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질없는 생각

지난 해 부터인 것 같다. 슬픈 마음으로 새벽을 맞이하곤 한다.

새벽에 방 문 틈으로 방 안을 들여다 보면서 인기척을 기다리던 ‘땅콩’과 항상 뒷전에서 자신 없어하던 ‘니모’가 없기 때문이란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이 두 녀석들은 성당 마당에서 rescue했던 길고양이 여러 마리 중, 가장 오랫동안 우리들과 함께 했던 터이다.

눈이 째배진 모양이라, 내가 ‘사무라이’라고 부르던 녀석은 성당 트레일러 뒤에 숨어있었다. 사람들을 무서워 했다. 나는 녀석과 임신한 줄 몰랐던 ‘매미’에게 고양이 밥을 주곤 했다. 성당 공동체에는, 나를 미워하는 군중이 있었는데 (지금도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상관 없는 일이다) 이 마당에서 사는 길고양이 때문에 알러지가 생겼다나???? 무식해도 분수가 있어야 할 터인데. 그래서 고양이들을 잡아다가 처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일을 벌리는 사람들은 ‘마당쇄’과이고, 뒤에는 조정하는 자가 숨어있다. 어떻든 그 마당쇄들은 30여년이 지난 지금 장년기에 들었을려나 싶다. 별로 이민사회에서 편히 살지 못하는 모양세들이다. 울적한 표정으로 허리 굽히고 다닌다.

‘땅콩, 니모, 매미, 사무라이’ 그리고 ‘Frisky’. 산다는 것은 모두 부질없이 생각되는 가을 초입의 날이다.

그러나 감사한다. 사랑 할 수 있게 해 주었기에!

큰오빠, 진기오빠, 천상병시인, 장영희교수가 생각나는 아침

2023.9.20. 수요일 아침

pilot의 꿈을 가졌던 큰오빠 전유경. 큰오빠의 형, 나의 ‘제일 큰오빠’ 전응경의 전사는 오빠를 가장으로 내몰고, 어려움을 감내했다. 오늘 아침 깨면서, 큰오빠, 그리고 (김)진기 외사촌 오빠를 생각했다. 헌병감을 지냈던 진기오빠는 내 결혼식에서 나를 escort 했었다.

천상병시인, 장영희교수를 만난 적은 없다. 모두 아픔을 승화하고, 아름답고 뜻 있게 살다간 사람들이다. 시인과 교수의 사진은 삭제했다. 카피 라이트가 있는 경우일지 몰라서…

[수필] ‘2천일(二千日)의 신화(神話)’

2023.8.28 남가주 경기여고 동문회 뉴스레터에 보냄

모국인 한국을 떠나 살아온 나는 영어와 한국어 권(圈)을 넘나들면서, 때로는 두 세계를 섞으면서 살았다. 많은 디아스포라의 삶이 그렇듯이, 음식, 예절, 언어문화의 섞임은 자연스레 짬뽕(국물과 식재료가 마구 섞여있는 이미지에서 파생된 의미의 단어: 일본 참프루‘, 인도네시아말로 짬뿌르‘(Campur)도 섞는다는 뜻이 있다.)이 되었다. 그런 나를 보고 한심하다고 할 사람은 없을게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반세기나 된다. 그렇다면, 그간 나와 함께 했던 의식(意識)과 사고(思考) 또한 짬뽕이 되었을까? 그 짬뽕의 바탕은 무엇일까? 자라면서 받았던 밥상머리 교육일까, 학교라는 틀 안에서 가르쳐진 지식일까, 타향살이에서 어렵게 다듬어진 개똥철학일까. 아니면 어머니가 물려주셨을지도 모르는 지혜일까.

곰곰이 들여다보면, 내 일상의 모든 것은 한글이라는 뿌리 위에 있었다. 그 뿌리는 항상 깊이, 널리 퍼지면서 자라고 있었다. 여기에서 뿌리라는 말은 상징적인 표현이다. 실상 어린, 빨리 자라는 나무의 뿌리는 나무 둘레의 38배로 원형을 그리면서 자란다고 한다. 몸체가 크고 튼튼할수록, 뿌리는 멀리 퍼져나간다는 과학적 근거이다. 여담이지만 뿌리는 크게 두가지로 분리해서 보는데, 주근(主根)과 측근(側根)이다. 주근은 식물의 밑동으로 땅 속 깊이 꼿꼿이 자라면서 수분, 양분을 빨아올려서 줄기를 지탱하는 기관이다. 고어로 불휘라고 부르고 용비어천가에 나온다. 측근은 퍼져나가는 수염뿌리를 생각하면 된다. 한글이라는 뿌리는 주근, 측근 모두, 그 힘과 영역이 방대했다.

