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들과 소울푸드 김치

미주 중앙일보 5.14

봄방학이라고 스페인과 뉴멕시코에 살고 있는 두 딸 가족 8명이 지난달에 다니러 왔다. 아이들은 사춘기 이전의 12살짜리부터 사춘기를 경험하고 있는 16살까지 좀 다양한 나이대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나의 딸들은 대학 시절부터 우리를 때때로(!) 떠났다.
딸들은 대학 졸업 이후에 잠시 귀향하였다가, 대학원과 수련의(修鍊醫) 과정, 박사과정을
타지에서 하면서 집을 떠났어야 했다. 막상 안정적인 직업인이 되었을 때, 딸들은 제 아이들,
그러니까 나의 손주들 교육환경과 사회적, 경제적 편안함을 이유로 고향인 로스앤젤레스가 아닌 타주(他州)와 타국(他國)에 정착하였다. 딸들이 제 아이들의 봄방학에 맞추어 고향에 다니러 왔다.


막네 격인 손주네 가족은 비행시간만도 13시간 걸리는 곳에 산다. 공항에 머무는 시간까지
합치면, 거의 하루를 길에 있었던 셈이다. 중, 고교 생인 다른 세 손주는 학교 수업뿐 아니라
과외활동의 종류와 심도(深度)가 달라서 한 가족이 두 팀으로 나뉘어져서 도착했다.
손주들의 방학은 같은 달 3월에 시작했지만, 기간(其間)이 다르다 보니, 끝나는 때가 달랐다.
사촌끼리 함께 지낼 수 있는 날이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의 봄방학은 부활절을
전후(前後)해서 시작한다. 기독교회 달력으로 중요한 명절이 부활절이고 부활절은 북반구에서는 봄에 있다.

역시 북반구의 농업국가에서 씨앗을 뿌리는 농번기에 일손을 충당하기 위해서
봄방학이 생겼다고 배웠던 것 같은데, 이 이론에는 근거가 없다고 한다. 이유나 역사가 어떻든
간에, 8월 말이나 9월에 새 학기가 시작하고, 5월 말 또는 6월에 학년이 끝나는 대부분의 현대
교육 시스템은 년 중 약 180일(165일~210일) 동안 학교가 열린다. 초, 중, 고, 대학교 등 그 교육
등급에 따라서, 또 지방과 국가에 따라서 차이가 있다.


손주들은 혼혈이다. 현대식 표현을 빌리자면 그네들은 다른 인종(multi-race)끼리 이룩한
다문화(mixed-culture)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고 있다. 한국혈통인 엄마와 인종(race),
민족(ethnicity) 또 국가(nation)가 다른 출신의 후손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이들은 동양적인 것, 한국적인 것들이 스스로에게서 스며 나오는 것임을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한다.
내가 아메리카 반도에 발을 디디었던 반세기 전에는, 얼굴색이 노랗다고, 눈과 코가 작고
광대뼈가 높은 몽골리안 같은 모습이라고 언급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었다. 그래서 편치 않던
때가 종종 있기는 했었다. 그런데, 세상이 변했다. 기이(奇異)하다.


다민족의 나라인 미국은 혼혈의 분도(分度)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2010년에 3백만이었던
혼혈인구는 10년 후인 2020년에는 3천3백만 명으로 늘었는데, 이것은 현재 미국 인구의 10%에 해당한다. DNA 검사를 한다면 10%보다는 훨씬 높은 분포가 나올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따라서 언어도, 음식도 종류가 많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엘에이 교육구 학생 중에는 집에서 영어 아닌 언어를 쓰고 있는 경우가 꽤 많은데, 사용하는 언어의 종류가 자그마치 90개 이상이라고 한다.


내가 손주들에게 가르칠 만한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 그리 많지 않다. 아이들이 특별히
가르치지 않아도, 보고 배우기를 바란다. 한국의 역사, 한국인들의 예의, 손위 어른들을 존중해
주는 태도, 문턱을 넘어 집 안으로 들어갈 때 신발을 벗는 정갈한 생활 습관 등이 그 예일 것이다. 새해와 추석 정도의 명절을 함께 하면서, 한국 음식의 특이함, 아름다움, 맛깔스러움에
익숙해지고, 이에 대한 한국적인 것에 대한 임명장이 없는 민간 대사로서의 자격을 저절로 갖게 될 것이다.

아이들은 추억이 듬뿍 베인 소탈한 흰밥, 된장찌개, ‘할머니표 김치’를 원했다. 기뻤다. 조부모가 사는 집이 에피센터가 되어, 모두 모여서 북적대었다.


미국 대학의 봄방학 문화는 1930년대에 뉴욕주의 북쪽 지방에 있는 콜게이트 대학 수영팀이
겨울철 훈련을 미국의 베네치아라고도 불리는 따뜻한 플로리다주(州)의 포트 라우더데일(Fort
Lauderdale)에서 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고 한다. 그 후, 1960년대에 미국 5대호 주위를 감싸고
있는 8개 주(州)중의 하나인 미시간주(州)의 주립대학 글렌돈 스와토우트(Glendon Swarthout)
영문학 교수가 봄방학을 이용해서 영문학과 학생들의 활동을 이 같은 도시에서 했다. 이때의
경험을 책으로 썼다. ‘보이들은 어디 있어요(Where the Boys Are)?’라는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고, 봄방학의 개념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학생들이 필요한 ‘쉼’과
즐겁고 건전한 사교활동의 필요성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그 영화는 2백5십만 달러제작비의 거의 두 배의 수입을 극장에서 올렸다고 한다.


사반세기 후 1990년대에, 흑인 학생들이 위주가 된 봄방학 이벤트가 있다. 영화 속이 아니고
실제로 거리로 나가서 춤추고, 노래하는 ‘길거리 파티’로 폭발적인 남부의 힙-합 파티
프리크니크(Freaknik)에 동승한 것이다.


봄방학은 학생들에게는 과도한 학교 공부를 잠깐 쉴 수 있는 필요한 브레이크 같다. 손주들, 딸들, 사위들이 함께 하는 그들의 봄방학에 에피쎈터가 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영화가 보여주는
봄방학과, 프리크니크 식의 방학과는 그림이 아주 다른, 가족 중심의 브레이크이었다. 음식을
중심으로 하는 봄방학에, 김치가 한 가운데에 있었다. ‘할머니표 김치’를 동반하는 음식 파티는
좋았다. 우리 차세대 한국인의 소울푸드는 김치와 밥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변화할 것이다.
다음의 김치 파티를 기다리면서 김치에 관한 연구를 신중하게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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