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뉴스, 배드 뉴스

뉴욕의과대학이 미국 의과대학 씨스템에 혁신적인 폴리시 변경을 선포했다. 얼마나 멋있고 고마운 일인지, 희망스럽고 신나는 일이다. 뉴욕의대 부속병원이 ‘랭곤의과대학 병원’ (Elaine A and Kenneth G Langone Medical Center)이라 불리우게 만든 장본인, 켄 랭곤은 모든 의대생들이 공짜로 의과대학을 다닐 수 있도록 학자금을 전액을 면제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러한 폴리시가 연속되려면 6억불 (600 million) 이 필요한데 벌써 4억5천만 불이 모금되었고, 그 중 랭곤이 일 억 불을 이미 희사했다고 한다.

뉴욕의과대학의 일 년 학비는 5만5천불이다. 미국의 의사들은 의과대학을 졸업 할 때 쯤 되면 평균 이십 만 불의 빚이 싸인다. 빚에는 이자가 붙고, 가정을 꾸며야 하는 젊은 나이이다 보니 이에 필요한 생활비까지 감안해 볼때 빚을 쉬 갚아 버리기는 어렵다. 지금 미국에는 약 백만명의 의사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4천4백만 명의 의사들이 빚을 지고 있다. 총 1조 5억불에 달하는 금액이다.

켄 랭곤은 ‘홈 티포’의 공동창립자이다. 그의 아버지는 배관공, 어머니는 식당 직원이었다. 그는 풀타임 직장을 다니면서 뉴욕대학의 야간 비지니스 클래스를, 그것도 파트타임으로 수강했다. 그래서 뉴욕대학의 야간 비지니스 프로그램을 ‘랭곤 프로그램’이라고 부른다.

그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옮겨 다닌 직장은 꽤 많았다. 여기저기에서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창업에 참여하거나 있는 사업체를 변형해 걸 맞는 최적사업으로 만들어 간 흔적들이 있다.

켄 랭곤에게 왜 그런 생각을 했느냐고 어느 앵커가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앞으로 5년 후면 미국에는 의사가 부족한 싸이클로 들어 갈 것이라고 본다. 무학자금 의과대학 수료는 그야말로 빚 없이 자유로이 의대 과정을 이수 하고, 수입에 상관하지 않고 원하는 전공분야를 택할 수 있게 사회환경이 바뀔 것이다. 덧 붙여서 그가 한 말이 슬프다. 그가 만났던 어떤 의사는 의과대학을 졸업을 한지 35년이 지나도록 학창시절의 빚을 다 갚지 못하고 있더라고 말이다. 의사들의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삶의 단편을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앞으로 다른 의과대학들이 이에 동승해서 무-학자금 의과대학 씨스템으로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예상컨데 시간은 걸려도 그렇게 될 확률이 꽤 높다. 뉴욕의과대학에는 이 폴리시로 더 좋은 의사지망생들이 몰릴 것이고, 이가 염려되어 그리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미 이 대학은 유능한 의사들을 많이 배출한바 있다. 그 중 소아마비 예방약을 만든 알버트 세이빈, 조나 설크가 대표적이다.

그런 굿뉴스가 있느냐 하면 배드뉴스도 있다. 여러 곳에서 동료의사들이 제 수명대로 살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다. 미국은 일 년에 의과대학 한 클래스 정도 또는 작은 의과대학이라고 칠 때 전교생에 달하는 숫자가 자살로 인해 사라져 버리는 비상사태에 처해 있다. 하루에 한 명 꼴로 의사들을 자살로 잃는다니 믿겨지지 않는다. 더 우려되는 것은 사망한 의과대학생들의 자살이 사고사 다음으로 많다는 것이다.

우울증을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추측한다. 우울증은 어디서 왔는가를 자문할 필요가 있다. 공부하기 위해 빌린 은행빚, 쌓여가는 빚 덩어리, 질적인 삶의 하락, 과로, 만성 피로, 수면부족, 작은 비판에도 예민한 완벽증, 과중한 학과 공부나 요구되는 막중한 임무 때문에 사그라져가는 소셜라이프…약물중독, 알콜중독..유전..아마도 복합적인 이유일 것이다. 함부로 해석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뉴욕의과대학 처럼 모든 의과대학이 무-학자금 조치를 취해 준다면 의사들의 자살로 인한 사망률이 줄어 들지도 모르겠다. 의사들의 써클 안에서의 자살이라는 병이 완치되지는 않겠지만 줄어는 들 것이다

나는 애국자인가?

