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위로 2007

공항으로 가는 길은 붐볐지만 날씨는 화창했다. 조카가 비행시간에 맞게 우리를 엘에이 공항으로 대려다 준 오후였다. 조카의 차 백미러에는 두 달 전에 사고로 세상을 떠난 제임스의 사진이 들어 있는 ID Card가 걸려 있었다.

사진 속의 제임스의 얼굴은 살아 생전 모습 그대로 잘생겼고 정직했다. 그의 얼굴은 운전하는 조카에게로 자꾸 달랑거리면서 향했다.

제임스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그를 가끔만 봐왔던 나조차도 슬픔에 싸였는데 조카가 모든 활동을 접고 두문불출하면서 괴로워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둘은 삶의 많은 부분을 함께 나누었고 비슷한 생활관을 갖고 있었고 세상에 대한 편견(?)조차도 비슷했다.

제임스가 죽은 후 며칠 동안 조카는 울기만 했다. 조카 주위에 있는 우리도 함께 울었다. “너무 억울해, 이모” “그래, 참 억울하기만 하구나. 세상은 공평한 것 같지 않게 만 보인다.” “이모, 너무 아까워” “그래, 정말 너무 아깝다.”

내가 죽음을 본 것이 이번이 처음이랴. 많은 환자들이 세상을 뜨기 전에 가족 친지들과 작별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아왔다. 의학도이고 종교인인 나는 죽음의 문을 넘어 선 환자들이 평화의 세상에 있을 것으로 믿지만, 이 땅에 남아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상실감, 허무함과 아픔이 있음을 잘 안다. 자신의 삶의 일부였던 사람을 영원히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게 된다는 진리는 허무하기 짝이 없다. 더더구나 제임스처럼 서른 살도 되기 전에 사고나 전쟁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뜨거나, 불치병으로 많이 아파하다가 죽을 때 남은 가족과 친지들의 고통은 크고 그 상처는 많은 시간이 걸려 아문다. 아니, 영원히 아물지 않을 수도 있다.

한국말로도 번역(류해욱 신부 번역) 출판 된 나오미 레이첼 레멘이라는 의사가 쓴 ‘나의 할아버지의 축복’ 이라는 책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융이라는 정신과 의사는 꿈 분석의 대가로 알려져 있었다. 그가 어느 정신학 모임에 갔을 때 어떤 사람이 자신의 꿈을 해설받고 싶어 질문을 했다. 그가 꿈마다 나치의 학대로 시달린다는 내용이었다. 이때 이 의사가 말로 대답을 하는 대신 모든 청중 즉 의사와 정신학자들을 일어서게 하고 그 꿈을 묵상하며 몇 분 동안 서있도록 했다. 그 꿈을 머리로 해석하는 것 보다는 일어서서 말없이 묵상하면서 고통에 동참하도록 했다는 뜻이다.

심한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또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로 위로 한다는 것은 의미가 거의 없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말한다는 것은 사치이다. 그저 그 사람이 겪고 있는 아픔 안에 함께 있어 주는 것 자체가 도움이 된다. 우리는 그래서 상담을 권한다. 상담을 하는 중에 자신이 서 있는 곳을 보게 되며 서서히 치유가 가능하게 되는 것을 알고 있다. 상담 중에 의사는 말하기 보다는 주로 듣는다. 연설을 피한다는 의미도 된다. 그리고 고통 중에 있는 당사자가 그 깊은 내막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는 조카에게 제임스의 사진이 든 ID Card를 치우라고 말하지 않았다. 때가 되면 그 카드는 치워질 것이다.

‘문제’가 아니고 ‘과제’일 뿐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가을 날’의 일부분을 내 나름대로 번역해 보았다. ‘주님 지금이 (그) 때입니다. 거대한 여름은 갔습니다. 해시계를 당신의 그림자로 덮으십시오…(중략)…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영원히 집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홀로 있는 사람은 늘 고독하게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시는 지금 우리들이 겪고 있는 삶의 어려움을 잘 표현 해 주는 것 같다. 릴케가 살던 시대나 지금이나 달를바가 없는 것인가? 가계부의 밸런스가 안맞는다고 식구처럼 함께 살던 애완용 개와 고양이를 길에 버린다. 중동과 아프리카지역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고아, 미망인, 상이군인이 늘고 있다. 그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은 정신과 전문의들의 평생 작업이 되어야 할 지도 모른다.

