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의사라는 직업 2007

나의 앞 뒤 그리고 양쪽 옆에는 갖가지 얼굴색의 관객들이 저녁 피크닉을 마치고 벤치에 앉아 연주가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연륜으로 적당히 배가 나온 슬렛킨(Leonard Slatkin)씨는 지휘봉을 들고 활발한 몸짓으로 백발을 휘날리며 들어온다.

관객은 박수로 환영한다. 올 해로 할리우드 보울에서의 연주는 당분간 마감하게 되는 그는 깊이 고개 숙여 관객에게 인사한다. 곧이어 미국 국가를 지휘하기 시작한다. 관객 모두는 서둘러 기립하고 힘차게 오케스트라에 맞추어 미국 국가를 부른다. 할리우드 보울의 7월 저녁은 적당히 선선하고 이미 해는 졌지만 그 여명은 아름답다. 나무의 모습들이 여명을 배경으로 실루엣을 드러내는 가운데 오케스트라는 자연이 만들어준 거대한 스피커를 통해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 내고 있다.

오 말하라/ 그대는 볼 수 있는가 (당당히 펄럭이고 있는 국기를)/ (지난 저녁) 황혼의 마지막 섬광에 우리들이 당당하게 쏘아대었던 것/ 치열히 목숨 건 싸움을 거치고/ 성벽을 넘어 우리들이 지켜 본 / 이 이른 새벽의 빛 가장자리에서/ 당당히 펄럭이고 있는 /넓은 줄무늬와 빛나는 별들(이 그려진 국기)은 누구의 것인가?!

미국 국가는 가사와 곡 자체가 어렵기로 잘 알려져 있다. 우선 가사가 평범한 것이 아니다. 35세의 법률가 •프랜시스 스콧 키(Francis Scott Key)가 1812년 영국과의 벌티모어전쟁을 체험하며 썼다. 아마추어 시인이었을지언정 그의 문장은 힘이 있고 세련되고 지성적이다.

또 곡 자체는 당시 영국 남성사교클럽에서 유행하던 곡을 쓴 것인데, 한 옥타브 반을 오르내리니 성악과 거리가 먼 평범한 우리네 사람들에게는 노래하기 힘든 곡이다.

할리우드 보울에 가서 오랜만에 국가적인 순간을 체험하였다면 과언은 아니다. 미국에 살면서 미국 애국가를 몇 번이나 불러 보았던가? 나의 생각이 국가에 멈춘 것은 할리우드 보울 연주를 보러가기 얼마 전에 신문에서 본 기사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기사는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는 한국계 청년 두 명이 ‘한국의 피’를 언제나 인식하며 살다가 한국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다는 사연을 보도 하였다.

엊그제는 미국 영주권을 소유한 한국인이 한국 정부를 위해 활동을 해온 혐의로 구속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북한 소주를 미국에 수입하여 팔아오는 과정에서 남한 정부를 위한 활동을 했다는 혐의다. 이것은 미국 이민법에 의하면 불법이다. 또 그 전에는 영국에서 아랍계통의 영국의사들이 그들의 모국에 대한 ‘애국정신’에서 테러행위에 가담하여 인명을 해치는 큰일을 저질렀다는 기사가 있었다.

의사는 정치에 가담해서는 안된다. 또 의사의 의료행위에는 국경이 없어야 한다. 생명에 위험이 있는 사람을 볼 때 최선을 다해 생명을 구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어야 한다.

떠나 온 모국에 대한 애국심 때문에 인명을 앗아가고 해치는 일에 가담했다는 중동 출신 의사들의 행위는 영국 영주권을 갖고 있으면서 영국에 불법적인 행위를 한 범죄인이다. 그 뿐 아니라 영국민과 그곳을 방문 중이던 외국인들에게 의사로서의 본분,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천명된 그 본분을 어겼다.

나를 비롯한 미국에서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민자들 또 의사라는 천업을 갖고 있는 한인들이 조국과 미국시민이라는 ‘현위치’를 또 의사라는 천업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혼돈이 없기를 바란다.

장애인 비서 2008

“엄마! 오늘 다른 학교에서 아이들이 놀러왔어.” “어느 학교?” “몸을 잘 못 쓰는 아이들만 다니는 학교야.” “그래? 그 애들 보고 놀리지는 않았겠지?” “쥴리 선생님이 그러는데 그 애들이 아픈 것(정상이 아닌 것)은 그 애들 잘못이 아니래. 놀리는 것은 불공평한 일이야!”

