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사람들

2026.2.11 울산광역매일

새벽은 아름답다. 캄캄하고 신비스럽다. 살고 있는 로스앤젤레스의 겨울 새벽은 춥지 않고 선선하다. 정적을 깨는 아침 새들의 대화가 시작되려면 아직 어둠이 얇아질 때까지 좀 더 기다려야 한다. 물론 야밤에 노래하는 부엉이도 있고, 신경질적으로 소리 질러 소견을 전달하는 새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새벽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오늘 새벽하늘은 어둠 속에 푸르다. 반달과 오리온 좌가 총기(聰氣) 바랜 흐린 빛을 보내준다.  

나는 새벽에 관한 것들에 익숙하다. 새벽 시간, 새벽 소리, 새벽바람, 새벽하늘, 새벽 별자리, 새벽을 열며 일하러 가는 사람들, 그들의 헤드라이트 행렬, 새벽에 올리는 분심(分心)으로 갈리어진 나의 묵주기도까지. 그리고 새벽에 일하는 내 자신에도 익숙하다. 

나는 글도 새벽에 쓰고 행정적인 일도 대부분 새벽에 시작한다. 글을 쓰기 전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앞마당을 걸으면서 묵주기도(默珠祈禱)를 하는 것이다. 묵주기도란 불교에서 염주를 돌리며 하는 기도처럼 구슬을 이용해서 예수의 생애를 기억하며 주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을 반복하면서 묵상하는 방식의 기도이다. 문제는 되풀이하는 기도라, 잡념이 들기 십상이라는 점이다.  

이 기도는 가톨릭 신자들이 애호한다. 그 원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수용하는 설은 이렇다. 글을 읽을 줄 모르던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성서를 읽지 못했고, 따라서 성서에 준 한 기도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단순하고 간단한 기도를 반복하는 방식을 전수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구슬을 굴리면서 묵상하는 기도’라는 뜻에서 묵주기도라고 부른다. 서구권에서는 ‘로자리(rosary)’라고 하는데 장미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이 로자리에 대한 설도 많다. 예수의 생모인 성모 마리아를 아름답고 순수한 장미로 표현한 것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다. 또 종교탄압으로 그리스도교인들을 공공장소, 주로 콜로세움 같은 운동장에서 처형하면서 생기게 된 것이라고도 한다. 굶은 사자를 풀어서 신자들이 잡혀서 먹히도록 했는데, 그들은 머리에 장미로 만든 화관을 쓰고 광장으로 행진했다는 설에서 나왔다고 한다. 인체는 먹히고 장미 화관만 남기었다는 것이다.  

나보다 하루를 더 일찍 시작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 새벽에 일터를 향해 가는 사람들이 그중의 한 부류이다. 집 앞마당에서 캘리포니아의 중요한 동맥 역할을 하는 405번 프리웨이가 약 반 마일 정도 보인다. 405 프리웨이는 5번에서 파생한 고속도로로, 북서쪽 방향을 커버해 주는 약 72마일 구간이다. 미국 내에서 가장 많은 차가 오가는 고속도로다. 북쪽 실마(Sylmar)와 남쪽 엘토로 와이(El Toro Y) 사이를 연결한다. 이 길을 따라 깜깜한 새벽에, 남쪽으로, 북쪽으로 헤드라이트, 백라이트들이 줄지어 움직인다. 일터를 향해 가는 새벽 사람들이다.  

오늘도 앞마당에는 배달된 신문들이 널브러져 있다. 신문 배달원은 도대체 몇 시에 우리 집에 다녀간 것일까. 그는 신문을 배달하고 또 다른 직장을 향해 서둘러 갔을지도 모른다. 신문 배달로 버는 돈만으로는 생활이 어렵다는 걸 누구나 안다. 신문 배달원뿐만 아니라, 나와 남편이 젊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큰딸도 어둠을 헤치고 환자를 돌보러 병원으로 향한다. 