부슬 부슬 겨울비가 내리던 크리스마스 이브 나를 찾아 왔던 패트릭과 일일 노동자인 ‘팽키 아저씨’가 카운티 병원 응급실에서 12시간 이상을 기다려 치료를 받아야 했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패트릭은 5년전 36세 때 뇌종양 수술을 받고 나에게 보내졌던 환자였다. 그에게는 아내와 당시 여섯 살, 한 살짜리 두 아이가 있었다. 가족들을 깊이 가슴에 새기고 투병할 결심이 되어 있던 모습은 처절하기 보다는 숭고해 보였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뇌종양 치료에 대한 비관적 통계를 일단 뒤로 했다. 그리고 희망을 갖고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5년전 일이다.

5년 동안 그는 아이들의 자상한 아빠로, 축구 코치로, 피아노 레슨하는 아이를 데려다 주는 운전기사로 행복하고 바쁜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뇌종양은 다시 그를 찾아왔다. 그는 자신의 병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내가 제시한 실험적 치료에 대한 내용에 대해서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청했다.

‘팽키 아저씨’는 체구가 왜소한 한국 사람이다. 오래 전 그는 세상을 방황하다가 이탈리아에 머문 적이 있었다고 한다. 굶은 상태에서 열이 난 그는 어느 대성당 앞의 벤치에 누웠다가 잠이 들었다. 누군가 어깨를 흔들며 깨워서 눈을 떠보니 한 젊은 이탈리아 신부가 빵과 포도주 한 병을 들고 그의 앞에 서 있더란다. 그 후 이 ‘팽키 아저씨’는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처지인데도 자신이 먹을 것만 남기고 노숙자를 찾아 다니며 더 가난한 이들을 도와왔다. 이렇게 살아 온 이 아저씨가 중병에 걸린 것이다.

보험이 있을리 없고 영어도 못해서 성당의 사회복지 담당하는 한 자매의 도움을 받았다. 카운티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입원할 때 까지 하루종일이 걸렸다. 그 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그 자매님의 봉사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이 두 케이스를 보면서 삶의 어려움과 병고는 ‘문제(problem)’라기 보다 ‘과제(task)’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날의 일상사도 ‘문제’가 아닌 ‘과제’로 풀어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가계부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문제’가 아닌 ‘과제’라면 가족들은 서로 협력해서 소비를 기꺼이 또 즐거운 마음으로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가족같은 개나 고양이를 길거리에 버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긴장되지만 희망적인 날을 맞이하고 성과를 이룬 하루를 마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지금 감원을 감행하는 많은 회사들도 마찬가지이다. 불경기를 ‘문제’로 본다면 마땅히 감원을 해서 적자를 해결해야겠지만 모두가 풀어갈 ‘과제’로 받아들이면 전직원이 봉급을 적게 받아가더라도 함께 어려움을 받아들이고 극복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문제’는 수동적 삶의 태도이고 ‘과제’라는 마음가짐은 능동적 삶의 관점이다.

나는 패트릭과 팽키아저씨 모두 그들의 질병을 과제로 잘 풀어갔다고 보고 싶다. 결국 그들의 세상과의 이별이 가족과 주위사람들에게 문제로 남아있을 지언정… 그리고 그 또한 그들이 과제로 풀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말이다.

문득 릴케에게 이렇게 기도하고 싶어진다고 알리고 싶다. ‘아닙니다 주님. 지금 집이 없는 사람도 언젠가는 따뜻한 잠자리를 갖게 될 것입니다. 또 지금 외로운 처지라도 ‘팽키 아저씨’처럼 남을 돕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트렌스젠더 키즈 2016

다른 센터로 옮겨간 동생 나이뻘 되는 동료 의사와 오랜만에 점심을 했다. 수련의를 끝내고 미혼일 때 우리 그룹에 들어왔는데 이젠 11살, 9살 짜리 두 아들의 아버지이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서로의 자식 이야기로 대화가 번졌다. 그의 아이들은 소위 ‘진보적’인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진보적’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보수의 반대’라며 웃는다. 그러면서 진보적이다 보니 트랜스젠더 아이도 학교에 입학시키고 학부모들은 이에 별로 개의치 않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트랜스젠더는 사회적 성(性)과 생물학적 성(性)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성전환자도 여기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트랜스젠더 모두가 성전환자는 아니다.

