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기] 역사와 문화를 찾아 떠난 동남아 여행 (II)기적을 이룬 동양의 용(龍) 싱가포르

미주 조선일보 [나의 여행기] 2025. 5.2.

바다사자 석상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저녁나절에 떠나, 잠자는 시간대에 배는 자바 바다를 약 12시간 정도 항해하여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크루즈의 장점이라면 바로 이렇게 잠자는 시간을 이용해서 다음 목적지를 향해서 이동하는 것이다. 은퇴한 사회학 또는 역사 교수들을 초빙해서 목적지 나라에 대한 강의를 제공하는데, 나는 이번 여행에서 학창 시절에 그냥 지나쳤던 세계사의 일부를 배웠다.

싱가포르는 아름다웠다. 치과 의사 조카가 10여 년 전에 중국계 싱가포르 청년을 만나서 정착한 곳이기도 하다. 조카사위의 부모님들은 중국계로 젊은 시절에 이주해서 가정을 이루고 2세를 그곳에서 교육하셨다. 조카사위네처럼, 싱가포르 인구의 약 75%가 중국 출신이고, 9% 정도가 인근의 나라인 인도계이다.

싱가포르는 한국 면적의 약 3%밖에 안 될 정도로 작고, 천연자원도 거의 없다. 63개의 섬에 둘러싸여 있는데, 과거에는 인접 국가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처럼 가난했었고, 일찍이 영국과 네덜란드가, 이차대전 3년 동안은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말레이시아에서 1965년에 공식 독립선언을 했다.

볼품없던 어촌이 지금은 세계 정보통신 산업과 금융시장, 글로벌 사업체의 허브이고, 국제회의, 국제 전시회 장소로도 선호되는 곳이다. 일반인 관광의 명소이기도 하다. 싱가포르 관광청 통계에 의하면 2022년 한 해 동안에 630만 명 외국인이 방문했고 143억 달러 수입을 창출했다고 한다.

우리가 일차적으로 들린 곳이 마리나 해변이었다. 바로 이곳 초입에 그들의 마스코트 ‘바다사자’ 석상이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사진 참조). 몸체는 물고기이고, 얼굴과 상체는 사자인데, 사자의 벌린 큰 입에서 맑은 물이 폭포처럼 뿜어지고 있었다.

예술과학 박물관

근방 산책로에는 하늘을 향해 펼쳐진 흰 연꽃 모습의 예술 과학 박물관(사진 참조) 과 버섯을 펼쳐 놓은 모양의 ‘슈퍼 트리’라고 불리는 18개의 인공 수직 나무들이 있다. 이 ‘슈퍼 트리’에는 총 226,000개의 나무가 심어지어 있고, 관개수로(灌漑水路)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알려진 싱가포르의 명소로 나란히 선 3개의 카시노 호텔인 마리나베이 샌즈를 볼 수 있다. 바다사자 석상이 있는 운하 저수지의 건너편 해변에 자리하고 있는데, 배 모양으로 조형된 ‘하늘의 정원’ 전망대를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이다. 이 ‘하늘의 정원’은 무려 3에이커(약 3,672평)의 면적으로 관광객들이 하늘 가까이에서 특혜를 누리는 곳 같아 보였다. 높은 곳에서, 땅위의 문화 공간을 한눈에 내려다보면서, 산책도 하고, 수영도 할 수 있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최고의 요리를 먹을 수 있다. 놀랍게도 주인은 미국 회사 라스베이거스 샌즈라고 한다.

( 사진 배경이 마리나 베이 샌즈)

네 마리의 용()이라는 표현은 30여 년 전에, 하버드 대학 동아시아 전문 교수이었던 에즈라 보겔 교수가 그의 저서에서 네 나라, 즉 홍콩, 타이완, 싱가포르와 한국이 미래에 이룰 경제적 발전 가능성에 대한 시사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한국보다는 중국과 일본에 관심이 많았던 학자이었지만 모국 한국과 싱가포르를 생각해 볼 때, 그의 의견은 맞아떨어졌다. 용의 나라들의 국기는 크든 작든 빨간색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빨간색은 ‘피, 용기, 힘, 독립을 위한 투쟁’을 뜻한다. 간혹 공산주의, 사회주의 의미도 담고 있다. 사진은 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홍콩, 타이완, 싱가포르, 한국 국기 모습이다.