세 살짜리 큰 딸이 내가 수련의로 있던 의과대학 병원 소속의 데이케어에 다닐 때 있었던 일이다. 나의 이민 생활이 겨우 5년이 못 미친 시기였었다. 그러나 실상 이 일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깊은 의미를 부여했다.

어려서부터 모든 사람은 공평하다는 것을 교육시키는 이 나라의 시스템에 감격했던 것이다. 아주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렇게 시작된 교육은 아이들에게 참으로 좋은 믿거름이 되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미국의 대기업 또는 정부가 직원을 채용하기 전에 ‘공평한 기회’를 누구에게나 주기 위해서 반드시 얼마간의 광고를 하게 되어있다. 이 과정을 거쳐 고용된 한 직원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카이저병원에서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새로 고용되었다는 타이피스트가 자기를 소개하기 위해서 의사들의 회의에 들어왔다. 에스터라는 이름의 그녀는 아주 잘 생긴 황색 골든리트리버 견공과 함께 회의실에 들어왔다. 새 타이피스트는 시각장애인이었던 것이다.

에스터가 해야 할 일은 의사들이 환자를 보고 난 후 녹음해 놓은 내용을 타이프 해서 차트를 완성해야 하는 것이었다1. 때로는 나같이 암을 보고 만지고 진찰하는 의사들이 차트에 그림으로 병부를 설명해 놓는 경우도 있는데 그 장애인 비서를 고용한 이후 우리는 새로운 •폼을 만들었다.비서가 쓰기 편리하게 한 공간을 비워 놓아 그림을 집어 놓기 쉽게 만들기도 했다.

에스터가 일하던 방은 환자들이 오가는 통로 쪽에 있었다. 지나가던 환자들은 에스터의 재빠른 일솜씨를 보며 한담을 나누기도 하고, 충실히 주인 곁에 앉아 있는 견공에게 사랑의 말을 던지기도 하였다.

에스터는 정상인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 기능적인 삶과 또 충분히 즐거운 알찬 질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영화관에 영화도 보거 가고 겨울이면 스키도 타러 간다. 스키는 스키 선생님의 지도아래 장애인 단체가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영화는 어떻게 보니?”하고 어느 날 내가 물었더니 “배경음악을 들으면서 배우들이 하는 대화로 충분히 마음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내가 한국에서 잘랄 때는 장애인 자식은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 가두어(?) 놓는 경우가 허다했다. 또 한국에는 ‘병신춤’이라는 춤을 오락이라고 공연하기도 했고 공연을 보고 웃고 즐기던 관객들이 있었다. 그것에 비해 여기 미국에서 목격한 어린이 교육은 건강하고 아름답고 희망적이었다. 어려서부터 세상이 공평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사회, 어른들은 장애인을 색다른 눈으로 보지 않는 사회, 능력에 맞는 직업을 갖게하여 정상인과 다를 바 없이 살 수 있게 하는 사회를 보고 언제나 배우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진취적으로 말이다.

이 좋은 시스템을 악용하는 장애인단체의 이야기를 기사에서 읽고 실망했다. 이것은 선의의 법을 악용하는 몇몇 인간의 추악한 모습을 보여주는 처절한 예가 아니고 무엇일 것인가.

다시 모국으로 눈을 돌려 나의 바람을 말하고 싶다. 이제라도 낡은 문화에 젖어 육신의 불완전함을 비웃거나 업신여기는 풍조가 남아 있다면 솔선수범해서 없애야 하겠다. 한국에서도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선포하고 그들의 질적인 이해와 문화의 변화를 위해 홍보하는 태세를 보여주니 안심이 된다.

1 이 글을 정리하고 있는 2016년, 환자의 기록은 손으로 쓰거나 그린 또는 타이프 한 기록을 프린트 해서 •파일해 놓는 종이 차트가 아니다. 모든 것은 전자기록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타이피스트라는 직종은 사라진지 꽤 오래된다. (저자 주)

어린이 존엄사 타당한가?

두 주 전 아침, 뒷마당에 나갔더니 죽은 토끼 한마리가 눈을 뜬 채 수영장에 떠 있었다. 밤 사이 수영장에 빠졌던 모양이다. 목숨이 끝날 때까지 힘들었을 것에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어수선하고 아팠다.

죽는다는 것, 우리는 이에 대해 자주 그리고 너무 쉽게 이야기한다. ‘죽는다는 개인적인 사건’을 죽어본 적이 없는 우리가 죽은 이들이 말로 표현하지 않았던 생각이나 감정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나는 죽는다는 것을 개인적(이고 무척이나 사적)인 사건으로 이해하고 또 그 과정을 ‘길’이라고 단축해서 표현하고 싶다. 죽는다는 ‘개인적인 사건’과 ‘길’은 엄격히 볼 때 혼자 감수해 내야 하는 부분이 있다. 또 그 ‘길’은 누구나 한 번은 지나가야 할 숭고한 길이다.

