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복제와 미래의 먹거리 2007

파란 눈에 금발인 나의 동료의사 에디는 담배도 안 피우고 살도 찌지 않았지만 41세에 심장마비가 왔다. 그의 아버지는 41세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는데 에디는 조치를 받고 지금도 잘 살고 있다. 그러던 에디가 ‘복제 양’ ‘복제 인간’에 관한 신문기사를 읽으며 나에게 물었다. “모니카, 네가 새 심장이 필요하다면 너와 똑같은 모니카가 하나 더 있으면 아주 쉬울텐데. 어떻게 생각해?” 줄기세포 이용의 단계를 훨씬 뛰어 넘은 복제를 생각하며 에디와 나눈 대화이다.

1996년에 복제로 만들어진 양 ‘돌리’는 6살짜리 어른 양의 유방세포를 유도해서 만들어졌다고 해서 젖가슴이 크기로 유명한 가수 돌리 파튼의 이름을 따서 돌리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러던 돌리가 6살 때 안락사를 받았다. 돌리의 폐질환과 관절염 때문에 사는 것이 힘들다는 결론이 내려져 12년이 평균수명인 다른 양들보다 절반 밖에 못 살고 죽은 것이다.

세상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같은 종류의 동물 사이에 만들어진 복제가 아니고 인간의 유전인자를 양의 DNA에 주입하여 만들어진 양 ‘트레이시’는 돌리가 만들어지기 6년 전인 1990년에 출생했다. 이 모두 영국 스콧트란드의 로슬린 연구소에서 한 일이다. 이 복제의 목표는 양의 젖 (milk) 에 인간의 유전병을 치료하는데 쓸 수 있는 특수 단백질이 많이 포함되어 있도록 하는 것이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동물의 복제는 인간의 먹거리 증산을 위한 목적이 많지만 희귀병을 고치기 위한 실험용으로도 행해지고 있다. CNN Library에 의하면 1952년 개구리 알에서 핵을 빼내고 그 자리에 배아 세포를 바꿔 넣어 올챙이를 만드는데 성공한 경우를 시작으로 23 번에 거친 복제에 관련된 보고를 받았다고 쓰고 있다. 입증이 됬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참고로 트레이시를 만든 영국 로슬린 연구소의 존 클락은 2004년에 52세의 나이로 자살했다.

이제 우리들의 밥상에는 이처럼 복제해서 만들어진 동물들의 고기나 유전적인 변화를 조작하여 상품화 된 생선이 오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동물의 고기와 생선은 복제공장에서 대량생산 되어 우리들의 음식으로 마켓에서 팔리게 될 것이다. 복제와 유전변화를 추구하는 연구가 빠른 속도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많은 돈이 투자되고 있다.

‘미친 소병’이 왜 생겼는가를 생각해 보면 순리를 어긴 과학의 응용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보여준다.

‘미친 소병’의 원천은 치부에 눈이 어두운 농축업자들이 소를 빨리 자라게 하고 살찌워서 맛진 육질을 만들려고 채식동물인 소에게 동물의 살의 일부를 먹였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닌가?

동물과 인간을 복제하는 것에 대한 도덕적, 윤리적인 면을 들여다본다면 발생할 지도 모르는 어두운 면이 우려된다. 체계적이며 조직적인 능력이 있는 인간들은 질적인 삶의 향상, 질병의 퇴치라는 좋은 목적으로 복제범위에 한계를 두어 법적으로 이것을 허락한다해도 헛점을 이용해서 조직적인 범죄를 초래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런 뜻에서 신성한 생명을 무시하고 자신의 치부와 자신의 건강만을 위해서 벌리는 인간의 조직적 범죄에 대한 예를 들어 보자.

한국이 가난할 때 한국 사람들은 콩팥을 일본사람들에게 이식용으로 팔았다. 자선의 의미에서 장기를 기증하는 것이 아니었고 돈 때문에 장기를 팔아야 했다. 돈 있는 사람들은 장기를 샀고 건강을 회복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얼마나 정확한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중국에서는 사형수의 장기이식을 정부가 미리 주선한다고 한다. 건강한 몸에서 떼어 내어 줄 수 있는 장기는 많다. 사소한 일로 범법을 해도 중형을 받거나 목숨을 잃을 확률이 높다고 한다. 이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다.

우리들이 고기를 싸게 또 많이 먹기 위해 동물 복제로 대량생산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게 된다면 어떤 특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인간 복제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장담 할 수 없다.

내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다른 생명이 희생되고 내 식구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다른 생명체에 처절한 아픔을 가해도 좋다면 이것은 의학의 본질적인 뜻을 어기는 것이다

냉동 배아의 운명 2013

“엄마, 나 너무 추워!” 냉동실에서 외치는 아이의 소리를 이 여인은 들었던 것일까?