싱가포르의 경제개혁은 초대 총리이었던 중국계 리관류(1923~2015)의 공로라고 해석한다. 한국에서는 허리띠 졸라매고, 더위를 참고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 하던 때에, 그는 연평균 섭씨 25도에서 31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기후 때문에 업무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에어컨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정책을 썼다. 싱가포르 경제 성장의 큰 역할을 에어컨이 했다는 뒷이야기이다.

인간네들의 달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한 살아가는 이야기를 모두 나눌 수는 없지만, 네 마리 용 중의 하나로 뽑힌 모국 한국이기에, 안도하고 감사하면서 싱가포르 이야기를 마친다.

[어른을 위한 동화] 낡은 책상(II)

아버지가 얻어 오신 낡은 책상은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애용했던 귀중품이었어요. 그리고 그 책상은 나의 친구 리하르트 새순이를 기다리곤 했어요. 친구와 나는, 작고 낡은 우리 둘만의 책상에 마주 앉아 숙제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친구 리하르트 새순(새筍)이가 오랜만에 연락을 해 왔어요.

‘미겔 산체스, 네가 내 옆에 있어 주었으면 좋겠어.’

‘무슨 일이야?’

리하르트는 아무나 방문할 수 없는 격리 입원실에 있다고 했습니다. 백혈구가 없기 때문이라 했어요. 백혈구는 힘센 군인들처럼 우리 몸의 곳곳을 순찰하러 돌아다니다가 나쁜 박테리아 무리를 만나면 죽여 버리는 것이 임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어떤 박테리아는 우리에게 꼭 필요해서 우리랑 함께 살아야 한다네요. 박테리아는 어디에나 있다고 해요. 우리가 숨 쉬는 공기, 땅에 서 있는 나무들에도 있데요. 그렇지만, 리하르트에게는 모든 박테리아가 적군이라 합니다.

리하르트는 백혈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리하르트가 암에 걸린 것이 불공평한 것 같아서, 화가 나고 슬픕니다. 자꾸만, 어렸을 때 생각이 납니다. 리하르트를 처음 만났던 날이 기억납니다. 어느날 아침 일찍, 항상 그랬듯이, 나는 우리 초등학교 운동장을 삐~잉 둘러싼 철망 중에 뚫려서 만들어진 개구멍을 지나서 운동장으로 들어가려고 하였어요. 그러다가,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키가 작고 빠짝 마른 동양 아이가 나를 삐쭘히 보고 있었던 것이에요. 나중에 리하르트 백인 부모님을 만난 후에 알게 되었는데, 리하르트는 입양아이었습니다.

입양된 리하르트에게는 이름 하나가 더 붙어 있어요. 새순이라고 처음에는 이상하게 들리던 이름이었어요. 리하르트 새순. 가족의 성까지 붙이면 리하르트의 이름은 꽤 길어요. 새순이라는 이름은 새순이를 낳으신 엄마가 지어 주신 것이라 합니다. 나는 잘 모르는 글자인데, 리하르트가 태어난 나라의 알파벳을 한글이라고 부른데요. 첫 글자 하나는 한글이고, 두 번째 글자는 한문이래요. 『새』-『筍』. 한문은 중국이라는 나라의 글이라고 합니다. 리하르트 양부모님이 리하르트를 데리러 갔던 한국의 보육원 서류에서 리하르트 엄마가 지어 주신 본래 이름을 보셨다 해요. 원래의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이 좋다고, 중간 이름으로 넣으셨다고 합니다.

이름의 뜻을 듣고 나서, 이런 상상을 했어요. 나는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추운 겨울에 잎이 다 떨어져서 죽은 늙은 나무를 보고 있네요. 그 나무는 아주 외롭게 서 있어요. 죽은 것 같아요. 그런데 따뜻한 봄이 되자 울퉁불퉁한 줄기에서 두꺼운 껍질을 비집고 여린 초록색 새싹이 ‘안녕!’하고 말을 걸어 오면서, 기저귀 찬 새순이를 세상으로 내보내는 장면을요.

새순이와 나는 공부를 좋아했어요. 새순이가 주로 우리집에 와서 시간을 보냈어요. 함께 낡은 책상에 앉아 숙제도 하고, 그림도 그리곤 했어요. 리하르트와 나는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녔어요. 아무도 대학을 간 사람이 없었던 우리 집안에서는 내가 처음이었어요. 반면, 부모님이 약학 박사이신 새순이가 대학으로 진학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지요.

