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na Poeschl 황영혜 양에게!

Dear Young Hye,

The story of your journey published in The Korea Daily on February 28, 2018—describing your experience as a toddler, moving from Korea to the USA, and then as a college reporter traveling from the USA to Pyung Chang, Korea—touched me and many hearts around me.

You may wonder what it mean by ‘many hearts’. The folks I am alluding to are the Board of Directors of the Foundation for Korean Language and Culture in the USA (FKLC), who have been closely working together to promote Korean language and culture in American public schools. This nonprofit organization, located in Los Angeles, creates and supports Korean language classes for both formal and informal education contexts. All of our directors, including executive and vice-executive directors, are dedicated and committed to the mission of sharing Korean language and culture. In fact, Dr. Steven Lee, the President of George Mason University in Inchon where you are a student, is one of the board of directors at our Foundation. While I am not a teacher ( but a medical doctor specializing in Radiation Oncology, a mother of 2 professional daughters, and grandmother of 4), I was elected to be the President of the Foundation for this term. It is a great honor for me.

One of our programs includes supporting visits to Korea for American high school scholars (like you once were) who are interested in Korea, it’s language, and culture. The chosen high school scholars gain opportunities to experience Korea first-hand on Korean soil. We hope that our high school scholars can see Korea, in its richness and complexity of history, just as you have.

Young Hye! I am guessing that your experiences growing up in the USA might have been difficult at times, sad at other times. But I am convinced that you are one of the most blessed individuals on earth. Your story in The Korea Daily tells me that.

I would like to say that we are all in the same boat called ‘life,’ whether you are an adoptee or non-adopted child. This boat can be too small or too big, too rough or too complicated. The ocean the boat sails on is often more turbulent than smooth or easy. But somehow we persevere, and your story showed us how we can do so gracefully while getting to the places we would like to reach. Your story teaches us to be positive, inquisitive, courageous, resilient, wise and happy.

Before concluding my letter to you, I would like to send special thanks to your adopted parents for the love and life they have shared with you. Their daughter, Younghye, has shown us the way to reach someone, somewhere. Tell them we admire their daughter Younghye!

Best of luck in locating your birth parents and, biological brother!

Best regards,

Monica C. Ryoo, M.D.

President
Foundation for Korean Language and Culture in the USA
680 Wilshire Pl. Suite 416
Los Angeles, CA 90005
Tel) 213-380-5712
E-mail : info@klacUSA.org
Website : http://www.klacUSA.org

이 편지는 중앙일보 본국지 2월 28일자에 보도된 한국출생 미국 입양아의 기사를 읽고 쓴 글로 곧 중앙일보에 publish 될 것입니다. ‘The roots’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 교육 카페” 소개합니다

초봄에 모두 건강히 지내시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중앙일보 교육 담당 장연화 Nicole, MBA 께서 신문에 자녀 진학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알려드리고,
조언을 쓰시는 일 이외에도, 오디오 팟방 사이트를 통해 부모님들에게 다가가고 계십니다. 자녀들의 higher education 에 대한 여러 방면의 흥미로운 토픽을 갖고, 또 그 과정을 거치며 견뎌내야 하는 임무들을 의논합니다.

저를 위시해서 엘에이지역 지경희 고교 카운슬러, 정 수잔 소아정신과 전문의, 엘레나 폴 밸리지역 차터 스쿨 교장을 인터뷰하며 내보내는 싸이트입니다.

아시다싶이 저는 선생은 아니지요. 또 ‘소아’ 하고는 관계가 없는 전문의이지요. 하오나 두 딸을 기른 엄마로, 네 명의 손주들을 가진 할머니로 이 방송에 참여하면서 저의 실수를 나누고, 학부모님들에게 ‘밥상머리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혹시 손주들이 있으시면 들어 보시고, 듣고 싶으신 토픽이 있으시면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장연화 부장님께 알려 드리겠습니다. 주위의 젊은 학부모님들이 들으시면 도움이 될 듯 합니다. 자동차 운전중에도 들으실 수 있는 방송입니다. 한국에서도 듣고 계시더군요.

podbbang.com/ch/10934

싸이트 이름입니다.