처음으로 ‘산다는 것이 일이나 공부보다 더 엄숙한 것’이라는 심오한 뜻을 깨달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나를 일깨웠던 것은 가난도 아니고, 전쟁의 상흔도 아니었다. 당시 나는 10대 끄트머리의 소녀시기를 지나 막 여성으로 성숙해지는 길에 첫발을 내디디던 때이었다. 사르트르, 톨스토이, 카뮈 등등의 꽤 어두운 사회론자들의 글을 읽고 친구들과 ‘개똥철학’을 토론하던 때이기도 했다.  

사회의 부조리함, 어두움을 논하던 나의 눈에 강의실 곳곳을 열심히, 성실하게 닦고 있던 청소부 아저씨의 맑고, 진지하고, 겸손하고 평화로운 얼굴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아저씨의 존재가 나를 일깨웠다. 그를 통해 가난과 노동 그리고 그로부터 받는 엄청난 긍정적이면서도 부정적인 대가는 우리의 행복이나 희망과는 별 개라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나는 ‘노동의 숭고함’이라는 사치스럽고 아이러니한 문구를 기억한다. 현대 사회는 일과 노동을 구분한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 당시 6억이었던 세계 인구는 2024년 82억으로 늘었다. 세계 총생산은 199배가 늘어난 173조 달러에 이른다. 그런데 빈부의 차이는 극(極)과 극이다. 일과 노동이 뒤얽힌 결과다. ‘신성한 일’이 아니라 ‘먹고사는 노동’에 매일 끌려다닌 것이다 

그 중년의 청소부 아저씨는 노동의 숭고함에 신경을 쓰며 일했을까. 자식들을 먹이고 키우느라 수고하셨던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은 ‘노동의 숭고함’이라는 이상을 갖고 일을 하고, 품을 팔았을까. 누군가의 말대로, 우리는 현재 노동을 정당화하고 미화하고 있을지 모른다. 새벽을 가르는 현대인들처럼.

 

“병원 밖 세상”

디카시집 “병원 밖 세상”이 세상을 보게 되었다. 첫 책 ‘희망 한단에 얼마에요?…’ 이후, 9년 만이다.

2025년 10월 19일(일)에 한국 이화여자대학교 부속병원 서울병원 ‘이영주홀’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경기여고, 이화여대, 그외 전 엘에이 교육영사 최하영님등, 지인들, 친척들 총 70여명이 참석하였다.

모두 4부로 되어있는 시집이다. 이 책은 남편과 함께 6년 동안 18번의 해외 여행을 하면서 기록한 수십만 장의 사진 중에 60개를 뽑고, 그에 시를 한글과 영문으로 붙인 것이다. 같은 사진을 놓고 쓴 한글과 영문 시는 그 내용 표현이 다름에 놀랐다. 두 글, 두 문화가 내 안에서 자리하며 편안히, 다른 부분을 포용해 준 것 같다.

-제 1부: 신앙의 신비

-제 2부: 국가라는 보호막

-제 3부: 들려줄 이야기

-제 4부: DNA

한국에서 했던 출판기념회 때는, 각 쳅터에서 하나씩 골라서, 5개의 시를 남편 류지선과 영어, 한국어로 번갈아 가며 4개를 읽었다. 마지막 5번 째 시 ‘네 동공에 보이는 나, 나를 보는 반백의 너 (Mother, it is me, your son!)’ 은 남편이 혼자 읽었다. 그 시는 남편과 그의 어머니간의 대화와 사진이다. 많은 동감을 자아내었고, 눈물을 글썽이는 분도 계셨다.

올해 12월 13일 토요일에는 한국어진흥재단 (3310 Beverly Blvd., Los Angeles, CA 90004)에서 출판기념회를 할 예정이다. 기념회 리셉션 후에는, 한국어진흥재단 이사들과 쫑파티를 한다. 나의 이사장으로서의 임기를 마치는 회식이다.

[신간 안내] 류 모니카 디카시집 『병원 밖 세상』
출처 : 문화전문지.. | 블로그

[어른이 읽는 동화] 낡은 책상 (III)

[어른이 읽는 동화] 낡은 책상 (III)

“어머나, 이 입술 좀 보세요! 꼭 봄에 새로 돋아난 꽃 순 같아요!”

“달꽃 입술을 닮았네요.”

아기는 눈을 감고, 하품을 길게 하였습니다.