어렸을 때, 가끔 우울해 보이던 새순이. 우리집 낡은 책상에 턱을 고이고 깊은 생각에 빠질 때가 있었어요. 부유한 집에서 잘 사는 리하르트가 가끔 외로워 보이기도 했어요.

‘내 친엄마 아빠도 산체스 아줌마, 아저씨처럼 뽀뽀도 해주고, 무동도 태워주셨을까?’

새순이가 걸린 백혈병은 키모데라피로 잘 치료되었지만, 정상인 백혈구가 본의 아니게 따라서 죽었데요. 불공평해 보이는 삶 가운데에서 친구는 이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을까요….

리하르트가 받을 다음 단계의 치료는 골수이식이래요. 골수는 피를 만드는 공장이라 합니다. 보통은 DNA를 공유하는 친 혈통 가족의 골수를 얻어다가 리하르트의 뼛속에 넣어 주면 제일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내 친구는 골수 기증자를 찾아야 해요. 유전적으로 성분이 맞는 사람을 어떻게 찾을지 막막합니다.

새순이라는 이름을 준 나라, 한국에서 친척들을 찾을 수 있을까요? 친척이 아니라도 한국분들과는 유전자 공유 가능성이 높아서, 한국말로 프린트하는 신문사들과 워싱턴에 있는 한국 대사관, 큰 도시마다 있는 한인회라는 교민들의 단체에 연락해 놓았어요.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 친구 리하르트 새순이를 살리기 위한 기다림은 길고, 힘들지만, 새순이가 겪고 있는 어려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 아픔으로 새순이를 살릴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와 문화를 찾아 떠난 동남아 여행 <상>

[나의 여행기] 한국어진흥재단 모니카 류 이사장 

인도네시아 발리와 자카르타에서

근대 동남아 역사·섬나라 문화 배워

외세침략 피해의 역사, 한국과 비슷

‘和蘭’에 맞서 ‘푸푸탄 독립투쟁’ 펼쳐

곳곳에 중국 문화와 경제력 침투

현 수도 자카르타, 수반침식 심해

보르네오섬 누산타라로 천도 계획 

인도네시아 자바섬 사마랑에 있는 삼푸콩 사원 광장/ 남편과 포즈. 발리의 재래시장 모습. ‘푸푸탄 바둥’ 기념탑. 삼푸콩 사원. 수도인 자카르타에서 관광객들을 반기는 조형물.(위에서부터)

마치 밀렸던 숙제를 해야 할 것처럼, 은퇴가 가까워 지던 때부터 자주 여행을 떠났다. 나는 여행을 선호하는 타입이 아니다. 친구들 말을 빌리면 ‘엉덩이가 무거워서’, 형제들 말을 빌리면 ‘변덕이 죽 끓듯 해서 한군데 못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나를 들여다보면 게으르고 피곤해서 그랬던 것 같다. 모두가 가난했던 어린시절이었다. 졸업 학년 때 경주 수학여행 갔던 것이 기억난다. 일 년에 두 번 가까운 곳에 소풍 갔던 것, 송충이 잡으러 서울 근처 어느 산에 갔었던 적이 있는데, 그것은 소풍이 아니다. 서울을 벗어난 가족여행은 아예 없었다. 

여행을 싫어했던 것이, 내 성격 탓이었는지, 어려웠던 가족의 상황 때문이었는지, 어느 것이 먼저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성인이 되어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을 만났고, 미국에 살게 되면서, 아이들의 안목을 넓히고, 아이들이 나 같은 편견을 갖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기에 여행은 피할 수 없는 가족행사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많은 여행을 했다. 최근 6년 동안 18번 여행지로 떠났는데, 그중에 16번은 남극을 포함한 미국 밖 해외이었다. 남극에서는 알바트로스 새와 펭귄들을 만났다. 지난달에는 동남아시아 몇 나라를 다녀왔다. 무척 피상적인 여행이었지만, 남극에서는 자연을 배웠다면, 동남아시아에서는 역사와 문화를 배웠다. 이 나라들은 나의 모국을 생각하게 했다. 

