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을 향한 체념

어디에선가 보았던 눈빛이다. 나의 앞에 선 소녀는 감정을 덜어 내어 버리고, 나를 지나 멀리를 보고 있다. 소녀는 말한다. ‘마담, 곧 강에 도달하면 나는 다시 마을로 돌아가야 합니다…’ 나는 후회했다. 버스에서 내려 나룻터를 향해 걷기 시작할 때 부터 떨쳐지지 않았던 소녀였다. 소녀가 팔아야만 했던 작은 북을 사기로 마음먹게 될 때 까지는 산등성이를 넘고 평지를 지나 냇가에 도달할 때 까지의 시간이 걸렸다. 나는 후회했다. 일찌감치 사 줄 것을….

소녀는 이디오피아 산악지대에서 만났던 청소년 상꾼 중의 하나였다. 열네살은 되어 보였다. 까무잡잡한 피부색, 깡마른 몸매에 남루한 옷,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는 창이 얇은 신발을 신고 있었다. 하루에 몇 십리를 걸으면서 행상을 하는 이 아이들은 하루에 몇 개의 상품을 팔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소녀의 눈빛. 내가 젊었을 때 보았던 그 눈빛이었다. 재발한 백혈병을 더 이상 고칠 수 없다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있었던 그 백인 소녀환자의 눈도… 그랬다. 소녀도 나를 지나 머난 먼 곳을, 그리고 억만년의 지나간 세월을 나를 뛰어 넘어 보고 있는 듯 했다. 5살 때 백혈병을 앓았고 완치 되었었다. 이 소녀가 세상을 등지고 난 후, 의학계에는 많은 발전이 있었다. 지금 같았으면, 여러 방법을 써서 소녀의 생명을 연장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소아 백혈병은 90%가 완치된다. 어린이에게 오는 암의 빈도가 지난 40년 동안 증가 추세이다. 십만명 중 13명의 빈도가 19명으로 늘었지만 치사율은 90%에서 10%로 줄었다. 끈임없는 연구, 새로운 약의 개발, 몰랐던DNA 구조에 대한 이해등, 의학계는 장족의 발전을 했다. 미국에서 약 4500명의 어린이가 매년 발암한다. 암은 어린이 사망의 이유중 제일 큰 이유이다. 대부분 백혈병과 뇌암을 말한다. 쉽게 이야기 해 보면, 8명 발암 소아 중에 한 명은 죽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래도 희망적인 통계는 지금 약 40만명의 소아암에서 완치된 성인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록 60% 정도는 치료로 인한 만성 부작용으로 힘들어 할 수 있지만 이것은 견뎌낼 수 있지 않은가 싶다. 떠나간 생명은 다시 불러 올 수 없지만 부작용은 견딜 수 있으므로, 함께 참아 내자고 부모와 아이를 이해시키고 미리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의사들의 임무이다. 다른 종류의 암을 발생할 수 있고, 암 치료로 인한 근육질환 또는 불임 같은 것이 장기 부작용 중의 하나이다.

올 해도 4만여명의 어린이들이 암치료를 받게 될 것이다. 성공리에 치료를 마치지 못한 아동을 보내야만 하는 아이의 부모, 형제 그리고 주치의들이 또 아파하겠지. 첫 키모치료로 완치됐지만, 재발한 병을 이기지 못하고 떠나 간 그 소녀 환자가 유난히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이디오피아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산등성이를 따라 걷던 소구를 팔던 소녀의 빈곤이, 그 아이의 체념이 채우고 있었다. 시바여왕의 성터라는 허허 벌판은 억겁을 살아 온 바람소리가 삶의 무상함을 깨우쳐 주고 있었다.

(작가 주: 이디오피아는 가난해도 긴 역사를 가진 고대 문명발상지로 40% 이상이 크리스챤임.)

중앙 오픈 업 3월

세상이 달리 보인다

가끔 손주들을 보아 달라는 청탁이 온다. 이번에는 교사와 학부모간의 컨퍼런스로 인해서 교사들은 종일 학부모들과 스케쥴이 잡혀있고, 아이들은 등교할 수 없다. 또 큰딸, 사위는 자신들의 시간을 조정해서, 세 아이의 세 교사들을 만나야 한다. 이런 컨퍼런스가 보통 일년에 두번있다.