“눈은 누굴 닮았을까 궁금하네요. 새순이를 닮았겠지요?”

신생아들은 눈을 떠도, 보지를 못한다고 의사 선생님이 이미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보기는 보지만 아주 희미하게 밖에는 볼 수 없어서 인식의 능력이 없다고 하셨거든요. 백일 잔치 할 때쯤 되면 주위 식구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고 낯가림할지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리하르트 새순의 아버님이 아기를 조심스레 안으셨습니다. 어머님은 새순이 아빠에게 서두르라고 재촉하시면서, 옆에서 자기의 순서를 기다리시었어요.

“새순 리하르트를 처음 안았을 때와 같구나! 이 귀한 보배를 낳아 준 새순아, 달꽃아, 감사하다!”

리하르트 새순의 아버지는 아이의 뺨에, 당신의 뺨을 살짝 가져다 데시었어요. 그리고 뺨에 뽀뽀하였습니다. 새순이 아버지께서는 오늘 산모랑 손녀를 방문 오시기 전에 아주 꼼꼼하게 면도하셨다고 말씀하셨어요. 아기에게 뽀뽀할 것을 속으로 몇 번이나 연습하였는지 모른다고도 하셨고요. 리하르트의 어머님은 달꽃 뺨에 키스를 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셨어요.

“새순이의 딸이, 꼭 새순이 어렸을 때의 코를 갖고 있구나. 작고, 귀엽고, 앙증스러운 코였지. 달꽃아, 고맙다!”

새순이의 아기가 태어난 날에 저마다 가슴 깊은 곳 우물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고 있는 청량하고 맑고 차가운 물을 두레박으로 퍼 올리었습니다. 새 생명을 바라보는 가족들은 탄성을 나누었고, 함께 기뻐하고, 또 서로를 축하했습니다. 새 생명은 얼마나 귀하고 부스러지기 쉬워 보이던지요! 나의 부모님들은 편찮으신 할머니를 뵈러 멕시코에 가셨기에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전화로 새순이와 통화하신 부모님들은 새순이 부부가 만든 기적은 산체스 가정의 축복과도 다름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모님들은 ‘미겔은 언제나 이런 기쁨을 나누어 주려나…’ 하고 분명코 생각하시면서 말씀을 그냥 삼키시었을 것입니다.

새순이가 딸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과학 발달의 기적입니다. 또한, 새순이가 백혈병에서 완치된 것도 의학이라는 기적의 결과입니다. 더불어 새순이가 달꽃을 만나게 된 것도, 하느님의 특별한 계획이었던 것 같습니다.

백혈병 진단을 받았을 때, 새순이는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날 자신이 없었습니다. 자기 삶에 분노했습니다. 입양아로 버려지었다고, 볼품없는 인생이라고 여러 번 되뇌었습니다. 또 신(神)은 자기를 미워한다고 말했습니다. 새순이의 응원 부대인 부모님과 산체즈 가족들은 새순이가 바닥을 치고, 다시 용수철처럼 일어날 때까지 말없이 기다렸습니다. 낡은 책상에 마주 앉아 공부하던 우리는,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꿈은 우리를 세상으로 밀어내어 보내었던 것입니다.

백혈병 골수 이식을 준비할 때, 새순이 리하르트는 친족을 찾는 데 실패했습니다. 한국 대사관, 영사관, 한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의 시민단체, 한국어로 출판되는 신문을 통해서 골수를 기증할 한국분을 찾는 호소문도 내었습니다. 기적적으로 DNA가 들어맞는 어느 익명 기증자의 도움을 받아, 새순이는 살게 되었습니다.

키모데라피를 받을 때,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적인 골수와 남자의 경우에는 정자까지도 약화하거나 죽인다고 합니다. 새순이의 담당 항암 전문의사 선생님은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새순이의 정자를 채취하여, 얼려서 보관해 둘 것을 제안하셨습니다. 새순이는 거절하였습니다. 자기 혈육을 가질 것을 원해 본 적이 없었고, 자신도 입양되었으므로 필요하면 아이를 입양하면 된다는 것이 그 이유이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사람의 마음은 변하기도 하니까, 자기의 제안을 재고하여 보라고 하셨습니다.

