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바꾸는 소중한 만남

[LA중앙일보] 발행 2019/11/30 미주판 14면 기사입력 2019/11/29 18:22
산다는 것은 만남의 연속이다. 본인의 의지가 무시된 것이 생의 시작이지만 만남 또한 의지가 무시된 상태에서 시작된다. 살아가면서 많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만난다. 때로는 선택의 여지가 있기는 하다.

뒤돌아보면 나에게는 좋은 만남이 많았다. 대부분이 환자들이었고 그들에게는 아픔의 순간들이었지만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뜻이 깊었다. 서로가 서로를 통해 질병에 대해 배우며 익숙해졌고, 죽음이 내포된 삶을 숙고했다. 그들과의 만남은 나와 그들을 겸손하게 했을 것이다.

어떤 만남은 삶의 진로를 변경하는 힘이 있다. 스펙이 부족했던 나에게 다른 대학병원에서 인턴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외과 교수와의 만남이 그 예다. 교수가 인도했던 길에서 남편도 만났다. 인도와 만남은 그 이후에도 나를 또 다른 길로 이끌었다. 뉴욕주립대학 병원에서의 수련의 과정이 이어졌고, 그곳에서 만난 과장은 카이저 병원의 종양방사선과 과장에게 나를 추천했다.

나는 이쯤해서 내적 이야기를 조금은 해야한다. 만남이란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국을 떠나 외국에서 시작한 수련의 기간 동안 겪었던 내적 단련은 사고방식의 재정비라고 생각된다. 궁극적으로 이 기간동안 했던 자신과의 싸움은 끝났고 평화를 얻었다.
평화는 글을 쓸 수 있게 했다. 내 환자들의 인생 이야기를 지식으로만 풀지 않고 마음으로 풀어서 글로 엮어,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됐던 것이다. 거기에 의학에 대한 내용은 한 두 줄이면 족했다. 간혹 의학이 아닌 이야기도 썼다. 이는 중앙일보와의 만남으로 이루어졌다.

만남은 계속됐다. 5년 전 신문에 ‘오픈 업’ 칼럼을 통해 나간 ‘외국어 한글 표기에 대한 조언’이라는 글을 읽고, 신문사를 통해 연락해 온 인생 선배가 그중 한 명이다. 동부에 살던 선배는 한글세계화에 대한 관심이 많은 과학자였다. 선배는 나보다 이미 10년 전에 한국정부에 한글세계화 지원을 건의했다고 한다.

글을 통한 선배와의 만남은 얼굴을 마주하는 만남은 아니었지만 의롭고, 희망적인 것이었다. 선배와는 종종 이메일로 연락하고 지냈다. 지난 주 워싱턴에 출장을 갔을 때 연락을 했다. 선배는 한글세계화에 관심이 많은 친구 두 명을 초대해 자리를 마련했다. 두 사람 역시 과학자다. 조용히 한글세계화에 동참해 온 그들과의 만남은 뜻깊고 따뜻했다. 한국어진흥재단의 역사, 즉 미국 한인사회의 한글교육에 대한 역사를 엮은 책을 전하고 헤어졌다.

고 정채봉 작가의 ‘만남’이라는 수필이 생각났다. ‘변화는 만남으로서만이 가능하다’라는 칡나무와 잣나무의 이야기이다. 그들의 만남이 삶의 진로를 바꾸어 오랜 세월 끝에 잣나무는 섬진강의 배가 되고, 칡나무는 절의 기둥이 됐다고 한다.

워싱턴에서의 만남은 좋고도 귀했다. 그 만남은 나에게 또 다른 변화의 용기를 줄 것이다.

 

동부에서 만났던 선배들은 김진도, 김용덕, 한기택 박사님들이시고, 이 중 두분의 사모님들이 저의 고교 선배님이시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세종대왕과 한국인 디아스포라

중앙 7 2019
나는 한국어를 외국어 선택과목으로 배우고 있는 정규학교 한국어반 학생들 중에 장학생으로 뽑힌 그룹과 한국어를 채택할 수 있도록 학교행정 결정권을 갖고있는 교장, 교육감들 그룹과 약 2 주 넘게 한국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어있다.