바다를 떠돌다가 풍파에 밀려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도 침몰하지 않았던 것은, 한글과 한글이라는 토대 위에 세워져 나의 일부가 된 ‘2천 일의 신화(神話)’ 때문이다. 그것은 나의 가슴과 머리가 순수했던 어린 10대 시절에 경기여자중고등학교에 적(籍)을 두면서 2천 일 동안 썼던 신화이다. 신화의 뿌리는 깊고, 방대하다.

그런데 이 ‘신화(神話)’는 혼자만 쓴 것이 아니었다. 지난달, 57년 전에 브라질 이민을 떠나면서 헤어졌던 교우를 엘에이 한인 쇼핑몰에 갔다가 우연히 만났다. 친구는 나를 보고 ‘정동?’ 하고 말을 붙였다. 나는 ‘일 번지?’ 하고 답했다. 우리는 한글 다섯 자로 서로의 뿌리를 확인했던 것이었다!

나를 위시한 디아스포라 한국 사람들은 한국과 세계역사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장보고 통상이 이끌었던 최초 한국의 해상무역은 신라인들의 디아스포라 삶을 보여준다는 전설이 있다. 일제 강점기 때의 슬픈 역사를 뛰어넘어, 지금 7백 만이 넘는 한국 분들이 카나다,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중국, 일본, 러시아, 우츠베키스탄, 아프리카, 독일 등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현대 한국 디아스포라가 장보고가 살았던 시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한글이다.

우리 조상들은 모국을 떠나 어느 곳에 정착하든지 간에, 두 가지 일을 했다. 첫째는 후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둘째는 공동체를 만들어 서로 간에 문화와 디아스포라 삶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나누면서 함께 하는 일이었다. 공동체는 사탕수수밭, 오랜지 밭 그리고 한국어로 예배를 드리는 교회를 토대로 자연스레 형성되었다.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남가주경운회가 뉴스레터를 영어로 출판하지 않고, 한국어로 만드는 것처럼, 세계 어느 곳에 있어도 디아스포라 한국인들은 한글을 잊지 않는다. 후세에게 가르칠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한글이 세계언어로서 받아들여지도록 세상을 계몽하고, 그를 위해서 쉼 없이 달린다. 그렇게 달려온 선구자들이 많다. 나는 선구자는 아니지만, 바통을 물려받아 다음 주자(走者)에게 넘겨 줄때 까지 열심히 뛰고 있는 단거리 경주자 중의 하나이다.

한국 땅에서의 ‘2천 일(二千 日)의 신화(神話)’는 나의 경우, 이 미국 땅에서 ‘2만 일(二萬 日)의 신화(神話)’로 이어가고 있다. 이 신화는 역시 한글을 통해서이다. 비혈통계 환자가 대부분이었던 일과(日課)이었어도, 한글을 읽는 동포들에게 한글로 의학 칼럼을 써서 새로운 의학 정보를 나누었다. 일기를 쓰듯, 동화와 수필과 시도 한글로 써왔다. 지금은 한글을 차세대 한국계 혈통뿐 아니라 비혈통 학생들이 배울 수 있도록 한글이 정규학교 선택과목이 되게하기 위한 ‘한글세계화’에 함께 한다. 힘들지만 기분 좋게 잘 진행되고 있다.

내가 이사장으로 봉사하고 있는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한국어진흥재단이 그 과업의 성과를 보여준다. 미 전역에서 200여 개의 중고교 정규학교에 한국어 클래스가 만들어지고, 2만 여명의 학생들이 한국어반을 택하고 있다. 남가주만을 볼 때 80개교 학교에서 총 332개 학급의 한국어반이 운영되고 8,500여 명의 학생들이 한국어반을 수강한다. 지난주에 엘에이 카운티에 있는 두 중고교에 한국어반을 개설했다. 이 두 학교에는 한국혈통 학생이 극소수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그들이 원해서 한국어를 세계언어의 옵션으로 택하였다.

