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적인 삶의 찬양

‘오, 야아~~!’
여인은 둘 째 줄, 오른 쪽에 서서 열창하고 있다. 그 녀는 금방 눈에 띄었다. 몇 안되는 백인 중 하나, 또 노인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꼽슬꼽슬한 빨간 머리카락에 뚱뚱한 몸매이지만 그녀가 환호하는 모습은 어느 누구도 닮지 않은 바로 그녀 자신의 것이었다. 흔드는 두 팔 중, 왼쪽 팔과 손이 통통하게 부어 있는 것이 보인다. 유방암 치료로 인한 림프 부종 합병증 때문이다. 합창단은 복음 성가를 째즈 스타일로 부르고 있었다.

나에게는 환자였으나, 그 녀는 검은 법복을 입으면 판사였다. 유대인인 그녀는 맥시코 출신 남자와 결혼했고 사회정의에 혼신하는 장성한 아들이 있다. 몇 년 전부터 합창단에 들어가서 일주일에 한번씩 연습을 해 오던 것을 안다. 유대인인 그 녀가 가톨릭인 멕시칸 남자와 결혼하고 기독교 복음성가단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희안한 일이다. 그 녀는 삶의 아름다움, 삶의 승리를 여러 사람들과 함께 노래하면서 맑고 강해지는 자신의 영(靈) 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그들은 ‘셀라’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합창단으로 올해 공연의 테마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예요!’ 이었다. 참고로 ‘셀라’라는 단어는 성서 시편과 하바꾹에 나오는데 정확한 의미는 알려진 바 없다. 여러 의미 중에, ‘멈추어 뜻을 생각하라’ 라는 해석과 아랍사람들의 ‘진실을 보존 저장한다’는 설명이 내 맘에 제일 든다.

성탄절, 새해를 앞두고 음악회가 많이 열린다. 겨울방학을 맞이하는 초중고 학생들 또는 음악 전공자들은 준비해 놓은 곡들을 이 때 선 보인다. 아무리 세상이 무신론자로 채워져 간다 해도, 겨울 음악회의 테마는 크리스마스이다. 전능하신 분의 고귀한 희생의 삶을 바라 보면서, 나 또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신에게로 귀화하는 내 자신의 여정을 찬양해야 한다.

일 주일 후, 로스 안젤레스 대성당에서 헨델(Georg Friedrich Händel)의 ‘메시아’ 공연이 있었다. 영광의 주님 뿐 아니라, 인간들의 죄의 보속을 위한 고통, 죽음 그리고 부활을 오케스트라와 함께 합창단이 장엄하게 노래했다. 유래가 어떻든 간에 ‘할렐루야’를 부를 때, 참석한 시청자 모두는 전통에 따라 기립했다.

56세의 헨델은 친구로부터 시편이 중심으로 된 기도집과 성서를 건네 받고, 1741년 여름에 ‘메시아’를 작곡한다. 겨우 24일 걸렸다. 헨델은 무서운 집중력으로 짧은 시간에 작곡을 끝내는 습관이 있었다 한다. 자신이나 친지들의 작품의 일부를 빌려다가 자신의 새로운 곡에 ‘빌려’ 넣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요즘엔 표절이라고 난리가 났을 만 한데 말이다. ‘메시아’에도 그런 부분이 몇 군데 있다고 한다.

첫공연은 1742년 3월, 그 곡이 쓰여진지 6개월 만에 아이어랜드 더블린에서 자선 음악회 형식으로 행해졌다. 두개의 트럼펫, 2개의 오보에등 악기와 26명의 소년, 5명의 남성 합창단원들이 협연했다고 한다. 런던이 ‘메시아’ 공연을 본 것은 그로 부터 일 년 후의 일이다. 독일 태생 헨델은27세에 영국으로 이주 했고, 74세에 런던에서 죽을 때 까지 존경받고 부유하게 살았다.

