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은 별일 없으려나

2026.1.8. 울산광역매일



2026년 병오년(丙午年)이다. 60년 만에 돌아오는 화(火)의 년(年)으로 ‘태양과 말’의 해라고 한다. 갑·을·병·정…등 10개의 천간(天干)과 자·축·인·묘…같은 12개의 십이지(十二支)를 조합해서 만든 60개의 단위가 육십갑자(六十甲子)인데, 여기에 근거한 새해에 대한 해석은 두 종류의 불이 만나는 강렬한 불의 한 해로 기대된다는 것이다. 좋은 의미에서 보면, 빠른 속도로 변화가 이루어지는 시대가 될 수 있다는 뜻이란다. 나는 신문이나 잡지에서 ‘오늘의 운세’라던가, ‘한해의 기(氣)’ 같은 칼럼이 흥미로워서 읽곤 하지만, 사실 점성학이나 점술학에는 문외한이다. 
 
들여다보면, 육십갑자(六十甲子)는 우리 한민족에게 익숙한 풍습인 것 같다. 지금까지도 분리되지도 제거되지도 않으면서 우리 몸 깊숙이 뼛속까지 배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육십갑자 예상치는 어떤 이들에는 간접적으로, 또 어떤 이들에게는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어 보인다. 또 나처럼 상관하지 않는 그룹도 있다. 
 
지난해 2025 을사년(乙巳年) 연초에 공개되었던 예측이 어느 정도는 맞았던 것 같다. 그저 우연일 수도 있겠다. 변화해 왔던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한 을사년이었다면, 어긋났던 예상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나의 모국 한국은 세계 무역전쟁, 산불, 윤석열 대통령 탄핵, 울산화력발전소 붕괴 같은 어마어마한 일들을 겪었다. 디아스포라 미국인으로 살고 있는 나에게도 여러 이벤트가 있었다.
 
새해 초 캘리포니아 바닷가 도시 퍼시픽 팰리세이드에 불이 나면서, 엘에이(LA)는 혼돈에 빠졌다. 또 동쪽으로 약 32마일 떨어져 있는 샌 가브리엘  밸리에도 산불이 났다. 동시다발적 산불이었다. 산타아나 바람이 불씨를 빠른 속도로 주변 여러 곳으로 퍼뜨리었다. 우리 동네는 모두 경찰과 방위군이 지키는 가운데 대피 명령에 따라 모든 것을 두고, 집을 떠났다. 화재 영향을 받지 않은 엘에이 다른 지역의 호텔 방들은 이미 만원이었고, 같은 동네에 사는 조카도 갈 곳이 없었다. 우리들은 자동차로 13시간 걸리는 약 800마일 떨어져 있는 뉴멕시코 큰 딸네로 향했다. 그렇게 시작된 2025년이었다. 
 
산불이 잦아들고, 귀가한 후, 얼마 안 있어, 법원에서 출두하라는 통고를 받았다. 미국의 시민은 배심원으로 불리었을 때 이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평소에 배심원 통보를 받은 적이 여러 번 있었어도 채택되지 않고 지나갔는데, 이번에는 좋아해야 할지, 재수 없다고 불평해야 할지 배심원으로 뽑히게 되었다. 법정에 두 달 반 동안 금요일만 빼고, 매일 출근하였다. 일곱 살짜리 여아 살인 사건으로, 피고는 생모와 생모의 남자 친구 두 명이었다. 배심원들은 검사가 제출한 영상과 증빙서류를 이해하여야 했다. 증인들의 진술을 들었다. 한국과 미국의 드라마에서 보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일곱 살 아이는 2,555일 동안, 매 맞고, 벗겨진 채로, 욕실에 감금되고, 고춧가루 고문을 당했다. 
 