차세대가 한국어를 배우게 하려면 이 미국 사정에 맞는 이중언어, 한국어와 영어로 된 교과서가 필요하고, 교사양성, 예비교사 양성등 이에 합당한 부수적인 일들을 함께해야 한다. 한국 문교부 산하, 교육원과 함께 열심히 일하고 있다.

나는 오늘도 한글 신문을 읽고, 한글로 글을 쓴다.

나의 모교 경기여자중고등학교(京畿女子中高等學校)의 ‘2천 일의 신화’는 어릴 적 정동 1번지에서 태어나, 아메리카 대륙에 뿌리를 내리면서 나의 의식(意識)과 사고(思考)의 줄기를 키워, 한글로 ‘2만 일(二萬 日)의 신화(神話)’를 만들고 있다.

-끝-

[시] 백자(白磁)

아기 집 속 아이는

쬐끄만한 입술을 오믈거리다가

여인에게 침을 뱉고

오줌을 갈겼다

끈적이는 머리카락에

입 맞추고

바둥대며 세상을 숨 쉬는

첫 생명을

가슴에 품는다

여인은

까마귀 처럼 까만 양복

흰 와이셔츠

그리고 까마귀 색 넥타이

반백의 남정네

그녀의 첫 생명

백자가 품은 그녀를

가슴에 안고 있다

삼척 땅 속

기다림이 있는

그곳에

평생 찾던

정막 속에

백자와 하나 되어

뉘어 지고 있다

[수필] 대중이는 어디 있을까?

네 살은 되었을 것 같았다. 남자아이는 많이 울었다. 간호사가 안아 주어도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큰 소리로 오랫동안 울다가, 간호사 누나 가슴에 안겨 잠이 들었다. 잠 속에서도 아이는 흐느끼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대중’이라 했다. 한문으로 大衆(대중)이었는지, 한국의 15대 대통령 김대중 씨의 이름을 딴 大中(대중)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대(大)라는 글자는 아이가 넓은 마음으로 배포(排鋪) 있는 장군처럼 살라는 뜻으로 주어진 것이었을 것 같다.

오십 년 전, 겨울처럼 춥던 어느 가을밤에 경찰 아저씨의 팔에 안겨, 한 살도 안 된 꼬마 아기 네 명과 함께 서울시립아동병원 문턱을 넘어왔던 아이이다. 당시 의과대학을 갓 졸업하고, 인턴이었던 나는 시립아동병원에 파견 나가 있었다. 경찰 아저씨는 그날 밤도, 여느 날처럼, 길에 버려진 아이들을 걷어왔다.

‘대중’이는 거대한 첫 번째 입원실에서 며칠을 지나고, 제 나이 또래 아이들이 있는 방으로 옮겨졌다. 말을 할 수 있던 ‘대중’이는 텔레비전의 이름도 알았다. 당시 한국에는 텔레비전이 집마다 있던 때가 아니었다. 그로 보아서, 그 아이는 밥깨나 먹는 집에서 자라던 아이이었을 터인데, 왜 버려졌는지, 아니면 어쩌다 길을 잃었던 것인지, 그 아이를 찾으러 오는 부모가 왜 없는지, 우리는 안타까웠다.

파견근무가 끝나고 제자리로 돌아간 햇병아리 인턴들은 계획되어 있던 전문분야의 길을 떠났다. 나도 ‘대중’이와 ‘대중’이의 시립아동병원 친구들을 뒤로하고, 얼마 후, 도미했다. 나는 미국의 동부, 서부에서 살면서, 어린 시절을 고아로 한국에서 지냈다던 성인들과 고아들에게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 주었다는 양부모들도 만났다. 6·25 동란 즈음 고아가 된 분들은 동란이 일어난 지 73년이 된 올해로 거의 80살이 되어가고 있고, ‘대중’이처럼 평화 시대에 부모와 헤어진 아이들은 40대 중반이 되었을 것이다.

