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 종양 전문의이며, 하버드 의대를 졸업한 딸을 둔 ‘하버드맘’이기도 합니다. 미국 공립학교에 한국어 과정을 설치하는데 앞장서는 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으로의 활동과 하버드맘의 경험을 학부모들과 공유합니다.
Podbbang.com
Dr. Monica C. Ryoo 는 교육가는 아니지만 교육자로서, 부모로서, 의사로서 자신이 겪은 경험과 실수를 나눈다
essay based on care of patients, current events
방사선 종양 전문의이며, 하버드 의대를 졸업한 딸을 둔 ‘하버드맘’이기도 합니다. 미국 공립학교에 한국어 과정을 설치하는데 앞장서는 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으로의 활동과 하버드맘의 경험을 학부모들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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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Monica C. Ryoo 는 교육가는 아니지만 교육자로서, 부모로서, 의사로서 자신이 겪은 경험과 실수를 나눈다
장연화 기자 chang.nicole@koreadaily.com
[LA중앙일보] 발행 2019/09/30 미주판 6면 기사입력 2019/09/28 13:24
모니카 류 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이 창립후 첫 갈라를 오는 10월9일 한글날에 주최한다.
한국어진흥재단(이사장 모니카 류)이 창립 25주년을 맞아 한글날인 오는 10월 9일 할리우드에 있는 태글리안 콤플렉스(Taglyan Complex·1201 Vine St. LA)에서 대대적인 만찬 행사를 연다.
재단 설립후 처음 진행하는 대규모 행사인 만큼 재단의 탄생과 지금까지의 활동, 앞으로의 계획을 한눈에 보여주는 기념 책자를 제작했다. 또한 LA통합교육구(LAUSD)를 비롯해 각 교육구의 교육자들을 대거 만찬에 초대해 네트워크를 다진다.
무엇보다 최근 가주 하원의회에서 10월 9일을 한글의 날로 지정하는 결의안(ARC 109)이 최종 통과된 후 처음 맞게 되는 한글날에 열리는 행사인 만큼 재단의 이사진 모두 꼼꼼히 준비하고 있다.
모니카 류 이사장은 “이미 25년 전에 한국어 교육의 중요성을 알고 재단을 만들어 활동을 시작했지만 아직도 한국어진흥재단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는 이들이 많다”며 “이번 기회에 한인들과 단체들에게 우리의 업무와 활동을 널리 알리자는 생각에 작년부터 행사를 계획하고 준비해 왔다”고 설명했다.
류 이사장은 “가주 의회가 10월 9일을 한글의 날로 기념할 수 있는 결의안을 통과시킨후 한글과 한국어 교육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며 “우리 행사를 시작으로 앞으로 가주에 한글의 날이 널리 알려지고 기념되는 행사가 많이 진행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류 이사장은 “그동안 한국어반이 개설되도록 교육구와 행정가들을 설득하는 일과 새롭게 바뀌는 커리큘럼에 맞게 한국어 교재를 개정하고 교사연수를 진행하는 일은 꾸준히 했지만 AP한국어반 개설 목표는 정체돼 있었다”며 “미국 공립학교에 한국어 교육이 더 확산되려면 AP한국어반 설립은 필수인 것 같다. 앞으로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려 한다”고 밝혔다.
한국어 교사 양성 계획도 소개했다. 예비 한국어 교사들의 실습 활동 지원을 위해 최근 세종학당과 업무협정을 맺었다고 설명한 류 이사장은 “한국어가 확산되려면 한국어 교사는 필수다. 예비 한국어 교사가 한국어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도록 교사양성 세미나와 시험준비반 등을 통해 1.5세와 2세 한국어 교사가 많이 배출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어 세계화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또 한국어는 전통 문화와 음식문화 등과 함께 가르치면 더 빨리 퍼지고 배우게 됩니다. 한국어 교육이 잘 뻗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LA중앙일보] 발행 2019/11/30 미주판 14면 기사입력 2019/11/29 18:22
산다는 것은 만남의 연속이다. 본인의 의지가 무시된 것이 생의 시작이지만 만남 또한 의지가 무시된 상태에서 시작된다. 살아가면서 많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만난다. 때로는 선택의 여지가 있기는 하다.