류 모니카 드림

무례함에 대한 엇갈린 시선

바람에 날린 하얀 돌배꽃잎들이 아스팔트를 덮고 있는 이곳 엘에이의 겨울은 화창하고 따뜻해서 나무들도 혼동이 되나 보다. 어떤 집 앞마당에는 봄에 피어야 할 목련이 지금 활짝 피어 있다. 정원사들이 바쁘다.

우리집 정원사는 두명의 도우미 일꾼과 동행한다. 그 중 한 사람이 다리를 전다. 어렸을 때 다친 모양이다. 네살 손주와 시간을 보내던 지난 주 어느 오후, 손주는 일꾼의 걸음 걸이가 이상하다는 것을 보았다. 나에게 묻는다. ‘저 아저씨는 왜 저렇게 걷지?’ ‘쉬~~, 조용 조용 말해. 들리지 않게!’ ‘왜?’ 이 아이가 두가지에 대해서 ‘왜?’라고 묻는 것이었다. 왜 변형된 다리를 갖고 있는지, 왜 할머니가 조용히 들리지 않게 말하라고 하는 것인지를 묻고 있었다. 그러자 녀석은 ‘내가 가서 물어 볼께. 왜 다리가 그렇게 됐는지.’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사람에게 가서 묻는 것은 무례한 짓이라고 말하고 우선 막아야 했다. 그 애는 또 물었다. 왜 무례하냐고 말이다. 그 애의 질문은 단순했고, 하고저 하는 행동도 순수했다. 아이에게 이론에 맞게 답을 해야 하는데 그게 너무 복잡했다. 모든 이유를 생략하고 그냥 ‘안돼!’라고 일축해 버렸다. 무척 찜찜했다.

몸의 일부가 망가지는 것은 웃음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현대를 사는 우리는 안다. 차별이 있을 경우 불법이라는 것도 안다. 우리가 여기 까지 오는 데 오래 걸렸다. 이러한 내면을 이해 시킬 수 있었더라면, 나는 손주를 말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또 법적, 사회적 개선에도 불구하고 이 정원사가 차별대우를 안 받았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손주의 순수한 질문은 왜곡될 수 있을 것이었다.

두 달 전 나에게 의뢰되어 온 히스페닉 계통의 23세 마리아가 생각난다. 5년 전, 십대이었을 때 골반 안에 희귀 양성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다. 지난 해 12월 정규검사에서 골반 수술 흉터라고 보기에는 좀 큰 덩어리가 발견되어 방사선 치료 가능성 타진 차 보내졌다. 여러 모로 퍼즐이 잘 맞는 것 같지 않아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의사들은 이런 경우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재조사를 한다. 병리를 리뷰하고, 영상 검사를 머리부터 가슴, 배, 골반까지 모두 다시 했다. 이 환자는 유전병 신경 섬유종증 (neurofibromatosis)의 피해자/환자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마리아는 완치될 수 없고, 점차 나빠질 것이다. 피부에 양성 종양들이 생기면서 외모는 변할 것이다. 뇌나 척추 신경에도 혹이 생겨 청각을 잃거나 다리를 못 쓰게 될 수도 있다. 이번 주 다시 마리아를 만나 결과를 알려야 한다. 처음 처럼 담담할까…

손주가 자라면 정원사의 아펏던 다리, 그런 다리를 갖고도 일 할 수 있었던 환경, 마리아의 선천적 질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그들이 겪은 외모의 변화, 그들이 참아 낸 크고 작은 기능 장애와 일반인들의 시선에 대해서도 말이다. 사회정의를 풀이 할 수 있는 예리한 눈과 따뜻한 마음을 갖고 서로 토론 할 수 있게 될 것을 바란다. 손주는 자기의 세가지 질문에 대한 나의 한 종류의 답에 대해서 이해하게 될 것이다.