학교가 닫는 날들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들여다 본다. 여름방학은 6월 초 부터 8월 중순까지 무려 두달 반이나 되고, 겨울방학은 크리스마스를 전후해서 시작하여 새해 첫날을 지나야 끝난다. 캘리포니아 학교들은 약 14개 정도의 특별한 휴일들 ( 독립기념일, 노동절, 메모리얼데이, 콜럼버스 날, 프레지던트 데이, 마틴루터 킹 쥬니어 데이, 시저 차베즈데이, 추수감사절등) 이 있고, 학교에 따라 다르지만 평일중, 일 년에 약 일 주일 정도는 클래스가 없는 셈이다.

이번에는 손주들과 함께 브렌트우드에 있는 게티 뮤지엄을 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쉬는 날이 되니 아이들은 아침도 먹지 않은채 우리들에게 떨구어졌다. 우선 아이들의 아침식사를 해결 해야 했다. 다섯, 여덟, 열살박이들이 선호하는 아침식사의 종류는 달랐다. 우유없이 시리얼만 먹는 녀석, 계란 반숙을 청해온 녀석, 빵을 토스트하되 아무 것도 바르지 말라고 청해온 녀석, 그리고 나와 남편의 식성 또한 다르다 보니 일일 레스토랑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로, 각자가 만족할 만한 아침식사를 끝내고 우리는 뮤지엄을 향해 나섰다.

게티뮤지엄을 택한 것은 조경의 아름다움이 한 몫을 했기 때문이다. 이 박물관은 1997년 완성된 것으로, 그 내용물도 좋지만 건축의 특이함과 정원의 아름다움이 뛰어나다. 곳곳에는 벤취, 돌로 된 쉼터, 꽃밭, 잔디가 아이들의 동선에 방해가 되지 않게 설계되어 있다.
건축학계에서 잘 알려진, 지금 ‘미투’ 사건으로 힘든 리차드 메이어가 설계한 이 뮤지엄은 16,000톤의 흰색의 석회암을 이탈리아에서 수입해서 지었다. 돌을 약 30인치 정사각형으로 잘라 붙인 넉넉함이 자연 그대로의 우둘두울한 상태로 쓰여져 아름답다. 잘 보면 나뭇잎, 새 털 같은 화석이 있는 곳도 있다.

아이들에게 오늘의 뮤지엄 방문 때는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세 녀석 모두 의외로 제공되는 자유로움과 ‘조심하라’는 잔소리 없이 기기(器機)를 쓰게 하는 할머니의 관대함에 놀란 듯 했다. 나의 셀폰, 오래된 모델의 또 하나의 셀폰 그리고 카메라를 임시 소유물로 쓸 수 있다는 자신감에 심각한 표정을 해 보였다. 사진을 찍고 싶은 대상, 그것이 꽃이던, 건물이던, 하늘이던, 바다이던 간에 우선적으로 대상을 넣은 구도를 결정하는 과정을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아이들은 사진을 ‘찍어대었다’. 모두 사진작가나 된 듯, 여기 저기 다니며, 순간순간을 잘 포착하는 듯 했다. 갑자기 성숙해진 모습이었다. 우리들은 태평양 바다의 원대함, 산의 능선, 코 앞에 있는 작은 꽃들의 신비함에 함께 감탄하는 순간도 있었다.

아이들이 사진기를 통해 보는 세상은 어떠했을까. 렌즈를 통해 볼 수 있는 시야는 좁고 다르다는 것을 알았겠지. 또 확대를 하다 보니 그냥 지나쳤던 것을 처음인양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아이들은 깨닫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미래가 그들의 가슴에는 그렇도록, 때로는 달리, 또는 좁게, 때때로는 확대되어, 아니면 생소하게 부각될 것이다. 그 준비과정을 시작했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마쳤다.