그녀의 머리는 복잡하다. 생각을 할수록 마음은 깊고 어둡게 가라앉는다. 며칠 전 ‘배아 저장 회사’에서 고지서를 받고 그곳에 몇 년째 저장되어 있는, 그녀와 남편이 준비해 놓은 ‘배아’들의 운명을 결정하기로 했던 것이다.

배아란 정자와 난자가 결합해서 만들어진 수정체로 사람으로 될 첫 단계의 작은 ‘세포 공동체’라고 말하면 이해하기 쉽다.

사연은 이렇다. 7년 전 30대 중반에 들어선 이 여인과 그녀의 남편은 반복되는 임신 실패의 해결책으로 체외 수정을 시도했다. 이것 또한 쉽지 않았다. 몇 번 실패를 거듭한 후 성공적으로 지금 다섯 살인 웨스타를 얻게 되었고 그 때 수정해 놓은 몇 개의 배아는 ‘배아 저장 회사’에 의뢰해서 지금껏 얼린 상태로 저장돼 왔다.

해가 갈수록 고지서가 부담스럽고 비용이 처음 계약 때보다 자꾸 비싸지는 것도 힘들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와 남편은 얼린 배아들을 녹여 두번째 아이를 가진다는 것이 어쩐지 해서는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시 여러번의 실패를 거듭할 수 있는 어려움과 성공한다해도 실상 두번째로 태어날 아이는 웨스타와 같은 때 만들어졌으니 쌍둥이어야 할 것 같은 혼돈도 왔기 때문이다.

이제 이 냉동 상태에 있는, 웨스타처럼 아이로 성장할 수 있는 배아들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어린애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줄 것인가. 만약 성공적으로 배아가 태아가 되고 모르는 여인의 자궁 안에서 잘 자라 세상에 태어나게 된다면 어떻게 되나? 이 아이는 웨스타와 형제다.

웨스타와 미래의 아이(들), 그들의 관계는 어떻게 되나?

실험용으로 쓰라고 기부하는 것은 바람직한 결정일까. 그것은 너무 잔인하다. 이젠 배아들은 이 여인에게는 더 이상 몇 개의 세포 공동체가 아니다. 웨스타의 분신들이다.

어느 하나 쉬운 대답이 없다. 혼돈스럽다.

얼마 전 자궁암에 걸린 젊은 여성이 암 치료로 인해서 난소와 자궁을 잃을 처지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는데 이 젊은 여성에게는 난소나 배아를 저장하는 옵션이 있었다.

이렇게 웨스타와 같은 또 이 젊은 환자가 성공률이 난소저장보다 높은 배아를 만들어 저장해 놓는다 해도 훗날 법적으로 생길 수 있는 변수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이혼이 한 예이다. 이런 경우 배아들의 운명에 대한 법의 해석은 각 나라마다 다르다. 여인이 저장됬던 배아를 녹여서 임신하여 출산하고 싶어도 정자를 기부했던 상대편이 거부하면 저장 되어 있는 배아는 세상 빛을 볼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 미국과 유럽에서는 웨스타의 분신처럼 만들어진 아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웨스타의 분신들이 얼려진 상태로 언젠가는 쓰여 질 때를 기다리며 저장되어 있다. 신경이 생기기 전이라 느낌이 없을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 웨스타의 엄마가 들은 것처럼 그들은 ‘엄마, 추워!’를 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위로 2007

공항으로 가는 길은 붐볐지만 날씨는 화창했다. 조카가 비행시간에 맞게 우리를 엘에이 공항으로 대려다 준 오후였다. 조카의 차 백미러에는 두 달 전에 사고로 세상을 떠난 제임스의 사진이 들어 있는 ID Card가 걸려 있었다.

사진 속의 제임스의 얼굴은 살아 생전 모습 그대로 잘생겼고 정직했다. 그의 얼굴은 운전하는 조카에게로 자꾸 달랑거리면서 향했다.

제임스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그를 가끔만 봐왔던 나조차도 슬픔에 싸였는데 조카가 모든 활동을 접고 두문불출하면서 괴로워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둘은 삶의 많은 부분을 함께 나누었고 비슷한 생활관을 갖고 있었고 세상에 대한 편견(?)조차도 비슷했다.

제임스가 죽은 후 며칠 동안 조카는 울기만 했다. 조카 주위에 있는 우리도 함께 울었다. “너무 억울해, 이모” “그래, 참 억울하기만 하구나. 세상은 공평한 것 같지 않게 만 보인다.” “이모, 너무 아까워” “그래, 정말 너무 아깝다.”