내일이면 나는 또 다른 음악회에 갈 것이다. 손주, 손녀들이 차렷 자세로 똑바로 서서 크리스마스와 하누카,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새해 노래를 부를 것이다. 판사환자의, 대성당의 음악회 못지 않게, 희망 찬, 사랑의 선물을 배달 받을 것이다.

피라미드 정상에 오른다는 것

대학입시 준비를 놓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주제로 한 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 에 대한 이야기를 친우에게서 듣고 비디오 가게에서 CD를 빌려다 보았다.

서울시 강남구 주택지에 병원이 제공하는 맨숀에서 사는 가정들을 다룬 이야기이다. 정형외과 과장 아들이 서울의대 입학허가를 받게 된 것을 축하하는 파티 장면으로 드라마는 시작된다. 사중주 생음악이 연주되고, 격식 차린 테이블 쎗팅이 멋있다. 포도주 잔만 해도 두개, 물 컵, 크고 작은 포크와 칼등 상위층 살림을 부각시키고 있다. 파티 다음 날 아들은 여행을 빙자해 가출하고, 완벽한 입학 준비를 시켰던 성공의 롤모델 여인은 자살한다.

이야기는 또 다른 한 가정의 하바드대학 유학이 조작이었다는 사건으로 이어진다. 대학입시 코디의 코치를 받으면서 서울의대를 목표로 공부시키던 드라마 주역격인 가정은 시험지 유출 사건, 완벽했던 사모님의 신분세탁 과거사, 숨겨졌던 딸의 살해사건으로 이야기가 복잡히 얽힌다. 완벽주의, 일등병(一等病)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짜집기 그림이다.

이 드라마에서 사회는 피라미드 형태의 구조라는 관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 피라미드의 제일 꼭대기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급우는 함께 공부하고 함께 노는 붕우(朋友)가 아니라 경쟁자이여야 함을 강요한다. 부모들은 부정, 부패, 거액의 투자도 감수하고 아이들을 세뇌하지만, 결국 실패한다는 이야기이다.

이 드라마는 1989년 뉴잉글랜드 지방 어느 남학생 보딩스쿨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 ‘Dead Poet’s Society(죽은 시인들의 모임)’ 를 연상시킨다. 이 영화를 쓴 탐 슐만은 시나리오 부분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내용은 그가 경험했던 고교시절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주연배우 로빈 윌리암스의 연기도 기록될만 했다. 이 영화 역시 부모의 꿈과 계획을 살아내기 위해 남학생들이 겪어야 하는 집단좌절을 표현했다. 꿈을 나누던 비밀스런 통로 ‘죽은 시인들의 모임’ 이라는 동아리활동에서 옛 시인들의 시를 읽고, 자신들의 작품도 나눈다.

이 드라마와 그 영화는 30년의 나이 차이가 있고, 동양과 서양의 배경도 다르지만 높은 교육열로 인한 부모와 자녀간의 불협화음, 상하조직 체제 안에서 보이는 흔들리는 힘의 균형, 교육을 빙자한 사교육의 치부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결국 커다란 파도에 헛개비는 밀리고 허물어진다. 귀한 것들을 잃은 뒤, 빈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이야기이다.

미국에도 영리 목적을 가진 대학 카운슬러들이 있다. 1976년에 공인된 IECA(Independent Educational Consultants Association)라는 코디들의 협회는 코디의 역할을 명확히 정의한다. 코디는 학생이 원하는 것, 희망사항, 관심사, 선호하는 것들에 준해서 첫 단계 역할인 대학의 리스트를 뽑아 준다는 것이다. 긍국적으로 자신이 갈 학교를 결정하는 것을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말이다. 이 협의회의 자체 보도에 의하면 일 년에 십6만의 학생들이 사립 코디를 고용한다고 한다. 약 4백만의 대학입시생들이 있는 미국을 생각해 볼 때 이것은 4%에 지나지 않는다.
거대한 미국, 미용학교로부터 하바드 대학까지 7천 여 개의 대학이 있고, 학연이나 인연에 연연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 미국 학생들은 복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완벽한 SAT 시험 성적을 내기 위해서 여름방학 동안 한국에 있는 학원으로 원정 과외공부를 보내는 학부형들이 있다는 소식은 괴롭고 또 슬프다. 좋은 씨스템을 최대한 알아내고 활용하며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좋은 모범을 보이는 부모로서 밥상머리 교육을 할 때 차세대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며 살아 갈 것이다.