학생팀은 경희대학 수원캠퍼스에서 여름연수학교 개교식을 했다. 70% 이상이 한국계가 아니다. 한국어를 배우게 된 동기에 대한 질문을 할 시간이 없어서 아쉬웠다. 개교식에서 어렸을 때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이 두뇌 부피를 크게 하고 이는 뇌의 기능에 여러모로 협조한다는 의학적인 설명을 해 주었다. 이 점은 의사인 내가 한국어진흥재단에서 봉사하는 의미를 간접적으로 부여한다.

이 학생들에게 ‘Welcome to my motherland!’ 라는 말로 환영사를 시작했을 때 나는 내가 ‘한국인 의학 디아스포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미국은 디아스포라의 나라라는 생각도 했다. 현재 한국은 가장 많은 디아스포라를 갖고 있다는 인도(천 5백만) 의 약 절반인 7백여만의 디아스포라를 갖고 있다.

디아스포라의 어원을 따져 보면 유대인들의 바빌론 유배로 돌아간다. 그리스말로 ‘흩어지다’ 라는 말에서 나왔다. 타율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자발적인 떠남이 아니라 외력에 의해서 군중들이 살고 있던 고장, 국가를 떠나야만 했다는 의미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디아스포라라는 단어는 개인의 ‘이민’이라는 말과 뜻을 같이하면서, 걸 맛게 쓰여지어 왔다. 인간기본권 침해의 대표적인 예가 되는 아프리카 노예매매 즉 흑인디아스포라라 부른다. 자의에 인한 이동의 뜻이 포함되어 쓰여지다 보니 ‘대기업디아스포라’라는 말도 생기었고 그 뜻은 이해하기 쉽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메디컬디아스포라’일 것이다.

요즘 인류학자들은 디아스포라의 의미를 자유롭고, 넓은 의미로 쓰이는 것에 별로 반대하는 의견을 내세우지 않는 것 같다. 어떤 학자는 인류 모두는 ‘아프리칸 디아스포라’라고 까지 표현한다. 왜냐하면 3백만년 전에 살았다는 인류의 조상 ‘루시’가 발견된 곳이 이디오피아이고 여기서 세계로 퍼진 것이 인류라고 본다면, 원본지 아프리카를 붙여 그리 부를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코리언디아스포라, 메디컬디아스포라인 나의 삶을 되돌아 본다. 디아스포라들은 정착지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모국과의 연계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정착지, 정착국가에 여러 형태의 기여를 할 뿐 아니라 모국에도 지능기부, 재정적인 기부도 많이 한다. 그래서 필리핀 사람들은 심지어 ‘필리핀 디아스포라 필란드로피’라는 말까지 만들었다. 필란트로피란 인류애를 바탕으로 하는 체계적인 기부활동을 뜻한다. 단순히 궁핍한 사람들을 돕는 자선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 질적 삶의 향상을 위한 인류애를 기본으로 하는 자선행위를 말한다. 필린핀 출신이 외국에서 성공하고 그 결과로 이룩한 부를 모국민의 질적인 삶을 위해 교육기관, 의료, 문화 교육에 기여 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미국인 정규학교 행정가들과 위의 내용들을 편안하게 나누었고 학생들은 나름대로 한국과 한글을 배우고 있다. 어제 방문한 전쟁박물관, 한글박물관, 중앙박물관은 각각 다른 형태로, 본래의 의미를 살려 현대식으로 설계되어 지어진 크고 멋 있는모습이었고, 내용물도 조경도 훌륭했다. 내가 디아스포라로 살아왔던 반세기 가까운 세월동안 모국은 아름답고 정연하게 발전해 있음을 실감한 하루였다.

세종대왕은 디아스포라들이 이룩했던 독립국 미국에 이백여년이 지난 후 합세한 지금의 한국인 디아스포라들의 고충과 업적을 보시고 흐뭇해 하실 것으로 믿는다. 한국의학디아스포라들의 업적도 대왕께서는 놀라시며 보고 있으실 것이다. 당신 백성들의 뿌리는 깊어가고 한글은 세계로 퍼져가고 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떠난다 ’ 2019.8. 중앙

 

친구는 자신의 장례미사를 어떻게 하면 멋있을까 궁리중이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장례식에 올 친지들을 생각해 보면서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상상해 본단다. 친구의 얼굴은 순수하고 맑았다. 장례식에 올 하객 중에 나도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짧게 답했다.