 

중앙 오픈 업 3월

에티오피아, 종교, 문화, 과학의 원산지!(II)

기원전 900여년으로 돌아가자. 에티오피아인들이 굳게 믿고 있는 전설 내지는 역사는 이렇다. 성경에서 쓰여 있듯이 시바여왕은 솔로몬 왕을 만나러 이스라엘을 방문한다. 돌아와 솔로몬의 아들 메넬렉을 낳는다. 청년이 된 메넬렉은 아버지 솔로몬을 보러 이스라엘에 갔다가 야훼의 계약괘를 에티오피아로 가져왔고(훔쳐왔고?) 그 계약궤의 행방은 애매하다.

한편 서기 49년 경, 그러니까 예수가 승천한지 19년 후가 되는 때에, 예수의 제자 중의 한 사람인 성 마르코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기독교회를 만든다. 이것이 콥틱동방정교이다. 콥틱이라는 말은 17세기 라틴어에서 유래되었고 그 후 그리스어의 에집트원주민이라는 뜻이 연류되어 있다고 한다. 현대의 콥틱교회, 알렉산드리아 그리스 정교, 콥틱 카톨릭 교회들이 바로 당시의 공동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성 마르코와 성 요한 마르코가 동일인물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성 마르코는 지금의 리비아 지방 태생이었고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했다. 그의 유물의 일부는 이탈리아 상인들이 알렉산드리아에서 훔쳐다가 베니스로 가져오게 되면서 성 마르코 대성당이 이탈리아 베니스에 지어졌고 그곳에 모셔있다한다. 나머지는 알렉산드리아에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에티오피아의 기독교는 사도행전에서 읽을 수 있듯이 간다게 여왕의 내시 에티오피아 사람의 이야기를 보아서도 확실한 역사를 갖고 있어 보인다.

많은 박해를 받았던 콥틱기독교인들의 삶, 그들의 하느님을 믿고 가르침을 실행하는 삶은지금도 에디오피아사람들의 몸에 깊이 배어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서기 330년에 에자나 왕이 (주: 당시 악숨왕국이라 불리었다)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면서 활발한 종교생활을 해 왔다. 지금도 그들은 교회를 신성하게 유지한다. 교회입구인 문에 손과 머리, 가슴을 대고 기도하는 순례객, 또 맨발로 교회를 돌며 묵상하는 순례객들을 볼 수 있다. (주: 사진) 교회를 들어 갈 때, 신발을 벗어야 하고, 남자들은 모자를 벗고 여자들은 머리를 가린다. 어떤 교회당에는 여자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유일신인 기독교의 국교화로 에티오피아의 찬란한 문화를 상징했던 태고적 무덤 위에 세워진 오발리스크는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에집트 오발리스크와 달리 악숨 오발리스크라고 불리는데, 그 조형문양이 에집트것과 달리 특이하고, 직선, 사각, 대칭적인 형태를 갖고 있어서 어떻게 보면 현대식 무늬처럼 멋있다. 조각조각을 이어서 만든 것이 아니고 하나의 큰 돌을 써서 만들었다.

에티오피아 하면 반드시 알고, 또 볼 수 있으면 보아야 하는 땅 속의 집채 이상 크기의 붉은 암석, 그것도 한 덩어리인 돌을 깍아 만든 암석교회들이다. 통틀어 11개가 랄리벨라에 있다. 11세기에 만들어 진 것으로 당시 모슬렘 지역을 지나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갈 수 없게 된 에티오피아 사람들을 위해 지은 것으로 ‘새로운 예루살렘’이라는 의미를 갖고 지어졌다.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속해 있다 보니 유네스코에서 교회들을 자연붕괘에서 보호한답시고 거대한 텐트를 지상에 쳤기 때문에 교회들의 장엄한 모습을 온전하게 볼 수 없는 결점이 있다.

그 중 한 교회는 텐트가 쳐 있지 않아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성그레고리 교회이다. 그리스도가 십자가형을 받은 장소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하는데 랄리벨라 왕이 묻혀있다. 일화에 의하면 성 그레고리 (에티오피아 말로 베트 기요르기스)가 랄리벨라왕 앞에 나타나 자신에게 바쳐진 교회가 없다고 불평하자 왕은 아름다운 교회를 지어 줄 것을 약속했고 그리 만들어 진 교회로 11미터 땅 밑으로 내려가서 교회주위에 만들어져 있는 큰 홈 (또는 길)을 통해 교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큰 교회를 통해서 작은 교회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골고다교회라고 불리는 아름답고 작은 교회를 사제가 지키고 있었다. 나는 여자라서 들어 올 수 없다고 말했다. 머리만 드리 밀고 구경은 할 수 있었다.