뒤돌아보면 나에게는 좋은 만남이 많았다. 대부분이 환자들이었고 그들에게는 아픔의 순간들이었지만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뜻이 깊었다. 서로가 서로를 통해 질병에 대해 배우며 익숙해졌고, 죽음이 내포된 삶을 숙고했다. 그들과의 만남은 나와 그들을 겸손하게 했을 것이다.
어떤 만남은 삶의 진로를 변경하는 힘이 있다. 스펙이 부족했던 나에게 다른 대학병원에서 인턴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외과 교수와의 만남이 그 예다. 교수가 인도했던 길에서 남편도 만났다. 인도와 만남은 그 이후에도 나를 또 다른 길로 이끌었다. 뉴욕주립대학 병원에서의 수련의 과정이 이어졌고, 그곳에서 만난 과장은 카이저 병원의 종양방사선과 과장에게 나를 추천했다.
나는 이쯤해서 내적 이야기를 조금은 해야한다. 만남이란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국을 떠나 외국에서 시작한 수련의 기간 동안 겪었던 내적 단련은 사고방식의 재정비라고 생각된다. 궁극적으로 이 기간동안 했던 자신과의 싸움은 끝났고 평화를 얻었다.
평화는 글을 쓸 수 있게 했다. 내 환자들의 인생 이야기를 지식으로만 풀지 않고 마음으로 풀어서 글로 엮어,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됐던 것이다. 거기에 의학에 대한 내용은 한 두 줄이면 족했다. 간혹 의학이 아닌 이야기도 썼다. 이는 중앙일보와의 만남으로 이루어졌다.
만남은 계속됐다. 5년 전 신문에 ‘오픈 업’ 칼럼을 통해 나간 ‘외국어 한글 표기에 대한 조언’이라는 글을 읽고, 신문사를 통해 연락해 온 인생 선배가 그중 한 명이다. 동부에 살던 선배는 한글세계화에 대한 관심이 많은 과학자였다. 선배는 나보다 이미 10년 전에 한국정부에 한글세계화 지원을 건의했다고 한다.
글을 통한 선배와의 만남은 얼굴을 마주하는 만남은 아니었지만 의롭고, 희망적인 것이었다. 선배와는 종종 이메일로 연락하고 지냈다. 지난 주 워싱턴에 출장을 갔을 때 연락을 했다. 선배는 한글세계화에 관심이 많은 친구 두 명을 초대해 자리를 마련했다. 두 사람 역시 과학자다. 조용히 한글세계화에 동참해 온 그들과의 만남은 뜻깊고 따뜻했다. 한국어진흥재단의 역사, 즉 미국 한인사회의 한글교육에 대한 역사를 엮은 책을 전하고 헤어졌다.
고 정채봉 작가의 ‘만남’이라는 수필이 생각났다. ‘변화는 만남으로서만이 가능하다’라는 칡나무와 잣나무의 이야기이다. 그들의 만남이 삶의 진로를 바꾸어 오랜 세월 끝에 잣나무는 섬진강의 배가 되고, 칡나무는 절의 기둥이 됐다고 한다.
워싱턴에서의 만남은 좋고도 귀했다. 그 만남은 나에게 또 다른 변화의 용기를 줄 것이다.
동부에서 만났던 선배들은 김진도, 김용덕, 한기택 박사님들이시고, 이 중 두분의 사모님들이 저의 고교 선배님이시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중앙 7 2019
나는 한국어를 외국어 선택과목으로 배우고 있는 정규학교 한국어반 학생들 중에 장학생으로 뽑힌 그룹과 한국어를 채택할 수 있도록 학교행정 결정권을 갖고있는 교장, 교육감들 그룹과 약 2 주 넘게 한국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어있다.