그는 나의 우려를 아는 듯했다. 태어났을 때 주어진 성(性:섹스 또는 젠더)을 여기서 나는
‘본성’이라고 표현하려 한다. 성인이 되었을 때 본성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어린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여자 아이지만 말괄량이라서 남아처럼 옷을 입거나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자동차, 비행기 같은 장난감을 갖고 노는 것을 더 즐길 수 있다. 또 남아도 인형을 갖고 놀거나 핑크색, 빨간색을 좋아 할 수도 있다. 그러한 경향은 성격이나 집안 분위기에서 비롯될 경우도 있고, 또 성장과정 중 일어나는 일시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아이의 그런 모습을 보고 내 아이가 트랜스젠더라고 우려하고, 성급히 성전환을 결정하는 경우가 있을까봐 염려스럽다. 때로는 아이들의 성향과 무관하게 부모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후천적 성별로 아이들을 기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는 전 세계적으로 의료 진단 종목에 들어 있는 병명이다. 많지는 않지만 미국 인구의 0.3%(2011년 통계), 1만5000명의 현역군인, 13만4300명의 참전용사(윌리엄스 기관 2014년 보고)가 트랜스젠더이다. 지금은 많은 보험회사가 이들을 커버한다. 우리는 이유야 어떻든 그들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트랜스젠더의 진단이 확실하면 빠른 시일내에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1970년대까지 의학계는 정신치료로 본성을 지켜주려 애썼지만 효과가 없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진단이 확실하다면 가정에서 이들이 트랜스젠더로 옮겨 가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 급선무이다. 사춘기 전에 육체가 본성으로 성장하는 것을 예방해 주는 호르몬 치료부터 시작해야한다.

이들이 겪어내야 하는 치료는 길고, 힘들고 또 비용이 많이 든다. 가정과 학교에서 고립될 수도 있다. 받아주는 친지가 없어 홈리스가 되기도 하고 •포스터케어 같은 곳으로 맡겨져도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폭력의 대상이 되기가 쉽다. 우울증, 자살 충동으로 마음 고생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때로는 자살에 성공하기도 한다. 6000여명의 트랜스젠더를 상대로 한 조사에서 40%이상이 자살충동을 경험했다고 한다.

동성애와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들을 위해 치료가 필요한 곳에 손을 내밀고 도와 줄 수 있는 개방된 의료 씨스템과 일반인들의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할 때다.

한글의 추억과 이세 한국어 교육

어린 시절 겨울밤은 유난히 길고 추웠다. 서울의 겨울 햇볕 또한 너그럽지 못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겨울 체육종목으로 스케이트가 필수였다. 실내 스케이트장이 없던 가난했던 때라 스케이트 시험을 무사히 치르려면 한강변에 만들어 놓은 노천 스케이트장에 가서 연습했어야 했다.

교복 이외에는 목도리나 코트를 덧 입어서는 안 되는 교칙이 있어 방과 후에 스케이트 연습을 갈 때도 교복을 입었다. 스케이트 연습으로 꽁꽁 얼어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면 작지만 따스한 온돌방에서 저녁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보낸 어린 시절 겨울밤의 추억 속에는 연필과 아버지, 동치미 국수 밤참과 엄마를 빼 놓을 수 없다. 그때의 추억에는 엉망으로 써대는 나의 글씨를 바로 잡으려 노력하시던 아버지, 밤참으로 동치미 국수를 말아주고 내 옆에서 소설을 읽으시던 엄마가 있다. 한글의 중요성에 대한 무언의 가르침은 한문을 중요시 했던 아버지보다 ‘한글’을 더 좋아하고 쓰시던 엄마에게서 온 것임을 나는 안다.

아버지는 교사였다고 한다. 늦둥이로 태어난 나는 교사 시절의 아버지를 모른다. 초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일찍 학교를 떠났다 하는데 아버지는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내가 보기에도 정직하고 곧았지만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속 좁은 좁쌀영감’이라는 표현이 맞을 만큼 까다롭고 고집셌다. 아버지에게는 싫은 사람이 많았다. 자동 연필깎이가 없던 시절 아버지는 당신이 아끼는 잭나이프로 내 연필을 깎아주곤 하셨다.

아버지가 깎아 주시던 뾰족한 연필로 써가던 한글, 아버지가 젊은시절 걸었던 교육자의 길,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던 엄마지만 늘 즐겨 읽던 엄마의 소설책들이 지금을 살고 있는 나의 일부라면 과장된 표현일까. 그리고 나에게는 한글이 있어 삶이 풍요롭다. 나는 일기를 한글로 쓴다. 서류교환의 30% 정도는 한글이다. 또 매일 나는 한국신문을 읽는다. 한글이 가진 창조성, 과학성, 조직성, 변속능력, 신속성 등에 놀라고 감사한다.