이 길을 지나간 사람이 되돌아 온 경우는 없었다. 죽을 뻔 했다가 살아왔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을 읽은 적은 있다. 성서에도 예수가 살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그 사건들은 죽은 이들의 생각이나 심적 갈등에 초점이 맞춰진 것은 아니다.

벨기에에서 2014년 2월 13일 불치병 어린이들을 안락사시킬 수 있도록 한 법이 통과됐다.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어린이들을 조금이라도 빨리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기 위한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네덜란드도 2002년부터 12세 이상의 아동에게 안락사할 권리를 주고 있는데 그때부터 2014년 까지 5명의 어린이가 안락사를 택했다고 한다. 미국도 이 법의 제정을 위해 몸부림쳐 왔지만 오리건, 몬태나, 워싱턴주, •버몬, 캘리•포니아 에서만 허락되고 있고 그것도 어린이는 해당되지 않는다.

워싱턴주 시애틀 암센터 얼•라이언스 병원의 보고에 의하면 사망자의 0.02% (1만명 중 두 명 꼴)가 존엄사를 실행했다고 한다.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2009년 3월부터 2011년 12월 사이에 겨우 114명의 환자가 존엄사에 대해 문의했고 그 중 40%의 환자들은 본래의 뜻을 철회했으며, 40명이 극약 처방을 받았지만 24명만이 약을 먹고 죽음을 실행했다고 한다. 더 업데이트 된 미국의 통계를 보면 죽은 사람의 0.3%에서 4.6%가 존엄사를 한 사람들이라고한다. 1947년 부터 2016년 까지 종말기의 환자들중 20% 미만이 의사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5% 미만이 이를 택했다고 되어있다. 실상 ‘고통 (pain)’이 안락사를 원하는 주요 원인이 아니었다고 통계는 말하고 있다. 오레곤, 워싱턴 주에서는 1% 미만의 의사들이 실상 처방전에 싸인했다고 한다. 이에 반해 네델란드나 벨지움에서는 50% 이상의 의사들이 처방을 쓴다고 한다. 좀 위험하다.
존엄사를 혼동해서 그냥 쓰지만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PAS1 과 안락사2 이다. 설명은 밑에 보면 된다.

다시 벨기에나 네덜란드의 법으로 돌아가 보자. 세상은 청소년들이 18세가 되어야 겨우 운전면허, 정치적 투표 권리를 주고 음주를 허락한다. (어떤 곳은 21세다). 그런데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어린 아이들에게 맡기자는 법은 이해가 되지 않는 비윤리적이고 위험한 법이다.

존엄사가 ‘고통’을 빨리 끝내기 위한 것이 주된 원인이라 해도 말기 암환자들은 많은 고통을 견겨낸다. 존엄사라는 방법을 쓰지 않고도 말기 환자들을 돕는 방법은 많이 있다. 의학의 발달로 지금은 새로운 전문분야로 되어 있는 팔리애티브 메디신 (Palliative Medicine), 고통관리 (Pain Management), 호스피스 등이 그것이다. 이쪽 분야의 전문인들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환자의 고통을 줄여 줄 수 있다. 여러 약을 혼합해서 쓰거나 수술로 신경을 죽이기도 한다. 또 말기 환자들은 우울하기 쉽다. 이 두 가지만 잘 돌봐 주어도 말기의 삶을 더 의미있게, 아프지 않게 보낼 수가 있다.

어린이 존엄사 법은 의사들의 지지를 받기 어려운 비윤리적인 것이므로 마땅히 재고되어야 한다. 또 의사들 또한 법에 동조하기보다 새로운 전문인들이 환자 치료에 합세하도록 촉진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1. PAS (Physician Assisted Suicide/Death): 의사에게 환자가 자발적으로 극약 처방을 요구하여 이루어지는 죽음. 환자가 처방을 받고 자신이 원하는 때에 복용한다. 여기서 의사나 가족 또는 친지가 먼저 이러한 행위를 시도하는 것은 불법이다.
2. 안락사 (Euthanasia): 의사나 의료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극약을 종말환자에게 주입하여 죽음을 허용하는 것. 미국에서 안락사는 불법이다.