새순이의 응원 부대인 부모님, 산체스 가족들은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했습니다. 새순이 리하르트는 1:5로 판정패한 셈이었습니다. 그리고 순순히 승복했습니다. 그리고 새순이와 나는 이 모든 것을 잊고 살다가, 벨기에 이름이 한국말로 달꽃이라고 하는 친구를 만난 후에 기억했습니다.

어느 여름이었습니다. 새순이는 한국의 어떤 입양 관련 단체와 한국 정부가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참석하여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고아가 아닌 나는 함께 할 수 없는 여행이었지요. 이 때, 양부모님들의 뜻에 따라, 자기를 낳아 준 부모를 찾아보려고 입양기관들을 방문했고, 혈액 검사도 받았지요. 백혈병 걸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새순이와 맞는 어른들은 데이터베이스에 없었습니다.

프로그램은 한국을 고궁, 한글박물관, 국립 박물관, 전쟁기념관, 남산 타워, 명동거리. 광장시장, 터미널 음식점 같은 곳 방문을 포함했어요. 길거리 음식도 먹어 보았다 합니다. 새순이는 유럽의 몇몇 나라에서 초청되어 온 다른 입양아들과 함께 이동하고,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유럽 벨기에라는 나라에서 온 달꽃을 이때 만났습니다.

새순이와 달꽃의 결혼식 때, 산체스 집안 식구들은 낡은 책상을 깔끔히 닦고, 거친 부분은 사포질하여서 매끄럽게 만들고, 그 위에 바니쉬를 칠하여서 재단장했습니다. 그리고 색동 포장에 커다란 빨강, 파랑 한국 태극기 문양의 리본으로 포장하여서 선물하였습니다. 새순 리하르트와 나의 삶을 엄격히 숙고하게 했던 기적의 책상, 그 낡은 책상이 앞으로 새순이 리하르트의 아기를 어떻게 인도할지 궁금하여집니다.

이 글의 일부가 울산광역배일에 발표되었습니다.

[나의 여행기] 역사와 문화를 찾아 떠난 동남아 여행 (II)기적을 이룬 동양의 용(龍) 싱가포르

미주 조선일보 [나의 여행기] 2025. 5.2.

바다사자 석상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저녁나절에 떠나, 잠자는 시간대에 배는 자바 바다를 약 12시간 정도 항해하여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크루즈의 장점이라면 바로 이렇게 잠자는 시간을 이용해서 다음 목적지를 향해서 이동하는 것이다. 은퇴한 사회학 또는 역사 교수들을 초빙해서 목적지 나라에 대한 강의를 제공하는데, 나는 이번 여행에서 학창 시절에 그냥 지나쳤던 세계사의 일부를 배웠다.

싱가포르는 아름다웠다. 치과 의사 조카가 10여 년 전에 중국계 싱가포르 청년을 만나서 정착한 곳이기도 하다. 조카사위의 부모님들은 중국계로 젊은 시절에 이주해서 가정을 이루고 2세를 그곳에서 교육하셨다. 조카사위네처럼, 싱가포르 인구의 약 75%가 중국 출신이고, 9% 정도가 인근의 나라인 인도계이다.

싱가포르는 한국 면적의 약 3%밖에 안 될 정도로 작고, 천연자원도 거의 없다. 63개의 섬에 둘러싸여 있는데, 과거에는 인접 국가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처럼 가난했었고, 일찍이 영국과 네덜란드가, 이차대전 3년 동안은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말레이시아에서 1965년에 공식 독립선언을 했다.

볼품없던 어촌이 지금은 세계 정보통신 산업과 금융시장, 글로벌 사업체의 허브이고, 국제회의, 국제 전시회 장소로도 선호되는 곳이다. 일반인 관광의 명소이기도 하다. 싱가포르 관광청 통계에 의하면 2022년 한 해 동안에 630만 명 외국인이 방문했고 143억 달러 수입을 창출했다고 한다.

