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의 땅에 세워진 학교들 2013

남편과 나는 지난 주 남부 테네시주(州)를 시점으로 중서부 일리노이주를 거쳐 미시간주(州)까지 자동차 여행을 했다. 일리노이를 지나는데 ‘•링컨의 땅’이라는 팻말이 있었다. 처음으로 그런 싸인이 고속도로에 있는 것을 본 것이다. ‘•링컨의 땅’이라…

미국은 각 주(州)마다 특징에 따라 별명이 있다. 예컨대 캘리포니아의 또 다른 이름은 ‘골든 스테이트’다. 주(州)의 닉네임대로라면 남편과 나는 ‘봉사자의 주(테네시)’부터 북상해서
‘대호수의 주(미시간)’까지 ‘링컨(대통령)의 땅(일리노이)’을 거쳐 여행을 한 셈이다.

테네시의 별명은 예상외였다. ‘봉사자의 주’라니? 테네시주 멤피스에는 로큰롤의 왕, 엘비스 프레슬리의 저택인 ‘그레이스랜드’가 있다. 전세계에서 수많은 방문객들이 찾기 때문에 ‘엘비스 프레슬리의 주’라고 불려야 타당할 듯 싶은데, ‘봉사자의 주’라고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1812년 독립전쟁 때 테네시 주민들이 많은 전쟁 사상자들을 자진해서 돌보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 부부가 새삼 생각하게 된 것은 ‘링컨의 땅’이라는 일리노이주의 별명이다.

켄터키에서 태어난 •링컨 대통령은 정치의 본거지를 일리노이로 삼았다.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을 종결짓고 노예들을 해방시킨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훌륭한 업적이다.

이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업적이 있다면 그가 승인했던 ‘모릴 법안(Morill Act)’이었다.

모릴 법안은 발의자인 저스틴 스미스 모릴 하원의원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원래 명칭은 ‘모릴 토지-보조연구자금 단과대학 법안(Morrill Land-Grant Colleges Act)’이다. 주립대학의 건립을 쉽게 했던 법으로 상하의원의 각 지역구 당 3만에이커의 국유지를 아무런 대가 없이 주고 그 토지에 대학을 설립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당시 미국은 남북전쟁에서 많은 젊은 층을 잃었다. 경제는 나빳고 살아 돌아온 젊은이들에게 고등교육을 싸게 시킬 방안이 필요했다. 기계공업이 세상을 바꾸려 꿈틀거리고 있었던 때이기도하다.

막대한 국가소유의 땅을 공짜로 나누어 주자는 법안의 통과는 쉽지 않았지만 결국 관철되었다. 인준된 이후에는 몇 차례 수정과정을 거쳤다. 교육자금이 모자라는 경우 받은 땅을 팔아 쓸수 있게도 했다.

이번 여행에서 들렸던 일리노이 대학도 그 혜택을 받은 대학이다. 정부에서 받은 48만 에이커의 땅 중 38만 에이커를 1867년에 에이커 당 66센트에 팔아 ‘공업 대학’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법에 의해 미 전역에 106개의 주립대학이 건립됐다. 사립학교도 모릴 법안의 혜택을 받았는데 코넬대학과 MIT 대학도 그 예다. 미국 고등교육의 토대를 닦은 모릴법은 아직도 미국 독립 이후 제정된 법안 중 가장 생산적인 법으로 평가받는다.

모릴법의 통과는 국민 교육이라는 대전제에 공감한 ‘통합의 정치’ 덕분에 가능했다. 비록 일년 정도밖에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했던 •링컨 대통령, 끈기 있게 법안의 필요성을 외친 모릴 상원의원, 이에 공감했던 동료 정치인들이 만든 위대한 역사다.

훌륭한 자양분이 밑거름된 ‘•링컨의 땅’에 단풍은 퍽이나 아름다웠다.

Pacem Eternis 2013

미국의 메모리얼데이, 한국의 현충일, 6•25사변기념일, 게티즈버그 전쟁 150주년 기념일도 지났다. 엊그제 처음으로 LA국립묘지에 갔었다.