알면서도 못 고치는 ‘미국병’ 2015

‘오늘 하루도 숨 쉬기가 참 힘들겠다.’ 새벽 달이 무척이나 밝다. 엄숙할 정도로 아름다운 정적도 부질없다는 생각에 빠졌다. 부당하게 이루어지는 일들, 잔인하게 마구 다루어지는 생명들, 목숨을 빼앗기고 뺏는 사람들, 그리고 그 가족들을 생각하며 내가 속으로 뇌인 말이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무런 연습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없이 죽는다.'(비스•라와 쉼보르스카 詩 ‘두번은 없다’)

그렇다. 두 번의 삶은 없다. 아무것도 똑 같은 것은 없고 똑 같이 반복되지 못한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서로를 죽이기 위해 무기를 만들었다. 미국은 개인이 총을 소유할 자유를 허락한다. 총으로 인한 폭력으로 많은 사람들이 두 번이 없는 귀한 삶을 잃는다. 그 뿐이랴 살아남은 사람들은 육체적인 후유증을 견뎌내야 생명을 부지할 수 있다. 정신적 고통은 차후라고 치더라도.

오늘 나는 최근 하버드 의과대학 브리검 위민스 병원 안에서 일어난 총격 살인 사건에 대해 쓰려고 한다. 2015년 1월 21일 총을 소지한 범인은 여러 출입구를 지나 그가 죽이기로 계획한 의사의 클리닉에 도착했다. 아무도 그가 총을 소지했는지 몰랐고 그를 저지한 사람은 없었다. 오피스로 인도된 얼마 후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일곱 시간의 응급 처치도 의사를 살리지 못했다. 그 의사를 살리려 애썼던 동료 의사들은 세상이 우러러 보는 명의들이었고 그가 응급 수술을 받던 곳은 세계적 석학들을 만들어 낸 하버드 브리검 위민스 병원이었다. 학부, 의과대학을 거쳐 10년이라는 세월을 흉곽 세부 혈관 수술 전문 분야 수련 및 연구로 보냈던 44세의 이 의사는 짧은 생애를 남의 손에 잃었다. 살아있었더라면 그는 장래 많은 일을 했을 것이다. 그에게는 세 명의 아이들과 앞으로 태어날 아이가 있다.

이 사건은 여러 면에서 우리 사회의 신뢰와 서로가 지켜오던 기본적인 예의가 병들어 감을 보여주고 있다. 2013년 통계를 보면 인구 3억이 넘는 미국에서 1년에 약 100만명 정도가 폭력범죄의 희생자로 보고됐다. 이 중 1.2%가 살인 케이스이며 살인에 사용된 흉기는 대부분이 총이다.

이중에 병원 총격이나 병원 안에서의 살인 사건은 드물었다. 2000년부터 12년간 40개 주, 154곳의 병원에서 총격사건이 보고되었는데 총격으로 인한 희생자들을 보면 45%가 총을 쏜 당사자이고(보통 자살로 끝난다), 20%가 병원 직원이었다고 한다. 간호사 (5%), 의사(3%)는 대체적으로 적은 숫자였다.

해결 또는 예비 방책을 생각해 볼 때 먼저 떠오르는 것이 병원입구에 금속탐지기를 설치하는 일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어려움 때문에 가끔씩 문제가 터질 때마다 거론되었지만 채택되지 못했다. 공항 시큐리티를 통과하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상상이 간다.

지금 우리는 평범한 시민이 총기를 소유할 이유 또는 권리가 있는가에 대한 숙고를 해야 할 때다. 병원 총격사건을 떠나 일반 총격으로 인한 상해와 피해는 자동차 사고로 죽는 숫자와 비슷하다. 마•더존스라는 메거진은 미국이 2015년 이천억 달러를 총격 상해에 관련된 비용으로 썼다고 보고했다. 매일 천 이백만불이라는 거액이 우리들이 내는 세금에서 쓰여진다고한다. 정확한 통계는 NRA1 와 총소유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방해로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대충 87%의 소비액이 세금에서 충당되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총을 맞아 다친 사람들을 살려내야하는 의료비, 그들을 재활하는데 쓰는 인력, 재력, 또 경찰, 검찰등이 동원되어야 하고 재판을 해야 할 때까지 드는 소송비등 엄청나다. 이 가해자들을 처벌하고 감옥에서 먹여살리는 경비만도 50억불이라고 본다.