육십갑자(六十甲子) 육갑 60년마다 반복되는 사이클이므로, 5천 년 한국 역사에는 을사년이 많았을 게다. 근대사에서 가장 심각하고 우울하였던 사건은 백이십 년 전 1905년에 맺었던 일본과의 을사늑약으로 한국의 외교권이 일본에 박탈당했던 사건이다. 일제 강점기의 시작이었다. 이보다 120년 전인 1785년에는 ‘명례방 사건’이라고도 불리는 ‘을사추조적발(乙巳秋曹摘發)’ 사건이 있었다. 정조 9년 때, 지금의 명동 지역에서 신앙집회를 열던 천주교도들이 적발된 것으로 조선의 성리학적 윤리 체계를 파괴한다는 죄목으로 신자들이 처형당했던 일이다. 이 사건 113년 후에 이 자리에 한국 천주교의 대표적이며 상징적인 명동 성당이 건립되었다. 만약 이때, 조선이 서학을 받아들이고, 개혁에 앞장섰다면, 한국의 역사는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을사년에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을사늑약 60년 후인 1965년에는 한일 기본 조약과 월남파병 준비로 경제개발의 본격화가 시작되었다. 내가 대학 입시 준비를 하고 있던 때이었다. 베트남에 파병되어 인천항을 떠나던 젊은 군인 무리 중에, 사촌오빠가 있었고 나는 오빠를 배웅하러 나갔었다. 여러 번에 거쳐 파병된 누계가 32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 젊은이 중에는 전사하여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5천여 명이고, 11,000명이 부상하였다고 한다. 
 
어수선하게 시작된 을사년 2025년이었지만, 좋은 일도 많았다. 9년 만에, 나의 생애에 두 번째 책을 출판하였다. 이 책의 출판 기념회를 한국에서는 나의 모교 이화여대 의과대학 부속병원 안에 친구의 이름으로 명명된 이영주 홀에서 가졌고, 미국에서는 한국어진흥재단 세종홀에서 가졌다. 또 한국 창원대학에 초대되어 강의도 했다. 이러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삶의 여정에 도반(道伴)의 친지가 함께해 주었기 때문이다.  
 
빠른 속도의 변화를 예상한다는 2026년 병오년은 별 탈 없이 지나가려나? 일 년 후인 2027년이 되면, 육십갑자의 예측이 어떠했는지 알게 되기를 바란다

한국 디아스포라의 국기 게양식

울산매일 <해외기획 미 LA> 2026.1.1

국기 게양식이 있었다. 미국에서 웬 국기 게양? 

이 내용을 전하자면 미국 LA 비영리 단체인 한국어 진흥재단과 나의 개인사를 조금 나누어야 한다. 

한국어 진흥재단은 30여 년 전 창립된 미국의 비영리 단체로 한국어 모의고사가 막 시작됐을 무렵 한국어 대학 코스 레벨의 시험제도(AP Korean)를 만들기 위해 생겼다. 참고로 AP Korean은 지금까지 성사되지 못하고 있지만 제반 활동은 지속되고 있다. 나는 지난 8년 동안 재단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우리에게 한국은 모국(母國)이고 미국은 조국(祖國)이다. 재단 이사로 봉사하고 있는 젊은 디아스포라 한국인들의 헌신과 한국에 대한 열정은 남다르다. 내가 암 환자들로 하루하루를 채우면서 살고 있을 때, 이 재단의 이사들은 영어권 한국혈통 차세대와 비한국계 차세대가 스페인어, 프랑스어, 중국어, 일본어처럼 정규 학교에서 한글을 세계 언어 선택 중 하나로 채택될 수 있도록 게 하기 위해 한국어진흥재단을 만들었다. 내가 이 재단에 이사로 영입되면서, 그들을 통해 애국심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고, 배우게 됐다.

많은 디아스포라 한국인은 한반도와 북미 사이를 실제로 또 정신적으로 오가며 산다. 그래서 미주 한인 교포들은 농담 삼아 우리는 ‘태평양에 사는 해족(海族)’이라고 표현 한다. 이런 ‘태평양에 사는 해족’들이 한글을 진흥하기 위해 한국 정부나 미국 정부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사옥을 마련했고 일 년 전 사옥을 오픈했다. 사옥에는 ‘세종홀’이라는 회의장과 ‘집현전’이라는 과외 공부 방, 이층에 다도실을 갖추고 있다. 세종홀 회의장 벽에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현 혜명 화백이 희사한 소나무 유화가 걸려 있고 한글 연구와 보급의 공로로 2018년 572돌 한글날 대통령상으로 받은 깃발이 장식되어 있다. 이층 다도실에는 성기순 화백의 화조화 민화가 한국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이 사옥은 재단의 설립 목적대로, 여러 비영리 단체의 행사 때 수익을 내지 않고 빌려준다. 대면과 비대면 복합방법으로 재단 이사회, 한국어 교사 연수 등이 정기적으로 열리고, 교육적인 목적을 가진 다른 모임에도 사용된다. 디카시 설명회와 어느 고교의 동문회 북클럽 미팅이 그 예이다. 