그리고 실상 우리 문화에서는 행해지지 않고 있는 ‘성인식’ 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해 줌으로써, 그들이 자주적이며, 독립적인 자아를 살아가는 어른이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고,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과 함께 기뻐 할 수 있는 심적, 영적 여유가 생기면 좋겠다.

영원을 향한 체념

어디에선가 보았던 눈빛이다. 나의 앞에 선 소녀는 감정을 덜어 내어 버리고, 나를 지나 멀리를 보고 있다. 소녀는 말한다. ‘마담, 곧 강에 도달하면 나는 다시 마을로 돌아가야 합니다…’ 나는 후회했다. 버스에서 내려 나룻터를 향해 걷기 시작할 때 부터 떨쳐지지 않았던 소녀였다. 소녀가 팔아야만 했던 작은 북을 사기로 마음먹게 될 때 까지는 산등성이를 넘고 평지를 지나 냇가에 도달할 때 까지의 시간이 걸렸다. 나는 후회했다. 일찌감치 사 줄 것을….

소녀는 이디오피아 산악지대에서 만났던 청소년 상꾼 중의 하나였다. 열네살은 되어 보였다. 까무잡잡한 피부색, 깡마른 몸매에 남루한 옷,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는 창이 얇은 신발을 신고 있었다. 하루에 몇 십리를 걸으면서 행상을 하는 이 아이들은 하루에 몇 개의 상품을 팔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소녀의 눈빛. 내가 젊었을 때 보았던 그 눈빛이었다. 재발한 백혈병을 더 이상 고칠 수 없다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있었던 그 백인 소녀환자의 눈도… 그랬다. 소녀도 나를 지나 머난 먼 곳을, 그리고 억만년의 지나간 세월을 나를 뛰어 넘어 보고 있는 듯 했다. 5살 때 백혈병을 앓았고 완치 되었었다. 이 소녀가 세상을 등지고 난 후, 의학계에는 많은 발전이 있었다. 지금 같았으면, 여러 방법을 써서 소녀의 생명을 연장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소아 백혈병은 90%가 완치된다. 어린이에게 오는 암의 빈도가 지난 40년 동안 증가 추세이다. 십만명 중 13명의 빈도가 19명으로 늘었지만 치사율은 90%에서 10%로 줄었다. 끈임없는 연구, 새로운 약의 개발, 몰랐던DNA 구조에 대한 이해등, 의학계는 장족의 발전을 했다. 미국에서 약 4500명의 어린이가 매년 발암한다. 암은 어린이 사망의 이유중 제일 큰 이유이다. 대부분 백혈병과 뇌암을 말한다. 쉽게 이야기 해 보면, 8명 발암 소아 중에 한 명은 죽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래도 희망적인 통계는 지금 약 40만명의 소아암에서 완치된 성인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록 60% 정도는 치료로 인한 만성 부작용으로 힘들어 할 수 있지만 이것은 견뎌낼 수 있지 않은가 싶다. 떠나간 생명은 다시 불러 올 수 없지만 부작용은 견딜 수 있으므로, 함께 참아 내자고 부모와 아이를 이해시키고 미리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의사들의 임무이다. 다른 종류의 암을 발생할 수 있고, 암 치료로 인한 근육질환 또는 불임 같은 것이 장기 부작용 중의 하나이다.

올 해도 4만여명의 어린이들이 암치료를 받게 될 것이다. 성공리에 치료를 마치지 못한 아동을 보내야만 하는 아이의 부모, 형제 그리고 주치의들이 또 아파하겠지. 첫 키모치료로 완치됐지만, 재발한 병을 이기지 못하고 떠나 간 그 소녀 환자가 유난히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이디오피아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산등성이를 따라 걷던 소구를 팔던 소녀의 빈곤이, 그 아이의 체념이 채우고 있었다. 시바여왕의 성터라는 허허 벌판은 억겁을 살아 온 바람소리가 삶의 무상함을 깨우쳐 주고 있었다.

