는 단어는 새로운 비지니스 의미를 갖고 미디어에 범람해 왔다. 한국 사회에서 힐링 열풍이 시작된 것은 십여 년 전이다. 자기 개발서라는 이름으로 팔리던 힐링도서, 여행사가 광고하는 힐링여행, 도심지를 떠나 특수 지방을 띄우는 힐링산책로등 많은 작품들이 보여졌고 들어보면 그럴 듯 하다. 한 때 한국의 어떤 대학에는 힐링학과가 있었다고 하니 좀 어이 없는 일 같다. 그런 사회 변화를 구경하고 있던 차에 아미르의 답변은 나에게 숙고의 여지를 부여했다.

‘힐링’이라는 단어는 ‘온전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라는 뜻이라고 위키피디아는 설명한다. 우리 몸의 기관이 밸런스를 잃었거나, 아프거나, 파손 되었을 때 본래의 건강 상태를 회복하는 과정이다. ‘힐링’의 결과는 육체적으로 원상복귀가 되지 않아도 기능이 회복되는 것 만으로도 완수된다는 설명이다.

‘힐링’ 과정은 개인적이다. 아프고, 힘들고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짧은 시간에 이룩할 수 없다. 또 고뇌의 기간을 거쳐야만 한다. ‘힐링’을 판다는 마켓에서는 ‘힐링’을 살 수 없다. 잃어 버렸거나 파손된 자신을 찾는 끈임 없는 노력, 그래서 긍국적으로 갖게 되는 자긍심, 나아가서는 자신을 사랑할 줄 알게 되는 능력을 얻어야만 성취되는 것이 ‘힐링’이기 때문이다.

아미르의 환자들이 그림을 그린다. 캔버스에 형태를 그린다. 병들어 불완전하고 볼 품 없는 자신의 모습이라 생각하니 더 아프다. 그 형태 사이 사이를 물감으로 채운다. 빨갛게, 파랗게, 노랗게. 또 까맣게. 빨강과 파랑을 섞으니 보라빛이 된다. 아, 여기 황금 노랑색이 있네! 희망이 보인다. 그들은 나를 아물게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나 자신임을 본다.

외국어 한글 표기에 대한 나의 제언

“영어를 원숭이 같이 하는 게 뭐가 좋아?” 중학교 다닐 때, 나의 똘똘이 친구가 내뱉던 말이다. 친구는 견해가 많았다. 당시 우리는 사대사상에 대한 역사적 반성을 하고 있었다. 그 똘똘이는 처음으로 배우는 외국말인 영어를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 것은 지조가 없는 일이라고 피력했다.

그 친구도 나도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 나는 어휘 부족으로 애초에 고생했는데 친구는 영어 발음이 매끄럽지 못해 힘 들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나는 어느 때부터인지 영어가 내 모국어처럼 편하게 느껴지게 되었다.

우리 한민족에게는 과학적이고 쉽게 배울 수 있는 한글이 있다. 하지만 외국말을 많이 섞어서 쓰는 지금, 우리 글에는 없는 외국 글이나 말을 표현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언젠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큰 오빠와 나는 그 점에 대해 의견을 나눈 적이 있었다. 내가 한글에 관련된 기관에 이사직을 맡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오빠는 한국의 세계화를 추진하는 지금 언어를 통해 세계화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보라고 조언했다.

내 친구가 힘들어 하던 영어 발음, 그것이 바로 우리 한글로는 정확히 구별해서 표기할 수 없는 F, L, R, TH, V이다. 한편 영어에는 우리 말의 된(센) 소리, 즉 쌍시옷, 쌍기역 등이 없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본다. 아버지라는 father를 ‘파저’ 라고 쓴다면 원어와 꽤 멀다. 요즘 신문에 자주 오르는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라는 단어의 철자는 THAAD로 ‘디긋’에 발음이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쌀이라는 라이스(rice)를 잘못 발음하면 머리에 끼는 ‘이’의 라이스(lice)가 될 수도 있다.

여러 세대를 거쳐 많은 분들이 우리 한민족의 우수한 글에 대해서 의견을 올려왔고 외국어 표기에 대한 국립국어원에서 내어 놓은 규칙도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그것은 너무 복잡한 이론에 의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외국어를 외국말에 가깝게, 또 그 뜻이 왜곡되지 않게, 동시에 우리의 한글을 변동시키지 않는 간단한 방법이 있을 것 같아 구상한 것이 있다.