섬들로 형성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는 배가 호텔 역할을 하는 크루즈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매일 짐을 꾸릴 필요 없이, 선실이 임시 거처가 되어주고, 항구에 내리면 뭍에서 버스나 택시로 이동한다. 어쩌면 내가 선호하는 이런 방법의 여행은 수박 겉핥기식의 무척 피상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 인도네시아 발리까지 꼬박 하루

LA에서 지구의 정 반대편에 있는 인도네시아 발리까지 도착하는 데에 하루 이상을 길 위에서, 또 하늘에서 보냈다. 발리는 인도네시아 1만7000개 섬 중 하나인 자바섬에 있다. 적도를 끼고 있어서 불쾌지수가 높은 후덥지근한 날씨이다. 텍사스주의 세 배 면적으로 약 2억300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여섯 개의 종교, 700여 개의 언어를 사용한다. 다민족, 다종교이지만 마찰 없이 잘 어우러져 살고 있다고 한다. 다인종의 나라 미국에 살고있는 나로서,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이들에게 국가라는 개념이 생긴 것은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 1800년대부터이다. 국가를 보호해야 한다는 관념 없이 편안히 어우러져 잘 살던 섬사람들에게 향료 무역상들이 1600년대부터 들어오면서 상거래를 시작하였다. 점차 정치적으로 식민지화하는 아이디어에 매료된 이들은 인도네시아를 속국화한다. 네덜란드뿐 아니라 영국에 이어 일본도 2차 대전 전에, 한때 이 지역을 침범했다. 이들의 근대사는 한국의 역사와 비슷한 점이 많다. 

1906년 발리왕국을 중심으로 네덜란드의 간섭에서 벗어나려고 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 기관총, 대포 등의 신식무기로 무장한 네덜란드 군을 이길 수 없었다. 그들이 궁성 앞에 도달하자 발리의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 약 1000명은 항복보다 죽음을 택하였다. 이 사건을 ‘푸푸탄 투쟁’이라고 부른다. 우리 한국의 삼일절 만세 독립운동처럼 무기 없이 봉기했던 사건으로 이를 기념해 푸푸탄이 제일 많았던 ‘푸푸탄 바둥’에 기념탑이 세워져 있어서 의미를 더한다. 이 기념탑에는 조각된 아이들의 모습도 보여 가슴 아프다.

다인종의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중국계는 약 1.2%를 차지하지만, 이들의 문화적, 경제적 침투력은 매우 강하다. 인도네시아 어디를 가든지, 웬만한 도시에는 차이나타운이 있고, 중국 사원, 중국 음식점이 있다. 종족끼리 모여서, 활발하게 사는 그들의 삶을 볼 수 있다. 자바섬의 사마랑에 있는 삼푸콩 사원과 마당에 서 있는 쟁해 장군 석상이 그 좋은 예이다. 

#. 발리를 떠나 자카르타로

발리를 떠나 다음에 기착한 곳은 수도인 자카르타이었다. 자카르타는 나의 큰 오빠가 1960년, 1970년 대에 시간을 보냈던 곳이라, 꼭 가보고 싶었다. 당시 한국은 발전 도상에 있었고, 경제적 여유는 없었지만, 1973년 3월 19일에 뉴욕타임즈 사무엘 김 기자가 보고 했듯이, 경제개발이 절실한 인도네시아를 돕는 차원에서 건설회사, 토목업체들이 파견되었다. 뉴욕, LA, 서울처럼 교통체증이 심하였지만, 아름다운 도시였다. 곳곳에 조형물이 방문객들을 맞았다.   

자카르타는 인구밀도가 높아 오염이 심하고 지리적으로 13개의 강이 교차하는 늪 지역에 세워져 있다. 늪 지역이다 보니, 수반침식이 눈에 띄게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몇 년 후 보르네오 섬에 있는 누산타라로 수도를 옮길 계획이라고 한다. 