나는 애국자인가?
육중해 보이는 동판 여러개가 벽에 걸려있다. 한국 이름, 영어 이름들이 동판의 가슴에 세겨져 있다. 지난 달 7월, ‘한국어 진흥재단’이 미국 정규공립 고등학교 행정가들을 인솔하여 한국을 방문했을 때, 서울 용산구 옛 육군본부 자리에 있는 ‘전쟁기념박물관’에 들렸다. 교장 중의 한 사람이 첫 줄에 ‘OO 사단’ 이라 써있는 동판앞에 서서 이름들을 읽어 내려 가고 있다. 바로 한국전에서 전사한 20여 만명의 한국군과 유엔군들의 이름이 새겨진 전사자명비였다. ‘누구를 찾으세요?’ 하고 물으니, ‘내 삼촌이요…’라고 대답한다. 삼촌에 대해 자세한 것을 알지 못한 그가 20여만명의 이름 속에 파뭍혀 있는 삼촌의 이름을 찾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이었다. 나도 전사한 큰 오빠의 이름을 찾지 못했다. 그도, 나도 수 많은 이름들 앞에서 침묵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한국민에게는 너무도 처절했던 육이오는, 내 모국이 조선시대 부터 겪은 27번의 전쟁중 하나로, 실상 영어권 사람들에게는 이차대전이나 월남전에 비해 ‘잊혀진 전쟁’이라 불릴 만큼 관심을 받지 못했던 전쟁이었다. 미국을 위시한 16개국이 유엔의 이름으로 실전에 참가해 주었고, 41개국은 장비, 의약품등 다른 종류의 원조를 주었다고 예비역 대령 출신이라는 백발의 자원봉사 안내원이 설명한다. 통털어 약 18만명이 죽고, 3만3천명이 행방불명, 57만명이 부상을 당한 전쟁이 ‘잊혀진 전쟁’이라니… 미국은 그 16개국 중에 가장 많이 자국의 젊은이들을 잃었다. 물론 남한은 미국 젊은이의 3.8배 되는 약 14만명이 전사했고, 4.4배 되는 45만명이 부상당했다. 이 통계는 군인에 한한 것인데, 일반인에 대한 대략의 숫자는 남한에서만 백만명이라 한다.

전쟁에 대한 강의를 경청하는 행정가들의 모습은 진지하고 엄숙했다. 전시품들은 신라 삼국통일 때의 것 부터, 임진왜란, 육이오를 망라하고 있었다. 모형거북선, 각종의 전투기, 탱크들, 문명이 발달하기 전에 쓰던 창과 칼들.

‘전쟁과 평화에 대한 리서치’ 를 하는 연구소가 스웨덴 업살라 대학, 핀랜드 오슬로의 평화연구원, 카나다 뱅쿠버의 사이몬 프레이저 대학에 있다. 이들의 자료를 보면2011년 한해동안 37개의 전쟁이 있었고, 현재진행형의 전쟁, 갈등으로 만명이상의 사상자를 낸 전쟁이 5개나 된다 했다. 1945년 부터 2012년 까지 만명 미만의 사상자를 낸 전쟁은 13개이다. 만명이상이 죽은 전쟁수는 많지 않다해도, 사상자의 숫자는 엄청나다. 이차대전만 보아도 사십만명이 되고, 3조 달러의 경제적 손실이 있었다.

열악한 역사 속에서도 한글이라는 위대한 글이 만들어 진 것에 교장들은 놀라워 하고, 존경심을 표했다. 누군가 말한 것 처럼, 일제강점기 동안, 한글말을 잃지 않고, 한글을 숨어서라도 배우고 써 왔기 때문에 한구인의 ‘얼’이 살아 남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종대왕의 백성, 그 후손들이 지은 한글박물관은 웅장하고 멋있었다. 방문객 미국 교장들은 한글이 만들어진 과정에 대해, 짧은 시간 동안 받은 한국말 렛슨에서 알게된 수월함, 또 그 과학성에 놀라고 감탄했다.

한글이 세계언어로서 일차적으로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에서 체계적인 정규교육 방법으로 자리를 굳히는 것에는 이들의 관심과 응원이 필수적이다. 혈통, 비혈통을 막론하고 미국 중고교생들에게 한국어 반을 통한 한국어 클래스의 탄생내지는 존재여부를 그들이 최종 결정하기 때문이다.