(작가 주: 이디오피아는 가난해도 긴 역사를 가진 고대 문명발상지로 40% 이상이 크리스챤임.)

중앙 오픈 업 3월

세상이 달리 보인다

가끔 손주들을 보아 달라는 청탁이 온다. 이번에는 교사와 학부모간의 컨퍼런스로 인해서 교사들은 종일 학부모들과 스케쥴이 잡혀있고, 아이들은 등교할 수 없다. 또 큰딸, 사위는 자신들의 시간을 조정해서, 세 아이의 세 교사들을 만나야 한다. 이런 컨퍼런스가 보통 일년에 두번있다.

학교가 닫는 날들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들여다 본다. 여름방학은 6월 초 부터 8월 중순까지 무려 두달 반이나 되고, 겨울방학은 크리스마스를 전후해서 시작하여 새해 첫날을 지나야 끝난다. 캘리포니아 학교들은 약 14개 정도의 특별한 휴일들 ( 독립기념일, 노동절, 메모리얼데이, 콜럼버스 날, 프레지던트 데이, 마틴루터 킹 쥬니어 데이, 시저 차베즈데이, 추수감사절등) 이 있고, 학교에 따라 다르지만 평일중, 일 년에 약 일 주일 정도는 클래스가 없는 셈이다.

이번에는 손주들과 함께 브렌트우드에 있는 게티 뮤지엄을 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쉬는 날이 되니 아이들은 아침도 먹지 않은채 우리들에게 떨구어졌다. 우선 아이들의 아침식사를 해결 해야 했다. 다섯, 여덟, 열살박이들이 선호하는 아침식사의 종류는 달랐다. 우유없이 시리얼만 먹는 녀석, 계란 반숙을 청해온 녀석, 빵을 토스트하되 아무 것도 바르지 말라고 청해온 녀석, 그리고 나와 남편의 식성 또한 다르다 보니 일일 레스토랑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로, 각자가 만족할 만한 아침식사를 끝내고 우리는 뮤지엄을 향해 나섰다.

게티뮤지엄을 택한 것은 조경의 아름다움이 한 몫을 했기 때문이다. 이 박물관은 1997년 완성된 것으로, 그 내용물도 좋지만 건축의 특이함과 정원의 아름다움이 뛰어나다. 곳곳에는 벤취, 돌로 된 쉼터, 꽃밭, 잔디가 아이들의 동선에 방해가 되지 않게 설계되어 있다.
건축학계에서 잘 알려진, 지금 ‘미투’ 사건으로 힘든 리차드 메이어가 설계한 이 뮤지엄은 16,000톤의 흰색의 석회암을 이탈리아에서 수입해서 지었다. 돌을 약 30인치 정사각형으로 잘라 붙인 넉넉함이 자연 그대로의 우둘두울한 상태로 쓰여져 아름답다. 잘 보면 나뭇잎, 새 털 같은 화석이 있는 곳도 있다.

아이들에게 오늘의 뮤지엄 방문 때는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세 녀석 모두 의외로 제공되는 자유로움과 ‘조심하라’는 잔소리 없이 기기(器機)를 쓰게 하는 할머니의 관대함에 놀란 듯 했다. 나의 셀폰, 오래된 모델의 또 하나의 셀폰 그리고 카메라를 임시 소유물로 쓸 수 있다는 자신감에 심각한 표정을 해 보였다. 사진을 찍고 싶은 대상, 그것이 꽃이던, 건물이던, 하늘이던, 바다이던 간에 우선적으로 대상을 넣은 구도를 결정하는 과정을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아이들은 사진을 ‘찍어대었다’. 모두 사진작가나 된 듯, 여기 저기 다니며, 순간순간을 잘 포착하는 듯 했다. 갑자기 성숙해진 모습이었다. 우리들은 태평양 바다의 원대함, 산의 능선, 코 앞에 있는 작은 꽃들의 신비함에 함께 감탄하는 순간도 있었다.

