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의 힘

울산광역매일 2026.4.7

봄방학이라고 스페인과 뉴멕시코에 살고 있는 두 딸 가족 8명이 다니러 왔다. 아이들은 사춘기 이전의 12살짜리부터 사춘기를 경험하고 있는 16살까지 좀 다양한 나이대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딸들은 대학 시절부터 우리를 때때로 떠났다. 대학 졸업 후, 잠시 귀향하였다가, 대학원과 수련의 과정을 이곳, 저곳에서 하면서 그리되었다. 딸들은 아이들의 교육환경, 식구의 사회적ㆍ경제적 편안함을 이유로 결국 다른 주와 다른 나라에 각각 정착했다.   

이들은 봄방학 여행을 계획하고 멀다면 먼 길을 왔다. 막내 손주네 가족은 비행시간만도 13시간 걸리는 곳에서 왔다. 공항 상태가 순조롭지 않은 요즘, 출발시간 서너 시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거의 하루를 길에 있었던 셈이다. 중, 고교 생인 다른 세 손주는 학교 수업뿐만 아니라 과외활동의 종류와 심도가 달라 한 가족이 두 팀으로 나뉘어져 로스앤젤레스에 왔다. 손주들의 방학은 3월에 시작됐지만, 기간이 다르다 보니, 끝나는 때는 서로 달랐다. 그러다 보니 사촌끼리 함께 지낼 수 있는 날이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패서디나에 있는 노르턴 싸이몬 박물관과 UCLA 근방에 있는 해머 박물관, 싼타모니까 바닷가에서 삼십여 년 동안 운영되어 온 해파리 연구 과학관을 방문하였다. 손주들은 혼혈이다. 현대식 표현을 빌리자면 그네들은 다른 인종끼리 이룩한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났고, 자라고 있다. 한국혈통 엄마와 비한국계 아빠 사이에 태어난 손주들은 인종과 민족 또 국가의 차이점들을 어려서는 알지 못했다. 자라면서 차츰, 자기들의 복합적인 정체성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동양적인 것, 한국적인 것들이 스스로에게서 스며 나오는 것임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러워한다. 세상이 변했다. 기이하다. 내가 아메리카 반도에 발을 디디었던 반세기 전에는, 얼굴색이 노랗다고, 눈과 코가 작다고 놀림을 받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다민족 국가인 미국은 혼혈의 분도(分度)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2010년에 3백만이었던 혼혈인구는 10년 후인 2020년에는 3천3백만 명으로 늘었는데, 이것은 현재 미국 인구의 10%에 해당한다. DNA 검사를 하면 이보다 훨씬 높은 분포가 나올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때문에 언어도, 음식도 종류가 많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엘에이 교육구 학생 중에는 집에서 영어 아닌 언어를 쓰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언어의 종류가 자그마치 90개 이상이라고 한다.    

내가 손주들에게 가르칠 만한 한국적인 것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아이들은 특별히 가르치지 않아도, 보고 배울 것이다. 동양인들의 예의, 손위 어른들을 존중하는 태도, 문턱을 넘어 집 안으로 들어갈 때 신발을 벗는 정갈함 등등이 생각난다. 손주들이 알게 된 명절은 새해와 추석 정도이다. 하지만 한국 음식은 항상 아이들과 함께 있다. 그래서인지 이젠 미국인들도 김치 냄새와 발효된 마늘 냄새를 좋아한다. 우리가 꼬랑꼬랑한 치즈 냄새를 싫어하지 않게 된 것처럼 말이다. K-팝, K-컬처 등 `K`라는 글자가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K-푸드 한국 음식은 그들을 열광하게 한다. 아이들은 추억이 듬뿍 베인 소탈한 흰밥, 된장찌개,`할머니표 김치`를 원했다.  

미국 봄방학의 문화는 1930년대에 뉴욕주의 북쪽 지방에 있는 콜게이트 대학 수영팀의 겨울철 훈련 장소 이동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북부 추운 날씨를 피해서 미국의 베네치아라고도 불리는 플로리다주의 포트 라우더데일에 마침 새로운 올림픽 싸이즈 수영장이 만들어지었을 때이었다. 그 후, 1960년대에 미국 5대호 주위를 감싸고 있는 8개 주 중 하나인 미시간주의 주립대학 글렌돈 스와토우트 영문학 교수의 리드로 봄방학을 이용한 영문과 학생들의 활동이 같은 타운에서 있었다. 이때의 경험을 책으로 썼고,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고, 봄방학의 개념은 세상에 알려지면서, 학생들이 필요한 `쉼`에 대한 아이디어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 한다.   

사반세기 후 1990년대에, 흑인 학생들이 위주가 된 봄방학 이벤트가 있었다. 영화 속이 아니고 실제로 거리로 나가서 춤추고, 노래하는 `길거리 파티`로 폭발적인 남부의 힙-합 파티 프리크니크에 같이 탄 것이다.   

봄방학은 학생들에게는 과도한 학교 공부를 잠깐 쉴 수 있는 필요한 브레이크 같다. 손주들, 딸들, 사위들이 함께 하는 그들의 봄방학에 우리집이`에피쎈터`가 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영화가 보여주는 봄방학과, 프리크니크 식의 방학과는 그림이 아주 다른, 가족 중심의 브레이크이었다. 그런데 음식을 중심으로 하는 이번 봄방학에, 김치가 한 중심에 있었다.`할머니표 김치`를 동반하는 음식 파티, 그것이 `김치 파우어`가 아니겠는가. 한국인의 소울 푸드는 역시 김치이다. 다음의 김치 파티를 기다리면서 김치에 관한 연구를 더욱 신중하게 할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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