한글날을 기해서 총영사관저 오찬에서 다시 교장들을 만날 것이다. 세종대왕께서 조선이 전부였던 당신 때 보다, 한글의 얼을 세계로 펴는 우리를 보시며, 당신을 닮았다 하시면 좋겠다.

가을 인사

너무 오랫동안 적적했습니다.

부업 즉 ‘한국어진흥재단’이 일이 주업처럼 되어버려 무척 분주한 여름을 지냈습니다. 비록 뜨거운 여름을 보내는 엘에이 날씨이지만 가을빛이 역력합니다.

이제부터는 자주 글을 올리겠습니다. 저를 아껴주시고 성원해 주시는 여러분들에게 가을이사를 올립니다.

감사드리며,

모니카 올림

 

손녀에게서 온 카드

오늘 아침에도 ‘소중함’으로 채워진 내가 되어 하루를 맞이 한다. 주위는 밝고 따뜻하고 조용하다.
‘소중한 할머니, 가지고 있다. 멋진 어머니의 일! 알겠어? 스칸디나비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십시오! 재미있고 안전한 여행을 떠나십시오! 애정, 미준’
이렇게 이상하게 쓰여진 카드를 나는 아침마다 읽는다. 그리고 나의 가슴 깊은 곳을 들여다 본다. 빛과 따뜻함이 서늘하고 깊은 곳을 채워가고 있다.

아홉살짜리 큰 손녀가 어머니 날에 제 어미의 엄마인 나에게 자신이 만든 카드에 구글 (google)사전을 찾아가며, 제가 쓰는 단어들을 번역해서 쓴 글구이다. 나는 그 때 엘에이에 없었다. 접혀진 카드의 다른 면에서는 이렇게 썻다. ‘ Dear Halmoni, Have a grand mother’s day! Got it? Have a great time in Scandinavia! Have a fun and safe trip! Love, Jessica Ryoo Thomas’ Jessica와 Thomas는 내가 붙인 가명이고, 그애의 가운데 이름은 나의 성, 아니 정확히 말해서 내 남편의 성이다.

한국말을 하는 혈통, 비혈통의 사람이라면, 이 아이가 한국말로 쓴 사랑의 문서가 엉망인 것을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뭐 이런걸 글이라고? 훽~ 던저 버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카드에 쓴 글씨는 내 아버지의 늘 하시던 표현을 빌린다면 ‘개발 소발’이다.

나는 다시 한번 한글의 과학성에 놀라지만, 언어란 어느 정도 기본적 교육과 실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한글은 어순이 영어와 다르다. 생각의 바른 표현은 문화가 끼치는 정서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이 아이의 한국말로 한 표현이 문화의 이질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 참으로 외국 말이란 자꾸 쓰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계 외조부모를 두고, 한국계 엄마에게서 태어난 아이이지만, 한국말을 한다던가, 한글을 쓰고 읽고 제 것으로 만들려면, 이 아이에게도 시간과 관심의 투자가 필요하다. 이미 한번 포기 한 적이 있던 터였다.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Have a grand mother’s day!” 라는 구절을 google을 통해서 직역을 하다보니 한국말의 어순에는 동사가 뒤로 간다는 것을 모르고 있던터라, ‘have’ 를 다른 단어와 붙여서 함께 번역하지를 못하고 ‘가지고 있다’ 라고 따로 쓰고 있다. 또 ‘Got it?’ 이라는 문구는 아이가 평상적인 ‘good’라는 표현 대신 ‘좋은 것 보다 더 멋진, 더 근사한’ 이라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grand’라는 단어를 쓰고, 그점을 강조하기 위해 ‘Got it?’ 했던 것이다. 또 재미있는 것은 ‘grand’ 와 ‘mother’를 붙여 쓰면 할머니라는 뜻인데 이 두 글짜를 띄어서 써서 그 효과를 돋 보이게 했다.

다음 주, 나는 한국어 진흥재단 이사장의 자격으로 미국 중고등학교의 교장단, 교육감 팀, 한국어 교사 팀과 한국말을 배우고 있는 장학생 팀을 인솔하고 모국을 방문한다. 첫째와 셋째 팀의 대부분은 비한국계이다. 그들이 한국 땅을 밟으면서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와 한국말에 대한 자신의 과제를 나름대로 풀게 될 것을 바라고 있다.