자유로움의 혜택

‘할머니가 바르는 이 립스틱 때문에 할머니한테서 좋은 냄새가 나?’ 작은손녀가 묻는다.
내가 대답하기 전에 큰손녀가 재빨리 말한다. ‘할머니는 향수를 뿌려!’라고.

손주들이 나의 화장품에 흥미를 갖고 있는 것은 그 애들이 내가 사는 환경과 다른 환경에서 자라기 때문일 것이다. 큰딸의 아이들인 이 세 녀석들은 단순한 분위기에서 길러지고 있다. 아이들의 엄마인 나의 큰딸은 얼굴에 화장품을 바르지 않는다. 한국사람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맨얼굴로 직장엘 다닌다. 필요한 물건은 온라인으로 구입하고, 일요일 아침에는 파머스 마켓에서 채소와 과일을 산다. 이렇게 사는 것이 손주들에게는 노멀이다.

이 꼬마들이 남편과 나랑 함께 지나야 될 때가 있다. 제 집에서는 금지령이 내린 일들을 할 수 있는 공간에 오니 좋을 수 밖에 없다. 손자가 할아버지와 닌텐도 게임을 시작한다. 두 손녀는 나의 악세사리 서랍을 정돈해 준다고 자기들 방식에 의해서 정리를 해 놓는다. 그 결과, 내가 적시에 물건을 찾을 수 없게 되기도 한다. 때로는 볼연지, 아이 세도우, 립스틱을 발러본다. 아이들은 인간의 피부는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을 화장품을 갖고 놀다가 배운다. 또 색갈의 다양함을 보고, 두가지나 세가지의 립스틱을 섞어서 새로운 색상을 만드는 체험도 한다. 상품화 된 색갈이 아닌 나만의 색갈을 내어 화장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래서 손주들은 남과 달리 보이는 것도 괜찮다는 것을 터득한다.

너무 자유분망한 어린시절을 지나도 문제지만, 규제되고 억제된 환경에서 주입된 지식을 받아 먹으며 성장하면 이에 따른 부작용도 있다. 나도 그랬다. 때로는 괴로웠고 자신에 대한 확신을 잃을 때도 있었다. 단단하고 투명한 벽을 깨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살아 가는 우리, 역시 다를 바 없는 환자들이 내 앞에 있다.

아이들은 부모가 열어 주는 창문을 통해서 세상을 보고 또 열어주는 문을 통해서 세상으로 나아 간다. 문은 많아도 열리는 문이 몇 개 없을 수도 있다. 닫힌 문 밖의 세계는 ‘좋지 않다’고 입력되기 쉽고 궁극적으로 이것은 ‘틀리다’로 둔갑 할 수 있다. 쉬운 예를 들어 본다. 어떤 음식이던지 과식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가르치기 보다, 전혀 금지를 한다면 어느 지점부터 그것들은 ‘나쁘다’가 되고, 그런 음식을 먹는 것은 ‘틀린 행위’라고 인식되기 쉽다. 닌텐도 게임이 나쁘다고 가르치기 쉽지만, 닌텐도 게임을 젊었을 때 부터 많이 해 온 남편은 복강경 수술의 대가이다. 그가 기계를 다루는 손놀림의 정확함이나 결단을 내릴 때의 신속함은 게임을 통한 간접경험에서 얻은 것으로 생각된다.

어떤 작은 경험이, 미세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사물이 우리의 성장과정에 상상력을 동원한다. 상상력은 자유로움을 허락한다. 자유로움이 자긍심을 갖게 하고 두려울 수도 있는 나의 길, 남이 가지 않은 나만의 길을 갈 수 있게 할 것이다. 가르쳐 지지 않은 세상물사가 자주 뉴노멀로 닥아오니 우리는 세상을 보고 받아 들일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은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몰랐던 것, 보지 못했던 것에 이질감을 갖지 말고 세상을 대하고 나의 길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아이들도, 환자들도.