아이들이 사진기를 통해 보는 세상은 어떠했을까. 렌즈를 통해 볼 수 있는 시야는 좁고 다르다는 것을 알았겠지. 또 확대를 하다 보니 그냥 지나쳤던 것을 처음인양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아이들은 깨닫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미래가 그들의 가슴에는 그렇도록, 때로는 달리, 또는 좁게, 때때로는 확대되어, 아니면 생소하게 부각될 것이다. 그 준비과정을 시작했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마쳤다.

 

중앙 오픈 업 3월

에티오피아, 종교, 문화, 과학의 원산지!(II)

기원전 900여년으로 돌아가자. 에티오피아인들이 굳게 믿고 있는 전설 내지는 역사는 이렇다. 성경에서 쓰여 있듯이 시바여왕은 솔로몬 왕을 만나러 이스라엘을 방문한다. 돌아와 솔로몬의 아들 메넬렉을 낳는다. 청년이 된 메넬렉은 아버지 솔로몬을 보러 이스라엘에 갔다가 야훼의 계약괘를 에티오피아로 가져왔고(훔쳐왔고?) 그 계약궤의 행방은 애매하다.

한편 서기 49년 경, 그러니까 예수가 승천한지 19년 후가 되는 때에, 예수의 제자 중의 한 사람인 성 마르코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기독교회를 만든다. 이것이 콥틱동방정교이다. 콥틱이라는 말은 17세기 라틴어에서 유래되었고 그 후 그리스어의 에집트원주민이라는 뜻이 연류되어 있다고 한다. 현대의 콥틱교회, 알렉산드리아 그리스 정교, 콥틱 카톨릭 교회들이 바로 당시의 공동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성 마르코와 성 요한 마르코가 동일인물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성 마르코는 지금의 리비아 지방 태생이었고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했다. 그의 유물의 일부는 이탈리아 상인들이 알렉산드리아에서 훔쳐다가 베니스로 가져오게 되면서 성 마르코 대성당이 이탈리아 베니스에 지어졌고 그곳에 모셔있다한다. 나머지는 알렉산드리아에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에티오피아의 기독교는 사도행전에서 읽을 수 있듯이 간다게 여왕의 내시 에티오피아 사람의 이야기를 보아서도 확실한 역사를 갖고 있어 보인다.

많은 박해를 받았던 콥틱기독교인들의 삶, 그들의 하느님을 믿고 가르침을 실행하는 삶은지금도 에디오피아사람들의 몸에 깊이 배어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서기 330년에 에자나 왕이 (주: 당시 악숨왕국이라 불리었다)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면서 활발한 종교생활을 해 왔다. 지금도 그들은 교회를 신성하게 유지한다. 교회입구인 문에 손과 머리, 가슴을 대고 기도하는 순례객, 또 맨발로 교회를 돌며 묵상하는 순례객들을 볼 수 있다. (주: 사진) 교회를 들어 갈 때, 신발을 벗어야 하고, 남자들은 모자를 벗고 여자들은 머리를 가린다. 어떤 교회당에는 여자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유일신인 기독교의 국교화로 에티오피아의 찬란한 문화를 상징했던 태고적 무덤 위에 세워진 오발리스크는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에집트 오발리스크와 달리 악숨 오발리스크라고 불리는데, 그 조형문양이 에집트것과 달리 특이하고, 직선, 사각, 대칭적인 형태를 갖고 있어서 어떻게 보면 현대식 무늬처럼 멋있다. 조각조각을 이어서 만든 것이 아니고 하나의 큰 돌을 써서 만들었다.