작년 이맘 때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큰 오빠와 오빠처럼 젊은 나이에 전쟁에서 생명을 잃은 이들을 한국사람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면서 글을 쓴 적이 있다.

글의 내용 중의 일부는 친정 가족들에 대한 사연이었다. 미국 이민으로 인해 홀로 남겨진 큰 오빠의 빈 무덤 이야기였다. 비록 이름만이 오빠의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그곳은 나에게 국가라는 공동체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고 생명의 고귀함을 되새겨 주는 곳이다.

그 글을 친구 경희가 읽었다. 경희는 소아 정신과 전문의사로 나와의 인연은 길다. 중학교 1학년 때 만난 우리들은 고등학교, 의과대학을 거쳐 인턴 생활까지 같은 곳에서 했다. 경희의 부군 이 박사님은 또 다른 고교동창의 오빠이자, 내 남편의 의과대학 선배이다. 민족주의자이신 이 박사님은 현충원에 자주 가신다고 한다. 가게 되면 오빠의 무덤을 찾아 보시겠다고 연락이 왔다.

경희가 보내온 이 박사님의 전갈은 나에게 맑은 청량제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표현하기 어려운 깊은 평화를 허락했다.

이 박사님의 뜻을 들은 지 한 해가 지났다. 엊그제 LA국립묘지 방문은 이 박사님의 사회봉사를 생각하면서 이루어 진 것이라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 분은 이미 세상 사람이 아닌 군인들을 현충원에서 만나고, 누구보다 그들을 가슴에 품으며 살아 오신 것이다.

LA국립묘지는 웨스트LA에 있다. UCLA 캠퍼스 근방 세펄•베다와 윌셔가 만나는 지점 바로 동북쪽에 114 에이커의 넓은 땅에 자리잡고 있다. 내가 그곳을 찾은 이른 오후는 평일이어서 그런지 한가했다. 일렬로 단정하게 세워진 흰 대리석 묘비들. 묘비에는 모든 것을 일축한 한 줄의 이름과 참가했던 전쟁(들), 태어난 해, 사망한 해가 적혀있을 뿐이었다.

누구를 위한 죽음이었을까. 여기 뭍혀있는 미국의 참전용사들은 거의 모두가 외국에서 싸웠고 외국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친지한테서 2006년 사진 부문에서 퓰리처상을 받은 타드 하이슬러의 사진과 글이 전송되어 왔다. 사진은 2005년 이라크 전쟁에서 전사한 해병대 소위(小尉) 제임스 케이시와 관련된 것으로 •럭키 마운틴 뉴스에 보도됐던 사진들이었다. 성조기로 감싸진 전사자의 관, 그 관에 엎드려 오열하는 만삭의 젊은 아내, 배안의 태아를 관에 대고 아이와 죽은 영혼이 대화하게 하는 모습, 관 앞에서 남편이 좋아하던 음악을 노트북으로 틀어 놓고 밤을 함께 보내는 젊은 아내, 그리고 부동자세로 밤을 새우며 이 모든 것을 지키고 경의를 표하고 있는 예복차림의 해병대원의 모습 등이었다.

빌리 래이 사이러스는 큰 오빠나 제임스 케이시처럼 전사한 젊은이들을 노래 ‘어떤 이들은 전부를 주었다(Some gave all)’로 기리고 있다. 그의 노래는 빌보드에 최장기록을 세운 바 있다. 모든 것을 남을 위해 준 이들이여, ‘파쳄 에터니스!(Pacem Eternis)!’ 영원한 평화가 그들과 우리에게 있으라!

입양 고양이 네로 2015

‘네로’가 갔다. 네로는 내가 입양했던 고양이 중 하나인데 작고 까매서 ‘네로’라고 불렀다. 어려서 듣던 이탈리아 동요 ‘검은 고양이 네로’에서 따온 이름이다.