우리가 일차적으로 들린 곳이 마리나 해변이었다. 바로 이곳 초입에 그들의 마스코트 ‘바다사자’ 석상이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사진 참조). 몸체는 물고기이고, 얼굴과 상체는 사자인데, 사자의 벌린 큰 입에서 맑은 물이 폭포처럼 뿜어지고 있었다.

예술과학 박물관

근방 산책로에는 하늘을 향해 펼쳐진 흰 연꽃 모습의 예술 과학 박물관(사진 참조) 과 버섯을 펼쳐 놓은 모양의 ‘슈퍼 트리’라고 불리는 18개의 인공 수직 나무들이 있다. 이 ‘슈퍼 트리’에는 총 226,000개의 나무가 심어지어 있고, 관개수로(灌漑水路)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알려진 싱가포르의 명소로 나란히 선 3개의 카시노 호텔인 마리나베이 샌즈를 볼 수 있다. 바다사자 석상이 있는 운하 저수지의 건너편 해변에 자리하고 있는데, 배 모양으로 조형된 ‘하늘의 정원’ 전망대를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이다. 이 ‘하늘의 정원’은 무려 3에이커(약 3,672평)의 면적으로 관광객들이 하늘 가까이에서 특혜를 누리는 곳 같아 보였다. 높은 곳에서, 땅위의 문화 공간을 한눈에 내려다보면서, 산책도 하고, 수영도 할 수 있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최고의 요리를 먹을 수 있다. 놀랍게도 주인은 미국 회사 라스베이거스 샌즈라고 한다.

( 사진 배경이 마리나 베이 샌즈)

네 마리의 용()이라는 표현은 30여 년 전에, 하버드 대학 동아시아 전문 교수이었던 에즈라 보겔 교수가 그의 저서에서 네 나라, 즉 홍콩, 타이완, 싱가포르와 한국이 미래에 이룰 경제적 발전 가능성에 대한 시사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한국보다는 중국과 일본에 관심이 많았던 학자이었지만 모국 한국과 싱가포르를 생각해 볼 때, 그의 의견은 맞아떨어졌다. 용의 나라들의 국기는 크든 작든 빨간색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빨간색은 ‘피, 용기, 힘, 독립을 위한 투쟁’을 뜻한다. 간혹 공산주의, 사회주의 의미도 담고 있다. 사진은 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홍콩, 타이완, 싱가포르, 한국 국기 모습이다.

싱가포르의 경제개혁은 초대 총리이었던 중국계 리관류(1923~2015)의 공로라고 해석한다. 한국에서는 허리띠 졸라매고, 더위를 참고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 하던 때에, 그는 연평균 섭씨 25도에서 31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기후 때문에 업무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에어컨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정책을 썼다. 싱가포르 경제 성장의 큰 역할을 에어컨이 했다는 뒷이야기이다.

인간네들의 달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한 살아가는 이야기를 모두 나눌 수는 없지만, 네 마리 용 중의 하나로 뽑힌 모국 한국이기에, 안도하고 감사하면서 싱가포르 이야기를 마친다.

[어른을 위한 동화] 낡은 책상(II)

아버지가 얻어 오신 낡은 책상은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애용했던 귀중품이었어요. 그리고 그 책상은 나의 친구 리하르트 새순이를 기다리곤 했어요. 친구와 나는, 작고 낡은 우리 둘만의 책상에 마주 앉아 숙제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친구 리하르트 새순(새筍)이가 오랜만에 연락을 해 왔어요.

‘미겔 산체스, 네가 내 옆에 있어 주었으면 좋겠어.’

‘무슨 일이야?’

리하르트는 아무나 방문할 수 없는 격리 입원실에 있다고 했습니다. 백혈구가 없기 때문이라 했어요. 백혈구는 힘센 군인들처럼 우리 몸의 곳곳을 순찰하러 돌아다니다가 나쁜 박테리아 무리를 만나면 죽여 버리는 것이 임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어떤 박테리아는 우리에게 꼭 필요해서 우리랑 함께 살아야 한다네요. 박테리아는 어디에나 있다고 해요. 우리가 숨 쉬는 공기, 땅에 서 있는 나무들에도 있데요. 그렇지만, 리하르트에게는 모든 박테리아가 적군이라 합니다.