다 같이 생각해 보자. 한글은 글 하나를 네모난 상자 안에 집어넣을 수 있게 생긴 정교한 모습이다. 자음의 위, 오른쪽, 아래에다 모음/자음을 붙여 하나의 말/글이 탄생한다. 그러나 왼쪽은 항상 비어 있고 우리는 오른쪽 방향으로 글을 써 간다. 하나의 글은 둘에서 다섯개의 성분 또는 요소가 있다고 보니 참 간단하다.

그래서 F, L, TH, V 이 네자 만이라도 구분해서 원어에 가까운 발음을 표시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자음 왼쪽에 적당한 표시를 해 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ㅍ / •ㄹ/ •ㄷ/ •ㅂ’의 모양이 된다. 점(•) 대신 ‘~’식의 표시도 괜찮겠다. 그렇게 되면 지금 ‘커피’ 라고 쓰는 것을 ‘커•피’라고 표기하면 원어대로 coffee의 발음을 할 수 있게 된다. ‘THAAD’ 는 ‘•다드’로 쓰면 올바른 발음이 될 것이다.

 

•ㅍ(F)                                             •ㅂ(V)                                                                    

• ㅍ(F) 입모양2

 

ㄹ(R)                                             •ㄹ (L)                                                                        •ㄷ (Th)

위의 그림(그림이 upload 되지 않아서 아쉽습니다. 저의 책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만)은 우리글에 없는 또는 구별이 어려운 네(/다섯)가지의 소리를 낼 때 입술, 이빨, 혀의 위치를 쉽게 보이기 위해 간단히 그려본 것이다. 한번 해 보고 나면 아주 쉽다.
비록 학창시절에 영어가 표준어인 미국이나 영국, 카나다에 가서 원주민들과 섞여 영어 연수를 받지 못했다 하여도 이런 식으로 분별있는 발음을 배울 수 있다면 훗날 리더 위치에 올랐을 때 도움이 될 것이다. 외국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발음으로 대화를 이끌 수 있다면 좋은 인상을 주면서도 대화의 이해과정에 좌절감이 들지 않으니 만남은 성공적이 될 것이 아닌가. 상대가 내 말을 못 알아들어 ‘죄송해요(Pardon me!)’를 연발할 때 처럼 민망스런 일이 없다. 우리 아이들은 원숭이나 앵무새가 아니라 사업 내용을 충분히 표현하는 학자나 기업가가 될 것이다.

나의 큰 오빠와 내 의견을 참고로 더 정확하고 쉬운 표기법 제안을 관계 기관에서 적극적으로 공모(•씽크 탱크 Think Tank)해 의견을 수렴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1 이 책에서 외국어 표기는 위에 제시한 방법으로 일단 서술하고저 한다.
2 입모양: F 와 V 발음 때 윗니, 아래 입술의 위치는 동일하지만 숨의 방향만
다르게 해 주면

‘종을 치는 환자’ 뒤에서

어제는 당직이라서 치료실, 치료기계가 있는 층에서 일 했습니다.
두 주에 한번 씩 보아드리고, 치료가 끝날 때 봐드리는 것이 당직의사의 일입니다.

몇 명의 환자들이 치료를 끝내어,
함께 종이 있는 곳으로 걸어 갔습니다.

참으로 잘 한 일이었습니다.
종을 달아 놓은 것과,
의사인 내가 환자와 함께 걸어
종이 달린 곳에 갔다는 것과,
환자의 가족들을 종치는 곳으로 초대했다는 것 말입니다.

간호사들과 둘러서서 환자가 종을 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천천히 종으로 닥아가는 환자들,
잠깐 서서 종을 바라보는 그들의 뒷 모습,
모두 엄숙했습니다.

종소리를 듣고 대기실의 환자들도 함께 박수를 쳤습니다.

‘댕~댕~댕`’

우리 모두는 열심히, 성실히 살아 갈 것 같습니다.

2017년 8월 4일 아침
엘에이에서

종을 치는 환자

‘댕~, 댕~, 댕~’

종소리가 들린다. 성당이나 절에서 울리는 종소리 처럼 무게가 있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들어줄만 하다. 소리가 맑다. 오늘 방사선 항암치료를 마친 환자가 있는 모양이다. 치료가 끝나면 환자는 종을 칠 자격과 권리가 생긴다고 할까? 대부분은 기뻐 보인다. 천천히 종으로 닥아가고, 멈추어 종을 바라 본다. 그리고 종을 친다.