나는 한 동안 고양이 구조활동에 참여한 적이 있다. 어느 날 오•피스 근방에 있는 홈디포에 갔다가 집 없는 여러 마리의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을 우연히 만났다. 그 때 이런 홈리스 고양이들을 개인적으로 구조하는 사람과 또 그런 활동을 하는 단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인도적인 차원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었고 대부분은 과외로 자신의 시간과 돈을 쓰고 있었다. 그들은 구조한 개나 고양이가 동물보호소에서 안락사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구조하고, 불임시술을 해주고, 예방주사까지 맞게 한 후 최선을 다해 입양을 시키는 일을 하고 있었다.

미국에는 1만3600개의 동물보호소가 있다. 동물보호소는 19세기 말 뉴욕, 보스턴, 필라델피아에서 개를 임시로 맡기기 위해 생긴 것에서 유래한다. 요즘은 전국적으로 매년 약 760만 마리의 동물이 보호소를 거쳐가고(개 400만, 고양이 340만) 이중 약 36%가 안락사를 당한다고 한다(지역에 따라 30~70%). 일정 기간 안에 입양이 안 되면 건강하더라도 죽인다. 우리는 이것을 안락사라고 하지만 실상 병들어 죽여지는 동물은 그리 많지 않다.

시(市)나 카운티에서 안락사를 시키는 근본적 이유는 빠듯한 예산 때문이다. 또 미국 가정의 30~50%가 이미 한 두 마리 이상의 애완동물과 살고 있어 이들을 품어 줄 가정이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하다. 길거리에 나돌아 다니는 이 녀석들의 출산조절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인데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고양이 예를 들어보자. 새끼 고양이는 약 6개월만 자라면 임신이 가능하고 1년에 두 번 임신할 수 있다. 한 번에 4~6마리 새끼를 낳을 수 있으니 피임을 시키지 않는다면 기하급수적으로 숫자가 늘어날 것이다. 개는 1년에 한 번이다. 그러므로 홈리스 동물들의 임신조절만 해 줄 수 있다면 이 악순환을 깰 수 있다.

어떻든 네로가 우리 식구가 되었을 때 녀석의 나이는 알 수 없었지만 한 번 잡혀서 불임수술을 받은 흔적이 있었다. 오른쪽 귀의 자그마한 부분이 절제되어 있었다. 잡은 고양이는 불임시술을 해 주고 풀어 줄 때 귀 일부분을 짤라 표시 해 주는 것이 통례로 되어있다. 그러니까 네로는 TNR(trap-neuter-return 포획-불임수술-돌려보내짐) 프로그램대로 잡혀 불임수술을 받았지만 입양되지 못해 다시 길로 풀려 났거나 입양 후 어떤 사연이 있어 다시 버려진 것 같았다.

동물애호협회와 동물관리국이 지원하는 TNR프로그램은 미국 이외에 영국, 이탈리아, 캐나다에서도 시행되고 있으며 다시 풀어 준 동물의 수명은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한다.

나는 네로 이외에도 여러 마리의 홈리스 고양이를 입양시키고 직접 입양도 했는데 그 과정에서 국가가 정한 법, 그리고 그 법을 준수하게끔 돕는 관리기관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64년 한 여성이 쓴 ‘동물 기계 (Animal Machines)’이라는 책이 영국을 흔들었고 1년 후인 1965년 지구상 최초로 영국에서 동물복지를 위한 위원회가 조성되었다는 것도 배웠다.

네로 같은 생명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내용을 다음 기회에 더 쓰기로 하고 네로 녀석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접으며 오늘을 마감한다.