에티오피아 하면 반드시 알고, 또 볼 수 있으면 보아야 하는 땅 속의 집채 이상 크기의 붉은 암석, 그것도 한 덩어리인 돌을 깍아 만든 암석교회들이다. 통틀어 11개가 랄리벨라에 있다. 11세기에 만들어 진 것으로 당시 모슬렘 지역을 지나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갈 수 없게 된 에티오피아 사람들을 위해 지은 것으로 ‘새로운 예루살렘’이라는 의미를 갖고 지어졌다.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속해 있다 보니 유네스코에서 교회들을 자연붕괘에서 보호한답시고 거대한 텐트를 지상에 쳤기 때문에 교회들의 장엄한 모습을 온전하게 볼 수 없는 결점이 있다.

그 중 한 교회는 텐트가 쳐 있지 않아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성그레고리 교회이다. 그리스도가 십자가형을 받은 장소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하는데 랄리벨라 왕이 묻혀있다. 일화에 의하면 성 그레고리 (에티오피아 말로 베트 기요르기스)가 랄리벨라왕 앞에 나타나 자신에게 바쳐진 교회가 없다고 불평하자 왕은 아름다운 교회를 지어 줄 것을 약속했고 그리 만들어 진 교회로 11미터 땅 밑으로 내려가서 교회주위에 만들어져 있는 큰 홈 (또는 길)을 통해 교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큰 교회를 통해서 작은 교회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골고다교회라고 불리는 아름답고 작은 교회를 사제가 지키고 있었다. 나는 여자라서 들어 올 수 없다고 말했다. 머리만 드리 밀고 구경은 할 수 있었다.

옆의 사진은 세 명의 관광객과 교회의 크기가 잘 비교되어, 그 웅장함을 가늠할 수 있다. 에티오피아의 어떤 교회를 가더라도 교회는 세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많은 교회들이 원형이었고, 시골의 교회들은 초가지붕으로 되어 있었다. 원형이기 때문에 제일 밖의 둥근 통로에 교인들이 미사 중에 머문다. 두 번째 중간 통로는 영성체를 하러 들어가는 곳이다. 제일 중심은 지성소로 야훼의 궤, 그러니까 궤의 카피본들이 모셔져 있는 곳으로 성직자이외에는 들어 갈 수 없는 곳이다. 서방교회처럼 사각형 건물의 교회이더라도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제 야훼의 계약궤의 이야기로 글을 마칠까 한다. 악숨(Axum)은 고대 에디오피아의 문화지였고, 오랫동안 수도이었던 곳인데 이곳에 야훼의 계약궤가 있다는 것이다. 찾아 간 교회는 사진의 오른쪽 작은 교회인데 그곳을 지키는 사제가 있고, 아무도 들어 갈 수가 없는 전통이 있었다. 그러니 계약궤를 본 사람은 없을 수 밖에 없다. 곳곳에 있는 콥틱 동방정교교회에는 나무로 된 모조궤가 아닌 모조판이 모셔져 있다. 이 모조판들도 교회 행사 때에 사제가 머리에 이고 행진할 때 일반 교인들에게 보여지지만, 헝겊에 싸여져 있어서 실제 목판은 볼 수 없다. 영국이 에티오피아를 침범했을 때, 영국병정들이 훔쳐 온 것들을 대영제국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 내가 찾아 본 것은 나무판 중앙에 모세 때의 십계명 판이 아닌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조각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에티오피아인들의 기독교 신앙은 콥틱동방정교이지만 지금은 에집트, 중동의 동방정교회에서 독립된 상태이다. 콥틱기독교, 동방정교는 에티오피아 토속문화와 잘 어우러져 있어서 서방기독교 또는 그리스정교와는 조금 다른 냄새를 풍겼다. 토속 유대문화의 일부를 실행하면서 살아온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신약보다도 구약의 법에 따라 살았기 때문일 것이고, 그들이 뼈속까지 깊이 자기 것으로 여기는 하느님의 계약궤를 가진 특수민족이란는 점, 또 누가 뭐라던 시바여왕과 솔로몬의 결합으로 그들은 유대혈통의 황제들이 있었다는 믿음이다. 이러한 그들의 이야기를 ‘The Sign and The Seal: Graham Hancock (Crown Publisher 1992)’에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힘든 여정이었지만, 에티오피아를 참 잘 다녀왔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