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여성 교육을 생각하다

`톡 튀는 인물이 없는 졸업생들로 구성된 학년이라고 알려진 우리가 졸업한 지 어언 60년인 돼 함께 모였다. 환영한다!` 거액을 자선단체에 기부하였거나, 어떠한 단체를 만든 인물, 또는 장관급 리더로 쓰였던 특출한 동문이 우리 기(期)에는 없었다는 뜻일 것이었다. 그러나 가장 많은 인재들이 곳곳에서 전문직을 갖고 활동해 왔으며 동문회 이사 직함도 받고 있다고 했다. 이 별 볼 일 없는 클래스 출신이 2025~2027년 모교의 총 동창회장으로 선출된 바 있다. 학창 시절 대대장이었던 그녀가 재상봉 개막 파티에서 한 환영사의 일부이다. 

모국에서 있었던 `졸업 60주년 재상봉` 잔치가 지난달 한국에서 있었다. 우리는 비수기(非需期)인 4월에 모였다. 참석한 대다수가 한국에 살고 있었고 타국에 거주하는 디아스포라 동문은 참석인원의 약 25%였다. 미국이 워낙 커서 그런지, 미국에 정착한 동문도 60년 만에 처음으로 본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영국, 독일, 캐나다에서도 왔다. 80살을 바라보는 노파들의 진지했던 모임은 활기차고, 유머러스하고, 때로는 심각하기도 했다. 우리는 많이 웃었다. 

대형버스 다섯 대에 나누어 타고, 영동, 동해, 양양 세 개의 고속도로를 달려 사흘에 걸쳐 동해 쪽에 있는 오대산, 발왕산, 설악산과 추암해변, 바다부채길, 경포호 둘레길, 수타사 산소길을 탐방했다. 그리고 산속에 자리 잡은 몇몇 사찰에 들렀다. 차가운 동해의 시퍼런 파도가 밀려와서 때리고, 할퀴고, 밀치고 간 흔적을 숨기지 못한 돌 절벽을 보았다. 돌 절벽은 우리들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으면서, 우리에게 등을 비스듬히 돌리고 있었다. 뼈대를 드러낸 돌산 틈틈이 화려한 꽃이 얼굴을 내민 길을 걸어 색 바랜 붉고 푸른 둔탁한 기둥이 받치고 있는 사찰에 도착했다. 코끝이 하늘을 향한 날렵한 사찰의 처마는 오랜 옛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애수가 고요 가운데 훈습이 되어 영과 육을 흠뻑 적신 듯 느껴질 때, 옛사람들이 행여 기다리고 있나 싶은 생각에 대웅전으로 향했다. 금을 칠한 여러 형태의 작은 불상들 앞에는 과일, 떡 같은 음식이 놓여있었다. 이생을 떠난 사람들로 보이는 이들의 빛바랜 사진들도 진열되어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법한 사진 속의 사람…참선하는 이 몇 안 되는 고즈넉한 대웅전은 나에게 무릎을 꿇리었고, 무념의 시간으로 나를 묶어 두었다.

버스로 이동하던 우리 그룹은 운전사만 빼고, 여인천하이었다. 계급제도와 남존여비 사상이 사회를 단단히 걸어 잠그고 있던 조선 말기에 세워진 모교에서 4ㆍ19 학생의거가 있었던 해부터 6년을 우리는 함께 수학했다. 세상을 변화시킨 것은 여성 교육을 단행했던 우리 선조들의 뜻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변화를 향한 열망 속에서, 더 좋은 세상, 공평한 세상을 꿈꾸었을 것이다. 

여기서 잠깐 한국 여성 교육에 대해 들여다보자. 한국의 서구적 여학교의 모체는 미국 선교사가 행한 기적이었다. 여자아이 한 명에게 배움의 문을 열어주었던 것이 140년 전, 1887년이었다. 이화학당의 전신이다. 기록을 보면, 그로부터 11년 후인 1898년에 조선 사람이 처음으로 사립학교 `순성 여학교`를 세웠다고 하는데, 이 학교는 약 5년 후에 폐교했다고 한다. 이어서, 1906년에 고종황제의 계비 순헌황귀비가 귀족 출신 여아 5명을 데리고 지금의 숙명여고를 세웠고, 2년 후에는 관립으로 현재 경기여고의 전신인 한성 고등여학교가 세워지었다. 한국의 여성 교육 기관의 설립 역사는 시대적으로 조금도 뒤처지지 않음을 증명한다.

뭣 모르고 입학하고, 그곳에서 세상과 나라를 남의 일처럼 담장 넘어 봤던 나는 지난 114년 동안 이곳에서 수학하고 떠난 46,000여 명의 졸업생 중 하나다. 그리고 한국을 떠나 살고 있는 7백만 한국 출신 디아스포라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언젠가 동료 의사가 한국 사람들에게는 학연이 무척 중요해 보이는데, 그 이유를 알고 싶다고 했다. 디아스포라 삶이라서, 이민자들은 어떤 공통 분모를 찾으려고 그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지만, 그것은 정답이 아닌 것 같았다. 모국에서도 동창회는 중요한 공동체 모임이다. 한국인의 동창 모임은 졸업생들이 설계하는 소셜 한 것이라면, 미국의 동창 모임은 주로 모교 자체가 주관하고, 졸업생들에게 모교를 향한 관심을 요구하는 일종의 구애(求愛) 활동인 경우가 허다하다. 모교 발전을 위한 모금 운동이 자연스레 편승한다.

학교 발전을 위한 모금 활동은 `필란스로피`로 구분된다. `체리티(charity)`와 다른 형태의 모금이다. 한국어로 둘 다 자선활동이라고 번역하지만, 그 목적이 다르다. 따라서 수익자와 수익단체가 다르다. `체리티`는 단기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단체나, 개인에게 물질적 도움을 주는 것이다. 즉 급한 불을 끄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반면에 `필란스로피`는 `사랑하는`이라는 뜻의 필로스(philo)와 `인간`이라는 뜻의 안쓰로포스(anthrophos)란 그리스말의 복합어로 문화, 예술, 교육 분야를 기본적으로 도와줌으로써 궁극적으로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뚜렷한 목적이 있다.

필란스로피나 자선 모임이 아니었던 졸업 60주년 재상봉은 순수한 우정의 재확인이었다. 이 우정의 공통 분모 가운데 톡 튀는 동문은 눈에 띄지 않았지만, 자선활동을 해 온 든든한 사회의 버팀목인 동문이 많았음을 안다. 어쩌면 머지않아 필란스로피스트 서열에 들어갈 인재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모교 동문뿐 아니라, 여러 세대를 이어온 한국의 여성 교육의 수많은 산 증인 인 한국의 증조할머니, 할머니, 어머니들에게 감사하는 재상봉 여행이었다.

울산광역매일 202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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