학생팀은 경희대학 수원캠퍼스에서 여름연수학교 개교식을 했다. 70% 이상이 한국계가 아니다. 한국어를 배우게 된 동기에 대한 질문을 할 시간이 없어서 아쉬웠다. 개교식에서 어렸을 때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이 두뇌 부피를 크게 하고 이는 뇌의 기능에 여러모로 협조한다는 의학적인 설명을 해 주었다. 이 점은 의사인 내가 한국어진흥재단에서 봉사하는 의미를 간접적으로 부여한다.
이 학생들에게 ‘Welcome to my motherland!’ 라는 말로 환영사를 시작했을 때 나는 내가 ‘한국인 의학 디아스포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미국은 디아스포라의 나라라는 생각도 했다. 현재 한국은 가장 많은 디아스포라를 갖고 있다는 인도(천 5백만) 의 약 절반인 7백여만의 디아스포라를 갖고 있다.
디아스포라의 어원을 따져 보면 유대인들의 바빌론 유배로 돌아간다. 그리스말로 ‘흩어지다’ 라는 말에서 나왔다. 타율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자발적인 떠남이 아니라 외력에 의해서 군중들이 살고 있던 고장, 국가를 떠나야만 했다는 의미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디아스포라라는 단어는 개인의 ‘이민’이라는 말과 뜻을 같이하면서, 걸 맛게 쓰여지어 왔다. 인간기본권 침해의 대표적인 예가 되는 아프리카 노예매매 즉 흑인디아스포라라 부른다. 자의에 인한 이동의 뜻이 포함되어 쓰여지다 보니 ‘대기업디아스포라’라는 말도 생기었고 그 뜻은 이해하기 쉽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메디컬디아스포라’일 것이다.
요즘 인류학자들은 디아스포라의 의미를 자유롭고, 넓은 의미로 쓰이는 것에 별로 반대하는 의견을 내세우지 않는 것 같다. 어떤 학자는 인류 모두는 ‘아프리칸 디아스포라’라고 까지 표현한다. 왜냐하면 3백만년 전에 살았다는 인류의 조상 ‘루시’가 발견된 곳이 이디오피아이고 여기서 세계로 퍼진 것이 인류라고 본다면, 원본지 아프리카를 붙여 그리 부를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코리언디아스포라, 메디컬디아스포라인 나의 삶을 되돌아 본다. 디아스포라들은 정착지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모국과의 연계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정착지, 정착국가에 여러 형태의 기여를 할 뿐 아니라 모국에도 지능기부, 재정적인 기부도 많이 한다. 그래서 필리핀 사람들은 심지어 ‘필리핀 디아스포라 필란드로피’라는 말까지 만들었다. 필란트로피란 인류애를 바탕으로 하는 체계적인 기부활동을 뜻한다. 단순히 궁핍한 사람들을 돕는 자선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 질적 삶의 향상을 위한 인류애를 기본으로 하는 자선행위를 말한다. 필린핀 출신이 외국에서 성공하고 그 결과로 이룩한 부를 모국민의 질적인 삶을 위해 교육기관, 의료, 문화 교육에 기여 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미국인 정규학교 행정가들과 위의 내용들을 편안하게 나누었고 학생들은 나름대로 한국과 한글을 배우고 있다. 어제 방문한 전쟁박물관, 한글박물관, 중앙박물관은 각각 다른 형태로, 본래의 의미를 살려 현대식으로 설계되어 지어진 크고 멋 있는모습이었고, 내용물도 조경도 훌륭했다. 내가 디아스포라로 살아왔던 반세기 가까운 세월동안 모국은 아름답고 정연하게 발전해 있음을 실감한 하루였다.
세종대왕은 디아스포라들이 이룩했던 독립국 미국에 이백여년이 지난 후 합세한 지금의 한국인 디아스포라들의 고충과 업적을 보시고 흐뭇해 하실 것으로 믿는다. 한국의학디아스포라들의 업적도 대왕께서는 놀라시며 보고 있으실 것이다. 당신 백성들의 뿌리는 깊어가고 한글은 세계로 퍼져가고 있다.