필자의 디카 시집 ‘병원 밖 세상’ 출판기념회도 이곳에서 열렸다. 한국어를 디카시라는 장르를 정통교육에 접해 가르친다면 거부감 없이 한글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는 교육적 의미가 담긴 출판기념회이었다. 


출판기념회가 열리던 날, 사옥을 오픈할 때 게양대를 만들지 못해 미루었던 ‘국기 게양식’을 하객들과 함께 했다. 한국계 일 세 하객과 영어권 한국계, 미국인들 80여 명이 참석했던 행사에서 가진 국기 게양식은 큰 의미를 부여했다. 

한국어 진흥재단은 미국과 한국을 함께 품는 단체이기에 이날 미국기와 한국기를 나란히 게양했다. 태극기는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 이민 일 세 세 명이, 성조기는 10살이 되기 전 부모를 따라 도미한 1.5세대 대표로 LA 시의원이 게양했다. 

하객들은 두 나라의 국가가 연주되는 가운데, 게양대를 타고 올라가고 있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향해 경의를 표했다. 이날 게양식이 끝난 뒤 하객들은 ‘울컥했다’고 했다. 미국에 이민 와 현지에서 뿌리내린 뒤 살아가는 ‘한국인 디아스포라들’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한국과 미국이 모두 ‘내 나라, 우리나라’임을 느끼겐 한 하루였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

2026.2.11 울산광역매일

새벽은 아름답다. 캄캄하고 신비스럽다. 살고 있는 로스앤젤레스의 겨울 새벽은 춥지 않고 선선하다. 정적을 깨는 아침 새들의 대화가 시작되려면 아직 어둠이 얇아질 때까지 좀 더 기다려야 한다. 물론 야밤에 노래하는 부엉이도 있고, 신경질적으로 소리 질러 소견을 전달하는 새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새벽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오늘 새벽하늘은 어둠 속에 푸르다. 반달과 오리온 좌가 총기(聰氣) 바랜 흐린 빛을 보내준다.  

나는 새벽에 관한 것들에 익숙하다. 새벽 시간, 새벽 소리, 새벽바람, 새벽하늘, 새벽 별자리, 새벽을 열며 일하러 가는 사람들, 그들의 헤드라이트 행렬, 새벽에 올리는 분심(分心)으로 갈리어진 나의 묵주기도까지. 그리고 새벽에 일하는 내 자신에도 익숙하다. 

나는 글도 새벽에 쓰고 행정적인 일도 대부분 새벽에 시작한다. 글을 쓰기 전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앞마당을 걸으면서 묵주기도(默珠祈禱)를 하는 것이다. 묵주기도란 불교에서 염주를 돌리며 하는 기도처럼 구슬을 이용해서 예수의 생애를 기억하며 주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을 반복하면서 묵상하는 방식의 기도이다. 문제는 되풀이하는 기도라, 잡념이 들기 십상이라는 점이다.  

이 기도는 가톨릭 신자들이 애호한다. 그 원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수용하는 설은 이렇다. 글을 읽을 줄 모르던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성서를 읽지 못했고, 따라서 성서에 준 한 기도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단순하고 간단한 기도를 반복하는 방식을 전수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구슬을 굴리면서 묵상하는 기도’라는 뜻에서 묵주기도라고 부른다. 서구권에서는 ‘로자리(rosary)’라고 하는데 장미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이 로자리에 대한 설도 많다. 예수의 생모인 성모 마리아를 아름답고 순수한 장미로 표현한 것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다. 또 종교탄압으로 그리스도교인들을 공공장소, 주로 콜로세움 같은 운동장에서 처형하면서 생기게 된 것이라고도 한다. 굶은 사자를 풀어서 신자들이 잡혀서 먹히도록 했는데, 그들은 머리에 장미로 만든 화관을 쓰고 광장으로 행진했다는 설에서 나왔다고 한다. 인체는 먹히고 장미 화관만 남기었다는 것이다.  