발전을 위한 성장통을 앓았던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근대 동남아시아 역사와 이 섬나라의 문화를 배우는 좋은 여행의 시작점이었다. 다음 행선지인 쿠알라룸푸르를 거쳐, 싱가포르에서도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계속)

[오픈 업] 세대를 연결해 주는 고리

이른 여름이다. 두어 달 지나면 대부분의 초, 중고 학교들은 여름 방학에 들어간다. 한 학년을 끝낼 준비를 해야 하는 4월과 5월은 아이들뿐 아니라 교사들에게도 바쁜 달이다. 영어, 미국 역사, 세계 역사, 세계 언어, 수학, 화학, 물리 같은 정규 학과목은 요구되는 커리큘럼을 질적으로, 또 양적으로 완수해야 한다. 미비한 부분이 있다면, 여름 방학을 이용해서 보충해야 할 경우도 있다. 학과목 외에 좋아하기 때문에, 또는 흥미가 있어서 시작한 과외 활동반도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한다.

이때쯤에 조부모의 날 행사가 있다. 행사에 덧 붙여, 학교 행정가들은 학교 운영을 위한 기금모집에 조부모들을 초대하는 것이다. 사립학교가 학생들이 내는 학자금만으로는 충분한 교육을 제공하는 운영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지난 몇십 년 동안 교육비는 급상승했지만, 일반 시민의 소득은 이를 따라갈 수 없어서 학비를 큰 폭으로 올릴 수 없다 보니, 학자금과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 사이의 차액이 크게 생긴다. 이를 어디에서든지 끌어다가 메꾸어야 하프로 모금 운동이 불가피하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그렇지 못한 학생을 무명으로 돕는 식이다. 대부분의 사립학교는 비즈니스 담당 전문 부서를 두고, 큰 기업이나 일반 기부자와 소통하면서 부족한 경영비를 연구비 형식으로 따오기도 한다.

여러 행사를 치러서 자녀들이 훌륭한 전인 교육을 받고 있다는 확신을 종강 때에 간접적인 방법으로 나누면서, 모금 운동을 맞물린다. 이때, 학교가 잊지 않고 초대하는 대상이 조부모들이다. 늙은 세대가 경제적으로 월등한 위치에 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기부 가능성만을 감안해서 조부모를 초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조부모의 날’을 열어 조부모들이 손주들과 함께 등교하고, 하루를 교실과 교정에서 보낼 수 있게끔 프로그램을 짠다. 우리 부부는 세 손주가 다니고 있는 학교의 ‘조부모의 날’ 행사에 참여했다.

이 학교를 방문하기 몇 주 전에, 조부모들에게 돌린 음악반 숙제가 있었다. 조부모는 손주 나이 때에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 어떤 음악을 좋아했는지, 왜 좋아했는지, 지금은 달라지었는지 등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었다. 질문들은 꽤 신선한 과거로의 여행이었다. 답을 써서 보내 주었는데, 조부모의 날, 기타 선생님은 답안지를 분석해서 조부모들, 학생들과 나누었다.

조부모 대다수가 봅 딜론과 비틀즈 음악을 좋아했던 모양이었다. 클래스는 비틀즈의 ‘러브 미 두’를 연주했다. 몇몇 조부모님은 눈을 감고 들었다. 이어서 선생님은 300년이라는 긴 시간을 뛰어넘어, 바흐의 샤콘을 듣고 있는 조부모님은 손 들어 달라고 하며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이올린곡을 기타로 편곡한 바흐의 샤콘 테입을 틀어 주었다. 기타로도 아름답고, 슬프고, 평화롭게 연주됨에 감동했다. 왜 내가 그 곡을 좋아하는지 손주 기타반 클래스와 조부모님들과 나누어 달라고 했다. 내가 읽어서 알고 있는 바흐의 슬픈 가족사, 바흐의 아픔, 그리고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평화로의 귀의 내용을 나누었다.

한 손녀는 중국어를 택하고 있기에 그 애와 함께 수업에 참석했다. 선생님은 중국이 침략해서 속국을 만든 티베트 분이었다. 중국어의 억양이 노래처럼 높고 낮아 아름답게 들리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중국집에서 짜장면 먹으며 듣던 중국말과 무척 달랐다. 그런데, 손주네 학교에서는 한글이 선택과목 중의 하나가 아니었다. 세계 언어의 하나로 미국 정규 학교에 한글을 진흥하고, 문화를 알리는 비영리 단체의 일을 하는 할머니로, 한국어 또는 한국문화 과외반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다. 좀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는 것이, 이 학교에는 이미 스페인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 아메리칸 사인 랭귀지까지 7개의 언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엘에이로 돌아오는 길에, 세대 간의 교량 역할을 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삶의 모든 것들, 즉 외국 태생 조부모나 부모가 가져온 언어와 음식이 포함된 가풍, 함께 읽는 소설과 듣는 음악, 기본적인 과학, 수학, 그리고 아이들이 열렬히 좋아하는 스포츠는 훌륭한 교량 역할을 해 오고 있다 것, 삶의 모든 것은 DNA를 넘어서서,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중앙일보 2025.4.24