여름밤 콘서트와 음악 교육의 추억 2016

나는 모든 계절을 좋아한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그 아름다움이 깊다. 향기가 다르다. 빛도 다르다. 사계절이 분명하지 않은 엘에이라지만 빛으로 말하면 초겨울 엘에이 빛이 제일 오랫동안 생각을 멈추게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초여름이다. 엘에이 기후가 화씨 110도를 오르내리고 잔인스런 열풍이 불어도 이를 견뎌주는 여름은 역시 풍성해서 고맙다. 폭염을 견딘 연약해 보이는 잎새들이 파릇파릇 살아 반짝이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여름이 되면 참외의 향기로움을 생각하게 된다. 어린시절 여름방학이 되면 친구들은 여행을 가거나 과외공부 중이라 바쁘고 홀로 남은 나의 나날은 무료하기만 했다. 이럴 때 엄마가 깍아 주던 참외는 달고 향기로왔다. 그리고 여름이 되면 또 생각나는 일이 있다.처음 보았던 야외 음악회이다.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던 엄마는 클래식을 들으며 살던 분이 아니었다. 그런 엄마가 나를 야외 음악회에 데리고 갔던 일이 있다. 내 희미한 기억에는 그 곳이 덕수궁이었고 연주자는 요한 스트라우스의 후손인 스트라우스라는 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의 다른 부분은 기억나지 않고 그가 연주한 곡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여름 저녁이 덥고 후덥지근 했고 모기가 성가셨다는 것이 기억에 있을 뿐이다.

어린 시절에 갔었던 또 다른 음악회가 기억난다. 신동 피아니스트로 알려진 한동일씨는 13세에 미국에 유학 갔다. 4년 후 처음으로 귀국해서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피아노 연주회를 가졌다. 그 당시 한국에는 이화여대 대강당이 제일 큰 연주회장이었다. 엄마는 나를 그 음악회에 또 데리고 갔다. 내가 몇 살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아서 인터넷을 찾아 한동일씨의 개인 역사를 찾아 보고 거꾸로 계산 해 보니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나이였다. 그는 무늬 사이로 맨살이 비쳐 보이는 까만 명주 양말에 반짝이는 까만 에나멜 구두를 신고 피아노 패달을 바삐 밟으며 모짜르트의 터키 행진곡을 연주 했다. 정말 터키 행진곡을 연주 했는지 누가 묻는다면 장담 할 수는 없지만, 나는 그 후에 ‘딴딴 딴 딴딴 딴딴 딴딴 딴딴 딴 딴딴!!!’ 터키 행진곡을 노래하면서 집안을 돌아 다녔던 것이다. 지금도 가끔 행진곡이 들리는 듯 할 때가 있다.

그랬던 엄마이였지만 나는 실상 아무 악기도 다룰 줄 모른다. 집안 형편상 내가 받은 교육의 범위는 학교에서 배푸는 학과목이 전부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중고교 때 받은 한국의 음악교육은 광범위했고 음악은 많은 이야기를 갖고 나에게 머물었던 것 같다. 한국의 음악교육은 내가 살아가는데 조금도 손색이 없이 삶의 기본을 이해시켜 주었던 것이다. 작품에 숨겨진 이야기들, 끈임없이 고쳐지며 완성된 복잡한 곡들, 그들이 남겨 놓은 난해한 악보를 보면서 감탄하던 순간들. 인간의 ‘영’을 흔들는 신비스런 곡이 있는가 하면 가슴을 멍들게 하는 아픈 곡들도 있다.

올해는 운 좋게 지인이 가정집에서 주최한 컨서트를 다녀왔다. 바하의 첼로 스윗 일 번 전곡(全曲)을 들으며 행복한 저녁시간을 보냈다. 아무리 시대가 발달해서 컴퓨터와, 전화기를 통해 좋아하는 음악을 골라 들으며 살수 있다해도 나에게 음악의 변두리에서 무한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해 준 엄마처럼, 나도 올 여름에는 세살박이 부터 여덟살이 되는 손주들과 함께 할리우드 볼에 가야 할까 보다. 불꽃놀이도 볼 수 있는 밤을 골라서.

알프스 산록에서 띄운 편지 2015

직장에서 반쯤 물러나 있는 ‘반은퇴’의 삶이 싫지는 않다. 이전의 날들을 멀찌감치에서 돌아볼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 나이가 허락하는 정신적, 정서적인 혜택인가 보다. 반쯤 은퇴를 했지만 일정은 예전과 다름 없이 빼꼭히 차 있다.