내가 죽음을 본 것이 이번이 처음이랴. 많은 환자들이 세상을 뜨기 전에 가족 친지들과 작별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아왔다. 의학도이고 종교인인 나는 죽음의 문을 넘어 선 환자들이 평화의 세상에 있을 것으로 믿지만, 이 땅에 남아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상실감, 허무함과 아픔이 있음을 잘 안다. 자신의 삶의 일부였던 사람을 영원히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게 된다는 진리는 허무하기 짝이 없다. 더더구나 제임스처럼 서른 살도 되기 전에 사고나 전쟁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뜨거나, 불치병으로 많이 아파하다가 죽을 때 남은 가족과 친지들의 고통은 크고 그 상처는 많은 시간이 걸려 아문다. 아니, 영원히 아물지 않을 수도 있다.

한국말로도 번역(류해욱 신부 번역) 출판 된 나오미 레이첼 레멘이라는 의사가 쓴 ‘나의 할아버지의 축복’ 이라는 책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융이라는 정신과 의사는 꿈 분석의 대가로 알려져 있었다. 그가 어느 정신학 모임에 갔을 때 어떤 사람이 자신의 꿈을 해설받고 싶어 질문을 했다. 그가 꿈마다 나치의 학대로 시달린다는 내용이었다. 이때 이 의사가 말로 대답을 하는 대신 모든 청중 즉 의사와 정신학자들을 일어서게 하고 그 꿈을 묵상하며 몇 분 동안 서있도록 했다. 그 꿈을 머리로 해석하는 것 보다는 일어서서 말없이 묵상하면서 고통에 동참하도록 했다는 뜻이다.

심한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또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로 위로 한다는 것은 의미가 거의 없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말한다는 것은 사치이다. 그저 그 사람이 겪고 있는 아픔 안에 함께 있어 주는 것 자체가 도움이 된다. 우리는 그래서 상담을 권한다. 상담을 하는 중에 자신이 서 있는 곳을 보게 되며 서서히 치유가 가능하게 되는 것을 알고 있다. 상담 중에 의사는 말하기 보다는 주로 듣는다. 연설을 피한다는 의미도 된다. 그리고 고통 중에 있는 당사자가 그 깊은 내막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는 조카에게 제임스의 사진이 든 ID Card를 치우라고 말하지 않았다. 때가 되면 그 카드는 치워질 것이다.

‘문제’가 아니고 ‘과제’일 뿐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가을 날’의 일부분을 내 나름대로 번역해 보았다. ‘주님 지금이 (그) 때입니다. 거대한 여름은 갔습니다. 해시계를 당신의 그림자로 덮으십시오…(중략)…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영원히 집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홀로 있는 사람은 늘 고독하게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시는 지금 우리들이 겪고 있는 삶의 어려움을 잘 표현 해 주는 것 같다. 릴케가 살던 시대나 지금이나 달를바가 없는 것인가? 가계부의 밸런스가 안맞는다고 식구처럼 함께 살던 애완용 개와 고양이를 길에 버린다. 중동과 아프리카지역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고아, 미망인, 상이군인이 늘고 있다. 그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은 정신과 전문의들의 평생 작업이 되어야 할 지도 모른다.

부슬 부슬 겨울비가 내리던 크리스마스 이브 나를 찾아 왔던 패트릭과 일일 노동자인 ‘팽키 아저씨’가 카운티 병원 응급실에서 12시간 이상을 기다려 치료를 받아야 했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패트릭은 5년전 36세 때 뇌종양 수술을 받고 나에게 보내졌던 환자였다. 그에게는 아내와 당시 여섯 살, 한 살짜리 두 아이가 있었다. 가족들을 깊이 가슴에 새기고 투병할 결심이 되어 있던 모습은 처절하기 보다는 숭고해 보였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뇌종양 치료에 대한 비관적 통계를 일단 뒤로 했다. 그리고 희망을 갖고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5년전 일이다.

5년 동안 그는 아이들의 자상한 아빠로, 축구 코치로, 피아노 레슨하는 아이를 데려다 주는 운전기사로 행복하고 바쁜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뇌종양은 다시 그를 찾아왔다. 그는 자신의 병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내가 제시한 실험적 치료에 대한 내용에 대해서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청했다.

‘팽키 아저씨’는 체구가 왜소한 한국 사람이다. 오래 전 그는 세상을 방황하다가 이탈리아에 머문 적이 있었다고 한다. 굶은 상태에서 열이 난 그는 어느 대성당 앞의 벤치에 누웠다가 잠이 들었다. 누군가 어깨를 흔들며 깨워서 눈을 떠보니 한 젊은 이탈리아 신부가 빵과 포도주 한 병을 들고 그의 앞에 서 있더란다. 그 후 이 ‘팽키 아저씨’는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처지인데도 자신이 먹을 것만 남기고 노숙자를 찾아 다니며 더 가난한 이들을 도와왔다. 이렇게 살아 온 이 아저씨가 중병에 걸린 것이다.