옆의 사진은 세 명의 관광객과 교회의 크기가 잘 비교되어, 그 웅장함을 가늠할 수 있다. 에티오피아의 어떤 교회를 가더라도 교회는 세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많은 교회들이 원형이었고, 시골의 교회들은 초가지붕으로 되어 있었다. 원형이기 때문에 제일 밖의 둥근 통로에 교인들이 미사 중에 머문다. 두 번째 중간 통로는 영성체를 하러 들어가는 곳이다. 제일 중심은 지성소로 야훼의 궤, 그러니까 궤의 카피본들이 모셔져 있는 곳으로 성직자이외에는 들어 갈 수 없는 곳이다. 서방교회처럼 사각형 건물의 교회이더라도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제 야훼의 계약궤의 이야기로 글을 마칠까 한다. 악숨(Axum)은 고대 에디오피아의 문화지였고, 오랫동안 수도이었던 곳인데 이곳에 야훼의 계약궤가 있다는 것이다. 찾아 간 교회는 사진의 오른쪽 작은 교회인데 그곳을 지키는 사제가 있고, 아무도 들어 갈 수가 없는 전통이 있었다. 그러니 계약궤를 본 사람은 없을 수 밖에 없다. 곳곳에 있는 콥틱 동방정교교회에는 나무로 된 모조궤가 아닌 모조판이 모셔져 있다. 이 모조판들도 교회 행사 때에 사제가 머리에 이고 행진할 때 일반 교인들에게 보여지지만, 헝겊에 싸여져 있어서 실제 목판은 볼 수 없다. 영국이 에티오피아를 침범했을 때, 영국병정들이 훔쳐 온 것들을 대영제국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 내가 찾아 본 것은 나무판 중앙에 모세 때의 십계명 판이 아닌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조각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에티오피아인들의 기독교 신앙은 콥틱동방정교이지만 지금은 에집트, 중동의 동방정교회에서 독립된 상태이다. 콥틱기독교, 동방정교는 에티오피아 토속문화와 잘 어우러져 있어서 서방기독교 또는 그리스정교와는 조금 다른 냄새를 풍겼다. 토속 유대문화의 일부를 실행하면서 살아온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신약보다도 구약의 법에 따라 살았기 때문일 것이고, 그들이 뼈속까지 깊이 자기 것으로 여기는 하느님의 계약궤를 가진 특수민족이란는 점, 또 누가 뭐라던 시바여왕과 솔로몬의 결합으로 그들은 유대혈통의 황제들이 있었다는 믿음이다. 이러한 그들의 이야기를 ‘The Sign and The Seal: Graham Hancock (Crown Publisher 1992)’에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힘든 여정이었지만, 에티오피아를 참 잘 다녀왔다는 생각이 든다.

에티오피아, 종교, 문화, 과학의 원산지! (I) (사진참조)

아프리카 대륙 지도를 들여다 보면, 내가 의사라서 그런지, 우리 몸의 대퇴골부를 연상시킨다. 그 대퇴부에 꼬리처럼 동쪽 홍해를 접한 쪽으로 삐죽 튀어 나온 곳을 ‘아프리카의 뿔 (Horn of Africa)’라고 부르는데, 그곳 네 나라 중의 하나인 에티오피아를 다녀왔다.

아프리카에는 54개의 나라가 있다. 어떤 표현을 빌리면, 아프리카 나라들의 경계선은 ‘두부를 짜른것’처럼 또는 자를 대고 금을 근 것 처럼 반듯하다. 그것은 종획무진하게 아프리카를 식민지화 했던 유럽의 강국들 (예: 영국은 남쪽에서 북상하며, 프랑스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며 아프리카를 식민지화 했다)에 끼어 들지 못했던 독일, 당시 독일의 비스마르크 수상이 1884년 베를린 회담을 열었고 유럽강국들은 부족, 문화, 전통을 무시하고 금을 그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식민지 시대 이전의 10,000개 정도의 소국가, 또는 부족들의 영역은 무시되고 54개로 나누어 진 아프리카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국가라는 공동체안에서 지금껏도 끈임없는 분쟁을 하고 있다. 이 아프리카의 인위적 분할은 천 5백만의 노예를 팔아 넘긴 사건, 나치의 유대인 학살 사건과 더불어 근대사의 참혹한 인권유린의 삼대품목으로 꼽힌다. 에티오피아와 리비아 두 나라는 지배당한 적이 없는 독립국가로 오늘날에 이른다.