지난 달 한국을 방문했을 때, 어릴적 함께 몰려다니며 놀았던 두 친구들과 짧은 시간을 함께 했다. 그 중 한 친구가 말기 암 투병중이다. 우리 셋이 어떻게 친구가 됬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들은 다른 환경의 산물들이었고, 고교를 졸업한 후 다른 길을 걸어왔다. 투병중인 친구에게 나는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한다. 우리들이 조선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친구될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친구는 조선 말기 부원군 양반집안의 후손이다. 중인 출신과 친구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친구가 투병에 성공하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뜬다면 나는 무척 아파할 것이다. 아쉽고 안타깝고 아깝기 때문이다. 내색하지 못하는 나의 짙은 친구의 연명에 대한 바램은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영어로 죽는다는 것을 ‘die’라고도 하지만 ‘pass’라고도 한다. ‘패스’란 이동하다, 건너가다, 합격하다라는 뜻이 있다. 그래, 죽음이란 ‘건너가는 것’이라 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친구가 죽는다 해도, 그는 내가 갈 그곳으로 먼저 ‘건너가는 것’일 것이다.

방사선 암치료학을 전공한 나이지만, 나는 친구의 암투병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어디 이 친구 뿐이랴. 주위에는 적지 않은 지인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항암제 약물치료를 받으면서 여러가지 부작용으로 힘들어 하고 있다. 이 미국만 해도 일년에 십만명 인구에 약 440명이 발암하고, 약 164명은 명을 달리한다. (저자 주: 2011-2015 통계로 2018년 4월 발표된 것)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영원할 수 없다는 진리 앞에 의사들은 이를 처절히 머리로 터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진리는 자신이 겪을 때 비로소 가슴으로 온다. 이에 대한 경험은 한번으로 해탈할 수 없다는 또 하나의 진리 앞에서 혼돈스럽다.

영원한 이별은 사람끼리만 나누는 것이 아니다. 어제 내가 안식처를 마련해 주었던 메미라고 이름 붙여 주었던 홈리스 고양이가 우리와 10여년을 살다가 죽었다. 메미라는 이름은 녀석이 구제 되었을 때, 다섯마리의 새끼들과 함께 있었기에 엄마라는 뜻에서 붙여준 이름이다. 새끼들도 성공적으로 입양되었다. 메미의 생명력은 처음 발견 되었을 때 어미로서 사나웠던 것 처럼, 세상을 떠나는 과정에서도 끈질겼다. 한달 이상을 서서히 허물어져 가던 녀석이 드디어 숨을 멈추었다. ‘메미가 오늘 오후 세상을 떠났음…’이라는 문자를 아이들에게 보냈다. 열한 살이 되는 큰손녀는 아파서 힘들어 했는데 잘 떠났다고 했고, 아홉살 짜리 손녀는 울었다. 여섯살 손주는 나와 말하고 싶다고 전화를 주었다. 손주의 음성은 낮았고 대화의 내용은 매끄럽지 못했다. 녀석은 진지했던 것이다. 어떻게 죽었는지…말해 달라고 했다.

죽는 다는 것과 그 과정을 처음 알게 된 어린아이들에게 삶은 과연 어떤 변형된 모양으로 비쳐질가 궁금하다. 보았지만, ‘우리 모두는 그렇게 떠난다’는 사실을 진정 깨달았을까 싶다. 그리고 죽음의 해석이 ‘패스’라면, 이동 또는 다른 세상에 합격한 과정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 이동한다.

새 트렌드가 아닌 트렌스

 

오랫만에 고교 졸업식에 참석했다. 여학교인 이 학교 졸업생들은 흰 드레스를 입고, 교사들은 가운과 사각모를 쓰고 입장했다. 졸업생들의 등장하는 모습은 멋 있었다.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쓸 준비를 하며, 이들은 졸업식장을 나설 것이다.