보험이 있을리 없고 영어도 못해서 성당의 사회복지 담당하는 한 자매의 도움을 받았다. 카운티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입원할 때 까지 하루종일이 걸렸다. 그 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그 자매님의 봉사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이 두 케이스를 보면서 삶의 어려움과 병고는 ‘문제(problem)’라기 보다 ‘과제(task)’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날의 일상사도 ‘문제’가 아닌 ‘과제’로 풀어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가계부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문제’가 아닌 ‘과제’라면 가족들은 서로 협력해서 소비를 기꺼이 또 즐거운 마음으로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가족같은 개나 고양이를 길거리에 버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긴장되지만 희망적인 날을 맞이하고 성과를 이룬 하루를 마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지금 감원을 감행하는 많은 회사들도 마찬가지이다. 불경기를 ‘문제’로 본다면 마땅히 감원을 해서 적자를 해결해야겠지만 모두가 풀어갈 ‘과제’로 받아들이면 전직원이 봉급을 적게 받아가더라도 함께 어려움을 받아들이고 극복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문제’는 수동적 삶의 태도이고 ‘과제’라는 마음가짐은 능동적 삶의 관점이다.

나는 패트릭과 팽키아저씨 모두 그들의 질병을 과제로 잘 풀어갔다고 보고 싶다. 결국 그들의 세상과의 이별이 가족과 주위사람들에게 문제로 남아있을 지언정… 그리고 그 또한 그들이 과제로 풀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말이다.

문득 릴케에게 이렇게 기도하고 싶어진다고 알리고 싶다. ‘아닙니다 주님. 지금 집이 없는 사람도 언젠가는 따뜻한 잠자리를 갖게 될 것입니다. 또 지금 외로운 처지라도 ‘팽키 아저씨’처럼 남을 돕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트렌스젠더 키즈 2016

다른 센터로 옮겨간 동생 나이뻘 되는 동료 의사와 오랜만에 점심을 했다. 수련의를 끝내고 미혼일 때 우리 그룹에 들어왔는데 이젠 11살, 9살 짜리 두 아들의 아버지이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서로의 자식 이야기로 대화가 번졌다. 그의 아이들은 소위 ‘진보적’인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진보적’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보수의 반대’라며 웃는다. 그러면서 진보적이다 보니 트랜스젠더 아이도 학교에 입학시키고 학부모들은 이에 별로 개의치 않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트랜스젠더는 사회적 성(性)과 생물학적 성(性)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성전환자도 여기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트랜스젠더 모두가 성전환자는 아니다.

그는 나의 우려를 아는 듯했다. 태어났을 때 주어진 성(性:섹스 또는 젠더)을 여기서 나는
‘본성’이라고 표현하려 한다. 성인이 되었을 때 본성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어린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여자 아이지만 말괄량이라서 남아처럼 옷을 입거나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자동차, 비행기 같은 장난감을 갖고 노는 것을 더 즐길 수 있다. 또 남아도 인형을 갖고 놀거나 핑크색, 빨간색을 좋아 할 수도 있다. 그러한 경향은 성격이나 집안 분위기에서 비롯될 경우도 있고, 또 성장과정 중 일어나는 일시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아이의 그런 모습을 보고 내 아이가 트랜스젠더라고 우려하고, 성급히 성전환을 결정하는 경우가 있을까봐 염려스럽다. 때로는 아이들의 성향과 무관하게 부모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후천적 성별로 아이들을 기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는 전 세계적으로 의료 진단 종목에 들어 있는 병명이다. 많지는 않지만 미국 인구의 0.3%(2011년 통계), 1만5000명의 현역군인, 13만4300명의 참전용사(윌리엄스 기관 2014년 보고)가 트랜스젠더이다. 지금은 많은 보험회사가 이들을 커버한다. 우리는 이유야 어떻든 그들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트랜스젠더의 진단이 확실하면 빠른 시일내에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1970년대까지 의학계는 정신치료로 본성을 지켜주려 애썼지만 효과가 없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진단이 확실하다면 가정에서 이들이 트랜스젠더로 옮겨 가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 급선무이다. 사춘기 전에 육체가 본성으로 성장하는 것을 예방해 주는 호르몬 치료부터 시작해야한다.

이들이 겪어내야 하는 치료는 길고, 힘들고 또 비용이 많이 든다. 가정과 학교에서 고립될 수도 있다. 받아주는 친지가 없어 홈리스가 되기도 하고 •포스터케어 같은 곳으로 맡겨져도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폭력의 대상이 되기가 쉽다. 우울증, 자살 충동으로 마음 고생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때로는 자살에 성공하기도 한다. 6000여명의 트랜스젠더를 상대로 한 조사에서 40%이상이 자살충동을 경험했다고 한다.

동성애와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들을 위해 치료가 필요한 곳에 손을 내밀고 도와 줄 수 있는 개방된 의료 씨스템과 일반인들의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