오지 않는 연하장

요즘은 우편으로 전달되는 중요 서류가 거의 없어 오피스 도서실 안에 설치 된 우편함은 그 의미를 많이 잃었다. 그래서 우편함을 돌아보지 않고 지나치는 새로운 습관이 붙었지만, 지난 달, 그리고 새해로 접어 든 지난 주 우편함을 매일 들여다 보곤했다.

연하장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텔마 할머니의 연하장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텔마는 삼십 여 년 전, 내가 뉴욕 주 엎스테이트 주립대학 병원에서 수련을 끝내고 전문의가 되어 카이저 병원에서 일 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만난 환자이다. 당시 중년이었던 그녀는 유방암 진단을 받은 터였다. 나의 동료 전문의와의 만남이 힘들고 깔끄러웠다 한다. 중키에 맑고 점잖아 보였던 텔마는 말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다른 소견을 받기 위해 두번째 전문의를 청구를 했다는 것은 그녀의 강인한 내면을 말해 준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텔마가 만났던 당시의 나는 트리플 마이노리티 (triple minority: 세가지 비주류 조건)를 대표하는 여자의사, 동양 여자, 젊은 의사였다.

하나의 암 덩어리가 유방에 있다고 유방 전체를 절제할 필요가 없다는 연구가 많이 발표되고 있던 때였다. 단순히 크기에 의존한 암의 단계를 우선적 중요 정보로 보았던 당시, 그녀의 암은 2단계에 미치고 있었다. 그러나 유방의 크기와 암 크기의 비율이 신체에 큰 변형을 주지 않고도 좋은 수술을 할 수 있다면 2단계 크기의 암이라 해도 완전절제를 피할 수 있다는 의학 정보도 많이 보급되고 있던 터였다. (필자 정보: 지금 같으면 우선 키모테라피를 해서 암 덩어리를 줄여 주는 방법을 쓴다.)

그 뿐 아니라, 의사를 포함한 제 삼자에게 ‘추하게’ 보이는 일그러진 육체의 변형 가능성이 있다 해도, 환자 자신이 그러한 정보를 이미 알고 이해하며 또 원한다면 환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사고 방식이 뜨기 시작하던 때 였다. 즉 모든 정보를 의사가 주지만 결정은 환자가 하도록 하는 것이 윤리에 맞는 것이라는 것을 의료계는 터득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더 더욱 당시 내가 확인 했던 것은, 미(美)에 대한 관점은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점이었다. ‘모양새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이유만으로 완치율이 동등한데, 완전절제의 의견을 고집하는 것은 미성숙한 태도였다.

텔마가 힘들었던 점은 그녀를 본 동료 남자 의사의 ‘의료 가부장적 태도 (medical paternalism)’ 이었다. 과거에 가부장적 (家父長的) 환경에서 아버지들이 가족들의 의견에 아랑곳 하지 않고 모든 결정을 아버지 마음대로 내렸다는 것에서 유래된 말이다. ‘당신이 내 아내라면 유방 완전절개를 하라 할 것입니다!’라는 의견에 그녀는 고마워하기 보다는 좌절했다. 대화의 길을 남겨 놓지 않은 선언이었다. 물론 의사들은 최선을 다해 정보를 정돈해서 의사 자신의 견해를 환자에게 전달하려 노력하지만 너무 열정적으로 휘말리다 보면 객관적 자세를 잃을 경우도 있다.

텔마는 완치되었다. 유방 부분 절개 후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그 후 은퇴하여 엘에이 동부 인랜드 쪽 은퇴마을로 이사했다. 그리고 매 년 연말이 되면, ‘아직 이 세상에 있어요.’ 라고 한 줄의 소식을 써서 카드를 보내오곤 했다.

텔마는 이 세상에 없는 것 같다. 답장을 쓸 연하장은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