아버지의 꼼꼼함에 숨막힌다고 피해 왔던 ‘교사’라는 천직을 이 겨울 다시 생각하게 된 기회가 있었다. 지난 달 한글과 한국문화의 세계화를 위해 한국 밖에서 만들어진 첫 번째 반석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한국어 진흥재단’이 연례 한국어 교사 겨울연수를 주최했다.

이 연수는 LA한국교육원이 후원했다. 이번 연수에서는 ‘왜 한글을 배워야 하는가’ ‘한국어에 대한 관심을 어떻게 높일까’ ‘SAT2를 넘어 한국어 AP까지 만들자’ 등 여러 주제의 워크숍도 있었다. 미국 전역에서 모인 교사들의 경험담과 그들의 꿈이 흥미롭고 순수했다.

이 재단은 20년 전 한국어 시험을 SAT2에 포함시키기 위해 발족됐는데 미주 한인들과 여러 단체들, 한국정부, 한국기업(삼성) 등이 물질적으로 도왔다. 한국어는 SAT2에 채택된 9번째 외국어다. 한인 2세뿐 아니라 타민족 학생들이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관심을 갖게되고 나아가서는 한국의 국제화에 촉진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겨울 아버지의 글씨 쓰기 지도, 한글을 사랑했던 엄마, 한글을 가르치는 교사들 그리고 한글이 있게 한 세종대왕께 감사드린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동성애자 2013

오래 전 병원에서 함께 근무했던 소아암 전문의사 스콧은 동성애자였다. 스콧이 죽은 후 유산상속 문제의 부당함을 듣게 되면서 그가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스콧은 평생을 동성파트너인 랄프와 살았다. 그들은 ‘사실혼(事實婚)’한 관계로 실상 부부이었지만 랄프는 스콧이 남긴 유산에 대한 권리를 가질 수가 없었다. 스콧은 상속자를 지정해 놓지 않은 상태에서 죽었고 다른 상속자를 지정한 것도, 자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법의 눈으로 보았을 때 랄프를 스콧의 배우자로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벌써 스콧이 이 세상을 떠난지도 20년이 지났다.

세월이 지나면서 이러한 부당한 대우는 많이 없어졌고 앞으로 좀 더 공평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 13개 주에서 동성결혼을 인정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는 16개 국가 중 10개 나라가 동성결혼을 법으로 보호하고 있다. 동성혼인은 고대 그리스, 로마, 켈트족, 중국, 이집트 또 한국에도 있었다고 한다.

동성간의 교제는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로 제정되면서 박해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동성애가 기독교 교리에 어긋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동성애를 ‘범죄’로 만들어 참형에 처하는 것은 실상 자비로워야 할 기독교 정신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기록에 보면 데오도시우스 1세 때(서기 390년) 동성애자들은 공공장소에서 화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또한 약 130년 후 저스티니안 1세때에는 거세를 함으로써 참형했다고 기록돼 있다. 동성애자에 대한 징벌은 이후 1400년 동안이나 계속돼 왔고 동성애는 사회적 금기사항으로 남게 됐다. 즉 동성애자들은 동성애 자체가 ‘범죄’로 취급되는 세상에서 살아왔던 것이다.

얼마 전, 카이저 병원에서는 LGBT(레스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 컨•퍼런스를 가졌다. 강사들은 동성애 역사에 대한 강의로 시작해 어떻게 이 그룹에 속한 환자들을 돌보아 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과제를 제시했다.

이 소수그룹에 속하는 젊은이들의 자살시도는 일반 젊은이들보다 8배나 높고 우울증에 걸릴 확률도 6배가 높다. 또한 마약중독에 빠지는 경우도 더 많다.

우리는 주위사람들이 나와 어딘가 다르다고 생각할 때 매사에 편견을 갖는 경우가 많다. 모든 편견은 부당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편견이란 의견이 다르다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일상사에서 만약 내가 선입견으로 인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알게 되면 즉시 고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며칠 전 •프란치스코 교황은 브라질 방문을 마치는 기자회견에서 “사회는 동성애자들을 업신 여기지 말고 그들이 사회에 통합될 수 있도록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1600년 만에 동성애 문제와 관련해 전향적인 언급을 해준 교황에게 감사한다. 동성애는 종교적인’죄(sin)’일지는 모르지만 ‘범죄(crime)’가 아님을 교황은 일깨워 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