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이 나라를 망하게 하지는 않는 시대

방문하려 계획했던 쿠바는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에 따라 미국 시민으로는 갈 수 없게 되었기에 쿠바 근방에 있는 몇 개의 섬을 들리는 바다 여행으로 대신 했다. 이 지방 원주민 마야, 잉카, 아즈텍이 살던 곳 중에 마야 사람들이 살던 곳에 갔다. 잉카는 남미의 서쪽 해변을 끼고 있는 페루에, 아즈텍은 미국의 남쪽 멕시코에 정착하고 살아왔다.
마야 사람들이 기원전 3000년 부터 서기 15세기 까지 천문학, 수학, 건축, 달력등 다양하고 뛰어난 문명을 이룩하며 살았다는 흔적을 19세기에 발견했다. 현재 약 2백만명의 마야사람들이 동남부 멕시코, 과테말라, 벨리츠, 엘살바도르에 퍼져 살고 있다.
피라미드와 첨성대, 성전, 공연장, 벽만 남아 있는 건축물, 그리고 벽에 쓰여 있는 상형문자, 수학의 관념, 천문학에 대한 흔적들을 보았다. 내가 특별히 감동 받았던 역사적 사실은 “0(zero)”에 대한 마야 사람들의 수학에 대한 구상과 개념이었다. “0”가 하나의 숫자로서 자리 매김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들 덕분이다.
이들의 패망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들의 패망을 이해하려면 유럽 왕국들, 즉 폴튜갈에서 시작해서 스페인, 영국, 프랑스 왕국이 저지른 메조아메리카 침략사와 노예매매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400년 동안 총 2천 5백만명의 아프리카 흑인들이 유럽, 아랍, 아메리카에 노예로 끌려갔고, 반대로 신대륙에서 금, 은, 향료는 유럽으로 보내졌다. 아프리카는 인구가 늘지 않았고, 유럽과 미국의 자본주의 경제는 상승로에 올랐던 것이다.
유럽인들이 갖고 들어간 전염병 천연두가 마야 사람들을 소멸했고 나라가 망하는데 일조를 했다고 본다. 천연두는 기원전 3000년에도 있었다. 이집트 미라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20세기에는 세계적으로 3억에서 5억명이 천연두로 사망했을 정도로 천연두 바이러스는 악성이었다. 1979년 세계보건기구는 더 이상 천연두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인한 바 있다.
세계를 휩쓸었던 또 하나의 전염병은 쥐벼룩이 옮기는 박테리아로 인한 흑사병으로 14세기에 5천만 명을 죽였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nCoV) 전염병 때문에 온 세계가 앓고 있다. 이 바이러스로 인한 폐렴을 우한 폐렴이라고 칭하는 것은 중국의 우한지방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자 현미경으로 보면 뿔 같은 것들이 두둘 두둘 표면에 있어서 붙여진 라틴 말이다. 뿔의 모양을 한 세포를 좀 떨어져서 보면, 왕관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이 계통에 속하는 바이러스들이 일으킨 병들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사스(SARS), 메르스(MERS)이다.
이젠 전염병으로 나라가 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빠르게 항생제도 쓰고, 합병증을 예방하는 적절한 치료도 하고, 예방주사도 만들고 나라가 가난하면 국제기구가 손을 내밀어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스로 전세계가 4백억 달러를, 메르스로 남한은 2십6억 달러의 경제적 손실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건강의 중요함을 다른 각도에서 들여다 보게 된다.
끝으로 미국인들의 여행태도에 대해서 생각하므로서 이 글을 끝 맺으려 한다.
그룹 여행 참석자 대부분이 백인이었다. 그중 한 여인은 반신불수였지만 지팡이를 짚고 스스로 걸었고 두 사람은 휠체어를 탔다. 여행객들은 반신이 불편한 여인의 발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걸었다. 인간을 희생제물로 바치던 마야 사람들의 땅에서 우리들은 서로 배려하며 걷고 있었다. 인류애에 대한 과정도 시대적 탈바꿈을 하는 가 보다.

설날에 다시 생각한 뉴 노멀

설날이 좋다. 떡국 끓이는 냄새, 빈대떡, 만두 지지는 냄새가 향내가 되어 집안에 가득하다. 언제 부터인가 나의 새배를 받을 어른신들은 세상에 계시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새배를 받는 어른이 되어 버렸다. 새배하러 아이들이 올 터였다.

설날 음식을 준비하러 마켓에서 판매하는 팩케지 된 사골육수, 떡국 떡, 얼린 만두를 사왔다. 1800년 중반 부터 폐션문화가 기성복으로 대치 된 것을 생각해 볼 때, 음식물의 공업화도 이상 할 것이 없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김치, 만두, 두부, 밥 같은 기본적인 음식들이 대량으로 마켓에 공급되고 소비자들은 조리에 시간을 많이 쓸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집 밥 보다 사다 먹는 음식의 맛에 우리들은 길들여 지고 있는 것 같다.