내가 몸담아 온 이곳 종양 방사선과에는 하루에 250여명의 환자가 치료를 받으러 온다. 치료받는 부위도 환자 나이, 인종도 다양하다. 뇌종양부터 폐암, 전립선암, 자궁암, 피부암까지 여러 종류의 암 질환 환자들이 온다. 큰 센터이다 보니 희귀한 종양도 많다. 유아나 겨우 걸음마를 할 수 있는 아이들 부터 장년기, 노년기 환자들이 출퇴근 하며 치료를 받는다. 마주치기만 해도 가슴이 아련해 지는 어린이 환자는 흔하지 않아 다행이다. 치료 방법도 여러가지이다. 외부에서 쪼여주는 방법 (teletherapy), 조그만 씨앗 크기의 동위 방사선을 넣어 주어 오랜 시간을 거쳐 근접치료를 하는 방법 (permanent seed implant), 기구를 몸에 넣고 짧은 시간에 높은 양의 방사선을 쏘아주는 동위원소를 기구를 통해 넣어 근접치료(high dose rate brachytherapy)를 하는 방법등이 있다. 기계의 에너지 종류도 다양해서 깊숙이 쏘아줄 수 있는 기계부터 표면만을 치료할 수 있는 기계도 있다.

과학의 발달로 테크놀로지가 엄청나게 인류역사를 바꾸어 놓고 있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 혜택을 많이 받고 있는 종목이 의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이 질병을 예방하지 못한다.

질병은 우리를 비켜가지 않는다. 이 삶의 진리를 가끔 생각해 본다. 우리 거의 모두는 한 두가지의 병을 달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물론 대부분 관리가 가능하고 치명적이지 않지만 암 종류는 관리 스테이지에 도달하기 전, 초입에 근본적이고 공격적인 치료를 시도해야 하는 산을 넘어야 한다. 이미 전이가 된 상태에 이르면 언젠가는 삶을 끝내야 할 전제를 해야 하고 완화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양자의 경우 모두 방사선이 필요 할 때가 많다.

환자들이 치료를 마친 뒤 완료의 축하를 받을 수 있게 해 주자는 의도로 종을 칠 수 있게 하기 전에는 ‘치료 완수 상장’을 주곤 했었다. 이 상장은 그냥 혼자서 받고 끝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종을 달고 나니 환자들이 치는 종,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의료진과 주위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온 환자, 그들의 가족들과도 나누는 하나의 세리모니가 되었다. 산 하나를 넘었다는 것, 비전을 갖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현실을 돼새겨 보는 시점이도 하다

종이라면 자전거 종, 학교종, 벽시계 괘종, 힌두교, 불교, 천주교에서 종교 예절을 알릴 때 치는 종, 에밀레종, 라흐마니노프가 에드가 알렌 포우의 시와 그레고리안 종교음악을 바탕으로 작곡한 합창교향곡 ‘종’ 정도 밖에 몰랐던 나는 환자들 덕분에 종으로 하는 다양한 음악, 종을 연구하는 종학, 종을 만드는 기술에 대해서도 알게되었다. 종의 크기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종이 주는 소리는 종을 만들 때 들어간 테크놀로지에도 큰 차이가 있다한다.

얘기가 옆길로 새지만 한국에는 성덕대왕 신종이 가장 자랑할 만 한 유적이다. 19 톤의 무게로 약 1300년 된 것인데 상원사 동종보다 약 46세가 젊다한다. 이 종이 어려서 들어온 ‘에밀레 종’인 것 같은데 실상 이 별명은 일제 강점기 이전의 어떠한 문헌에서도 성덕대왕신종을 에밀레종이라고 한 자료는 없다고 한다. 따라서 계획적이고 의도적으로 만들어 졌다는 논(論)이 있다.

다시 환자들이 치는 ‘이룸의 종’으로 돌아간다. 비록 작은 종이지만 환자들이 치는 종소리가 의료진, 가족, 동료환자들을 돌고 넘어 전능하신 분에게도 전달되어 방금 끝낸 치료가 효염있기를, 치료의 도구로 쓰인 의료진들의 지혜 또한 영글고 겸허하게 해 주시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