에티오피아를 방문하기 전에 나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한국전에 참전해 준 나라,
시바의 여왕과 솔로몬의 연문으로 화려한 과거가 있다고 믿겨지는 나라, 그들의 아들인 메넬릭이 이스라엘에서 하느님의 계약괘를 에티오피아로 훔쳐와(?) 어딘가에 숨겼다는 나라, 아베베 비킬라, 헤일레 게버셀라시에 같은 올림픽 메달리스트 경주자를 배출한 나라, 또 3백만년이 넘은 최초의 인간 ‘루시’가 살었던 나라, 그 ‘루시’의 남아 있는 뼈가, 국립박물관에서 아직도 잠자고 있는 나라, 기적으로 만들었다는 막대한 하나의 돌덩이로 지하교회 11개를 만들어 유네스코 유물 지정국이 된 나라, ‘검은 유대인’들이 그들 아버지의 나라라고 믿는 이스라엘로 돌아가도록 허락해 준 나라, 그리고 가난한 나라로 말이다.

그 나라에 대한 나의 이해는 틀리지 않았다. 그들의 역사에서 분리할 수 없는 것이 그들의 종교 콥틱 동방정교라는 점이 또한 막중한 무게로 다가왔다. 지역상 아라비아, 중동지역의 모슬렘의 영향을 받기는 했으나 아직도 대다수, 약 50-60%는 크리스챤이고, 그들의 신앙은 매일 매일의 생활에 흠뻑 젖어 있다는 점 또한 발전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신앙생활과 얼마나 다른가!

종교 이야기를 하기 전에 과학적, 인류학적 면에서 무척 중요한 ‘뼈’의 발견이 에티오피아에서 있었다는 것을 알고 지나가면 좋겠다. 우리들의 조상이라는 키 작은 이 여인, ‘루시’는 아디스 아바바에 있는 국립박물관에서 쉬고 있다. 박물관의 초라함과 허술한 경비에 조금 놀라고 실망하기는 했지만 그녀를 본 것은 영광이었다. ‘루시’는 1974년 11월에 발견된 3백2십만년 전에 살았던 여인이다. 40% 정도의 뼈가 남아 있고, 골반뼈의 모양으로 여자라고 추정했다. ‘루시’라는 이름이 붙여 진 것은 이 뼈들을 발견했던 당시 기쁨에 들뜬 과학자들은 1967년 작곡된 비틀즈의 음악 ‘루시-하늘에-다이아몬드를 쥔’ 이라는 테입을 틀고 캠핑을 하고 있었던 터였다. 즉흥적으로 이 뼈의 주인공을 ‘루시’로 부르기로 한 것이었다. 그래서 ‘루시’라는 이름은 AL 288-1 이라는 번호표가 달린 하나의 과학 샘플에서 실제의 삼백 이십만년 전에 살았던 하나의 인물로 우리에게 남아있게 된 셈이다. 비틀즈의 노래는 죤 레논의 첫째 부인 (둘째 부인은 요꼬 오노: 저자주)의 아들 쥴리안이 유치원 친구 루시를 노래한 것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그 루시는 쥴리안의 어릴적 친구에 불과하고 10여년 전에 면역결핍증으로 죽었다고 한다.

이제 에티오피아의 종교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러러면 시바의 여왕과 솔로몬의 연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에티오피아 왕조는 솔로몬조(朝) 즉 유대인 혈통의 왕조라는 것을 명시해 왔다. 그들의 생활습관이 유대인의 그것과 비슷한 점이라던가, 유대교 다시 말해 구약에 준한 종교적 해석이 많다. 물론 예수를 믿고, 삼위일체와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은 어느 동방정교인들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고 본다. 그들의 교회에는 그 주제로 한 많은 화려한 벽화들이 있었다. 솔로몬계열에 대해서 다시 말해 보면, 한국 육이오 전쟁 때 6037명의 용병을 보내 주었던 헤일레 셀라시에 왕은 225대(代) 솔로몬조(朝) 황제라고 불린다. 그는 1974년 쏘련이 밀어 준 공산당 쿠데타로 물러나게 되었고 솔로몬왕조는 거기서 끝난다.