흰 드레스를 입고 입장하는 졸업생들 중에 회색 양복에 핑크색 부케를 양복주머니 위에 꽂은 두명의 핸섬한 청년들이 끼어 있었다. 그들은 트렌스젠더(이하 트렌스)라고 했다. 고교 3학년 때 자신의 아이덴티디를 알게되고, 외모상의 성전환을 실행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신체내부의 변경 여부는 모른다. 트렌스가 아니고 인터섹스 (間性)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학교는 이들을 퇴학시키지 않았다. 학교의 결정은 옳은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여자 800m 국제경기에서 두번의 금메달을 받은 경력이 있는 육상선수 세메냐 (Mokgadi Caster Semenya)에 대한 기사가 눈을 끈다. 그녀의 재능이 남성적 외모와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녀가 트렌스 또는 인터섹스일지 모른다는 추측이다. 스포츠중재재판소는 그녀에게 약물로 남성호르몬 수치를 낮춰야 육상 여자부 경기에 출전할 수 있다고 통고했다고 보도되었다. 의아하다. 기본권의 침범으로 보인다.

남성호르몬 수치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외부투약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한다. 그렇다면 이 판결은 인권침해라는 관점 이외에도, 한 개인의 생리적인 타고난 상태에 대한 공개적 도전으로도 볼 수 있고, 위험한 판례 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트렌스, 인터섹스는 호모, 게이 같은 성취향성과 다르다. 트렌스는 태어났을 때 주어진 성별(性別gender)이 싫어서 자라면서 반대의 성별을 추구할 때 일커르는 말이다. 인터섹스는 선천적으로 밖으로 보이는 성별과 내부적인 성별이 일치하지 않는 애매한 경우를 말한다. 즉 남자 또는 여자, 그 어느 카테고리에도 맞추기 어려운 생식기관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을 말한다.

참고로 우리들에게는 반대 성의 호르몬이 소량씩 분비된다. 또 트렌스 남성은 임신 할 수도 있다. 유난히 체구가 큰 여성이 전립선암으로, 또 키작은 털보 남성이 유방암으로 의뢰되어 왔던 기억이 새롭다.

졸업생 트렌스 청년들, 또 세메냐 선수가 겪고 있는 입장을 그냥 부인할 수는 없는 시대이다. 미국에는 약 백 사십만 명의 성인들이 자신은 트렌스라고 표현하는데, 실상 그 숫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인터섹스는 생각보다 많은 100명 중 한명이라 보고되어 있다.

트렌스의 대다수는 밀레니아 즉 현제 20세에서 39세 사이의 젊은이들로 증가추세 (현재8.1%) 이고, 여성들이 남성보다 많다. 10대들의 실제 숫자는 불분명하지만 미네소타 대학 닉 라이더 연구원의 보고에 의하면, 2016년 미네소타 주의81,000명 십대 청소년들을 상대로 한 연구에서 2,200명 즉 2.7%가 자신은 트랜스 또는 ‘성(性)비확인그룹 (gender non-confirming)’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과연 트렌스가 증가추세일까?

아닐 것이다. 태고적 부터 있었다. 세계 대전을 치른 후, 세상은 인권의 존중, 언론의 자유, 포용하는 사회를 만들려 노력하여 왔고, 이는 덤으로 알게 된 통계, 정보가 아닐까 싶다. 포용하는 사회라 하지만 트렌스나 인터색스들을 ‘죄인’처럼 단죄하는 우리들이다. 차별당하고 기본권이 무시되고, 증오범죄의 대상이 되는 사례를 흔히 보아왔다.

졸업식장에서 본 두 청년, 세메냐의 안전을 빌자. 젊은 그들이 걸어야 하는 길이 평탄하지 않고, 험난할 수도 있을 것을 알므로, 마음이 편치 않다.

여든 다섯 살 동생이 스물 여섯살 형을 만나다

‘형, 나 왔어.’ 85세 유경이 말했다.
‘수고했다, 나 대신.’ 26살 형, 응경이 답했다.

유경은 다시 말했다.
‘형, 수고한 것 없어. 형수를 돌보아주지 않았지. 난 형수를 싫어 했어. 형은 내가 왜 그랬는지 알지… 그리고 형수는 아주 이악(利惡 or이약 利掠)했어. 어머니, 아버지와 동생들 힘들 때 아주 잘 살았어.’

응경이 답했다.
‘알고 있다. 형수도 이곳에 왔지. 우리 모두 다~ 불쌍한 삶을 산 것이 아니었겠니?’

 

 

 

큰오빠 생각을 종종한다. 나에게 큰오빠는 유경이다. 응경은 한국전에서 전사했고, 나는 그 때 세살이었다. 응경은 두 딸과 젊은 아내를 남기었다. 유경은 2년 전에 소천했다.

참, 삶이란 허무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