리하르트는 백혈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리하르트가 암에 걸린 것이 불공평한 것 같아서, 화가 나고 슬픕니다. 자꾸만, 어렸을 때 생각이 납니다. 리하르트를 처음 만났던 날이 기억납니다. 어느날 아침 일찍, 항상 그랬듯이, 나는 우리 초등학교 운동장을 삐~잉 둘러싼 철망 중에 뚫려서 만들어진 개구멍을 지나서 운동장으로 들어가려고 하였어요. 그러다가,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키가 작고 빠짝 마른 동양 아이가 나를 삐쭘히 보고 있었던 것이에요. 나중에 리하르트 백인 부모님을 만난 후에 알게 되었는데, 리하르트는 입양아이었습니다.

입양된 리하르트에게는 이름 하나가 더 붙어 있어요. 새순이라고 처음에는 이상하게 들리던 이름이었어요. 리하르트 새순. 가족의 성까지 붙이면 리하르트의 이름은 꽤 길어요. 새순이라는 이름은 새순이를 낳으신 엄마가 지어 주신 것이라 합니다. 나는 잘 모르는 글자인데, 리하르트가 태어난 나라의 알파벳을 한글이라고 부른데요. 첫 글자 하나는 한글이고, 두 번째 글자는 한문이래요. 『새』-『筍』. 한문은 중국이라는 나라의 글이라고 합니다. 리하르트 양부모님이 리하르트를 데리러 갔던 한국의 보육원 서류에서 리하르트 엄마가 지어 주신 본래 이름을 보셨다 해요. 원래의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이 좋다고, 중간 이름으로 넣으셨다고 합니다.

이름의 뜻을 듣고 나서, 이런 상상을 했어요. 나는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추운 겨울에 잎이 다 떨어져서 죽은 늙은 나무를 보고 있네요. 그 나무는 아주 외롭게 서 있어요. 죽은 것 같아요. 그런데 따뜻한 봄이 되자 울퉁불퉁한 줄기에서 두꺼운 껍질을 비집고 여린 초록색 새싹이 ‘안녕!’하고 말을 걸어 오면서, 기저귀 찬 새순이를 세상으로 내보내는 장면을요.

새순이와 나는 공부를 좋아했어요. 새순이가 주로 우리집에 와서 시간을 보냈어요. 함께 낡은 책상에 앉아 숙제도 하고, 그림도 그리곤 했어요. 리하르트와 나는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녔어요. 아무도 대학을 간 사람이 없었던 우리 집안에서는 내가 처음이었어요. 반면, 부모님이 약학 박사이신 새순이가 대학으로 진학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지요.

어렸을 때, 가끔 우울해 보이던 새순이. 우리집 낡은 책상에 턱을 고이고 깊은 생각에 빠질 때가 있었어요. 부유한 집에서 잘 사는 리하르트가 가끔 외로워 보이기도 했어요.

‘내 친엄마 아빠도 산체스 아줌마, 아저씨처럼 뽀뽀도 해주고, 무동도 태워주셨을까?’

새순이가 걸린 백혈병은 키모데라피로 잘 치료되었지만, 정상인 백혈구가 본의 아니게 따라서 죽었데요. 불공평해 보이는 삶 가운데에서 친구는 이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을까요….

리하르트가 받을 다음 단계의 치료는 골수이식이래요. 골수는 피를 만드는 공장이라 합니다. 보통은 DNA를 공유하는 친 혈통 가족의 골수를 얻어다가 리하르트의 뼛속에 넣어 주면 제일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내 친구는 골수 기증자를 찾아야 해요. 유전적으로 성분이 맞는 사람을 어떻게 찾을지 막막합니다.

새순이라는 이름을 준 나라, 한국에서 친척들을 찾을 수 있을까요? 친척이 아니라도 한국분들과는 유전자 공유 가능성이 높아서, 한국말로 프린트하는 신문사들과 워싱턴에 있는 한국 대사관, 큰 도시마다 있는 한인회라는 교민들의 단체에 연락해 놓았어요.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 친구 리하르트 새순이를 살리기 위한 기다림은 길고, 힘들지만, 새순이가 겪고 있는 어려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 아픔으로 새순이를 살릴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