나보다 하루를 더 일찍 시작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 새벽에 일터를 향해 가는 사람들이 그중의 한 부류이다. 집 앞마당에서 캘리포니아의 중요한 동맥 역할을 하는 405번 프리웨이가 약 반 마일 정도 보인다. 405 프리웨이는 5번에서 파생한 고속도로로, 북서쪽 방향을 커버해 주는 약 72마일 구간이다. 미국 내에서 가장 많은 차가 오가는 고속도로다. 북쪽 실마(Sylmar)와 남쪽 엘토로 와이(El Toro Y) 사이를 연결한다. 이 길을 따라 깜깜한 새벽에, 남쪽으로, 북쪽으로 헤드라이트, 백라이트들이 줄지어 움직인다. 일터를 향해 가는 새벽 사람들이다.  

오늘도 앞마당에는 배달된 신문들이 널브러져 있다. 신문 배달원은 도대체 몇 시에 우리 집에 다녀간 것일까. 그는 신문을 배달하고 또 다른 직장을 향해 서둘러 갔을지도 모른다. 신문 배달로 버는 돈만으로는 생활이 어렵다는 걸 누구나 안다. 신문 배달원뿐만 아니라, 나와 남편이 젊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큰딸도 어둠을 헤치고 환자를 돌보러 병원으로 향한다. 

처음으로 ‘산다는 것이 일이나 공부보다 더 엄숙한 것’이라는 심오한 뜻을 깨달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나를 일깨웠던 것은 가난도 아니고, 전쟁의 상흔도 아니었다. 당시 나는 10대 끄트머리의 소녀시기를 지나 막 여성으로 성숙해지는 길에 첫발을 내디디던 때이었다. 사르트르, 톨스토이, 카뮈 등등의 꽤 어두운 사회론자들의 글을 읽고 친구들과 ‘개똥철학’을 토론하던 때이기도 했다.  

사회의 부조리함, 어두움을 논하던 나의 눈에 강의실 곳곳을 열심히, 성실하게 닦고 있던 청소부 아저씨의 맑고, 진지하고, 겸손하고 평화로운 얼굴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아저씨의 존재가 나를 일깨웠다. 그를 통해 가난과 노동 그리고 그로부터 받는 엄청난 긍정적이면서도 부정적인 대가는 우리의 행복이나 희망과는 별 개라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나는 ‘노동의 숭고함’이라는 사치스럽고 아이러니한 문구를 기억한다. 현대 사회는 일과 노동을 구분한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 당시 6억이었던 세계 인구는 2024년 82억으로 늘었다. 세계 총생산은 199배가 늘어난 173조 달러에 이른다. 그런데 빈부의 차이는 극(極)과 극이다. 일과 노동이 뒤얽힌 결과다. ‘신성한 일’이 아니라 ‘먹고사는 노동’에 매일 끌려다닌 것이다 

그 중년의 청소부 아저씨는 노동의 숭고함에 신경을 쓰며 일했을까. 자식들을 먹이고 키우느라 수고하셨던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은 ‘노동의 숭고함’이라는 이상을 갖고 일을 하고, 품을 팔았을까. 누군가의 말대로, 우리는 현재 노동을 정당화하고 미화하고 있을지 모른다. 새벽을 가르는 현대인들처럼.

 

“병원 밖 세상”

디카시집 “병원 밖 세상”이 세상을 보게 되었다. 첫 책 ‘희망 한단에 얼마에요?…’ 이후, 9년 만이다.

2025년 10월 19일(일)에 한국 이화여자대학교 부속병원 서울병원 ‘이영주홀’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경기여고, 이화여대, 그외 전 엘에이 교육영사 최하영님등, 지인들, 친척들 총 70여명이 참석하였다.