총기 소유를 금지한다면 이들에 대한 응급처치, 후유증 치료 등을 예방할 수 있으므로 의료계에서는 총기소유 금지법을 지지해 왔다. 그러나 NRA의 막강한 재력과 로비는 개인 총기소유를 막지 못하게 해 왔고 앞으로도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악순환을 거듭해야 할 것이다. 숨겨진 사이코들은 정신치료를 거부한 채 일반 시민들과 섞여 살 것이고, 대형 병원들은 한 두 번의 응급대피 훈련으로 이런 사회문제를 이해했다고 자부하고 이슈를 덮을 것이다. 정치인들은 정치인이되기 위해서 •펀드를 만드는데 바쁠 것이다.

1. NRA: National Rifle Association 전미총기협회

사무라이를 안락사시키고 나서

이렇게 사납게 비바람이 치는 추운 날은 집이라는 안식처가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창밖을 보고 있자니 얼마 전 이처럼 추웠던 날에 잠재워야 했던 ‘사무라이’가 생각난다. 그리고 ‘사무라이’를 잠재운 것은 잘한 일이었다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내가 ‘사무라이’를 알게 된 것은 사무라이 죽기 5년 전 일이었다. ‘사무라이’는 내가 다니는 성당 마당에 살던 홈리스 고양이이다. 작은 눈이 옆으로 길게 끝이 올라 붙어 있어 붙인 이름이다.

그렇던 ‘사무라이’가 험한 날씨에 독감에 걸렸는데 어떤 치료에도 진전이 없었기에 그 녀석을 잠재우기로 힘겨운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사무라이’는 죽기 전 2주간을 우리집에서 나와 함께 지났다. 따뜻한 남향 방에 자리를 해주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안아주기도 했다. 힘이 모두 빠졌는지 반항하거나 무서워하지 않았다. 차겁고 여윈몸을 그냥 내어 맡기곤 했다.

수의사 선생님의 조심스럽고 고마웠던 충고가 지금도 생각난다. 그 녀석을 잠재우기 전 나는 나를 위해 ‘사무라이’에게 여러 번 용서를 청했다. 그리고 하느님께도 많은 용서를 청했다. ‘목숨’을 단절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슬퍼하는 나에게 남편은 우리 인간도 불치병으로 아파 고통스럽고 희망이 없을 때 누군가 이 세상을 떠나게 도와준다면 좋을 것이라는 말로 나를 위로했다.

그리스 말에서 유래된 ‘좋은 죽음’ 이라는 뜻의 ‘안락사(euthanasia)’란 정녕 정당한 것인가?

동물의 안락사는 미국만 해도 연평균 300만에서 800만 건이 행해진다. 홈리스 동물에게는 ‘좋은 죽음’이라는 뜻의 ‘안락사’가 아니라 입양해 줄 가정이 없고 이들을 살려 두기에는 돈이 아깝다고 믿어 그들의 목숨을 단절하는 것이다.

인간의 안락사는 이와 달리 본인이 원하거나 본인이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경우를 미리 예측해 본인이 건강했을 때에 지정해 놓은 대변인의 의사에 따라 행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 인간의 안락사는 불법이지만 PAS (physician assisted suicide) 또는 PAD (physician assisted death)는 불법이 아닌 주가 다섯군데 있다. 종말이 가까운 사람이 극약 처방을 받을 수 있고 자신의 목숨을 단절할 수 있는 법이다.

법적으로, 종교적으로, 또 도덕적 의미에서 안락사는 쉽게 행해 질 수 있는 행위가 아니다. 개인적 인생관이나 종교관을 떠나 안락사라는 이름으로 ‘살인’이 행해질 수 있는 사회적인 우려도 있다. NEJM (뉴잉글렌드 저널 어•브 메디신)에 의하면 벨지움에서 2013년 약 1000명의 환자가 의사에게 자문을 구하지 않았는데 존엄사를 했다고 한다. ‘서둘러 죽었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러한 의료행위를 세상은 염려한다. 그 뒤에 숨어있는 이유가 알기 무섭다.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 불교는 이러한 행위를 반대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의사가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시키는 일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은 ‘액션 T4’라는 이름으로 비밀 행정기구를 통해 불구이거나 지능이 모자라는 세 살 미만의 어린이들을 모아다가 안락사시켰다. 미국에서 안락사를 돕다가 징역살이를 하고 나온 미시간 주 출신 의사 케보키안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대형 종합병원에는 어려운 케이스들을 돕기 위해 목사, 신부, 스님 등 종교인과 이에 깊은 관심을 갖고 이를 연구해 온 의사, 법률가, 환자권익 옹호원 등이 위원으로 포함된 윤리위원회(Ethics Committee)가 있다.

비바람 치는 날이 없는 삶은 없다. 삶의 질적인 의미나 죽음의 시기는 타인이 등급을 매기거나 결정할 일이 못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생각해 본다. 그것이 동물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