뉴 노멀이다.

두 딸네, 그 애들의 친구 가족들이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서 왔다. 모두 비한국계이다. 얼린 만두를 구워 치즈에 곁들여 에피타이저로 먹고, 모하비 사막지대에서 말렸다는 곳감을 구입해서 만든 수정과와 대추차를 마셨다. 친구가 부쳐준 파네토네 이탤리안 빵과도 잘 어울렸다. 주식은 떡국으로 내가 만든 세 종류의 김치와 함께 올렸다. 나는 몇 년 전 중앙일보가 실시한 ‘김치클래스’ 에서 김치 만드는 기본을 배웠고 그 후 변형된 스타일의 김치를 만들어 먹고 있다.

젊은이들은 정말 잘 먹고 모든 음식을 즐겼다. 이들이 열린 마음으로 살아오면서 매사를 차별없이 체험해 보았다는 뜻일 것이다. 차별이 아닌 포용의 삶을 배우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그룹이다. 멋 있다.

주식이 끝나고 디저트를 먹기 전에 새배 하는 시간을 가졌다. 새배를 연장자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꼬마들과 성장한 아이들, 사위들, 친구들 모두가 서로 서로에게 하였다. 타인종 딸네 친구들도 하였다. 깊은 절을 하면서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숨겨져 있던 신뢰와 사랑이 나타나고, 또 상대방에게 전달 되는 것 처럼 보였다. 꼬마들이 형제, 사촌들에게 깊숙하고 정중하게 절하는 모습은 순간, 움직이는 사물들을 정지시키는 것 같았다.

모두는 예의 바르고 겸손했다. 그 중 레스비언 커플과 게이 커플이 있었다. 이 성소수계 젊은이들은 내가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비범하면서도 평범한 사회인들이다. 뛰어난 재원들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인권변호사로, 뉴욕 우수 암센터에서 연구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 중 한 동성 부부는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두 살 된 딸을 데리고 왔다. 미국 내, 자녀를 가진 약 10만 명의 동성 부부 중 하나이다.

남편은 주위에 동성커플이 많은 것이 우리 부부나 딸들의 보이지 않는 특수성 때문인가 궁금해 했다. 실상 동성부부는 새로운 정상현상, 뉴 노멀로 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 UCLA 법대는7십만 동성부부에 대한 분석을 보고했다(7/2018년). 이 중 16% 가 아이들을 기르고 있고, 이 아이들의 68%는 본인들의 친자식들이라는 것이다. 이미 친자가 있던 이성부부 상태에서 동성애자로 변했거나, 인공수정, 대체임신등의 방법으로 종족유지를 한 경우이다.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동성 또는 이성 부부 모두 다를바 없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식문화의 뉴 노멀, 페션의 뉴 노멀, 가족체계의 뉴 노멀을 생각해 본 설날이었다. 모두 편안히 받아들이고 있고, 그래야만 한다.

파인에플이라면…

“Be a pineapple! Stand tall, wear a crown, and be sweet on inside!!!!”

이 내용은 Kat Gastkin 이라는 분이 자기가 처음으로  써서 유명해진 구절이라고  claim 합니다. 한 5년 전 쯤,  2014년에 말입니다. 그녀가 말했던, (파인에플 캄파니가 그랬을 수도 있고요??),   상관은 없지만 뜻이 참으로 좋습니다. 어제 저와 함께 봉사하는 한국어진흥재단 이사님의 강의에서 들은 것입니다.

다른 하나의 해석은 파인에플 처럼 여러개의 관찰하는 눈을 가지라는 뜻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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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나를 편히 해준 것들

연례행사처럼 12월에는 감기 아니면 독감으로 힘들다. 올해 겨울은 독감이 아니고 감기라서 그나마 다행이다. 조금 덜 아프기 때문이다.

‘감기가 독감이 되나요?’ 라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감기는 라이노바이러스 (rhino-virus) 라고 코안에 살고 있는, 우리 신체 내부의 온도 보다 화씨1-2도 낮은 곳을 좋아하는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고, 독감은 변종이 자주 생기는 인플렌자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다. 감기가 독감으로 되지는 않는다. 단지 합병증이 생겨서 그렇게 보일 수는 있다.

미국사람들이 잘 쓰는 ‘ I don’t feel good’ 이라는 말이 오늘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기분 나쁘게 적당히 아프다. 몸져 누워서 아픈 것이 아니고, 여기 저기 약간씩 쑤시고, 목과 가슴 안팍도 아프다. 교과서의 증상과 완전 일치하는 증상이다.

담뇨를 덮고 불을 밝히고 이 책 저 책 읽어 본다. 오랫동안 언젠가는 읽으리라고 사 놓은 책들이 꽤 많다. 최근에 산 것으로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 올가 토카르주크가 쓴 영문판 ‘Flights’가 하나의 예이다. 이 책은 누워서 읽기에는 너무 두껍고, 불을 밝히지 않고 읽기에는 활자가 작아서 맘에 들지 않는다. 그래도 하여간 읽을 계획이다.