모두 4부로 되어있는 시집이다. 이 책은 남편과 함께 6년 동안 18번의 해외 여행을 하면서 기록한 수십만 장의 사진 중에 60개를 뽑고, 그에 시를 한글과 영문으로 붙인 것이다. 같은 사진을 놓고 쓴 한글과 영문 시는 그 내용 표현이 다름에 놀랐다. 두 글, 두 문화가 내 안에서 자리하며 편안히, 다른 부분을 포용해 준 것 같다.

-제 1부: 신앙의 신비

-제 2부: 국가라는 보호막

-제 3부: 들려줄 이야기

-제 4부: DNA

한국에서 했던 출판기념회 때는, 각 쳅터에서 하나씩 골라서, 5개의 시를 남편 류지선과 영어, 한국어로 번갈아 가며 4개를 읽었다. 마지막 5번 째 시 ‘네 동공에 보이는 나, 나를 보는 반백의 너 (Mother, it is me, your son!)’ 은 남편이 혼자 읽었다. 그 시는 남편과 그의 어머니간의 대화와 사진이다. 많은 동감을 자아내었고, 눈물을 글썽이는 분도 계셨다.

올해 12월 13일 토요일에는 한국어진흥재단 (3310 Beverly Blvd., Los Angeles, CA 90004)에서 출판기념회를 할 예정이다. 기념회 리셉션 후에는, 한국어진흥재단 이사들과 쫑파티를 한다. 나의 이사장으로서의 임기를 마치는 회식이다.

[신간 안내] 류 모니카 디카시집 『병원 밖 세상』
출처 : 문화전문지.. | 블로그

[어른이 읽는 동화] 낡은 책상 (III)

[어른이 읽는 동화] 낡은 책상 (III)

“어머나, 이 입술 좀 보세요! 꼭 봄에 새로 돋아난 꽃 순 같아요!”

“달꽃 입술을 닮았네요.”

아기는 눈을 감고, 하품을 길게 하였습니다.

“눈은 누굴 닮았을까 궁금하네요. 새순이를 닮았겠지요?”

신생아들은 눈을 떠도, 보지를 못한다고 의사 선생님이 이미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보기는 보지만 아주 희미하게 밖에는 볼 수 없어서 인식의 능력이 없다고 하셨거든요. 백일 잔치 할 때쯤 되면 주위 식구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고 낯가림할지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리하르트 새순의 아버님이 아기를 조심스레 안으셨습니다. 어머님은 새순이 아빠에게 서두르라고 재촉하시면서, 옆에서 자기의 순서를 기다리시었어요.

“새순 리하르트를 처음 안았을 때와 같구나! 이 귀한 보배를 낳아 준 새순아, 달꽃아, 감사하다!”

리하르트 새순의 아버지는 아이의 뺨에, 당신의 뺨을 살짝 가져다 데시었어요. 그리고 뺨에 뽀뽀하였습니다. 새순이 아버지께서는 오늘 산모랑 손녀를 방문 오시기 전에 아주 꼼꼼하게 면도하셨다고 말씀하셨어요. 아기에게 뽀뽀할 것을 속으로 몇 번이나 연습하였는지 모른다고도 하셨고요. 리하르트의 어머님은 달꽃 뺨에 키스를 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셨어요.

“새순이의 딸이, 꼭 새순이 어렸을 때의 코를 갖고 있구나. 작고, 귀엽고, 앙증스러운 코였지. 달꽃아, 고맙다!”

새순이의 아기가 태어난 날에 저마다 가슴 깊은 곳 우물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고 있는 청량하고 맑고 차가운 물을 두레박으로 퍼 올리었습니다. 새 생명을 바라보는 가족들은 탄성을 나누었고, 함께 기뻐하고, 또 서로를 축하했습니다. 새 생명은 얼마나 귀하고 부스러지기 쉬워 보이던지요! 나의 부모님들은 편찮으신 할머니를 뵈러 멕시코에 가셨기에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전화로 새순이와 통화하신 부모님들은 새순이 부부가 만든 기적은 산체스 가정의 축복과도 다름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모님들은 ‘미겔은 언제나 이런 기쁨을 나누어 주려나…’ 하고 분명코 생각하시면서 말씀을 그냥 삼키시었을 것입니다.