[어른이 읽는 동화] 낡은 책상

아빠가 나를 깨우셨어요. 나는 텔레비전 앞에서 자요. 우리 가족은 방 한 개짜리 아파트에 살아요. 방에서는 아빠랑 엄마가 주무세요. 나는 바닥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잘 시간이 되면 이불을 펴고 누워서 조금 더 텔레비전을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아주 좋아요. 엄마도 저녁밥 만드시면서 간혹 눈을 내 쪽으로 돌리셔요. 텔레비전 방과 부엌 사이에는 문이 없거든요. 눈 나빠진다고, 뒤로 물러앉아서 보라고 하시고, 때로는 텔레비전 많이 보면 머리가 나빠진다고도 하셔요. 우리 식구들은 텔레비전 앞에 놓은 네모난 작은 탁자에 둘러앉아서 식사를 해요. 탁자가 식탁이에요. 탁자에서 숙제를 하기도 했어요. 책상이 우리 집에 오기 전까지는요.

엄마는 부엌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작은 냉장고가 있는 부엌을 항상 닦으세요. 부엌이 깨끗해야 내가 좋아하는 파파야 샐러드도 만들 수 있다고 하셔요. 파파야 샐러드랑 부엌 청소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 나는 이해 할 수 없지만요. 또 바퀴벌레는 더러운 곳을 좋아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아빠는 학교 정문을 지나, 옆길을 돌아서 학교 뒤편에 있는 운동장이 멀리 보이는 쪽 행길에 나를 내려 주시고 가셨어요. 길 건너편 은행 시계탑이 7시를 가리키고 있네요. 정문은 아직 꼭꼭 잠겨 있어요. 아주 캄캄해 보였어요. 우리 학교 운동장은 무지 커요. 학교 마당은 닭을 가두어 두는 닭장의 담장처럼 철망으로 삐~잉 둘러쳐 있어요. 행길에서 운동장까지 작은 골목길이 있어요. 나는 이 골목길을 좋아해요. 아니, 이 길 밖에는 철망이 뚫려서 만들어진 개구멍을 지나 운동장에 들어갈 수 없어요. 개구멍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나 봐요.

행길에서 게처럼 옆걸음으로, 어떤 때는 뒷걸음으로 철조망 개구멍 쪽으로 걸으면 앞으로 걷는 것 보다 시간이 좀 더 걸려요. 아마도, 10분 정도는? 나는 이렇게 걷는 것이 아주 천재적이라 생각되어요. 친구들이 등교하려면 무지무지 긴 시간이 흘러야 하거든요. 아빠랑 엄마는 ‘금방’이니까 길가에서 학교가 열릴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씀하시지만, 아니에요. 난 뒷걸음으로 행길에서 부터 걸어서, 철망 개구멍으로 몰래 운동장에 들어가서, 볼 차기 하면서 친구들을 기다릴 거예요.

아버지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셔요. 6시 반에는 친구 아저씨를 픽업해서 이삿짐센터에 일하러 가셔야 해요. 아빠의 친구 아저씨는 자동차가 없데요. 오늘은 늦었다고 무척 서두르셨어요. 엄마가 그러시는데, 아빠는 이사 나가는 집에 가셔서 물건들을 싸고, 트럭으로 일단 옮겨 실은 다음에 운전해서 이동하신데요. 이사해서 들어가는 집에 도착하면 짐들을 모두 내려 주인이 원하는 방에다가 날라야 한데요. 어떤 짐들은 큰 가구라서 무겁데요. 긁히지 않게 포장을 잘해서 날라야 하고, 아빠는 아빠의 친구랑 함께 들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오늘 아침에도 나는 옆걸음, 뒷걸음질로 등교합니다. 댕그랑댕그랑 열쇠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면, 아빠랑 비슷하게 생긴 벤추라 아저씨가 먼발치에서 걸어 오는 것이 보입니다. 7시 45분이 되었나 봐요. 홈 룸 시간까지 45분이나 기다려야 하지만, 친구들이 그 전에 올 것이라, 기다리는 것은 문제없어요.