친구는 자신의 장례미사를 어떻게 하면 멋있을까 궁리중이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장례식에 올 친지들을 생각해 보면서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상상해 본단다. 친구의 얼굴은 순수하고 맑았다. 장례식에 올 하객 중에 나도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짧게 답했다.
지난 달 한국을 방문했을 때, 어릴적 함께 몰려다니며 놀았던 두 친구들과 짧은 시간을 함께 했다. 그 중 한 친구가 말기 암 투병중이다. 우리 셋이 어떻게 친구가 됬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들은 다른 환경의 산물들이었고, 고교를 졸업한 후 다른 길을 걸어왔다. 투병중인 친구에게 나는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한다. 우리들이 조선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친구될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친구는 조선 말기 부원군 양반집안의 후손이다. 중인 출신과 친구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친구가 투병에 성공하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뜬다면 나는 무척 아파할 것이다. 아쉽고 안타깝고 아깝기 때문이다. 내색하지 못하는 나의 짙은 친구의 연명에 대한 바램은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영어로 죽는다는 것을 ‘die’라고도 하지만 ‘pass’라고도 한다. ‘패스’란 이동하다, 건너가다, 합격하다라는 뜻이 있다. 그래, 죽음이란 ‘건너가는 것’이라 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친구가 죽는다 해도, 그는 내가 갈 그곳으로 먼저 ‘건너가는 것’일 것이다.
방사선 암치료학을 전공한 나이지만, 나는 친구의 암투병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어디 이 친구 뿐이랴. 주위에는 적지 않은 지인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항암제 약물치료를 받으면서 여러가지 부작용으로 힘들어 하고 있다. 이 미국만 해도 일년에 십만명 인구에 약 440명이 발암하고, 약 164명은 명을 달리한다. (저자 주: 2011-2015 통계로 2018년 4월 발표된 것)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영원할 수 없다는 진리 앞에 의사들은 이를 처절히 머리로 터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진리는 자신이 겪을 때 비로소 가슴으로 온다. 이에 대한 경험은 한번으로 해탈할 수 없다는 또 하나의 진리 앞에서 혼돈스럽다.
영원한 이별은 사람끼리만 나누는 것이 아니다. 어제 내가 안식처를 마련해 주었던 메미라고 이름 붙여 주었던 홈리스 고양이가 우리와 10여년을 살다가 죽었다. 메미라는 이름은 녀석이 구제 되었을 때, 다섯마리의 새끼들과 함께 있었기에 엄마라는 뜻에서 붙여준 이름이다. 새끼들도 성공적으로 입양되었다. 메미의 생명력은 처음 발견 되었을 때 어미로서 사나웠던 것 처럼, 세상을 떠나는 과정에서도 끈질겼다. 한달 이상을 서서히 허물어져 가던 녀석이 드디어 숨을 멈추었다. ‘메미가 오늘 오후 세상을 떠났음…’이라는 문자를 아이들에게 보냈다. 열한 살이 되는 큰손녀는 아파서 힘들어 했는데 잘 떠났다고 했고, 아홉살 짜리 손녀는 울었다. 여섯살 손주는 나와 말하고 싶다고 전화를 주었다. 손주의 음성은 낮았고 대화의 내용은 매끄럽지 못했다. 녀석은 진지했던 것이다. 어떻게 죽었는지…말해 달라고 했다.
죽는 다는 것과 그 과정을 처음 알게 된 어린아이들에게 삶은 과연 어떤 변형된 모양으로 비쳐질가 궁금하다. 보았지만, ‘우리 모두는 그렇게 떠난다’는 사실을 진정 깨달았을까 싶다. 그리고 죽음의 해석이 ‘패스’라면, 이동 또는 다른 세상에 합격한 과정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 이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