한국에는 6·25 동란 때문에 남북한 합쳐서 십여만 명의 전쟁고아가 생겼다. 휴전된 지 20년이 지난 ‘대중’이가 구제되었던 1972년 즈음에도 남한은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이 붙여졌다. 보건복지부에 의하면 1955년부터 2021년까지 64년간 16만 9,454명이 해외로 입양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북한은? 북한 고아의 통계는 많지 않지만 Wilson Center (2020년 6월 18일, 서강대학교 홍인택)는 1952년부터 1959년까지 6·25 동란 전쟁고아 3만 명이 공산권 동맹 국가인 항가리, 로마니아, 체코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동독, 몽고, 중국에 초대되어 교육받았고 양육되었다고 보도했다. 그들은 국가 관념에 대한 교육을 중점적으로 받았다고 한다. 전원이 북한으로 돌아 갔다. 그 후 그 아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은 국제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았고, AP 뉴스(김형진, Monika Scislowska 6월 23일 2020년)에 짧막한 내용이 실린 것을 보았다. 한 명은 김일성대학에서 러시아어 교수를 하고 있고, 다른 한 명은 폴랜드어 교수로 일하고 있었고, 그 외에 세 명은 폴랜드 외교관을 지났다는 내용이었다. 3만 명 중 겨우 이 사람들의 소식이 있을 뿐이다.

6·25 동란의 상흔이 깊었던 한국에서 성장하고 미국에서 디아스포라로 살아온 나에게 2023년 여름은 특별하다. 한미외교 70주년이고, 이 때문에 만나게 된 특수한 사람들 때문인 것 같다. 한미 두 국가 간의 연계는 6·25 동란으로 시작된 것이기에, 전쟁 텃밭에서 전사한 한국과 미국의 젊은이들을 잊을 수 없지만, 이 역대의 참상에 대한 기억을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게 전환 시켜준 여름이다. 알게, 또는 모르게 세상에 남겨진 산화한 젊은이들의 자식들을 만났다. 평범 속에 흡수된 그들이지만, 실상 7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그 젊은이들이 스쳐 갔던 여인들과 그들이 남기고 간 아이들은 쉬이 아물지 않는 상처를 아물게 하려고 무척이나 애썼을 것이다.

내가 만난 특별한 두 여인 중의 한 분은 한국전쟁 직후, 미국 흑인 가정에 입양되었던 은퇴 교사이자 작가인 산드라 윈덤여사이다. 다른 한 여인은 윈덤 여사와는 달리, 나의 환자 ‘대중’이처럼 1970년대에 홀트 양자회를 통해서 백인 양부모에게 입양되어 성장한, DNA로 따지자면 순수 한국인 여성인데 전문직을 가진 아내이고 엄마이다.

윈덤여사는 엘에이 총영사관과 UCLA가 합동으로 개최한 한미외교 7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 스피커로 초대되었던 인사 중의 한 사람이었다. 누구인지 모르는 흑인 병사와 역시 누구인지 모르는 한국인 여인 사이에 태어났던 혼혈아로 삶의 첫 4-5년을 가난하고 인종차별이 심한 한국이라는 곳에서 ‘깜둥이’라는 놀림을 받고 살았다고 한다. 흑인 병사는 미국인일 수도 있고 에티오피아인일 수도 있다고 그녀는 자신의 책에 설명하고 있다. 스텐포드 대학을 졸업한 인재로 그녀의 ‘오케스트레이션’이라는 책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의 체제와 사회의 불합리를 말해준다. 또 부모, 국가라는 테두리, 종교, 교육, 문화의 이질감 등에 대해서 숙고하게 한다.

참으로 훌륭한 사람들이다. 훌륭한 사람들은 또 있다. 미디어를 통해서 본 뉴욕 부교육감 알랙사 앨번, 부시 펠로우십 수상자 캐서린 대출러, 김 파크 넬슨, 펜실베니아 소도시 시장 제니 안토니비츠, 비키 플린켄 스미스 검사, 킴 페굴라 네셔널 풋볼리그 버펄로 밀스 공동구단주 킴 페굴라를 보라.

부모를 잃은 고아(孤兒)이었는지, 부모나 부양가족이 마음을 먹고 버린 기아(棄兒)이었는지, 뜻하지 않게 부모를 잃은 미아(迷兒)이었는지는 더는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암울했던 초창기 운명을 입양해준 부모님들과 함께 합심해서 반전시킨 멋진 사람들이다. 오십 즈음이 되었을 ‘대중’이도 그렇게 멋진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사랑과 신앙의 힘이 얼마나 강하고 큰지를 한국 출신 입양아 영웅들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문예난 2023.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