아빠는 어깨랑 허리가 늘 아프다 하셨는데, 이젠 이해가 되어요. 얼마 전부터, 저녁 식사가 끝나고, 엄마가 설거지하시는 시간에, 나는 아빠 어깨에 파스를 붙여 드리고, 안마를 해드리기 시작했어요. 얼른 나을 병이 아니라 하셨어요. 그래도 내가 파스를 붙여 드리고, 안마해 드리면 무척 좋아하셔요. 아빠 등 뒤에서 안마하는 내 손을 아빠는 앞으로 잡아끄시고, 손등에 뽀뽀해 주세요. ‘아이고, 이 작은 손이 아빠를 고쳐주고 있네. 우리 미겔이 많이 컸구나!’

엄마는 새벽 6시까지 식당에 일하러 가셔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식당의 부엌에서 일하셔요. 멀지 않은 곳이라고 엄마가 그러셨지만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해요. 새벽 시간이라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는데요. 여섯 시 정각에 식당 부엌 앞에 도착하려면 매일 서둘러야 하셔요. 

출근하시기 전, 엄마는 아빠와 아빠 친구 아저씨의 점심 도시락도 싸 놓으셔요. 나는 학교에서 주는 점심을 먹어요. 엄마는 학교 점심을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먹어야 한다고 매일 말씀하셔요. 그래야 내가 아빠보다 더 키가 크게 자라고, 건강하다고 하셔요. 아빠는 배가 많이 나왔다고 엄마한테 자주 잔소리 들어요.

어제는 텔레비전 앞 책상에 앉아 숙제를 했어요. 숙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물건’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는 것이었어요. 다행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물건, ‘책상’이 생긴 후에 받은 숙제여서, 아주 빨리 글을 쓸 수 있었어요. 

울산광역매일 신문 2025.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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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부분은 원본: 신문 지면 관계로 짤린 부분임

어제는 텔레비전 앞 책상에 앉아서 숙제했어요. 숙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물건’이라는 제목으로 써 가는 것이었어요. 다행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물건, ‘책상’이 생긴 후에 받은 숙제라서, 아주 빨리 글을 쓸 수 있었어요. 나는 이렇게 썼어요.

제목: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물건

이름: 미겔 산체스

날짜: 202543

내가 어렸을 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물건은 트랜스포머이었다. 세 살 때에 찍은 사진을 보면 나는 트랜스포머를 가슴에 안고 있다. 나는 잘 때도,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할 때도, 트랜스포머가 없으면 그것을 찾을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 나는 초등학교 2학년이다.

지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물건은 책상이다. 아빠가 이삿짐을 나르러 가셨을 때, 집주인이 버려달라고 맡긴 책상이라고 한다. 집주인의 딸이 어렸을 때 쓰던 책상이라는데, 딸은 틴에이저라서 큰 책상이 필요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저기 긁힌 상처가 많이 보인다. 모서리에 나무가 깨어진 부분도 있다. 그래도 나는 이 책상이 너무 좋다. 작은 의자도 함께 주셨다. 책상에는 서랍이 두 개나 있다. 붙박이 정리 수납장이 뒤쪽에 있다.

~! 정말 정말 멋지다.

친구가 준 여러 가지 딱지를 나누어서 정리하여 넣었다. 고모부가 주신 한국의 어느 대학에서 광고용으로 만든 학교 로고가 들어간 꼬마 메모 공책도 따로 넣을 자리가 생겼다. 수납장 위에 연필통도 놓았다. 그리고 내가 처음 태어났을 때 아빠, 엄마랑 찍은 우리 가족 사진도 놓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물건은 이 낡은 책상이다. 나는 이 낡은 책상에 앉아 아빠의 이야기를 쓸 것이다. 그리고 내 친구들의 이야기, 고모부의 선물 이야기도 쓰려고 한다. 그런데 아빠랑 엄마는 하루에 한 줄이라도 괜찮으니까 일기부터 쓰는 습관을 들이라고 하신다.

아빠 엄마에게 화낸 날은 어떻게 해?’

그것도 사실이니까 사실대로 쓰는 것이 중요해. 오늘 나는 엄마가 아주 미웠다라고 써도 돼.

나는 나의 책상, ‘낡은 책상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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