새순이가 딸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과학 발달의 기적입니다. 또한, 새순이가 백혈병에서 완치된 것도 의학이라는 기적의 결과입니다. 더불어 새순이가 달꽃을 만나게 된 것도, 하느님의 특별한 계획이었던 것 같습니다.

백혈병 진단을 받았을 때, 새순이는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날 자신이 없었습니다. 자기 삶에 분노했습니다. 입양아로 버려지었다고, 볼품없는 인생이라고 여러 번 되뇌었습니다. 또 신(神)은 자기를 미워한다고 말했습니다. 새순이의 응원 부대인 부모님과 산체즈 가족들은 새순이가 바닥을 치고, 다시 용수철처럼 일어날 때까지 말없이 기다렸습니다. 낡은 책상에 마주 앉아 공부하던 우리는,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꿈은 우리를 세상으로 밀어내어 보내었던 것입니다.

백혈병 골수 이식을 준비할 때, 새순이 리하르트는 친족을 찾는 데 실패했습니다. 한국 대사관, 영사관, 한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의 시민단체, 한국어로 출판되는 신문을 통해서 골수를 기증할 한국분을 찾는 호소문도 내었습니다. 기적적으로 DNA가 들어맞는 어느 익명 기증자의 도움을 받아, 새순이는 살게 되었습니다.

키모데라피를 받을 때,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적인 골수와 남자의 경우에는 정자까지도 약화하거나 죽인다고 합니다. 새순이의 담당 항암 전문의사 선생님은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새순이의 정자를 채취하여, 얼려서 보관해 둘 것을 제안하셨습니다. 새순이는 거절하였습니다. 자기 혈육을 가질 것을 원해 본 적이 없었고, 자신도 입양되었으므로 필요하면 아이를 입양하면 된다는 것이 그 이유이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사람의 마음은 변하기도 하니까, 자기의 제안을 재고하여 보라고 하셨습니다.

새순이의 응원 부대인 부모님, 산체스 가족들은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했습니다. 새순이 리하르트는 1:5로 판정패한 셈이었습니다. 그리고 순순히 승복했습니다. 그리고 새순이와 나는 이 모든 것을 잊고 살다가, 벨기에 이름이 한국말로 달꽃이라고 하는 친구를 만난 후에 기억했습니다.

어느 여름이었습니다. 새순이는 한국의 어떤 입양 관련 단체와 한국 정부가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참석하여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고아가 아닌 나는 함께 할 수 없는 여행이었지요. 이 때, 양부모님들의 뜻에 따라, 자기를 낳아 준 부모를 찾아보려고 입양기관들을 방문했고, 혈액 검사도 받았지요. 백혈병 걸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새순이와 맞는 어른들은 데이터베이스에 없었습니다.

프로그램은 한국을 고궁, 한글박물관, 국립 박물관, 전쟁기념관, 남산 타워, 명동거리. 광장시장, 터미널 음식점 같은 곳 방문을 포함했어요. 길거리 음식도 먹어 보았다 합니다. 새순이는 유럽의 몇몇 나라에서 초청되어 온 다른 입양아들과 함께 이동하고,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유럽 벨기에라는 나라에서 온 달꽃을 이때 만났습니다.

새순이와 달꽃의 결혼식 때, 산체스 집안 식구들은 낡은 책상을 깔끔히 닦고, 거친 부분은 사포질하여서 매끄럽게 만들고, 그 위에 바니쉬를 칠하여서 재단장했습니다. 그리고 색동 포장에 커다란 빨강, 파랑 한국 태극기 문양의 리본으로 포장하여서 선물하였습니다. 새순 리하르트와 나의 삶을 엄격히 숙고하게 했던 기적의 책상, 그 낡은 책상이 앞으로 새순이 리하르트의 아기를 어떻게 인도할지 궁금하여집니다.

이 글의 일부가 울산광역배일에 발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