 

중앙 2019 3 종교난

성교육은 필요한가?

나의 사춘기에 대한 기억은 어둡다. 몸의 변화에 대한 예고는 커녕 성교육, 자긍심 증진이라는 단어 조차 들어 보지 못했다. 이 글을 쓰면서 이것 저것 찾아 보고 알게 된 것은 청소년 성교육이 지금도 전무(全無)의 공백상태이라는 점이다. 차세대 아이들이 사춘기라고 불리는 특수한 인생의 시작점을 잘 보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에 생각이 머문다. 세계보건기구는 10살에서 19살사이를 청소년기(Adolescence)라고 부르고 ‘젊은이 (young people)’는 10살에서 24살까지라고 정의한다. 또 의학에서 여자는 10살에서 14살 사이, 남자는 약 2년 늦은 12살에서 16살 사이의 기간을 사춘기로 본다.

의사나 부모, 교사들은 이 시간대의 소년 소녀들이 발병하는 질환에 대해 더 많이 초점을 맞춘다. 실상 20% 즉 다섯 명 중의 한 명이 불안장애, 감정장애, 주의산만증, 행동장애를 앓고 있다. 그러니 청소년 정신질환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대다수인 80%의 아이들을 기성세대가 잘 이해하고, 신경을 써 주는 것은 무시할 일이 아니다. ‘불행감’이라는 아이텀은 ‘우울증’과 다르고, 질병에 속하지 않고 이들의 ‘행복지수’에 대해 우리 어른들은 무디다.

청소년들은 과도기에 있다.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지만, 어른도 아니다. 그들의 몸, 정신세계, 감성세계는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고 그 변화를 잘 겪어내야 한다. 이 때 필수적인 호르몬 분비가 시작된다. 그래서 눈에 띄이게 아이들을 달리 보이게 만든다. 이 과정을 이미 다 겪은 우리 어른들은 이들의 육체적 변화를 인지, 환영하고 함께 걷는 기회를 잃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겪는 변화에 익숙하지 못하고, 또 알지 못할 수도 있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가서, 이 아이들에게 부모의 눈에는 위험한 사항으로 보일 수 있는 ‘성(性)’ 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교육이다. 길게 이야기 할 필요 없이 2016년 부터 캘리포니아 주의 공립학교들은 ‘캘리포니아 청소년 건강 지침’에 의해 청소년 성교육을 의무화 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성교육은 우리들이 가르쳐도 되고 무시해도 되는 권리가 아니고 의무라는 점이다. 어떠한 사유로 반대하는 경우,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클래스에서 뺄 수 있다. 의무교육이므로 서명이 필요하다. 청소년 성교육 개정안 종합수렴 토론이 내달에 열리는데 일반인들이 의견수렴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60일 간 두번 이미 공지한 바 있다.

청소년 성교육이 전무(全無)의 공백상태이다 보니 아이들은 뉴욕타임스가 보도 했듯이 인터넷을 통한 자습으로 터득하고 있다한다. 그 자습의 내용물이 무엇일지 우리는 두려운 마음으로 상상할 수 밖에 없다. 성에 대한 오해, 임신가능성, HIV감염, 성병에 대한 교육을 하는 것이 성교육의 뜻이다. 성교육은 성생활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이들을 준비시키기 위한 성교육을 학교에만 맡기지 말고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해 나가면 좋겠다. 종교적, 민족적 편견을 강조하거나 엄격한 부모들의 의견 표시만 하는 것 보다는 오픈포럼 식으로 개방해서 성에 관한 포괄적인 토론, 안전한 섹스, 성적취향 조차도 포함 하는 것이 현명 할 것이다. 이 사회는 그러한 부분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적 배제, 극우, 극좌의 지나친 의견 표시는 대화의 문을 닫게 하고 아이들의 반발을 사기 십상이다.

 

중앙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