지금도 환자들의 삶에 어느 정도 관련돼 있는 나에게 가끔 환자들은 관심을 보내온다. 여행은 다니는지, 과외활동은 하는지, 진료 외에 음악이나 미술에 관심이 있는지 알고 싶어한다. 사실 나는 여행을 잘 다니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여러군데를 다녀오고 앞으로도 갈 계획을 세운다. 최근에는 알프스와 그 산을 둘러 싼 나라들을 여행하고 왔다. 내가 진료하는 환자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도 많이 생겼다.

알프스 산맥은 웅장한 모습으로 백년설을 고깔모자처럼 쓰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었다. 가슴을 펴고 산을 바라 보았다. 올라갈 때 진눈깨비로 모습을 숨기고 있었던 산에 눈보라가 그치니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산 중턱부터 걸어서 하행을 하는데 강추위에도 살아 남은 흰색, 보라색, 분홍색의 이름 모를 꽃들이 땅 바닥에 몸을 낮추고 피어 있었다.

‘빈사의 사자상’을 보기 위해 들른 곳은 스위스 루체른이었다. 죽어가는 사자상을 조각한 작품이다. ‘빈사의 사자상’은 거대했고 고통의 표현이 보는 사람들에게 아픔으로 다가올 정도로 걸작이었다. 조각은 자연석을 이용해 절벽에 만들어져 있었고 머리를 반쯤 숙인 사자는 마지막 숨을 거두고 있는 듯 보였다. 사자의 오른쪽 앞발은 프랑스 왕가를 나타내는 백합이 그려진 방패 위에 놓여 있고, 발톱은 웅크리고 있다. 아파서 일까 아니면 누구를 할퀴기 위한 최후 동작이었을까. 스위스의 문장이 그려진 또 다른 방패에 사자는 머리를 기대고 있다. 그리고 사자의 옆구리에는 부러진 창이 꽂혀 있다.

스위스가 잘 살지 못했을 때 용병들이 외국으로 팔려 갔는데 ‘빈사의 사자상’은 프랑스 혁명 때 희생된 약 760명의 용병을 기리기 위해 만든 작품이다. 국가와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군인들을 포함한 우리에게 어떤 보호를 해 줄 수 있는 것일까?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

루체른을 뒤로 하고 대학의 도시 하이델베르그에 갔다. 19세기 말 ‘오래된 하이델베르그’라고 쓰여진 원작이 그후 희곡, 오페라, 무성영화, 뮤지컬 영화 등으로 재탄생했는데 그 무대가 됐던 도시다. 그곳의 대학은 내가 알고 있는 한국이나 미국 대학보다 좁았다. 도서관에는 꽤 많은 학생들이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들도 13세기부터 유럽에서 전통으로 내려오는 ‘축제의 노래’를 뮤지컬 영화 ‘황태자의 첫 사랑(원명: 학생 황태자)’에서처럼 지금도 부를 것이다. 미국에서도 부르는 이 노래는 브람스가 편집해서 편곡한 것이라고 한다.

‘기뻐하자, 그러므로(라틴어, gaudeamus igitur•가우데아무스 이기투르)/ 우리가 젊은 동안/ 즐거웠던 소년시절이 가고/ 문제투성이 늙음도 가고 나면/ 흙은 우리를 받아주리.’ 젊음이 가고 나면 우리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까지도 노래해 주어 고맙기만 하다.

웅장한 자연은 인간의 한계와 무상을 재확인해 주었다. 역사적 작품들은 부귀영화의 쟁탈전에서 노고를 강요받았던 숨겨진 희생과, 부귀영화의 무상함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대학에서는 젊음이 허락하는 삶이 얼마나 싱그러운지 다시 보게 했다. 나도 그런 세월을 지냈었겠구나 하면서..

나의 여행기가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의 삶에 작은 용기가 되기를 바란다.