미국으로 귀국한 후, 감사의 카드를 보내 올 것이다. 내 손녀와 달리 철자법, 어순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말이다. 그래도 나는 손녀가 쓴 ‘소중한 할머니’, ‘애정, 미준’ 이라는 표현을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이 사랑한다.

 

아,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

[LA중앙일보] 발행 2018/06/18 미주판 19면 기사입력 2018/06/17 16:18
그들의 얼굴은 아름다웠다. 스톡홀름 노벨 뮤지엄에 들렸을 때 노벨 문학 부문 수상자들의 스냅 얼굴 사진들을 보며 느낀 것이다. ‘아,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라는 생각이 첫 순간에 들었다. 나 자신이 전시된 사진 주인공들의 나이대에 속하거나 더 늙었는지도 모르는데, 어울리지 않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노벨 뮤지엄에 들르기 전까지 주름은 추하게 보인다는 분별 없고 습관적이며 반사적인 생각을 하고 살았던 것 같다. 이번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의 주름진 얼굴을 보면서 주름도 멋있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들 하나하나의 얼굴에 진 주름은 형태가 달랐다. 그래서 그런지 같은 표정도 아니었다. 같은 점이 있다면 날카로우면서도 정(精)하고 인자한 눈이었다. 말로는 설명이 어려운, 내가 본 그들의 얼굴은 정돈된 삶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신들의 삶뿐 아니라 주위의 생명들을 두루두루 끌어안고 떠들어 대는 혁명가가 되는 대신 소리 없는 혁명을 속으로 감당하며 살았기 때문일까. 모든 생명이 숨 쉬는 길목에서 동조자로, 관찰자로 세상을 일깨웠던 연륜이 보인다.

‘두 번은 없다’라는 시로 한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199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비스와바 짐보스카(Maria Wisława Anna Szymborska, 1923~2012) 할머니의 마르고 쭈글쭈글한 손을 포착한 사진도 있었다. 아름다웠다. 그 작고 힘없어 보이는 손으로 그녀는 세계를 일깨우는 시를 쓸 수 있었다니.

나는 감동을 자아내는 시간을 노벨 뮤지엄에서 보냈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에 비판적인 내가 주입된 지식의 보따리를 노벨 뮤지엄에서 풀었다면 말이 되는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때 교과서에 실린 마담 큐리의 이야기를 읽고 외웠어야 했다. 그래서 큐리 부인의 결혼 전의 성(性)이 스클로브스카라는 것도 아는 터였다. 폴란드 출신으로 프랑스에 귀화했던 그녀는 물리학, 화학으로 36세, 44세에 노벨상을 받았다. 그녀의 가정에서 다섯 개의 노벨 메달을 가져갔다는 것은 역사상 없는 일이고, 그녀는 최초 여성 수상자였다. 노벨상을 받고도 여자라서, 외국인이라서 과학자, 학자의 대우를 손쉽게 받지 못한 힘든 삶을 살았다. 그러나 자신이 발견한 두 개의 동위원소 중의 하나를 그녀의 모국 폴란드를 기념하며 폴로니움이라 명명할 줄 알았던 여성이었다.

큐리 부인과 남편, 딸 아이린, 사위 프레데릭 졸리옷이 획득한 다섯 개라는 노벨상을 놓고 나는 동료 의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획기적인 한 가정의 업적이 유전자 때문인지, 환경 때문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들의 결론은 약간의 유전자, 대폭의 환경이라는 것에 동의했다. 가변적인 요소가 있다면 외부의 압력에 의한 노고가 아니라 개개인의 자발적인 호기심, 호기심을 갖고 찾아가는 끈기라는 것이었다.

그 말이 맞는다. 나의 전공 분야에서 가끔 쓰는 물리현상 ‘브레그 피크’라는 것이 있는데 이 현상은 윌리엄 헨리 브레그 경이 발견해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의 아들 윌리엄 로렌스 브레그는 25살의 나이에 물리학 노벨상을 받았다. 최연소자였다. 환경의 역할이 컸을 것이라는 결론이다.

나는 네 손주를 둔 할머니다. 부모들인 우리들은 아이들에게 사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아이들의 롤모델이 되어 주면 좋겠다. 노벨 뮤지엄을 나오며 힐끗 보았던 달라이 라마의 안경, 요셉 브로드스키의 타자기가 내 의견에 동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