또 선물로 최근에 받은 책으로는 중앙일보를 통해서 알게 된 위스컨신에 사시는 최영 목사님의 ‘일본의 죄악사’, 장소현 선생님의 ‘나무는 꿈꾸네’ 라는 시집, 권소희 작가님의 ‘초록 대문집을 찾습니다’라는 수필집, 손옥형 고교 선배님의 ‘만남과 선택’이라는 자서전이다. 선배는 아들에게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남기고 싶어서 쓰다보니 책이 되었다고 했다. 나도 사위의 권고대로 ‘오픈 업’ 칼럼에 쓴 글들을 영역해서 혈통, 비혈통 영어권 젊은이들에게 읽게 해 주는 계획을 실천에 옮겨야 하겠다.

쓰레기 만도 못한 책들이라고 간주되는 책들도 있었다. 리사이클 쓰레기 통에 던져 버렸다. 이러는 내가 참 맘에 든다. 가차 없이 버릴 수 있다는 내가 좋다. 예전에는 그러지 못 했기 때문이다.

2019년 동안 나에게 따뜻함과 용기를 주고, 삶을 되 돌아 보고 의미를 다시 들여다 보게 한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적지 않다. 또 같은 맥락의 일들도 많았다.

환자를 보고, 항암치료 방안을 세우고, 함께 지내온 환자들, 의사가 되도록 뒷바라지 한 엄마와 큰오빠, 일상을 도와 준 동료의사, 간호사, 테크니션, 리셉션니스트, 파킹랏 아저씨들 모두 고마웁다. 그들은 까칠했을지도 모르는 나를 ‘참아 준 사람’들이다.

그 뿐이랴. 비영리 단체이다 보니, 박봉인데도 불구하고 한글전파에 열정을 갖고 일해 온 한국어진흥재단 사무국 직원들, 철저한 봉사직에 불평 않고 시간, 열정, 재능을 기부해준 이사들, 한국정부와의 자금 조율이 어려운데도 불평하는 단체들을 얼려가며 함께 하는 엘에이 교육원, 교사들 모두 모두 고마울 뿐이다. 나를 아껴 주는 친구들, 나를 참아주는 가족들, 손주들을 빼 놓을 수 없다.

감기로 몸이 불쾌하다는 핑게로 둘째 손녀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곤색 캡을 집안에서 쓰고서 길게 앉아 책을 읽는다. 캡 앞쪽 이마 부분에, 아이는 엄지와 검지를 꼰 손 위에 분홍색 하트로 사랑을 표시하는 ‘코리언 러브 심볼’을 넣었다. 아~~ 정말 따뜻하다!

2020 년 종교계에 바란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변해가고 있는 세상을 실감하게 한 2019년이 저물어 갑니다. 연속되는 매일 매일이지만, 한 해를 마무리 하고, 다시 새해라는 관념을 갖게 해 주는 그레고리안 달력 방식이 크리스찬들의 일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하고 감사하게 합니다.

늘상 표현하는 기원전 (BC: Before Christ 그리스도 탄생 전), 기원 후(AD: Anno Domini 주님의 해)라는 의미가 교회력과 우주과학이 빈틈없이 짜여져 만들어 진 것이라는 것을 다시 들여다 보고 싶은 때입니다.

‘주님 오신 후’ 2019년이었던 올해가 영원히 사라지고, 며칠 후에는 ‘주님 오신 후’ 2020년이 시작됩니다. 일 년 동안 교회의 많은 축일들이 왔었고 또 갔습니다. 교인들은 충실하게 기도하고 찬양하였습니다. 그러나 고통 속에 있는, 고통을 짊어 지고 살고 있는, 억울하게 고통 안에서 세상을 떠난 많은 사람들에게 손 내밀어 도와주지 못하고, 그저 멀지감치에서 구경만 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작은 예를 들어 봅니다. 폭탄이 터진 전쟁마당에서 보호자 없이 홀로 방황하는 대여섯살로 보이는 아이들을, 나날의 핍박을 받다가 죽어간 아이들을 우리는 알지 않습니까?

하느님의 아들 예수는 세상에서 가장 심한 고통을 당하고 나무에 매달려 돌아가셨다고 성서는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러나 당신이 받은 고통보다 더 극심한 고통이 힘없는 이들을 난타했던 한 해이었습니다.

‘악’은 우리 안에, 우리 어깨 위에, 교회의 제대 주위에서 맴돌고 있었고 지금도 그러고 있을지 모릅니다.

저는 바랍니다. 2020년 부터, 믿음을 갖고 있는 우리 모두는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나아가 ‘악’과 싸워야 할 것입니다. 종교계의 리더들은 평신도들과 함께 움직이고, 앞장 서 주시길를 부탁합니다.

2020년 12월 20일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